여러 가지로 주변의 어려운 상황속에 인도에 가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한 이사야 처럼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한 것은 환상 속의 예언자의 모습과 일치하는 그 동안의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 한다.
다른 사람에게 희미하게 보이는 원수사랑의 실천이, 나에게는 이북동포를 너무 사랑해서 안달이 난 사람, 나에게는 확실한 것처럼 느끼는 백두, 평화, 사혁의 시대상황은 민족통일과 사회혁명의 깃발을 나는 늘 품고 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좋으면 거기서 살지 하는 비 웃움 침을 들을 때는 이미 아프리카를 다녀오며 터득된 나만의 자존심이 생긴다. 르완다의 평화센터를 위한 단기협력선교를 결정하고 다녀온 것이 이번 인도 붐바이 사회포럼참가의 원동력이 된다. 하나님의 평화와 화해의 예언자라는 거창한 변명을 만들고 있는 터이다.
바울의 고백처럼 "악에는 아이가 되고, 생각하는 데는 어른이 되십시오" 다시 한번 예수의 가르침과 미국의 극악한 전쟁을 생각하게 한다. 이번 인도사회포럼은 역사 속의 인도를 재발견하고, 인도의 거대한 문명과 대 인구로 가난의 철학을 터득하고 황폐한 자연을 품고 사는 명상과 영성의 나라 "너는 깊은 데로 나가거라. 너희는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는 가르침과 "너는 나를 따라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는 이어지는 명령처럼, 다시 사람을 낚기 위해서 깊은 곳에 도달하여 그물을 내리고, 그러나 잡은 고기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서 십자가를 지는 영원한 순례자의 여행이었다.
1) 인도여정
"자본을 넘어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주제를 가지고, 반전, 반미,의 자주적 흐름속에 전세계 민중들의 열망을 담고 모인 제4회 세계사회포럼은 2004년 1월 16일- 22일까지 중앙 아시아 인도의 서부 중심지역이며, 오랜 경제, 상업중심지, 서구의 식민지가 들어온 뭄바이 항구도시 폐허가 된 동북쪽의 고레가온 공단지역에서 열렸다. 세계132개국과 약10만명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소수족의 인권, 여성, 전쟁반대와 평화, 부시의 제국주의 횡포 등의 큰주제와 수백 여개의 소 주제와 수 백개의 부스를 가지고 뜨겁게 열변을 토하지만 큰 논쟁은 없이 게획된 대로 끝났다.
" '반신자유주의·반군사주의'란 분명한 목표 아래 다양한 소주제가 마련돼 있다.
이번 사회포럼의 핵심 의제는 ▲제국주의적 세계화 ▲가부장제 ▲군사주의와 평화 ▲종교
적 종파주의와 근본주의 ▲카스트와 인종차별주의이다.
구체적으로 토론될 주제를 보면, ▲군사주의, 전쟁과 평화 ▲미디어, 정보, 지식과 문화
▲민주주의, 생태적·경제적 안보 ▲지속 가능한 민주적 발전 ▲노동의 세계와 생산·사회
적 재생산에서의 노동 ▲공공부문 - 식량, 보건, 교육 - 그리고 사회보장 ▲소외, 차별, 존
엄성, 권리와 평등 ▲카스트, 인종과 기타 출신·노동에 의한 배제 ▲종교, 문화 및 정체
성 ▲가부장제, 젠더와 섹슈얼리티 등이다. "(다산인권센터)
한국에서는 약 350명이 참가하였고,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노동자연대 한국위원회(APWSL- K) 대표단은 3명이(대표 1명과 통역 1명 자문 1명이) 참석하였다. 나는 APWSL 한국위원회를 대표하여 지난해 4월부터 참가를 계획하였고 다른 나라 활동가들과 뭄바이 사회포럼과 함께 하는 APWSL 대표자회의를 통하여 최근 변화된 상황속에 APWSL의 각국의 방향과 활동을 점검하고 앞으로의 계획 세우고 역할을 나누는 만남을 약속을 하였고 민중운동의 연장선에서 1월 13일 오후 인천공항을 출발하였다.
10% 값싼 인디아 향공사를 이용하였기에 14일은 무더위의 태국에서 하루를 머물러 추운 한국날씨가 무더위로 바퀴는 적응을 한다. 큰 숨을 쉬며 아시아를 대표하여 갈아탄 인도항공기는 델리를 거쳐서 승객을 내려주고 15일 아침새벽에 뭄바이에 도착예정인 완행여객기이다. 역시 델리에서 짙은 안개로 완행 비행기는 이륙을 할 수 없어서 공항 바닥에서 15시간을 대기를 하며 하루 밤을 지세우고 다음날 오후 늦게 이륙을 한다. 연착하고 늦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인도여행가들의 시간관념을 이미 사전안내를 통해 이해하는 것인지, 모두들 큰불만 없이 하루 밤과 한낮을 의자와 로비에서 지세운다.
탐승객의 절반 이상이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하는 승객으로 비행기 기내에서부터 일정한 동지의식이 발동하여 서로 인사와 통성명을 하며 친구가되어 전통악기를 치며 노래도 부른다. 중국에서 참가하는 일행과 일본에서 참가하는 친구들이 가깝게 느켜지는 것은 지정학적인 것인지, 그들과 사회포럼의 참가와 기대를 이야기하며 전초 전야제를 갖는다. 이미 세계사회포럼의 축제의 분위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2) 뭄바이 일정
15일 저녁때가 되어서 붐바이 공항에 도착하였고 인도사회의 정취가 넘치는 호객꾼들과 씨름하며 삼륜오도바이(룩샤)를 타고 진한 자동차 매연을 먹는다. 서울의 남대문 시장 같은 인파를 속을 헤치고 곡예처럼 달려 예약된 숙소에 도착하였다. 예약은 APWSL 일본친구가 싸고 좋다는 메일을 보냈고, 우리일행은 한국 3명, 태국 2명, 뉴질랜드 1명이 일본 30여명이 함께 묵었다. 일본 동지들의 예약된 호텔은 한국의 여관급 호텔이지만, 주변의 상황과 비교 할 때는 궁전 같은 시설이다. 인도에서도 가장 비싼 3배의 물가라는 붐바이는 물가가 국제화된 도시였다. 약 만명의 외국인을 맞이한 붐바이는 술렁이는 것 같지만 1,000만 이상이 살고 있다는 도시에서 큰 표시가 나지 않는 것 같다.
16일 아침일찍 일어나서 한시간 산책을 한다. 낮선 여행지에서는 내가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를 익히려는 현지적응의 습관적인 시간이다. 호텔에서 10분 거리의 둿 마을에서 평범한 인도의 문화를 본다. 공공 종교소에는 여러 가지 종교의 상징물이 설치되어 있고 각자의 믿음속에 기도로 의식을 치룬다. 90% 힌두교의 아량인 공회소인가? 그들과 친구가 되면 자세히 알수 있지만 감성으로 이해 할 뿐이다. 여기 저기를 호기심 넘쳐서 돌아본다. 부지런하게 하루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입구로 도시에 물을 공급하는 5M의 수도관이 철길을 따라 길게 나와 있다. 한 사내가 작은 물통을 들고 올라가서는 물건을 자랑스럽게 내어놓고 용변을 본다, 내가 쑥스러워 시선을 옆으로 돌리는데 아니 제비 때가 전기 줄에 앉아 있드시 많은 사람들이 수도관 위에서 물통하나씩을 들고 큰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몇 일 후 거리의 소똥이 자연스럽게 느켜 지드시, 공중화장실이 모자라서 거리로 나선 그들의 행위가 자연스럽게 느켜졌다. 우리 나라에서도 멀지 않은 과거에 있었던 풍경이다. .
10시에 대회장소 고레가온지역에 도착하여 대회장을 돌아보았다. 다른 나라에서 참가한 APWSL 동지들과 만남을 갖고 또 한국에서 참석한 운동가들도 만난다. 이미 부시낙선운동 선전전을 땀흘리며 진행하고 있었으며, 이락의 전쟁반대와 신자유주의 반대의 깃발을 들고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고레가온지역 옛 철강제조공장의 터는 130개국 10만이 모여, 인류가 당면한 여러 가지 사회문제의 대안을 논의하며 발표하고 행동하는 축제의 자리가 되도록 자연스럽게 행사장을 꾸미어 만들고 있었다.
오전부터 대회장에 여기, 저기 설치된 포럼장과 선전부스, 안내시설을 돌아보며 길을 익힌다. 한 주간 계획된 일정표를 생각하며 앞으로의 동선을 그려본다. 이번 세계사회포럼의 일반적인 특색과 관심은 어린이교육문제와 물 자원의 문제, 그리고 소수종족의 독립과 인도사회의 달릿 계급문제가 촛좀이 된다고 한다. 특별하게 운동가들에게 지탄을 받아오던 말뿐인 잔치자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행동하려는 모습들이 첫날부터 곳 곳에서 예감이 된다.
날씨는 건조기이며 한낮의 더위가 27도이며 아침, 저녁으로는 공기가 깨끗하지는 않지만 겨울 나라에서 온 나로서는 아주 편안하다.
오후 4시에 IMF 경제대란으로 문을 닫은 철공소 자리 종합운동장에 마련된 본 대회장에서 개막식이 열렸다. 인도를 대표하는 가수와 세계문화활동가들의 문화행사가 그리고 아프리카의 전통음악과 드럼이, 2시간 넘게 사전행사로 진행되었다. 출입구에서 멀지 않은 약간 그늘에서 자리를 잡았는데 한국인들과 WCC. CCA 등의 사람들과 함께 비슷한 공간에서 땅바닥에 앉아서 참여한다. 이삼열박사의 모습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고 바로 옆에 인도붐바이지역 NCCI 루터란교회의 사람들이 함께 앉아서 인사를 나누었다. 초기 사회포럼의 전통에 교회가 함께 하였고 이번 붐바이 포럼에도 교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하며 에큐메니칼모임도 개최한다고 한다.
6시가 넘어서야 대회의 상징 의식의 풍선이 하늘로 올라가며 대회를 알리고 인도의 지성들이 환영사를 이락과 팔레스틴을 대표한 사람들의 증언과 고발을 하는 등 세계사회포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아 2시간 가까이 개막행사의 연설을 하였다. 운동장의 가득 메운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주변 분들과의 인사 나눔으로 연설을 듣기가 쉽지 않아다. 시간의 지루함은 느낄 수 없는 세계의 만남이 계속되어 전체 흐름을 감지하고 통역을 통하여 요지를 설명 듣고 내용을 파악을 한다. 대형화면이 여기 저기 설치되어 있어서 연단의 연사의 얼굴은 볼 수 있었다. 노벨상을 탄 사람도 있고 세계의 석학들이 나온다지만 군중들의 박수를 크게 받지는 못한다. 언어와 문화와 관심의 다양성에 인도를 대표하는 재야운동가 할머니가 나올 때 만 박수소리가 크게 들린다.
3) 계획된 세계포럼참가
세계자본은 세계를 구석구석 누비며 노동시장을 왕성하게 잠식하고 있는데 노동과 사회활동가들은 현장과 지역적인 일들에 성실하게 노력하다 보니 국제적인 대응은 부족하였다. 열심히 노동하고, 사회문제를 대처하고서도 불로 소득하는 금융자본의 한입 자본가의 먹이 거리가 되고있는 현실이다. 특별히 세계적으로 볼 때 사회운동의 연대와 소통이 잘되지 않고 있는 아시아지역의 한 걸음 도약을 위하여 붐바이 포럼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비판적인 사람들의 시각으로 사회포럼은 큰 대책 없이 말만 많이 하고 행동이 제한된 무용론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와 제국주의 미국의 전쟁이 일어나는 시대상황속에 국제연대의 대응은 폭력적인 자본과 전쟁의 부레이크 역할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참가하였다.
아시아태평양노동자연대회(APWSL)의 한국위원회 대표와 한국노동네트웍크협의회 운영위원장으로서 세계사회포럼의 참가 최소한의 목표는 세계노동자들의 풀뿌리 국제연대가 지원금이 없어도 침체되고 않고, 적은 자체 회비와 소수의 활동가들이지만 모범적인 작은 모델을 세우고 교류협력이 활성화되도록 연대의 상을 세워나가도록 추진하는 일을 조직하는 일이 었다. 2003년 년초에 발표한 한국위원회의 자주적이고 모범적인 국제연대의 사례와 실행사례와 회비의 반을 가난한 다른 지역의 동지들이 회의참가 지원금으로 내어놓고 협력하는 일을 앞으로의 연대의 방향으로 선전하는 일이었다
17일은 한국의 이주노동자 문제를 알리며 국제행동을 조직하는 임시가두선전장소를 우리의 만남의 장소로 정하고 활동을 하였다. 미리부스를 마련하지 못하였지만 예정없이 활동하며 목이 쉬어라 소리치는 한국인들의 열정적인 홍보는 세계인들에게, 그리고 인도인들에게 적극적인 한국인들의 투쟁성과 활동상을 부여 주었다. 한국의 이주노동자선전 거리본부가 참가자들의 관심과 언론들의 취재대상이 된다.
오후 부시낙선운동과 전쟁반대 평화포럼을 참가하였다. 홍근수목사님을 비롯하여 한국인들이 분위기를 조도한다. 전체 부스중 인도의 노동자들이 만들어 놓은 단체의 전시관 쪽을 돌아본다. 너무 많아서 다 돌아 볼 수 없고 아이쇼핑하는 수준이다. 인도노동조합과 단체들에게 인사를 해보지만 관심 없는 고압적인 자세이다.
오후에는 APWSL 일본위원회가 주최한 여성노동자포럼에 참가하였다. 자유토론시간에 한국의 여성노동자문제를 중심으로 입장을 발표도 하였다. APWSL 한국과 일본위원회는 여성노동자포럼, 이주노동자포럼, 다국적 진출기업문제포럼, 인터넷정보인권포럼을 비롯한 몇 가지를 포럼을 개최하고 조직적으로 참가하여 현안을 논의하기로 결정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위원회는 국내노동문제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상황과 자체활동의 문제에 치중하였고 특히 준비의 책임자인 나는 지난해 11월 9일 노동자대회에서 경찰폭력으로 병원에 입원까지 하는 상황속에서 정해진 일정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준비는 하지 못하였다. 주최하기로 계획하였던 행사를 준비하지 못하였고 같은 내용의 포럼에 참가하였다.
전쟁반대와 세계평화를 위한 큰 주제 토론이 대운동장에서 있었지만 다른 일로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한국인 연사(홍근수 목사)가 훌륭하게 연설하여 박수를 받았다는 소식을 티벳사람들이 전해주어서 소식을 들었다.
저녁 귀가 길에 룩샤 운전수가 엉뚱한 길에 내려주어서 3-40분 걸어서 귀가한다. 비닐천막을 치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아주 평범한 도시 서민들이 살아가는 저녁의 보내는 모습을 보았다. 숙소근처에서 컴컴한 닭튀김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푸짐하지는 않았지만 서민들의 영양보충을 하는 식당의 모습과 어린 소년들이 심부름을 하는데 능숙한 솜씨는 붐바이의 생생한 모습이다. 거리에서 사간 포도를 소년에게 나누지만 받지 않으려 한다.
18일 오전 ATTAC 일본의 포럼 참가하고 나와서 인권 쪽 수많은 부스를 돌아보며, 자본가들이 30여년 전에 엑스포박람회를 열고, 지금도 세계곳곳에서 무역박람회를 열며 상품을 개발하며 장사를 하는 생각이 오버랩 된다. 무허가의 한국이주노동자부스에서 홍근수목사, 진관스님 등 여러 한국대표들을 만났다. 민주노총대표들 40여명이 도착하였다고 붉은색 쟁이 복장이 눈에 뛴다. 선거를 마치고 바로 여행이라 지친 표정들이다.
3) 레지스탕스 포럼이 건너편 거리에서 열리고 APWSL 대표하여 룩크와 참가자들이 전투적인 레지스탕스 포럼 참가자들의 소식과 분위기를 전한다. 혁명 무장투쟁을 이야기하는 분위기이며 자본의 냄새가 없는 세계 투쟁가들의 포럼이었다고 전해옴.인도에서 댐건설을 반대하며 무장투쟁을 하는 사람들 , 소수종족의 독립투쟁, 막스렌린혁명주의자들을 비롯하여,
남반구투쟁지원단체들이 또하나의 다른 세계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북한지원부스도 설치되어 있다고 함.
18일 오전 세계교회협의회 부스를 어린이 교육과 인도의 URM 선교 포럼등이 열리고 있지만 관심밖의 활동이었다. 에큐메니칼 부스를 챃았다가 헛걸음을 하였다. 김미선씨가 이주노동자 포러믈 위하여 원불교의 최서영교무와 들어와서 포럼과 행사를 주도하고 있다.
18일 오후 1시부터 접수처 근처에서 APWSL 각국대표단 일행을 만났다. 원래 풀뿌리민중 연대와 민주적인 노동자들의 교류를 통하여 거대한 그로벌 자본으로 세계민중들을 더욱 살아가기 어렵고 만들고 폭력적인 전쟁과 횡포를 동원하여 평화를 깨고있는 미국중심의 제국세력에 대항하여 이를 극복할 대안을 만들기 위한 만남이다. 붐바이 시내의 예약된 회의장소 둘러않아서 진진하게 회의를 한다.
APWSL 각국의 코디네이터는 전체대표 안톤(스리랑카)의 사회로 전체모임을 시작하여 참가자 소개를 하였다. 회의 준비와 진행을 맏은 총무 눅크(뉴질랜드), 스리파이외 1인(태국) 요코, 유키히로, 하라다, 등 5인(일본) 장창원, 조명숙(한국) 버즈러와 지폰 국제연대 담당자(네팔) 등이 참가자 소개를 하였다. 이어서 인도네시아의 의견서제출을 비롯한 불참국의 현황과 상황을 눅크가 점검하였다. 콕스는 전체 조직의 상황설명과 악포드의 미지급 펀드의 문제점과 해결하려는 의지를 설명하였고 각국의 상황설명은 한국위원회가 준비한 리포트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APWSL(아시아·태평양 노동자연대)는 1982년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있는 16개( 파키스탄,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태국,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중국(홍콩), 대만, 일본, 남한, 호주, 뉴질랜드, 피지) 국가의 노동자들의 네트워크로서 1. 민주적이고 자주적이며 진정한 노동조합운동 건설 2. 국제 노동자 연대, 특히 풀뿌리 수준의 연대강화 3. 우리 자신의 활동과 보다 광범위한 노동조합운동에 있어서의 성적 평등실현 4.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들의 인권을 지킴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레드 컴푸렉스가 강한 우리나라와 몇몇 보수적인 노동조합이 왕성한 나라에서는 좌편향적 이라고 활동이 어려웠다. 최근에 국제적인 프로잭트 지원금이 끊기면서 활동이 약화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바닥노동자들의 교류와 민주노동조합조직은 자주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현안문제 논의는 의사소통의 원활을 위한 한국과 일본위원회가 APWSL 홈페이지 제작하는 것을 결정하였고 새로운 프로잭트로 젊은 여성노동자 교육프로그램과 뉴질랜드위원회가 준비하는 여성지도력 초청훈련프로그램을 보고하였고 다음 APWSL 총회계획에 대한 논의를 한후 회의를 마쳤다. 회의가 끝난 후 인도의 영국식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뒷풀이를 하였다. 얼마전까지 한국에서 함께 활동을 하다가 출국한 버즈러와의 재회는 감회가 새롭다. 이야기 끝에 네팔숙소에서 함께 생활할 것을 제안받았다.
19일은 주요 회의가 끝난 후의 조금은 여유가 있는 아침을 맞이한다. 아침산책을 마친 후 식사를 하며 한국, 태국, 뉴질랜드 대표단이 숙소를 네팔 지폰이 묵는 곳으로 이동하자는 논의를 하고 일본대표에게 의견을 묻고 이동하기로 결정하였다. 국제적으로 일반적인 숙소지만 인도에 왔으면 인도식의 민박이 필요한 때에 버즈러의 제안이 밖으로 나가고 싶은 일행들의 마음과 일치가 되었다. APWSL 인도위원회가 인도식으로 안내를 한다면 거리 잠을 자더라도 그것이 편할 것 같은 생각으로 네팔의 강당식 공동숙소에 함께 묵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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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남반구노조연대회의가 여는 포럼에 들어 같다, 인도의 노조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니 큰 강당이 설렁하다, 한국인들이 주를 이룬다. 남반구노조연대의 사명이 한국에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중간에 진관스님이 카메라를 잃어버려서 대회장내 경찰서에 신고를 하러갔다. 계속하여 물건이나 돈을 잊어버리고 신고하려는 사람들이 붐빈다.
오후에는 이주노동자포럼이 잘 조정이 되지 않아서 혼선을 빚고 회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갈라진 남북이 국제적인 활동에서 단일깃발을 들고 활동하드시 국내에서 다른 모습의 단체들이라도 취지를 같이하는 포럼에서는 단합된 의견제시가 필요하고 같은 내용의 불필요한 행사의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저녁에는 다국적기업포럼에 참석하였다. AMRC가 세련된 방법으로 회의를 진행한다. 아시아지역에서의 다국적 진출기업의 피해사례를 발표하고 대안을 토론한다. 마지막 질문과 의견으로 한국위원회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밤 늦게 숙소를 네팔노동자들이 묵는 강당형 숙소로 옮겼다. 바지러가 저녁식사 대접하였다. 인도에서 노동하는 네팔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20일, 21일 네팔노동자들과 합숙하며 뜻깊은 연대와 교류의 시간을 갖었다.
20일 한국의 이주노동자의 국제행동을 조직하며 문제를 알리는 부스가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또한 대회의 열기는 대회장을 걷기가 힘들도록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토론하고 요구하는 내용을 앞시우고 구내 선정과 행진을 한다. 전통적인 문화와 노래, 춤을 추며 관심을 끌도록 행진한다. 축제의 마당이 절쟁에 오르는 듯 하다. 반전평화 신자유주의 반대포럼, 미군기지주둔반대포럼, 달릿부스 등 관심 있는 행사와 대회장들을 돌아보았다.
일과를 마치고 늦은 밤 시간은 대회에 참가한 진보적인 단체의 사람들이 한군데 숙소로 30여명이 모여서 인사와 뒷 풀이를 하였다. 이번 대회가 내용 없고 무의미하게 진행된다는 평가들을 한다. 저항적인 단체들의 레지스탕스포럼에 참가한 사람의 이야기도 들었다. 전혀 내용이 없어서 시내와 인도의 문화 담방을 다녔다는 참가자도 있었다. 처음 해외여행길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젊은이도 있었다.
21일은 대회를 마무리하는 행진과 폐막식이 시내에서 열리는 날이다. 아침 산책길에 인도에서 유명한 IIT대학주변의 거리를 산책을 하였다. 첨단 산업의 잠재력이 강국이라는 인상을 받을 만큼 웅장한 대학주변을 돌아보았다. 일행과 아침식사를 간단하며 하루에 일정을 논의 한다 네팔의 40여 일행은 오후 일찍 귀국을 한다고 한다. 기차와 버스를 이용하여 3일이 걸려서 귀국한다고 한다. 우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 기차를 타며 거리행진을 위해 집결하는 시내의 한 운동장으로 챃아 갔다. 그동안 포럼 대회장에서의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이색적인 인도도심의 거리행진이 흥미롭게 열의를 가지고 어루어 졌다. 참가한 한국인들은 반전, 반세계화 깃발과 현수막을 들고 주도적을 행진을 한다. 시위문화가 발달된 한국을 돌아본다.
거리대회가 끝나지 않았지만 델리행 차표를 구하려고 다른 길을 택하였다. 여러 사람에게 뭍고 여러 시간을 찾아 이동하여서 외국인 기차표 예매창구 앞에서 서류를 쓰고 차례를 1시간이상 기다렸다. 이미 5시 약속시간은 지나고 있었다. 를 사려할 때 여권을 숙소에 두고 나와서 몇 시간을 허비하였다. 5시에 헤어지는 네팔동지들과의 인사를 하지 못하고 자녁식사의 약속이 늦어지고 숙소이동의 시간이 4시간이 늦어졌다. 인도사람들이 시간개념이 느슨하다고 흉을 봤는데 약속을 못 지켜서 오랜 시간을 기다린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태국친구들과 헤어지는 저녁식사를 한후 한국,뉴질랜드 일행은 밤늦게 처치게이트 해안가로 숙소를 잡았다.
22일 아침산책을 하고 일찍 스럼지역이라는 다라비 마을 방문하려는 계획으로 기차역으로 출발하였다. 안내자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대체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카토릭교회가 운영하는 성신병원과 교회당, 근처의 빈민여성쉼터, 구제시설, 초등학교 등을 방문하였고 일반적인 민중들의 삶의 자리인 작은 마을을 돌아보았다. 나는 오후에 델리행 기차표를 구하러 다시 처치게이트역 근처의 어제보아둔 매표소로 향하였다. 어제의 경험이 쉽게 표를 에약하였다. 24일 밤 9시30분 출발하여 25일 밤 7시30분 뉴델리에 도착하는 요금은 10불쯤 되는 2등 칸 침대 기차이다.
23일 붐바이 남쪽이 바닷가에서 여유있는 휴식과 문화기향의 시간을 갖는다. 여행객들이 꼭 들른다는 붐바이 게이트에서 영국이 인도에 들어온 것을 기념하는 문과 고전적인풍의 도시건출물을 둘러보았다.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을 보며 기도하는 인도사람들과 함께 아침을 맛이 하였다. 10시쯤 문화기행으로 룩크와 우리 일행이 엘리펀트동굴이 있는 섬으로 가는 배를 타고 1시간 찾아가서 약 1000년전의 유네스코지정된 문화유산 동굴벽화를 감상한다. 포루투갈 식민지 때 파손된 문화유적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며 유적지 자원봉사 안내인의 설명을 들었다. 웅장하고 격동적인 벽화와 동상들, 그러나 아래 부분을 포푸투갈 군인들이 사격연습하며 망쳐놓았다고 한다. 아시아와 인도의 식민지 역사경험이 얼마나 처참함을 공통적으로 분노하여 회복을 위한 노력들을 이야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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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서 휴식과 여유 있는 바닷가 산책길에 한국에서 처참하게 추방된 방글라데시 노동자 비투를 우연하게 만났다. 포럼에서 열심히 선전한 한국이주노동자투쟁단 동지를 안내하여 방글라데시에 함께 가려 열차를 예매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룩크가 연락하여 인도의 금속전기노동조합간부가 2명을 함께 만나서 식사를 한다. 인도방문소감과 세계사회포럼의 감회를 이야기하였다.
우리는 달릿계급 해방문제와 아프리카와 비교하는 인도의 가난함을 이야기하니 경색되고 긴장되는 분위가 역력하였고, 그들은 우리가 현장노동자가 아니라며 계급성을 강조하여 이야기하면 우리가 경색되었다. 짧은 시간의 만남이지만 오랜친구의 동지의식을 갖고 헤어진다. 내일 자기들 노동조합원들이 다라비 마을을 안내할 것을 약속하고 한동지는 자기집으로 초대하여 점심식사를 대접하기는 초청을 하였다. 늦게나마 귀한 손님 대접을 받는 것 같다.
24일 새벽 눅크는 남쪽지역의 바닷가로 짐을 싸서 떠났다. 급하게 이동하느라, 몇 가지 물건을 빠트리고 갔다. 우리는 짐을 정리하여 호텔에서 체크아웃하고 어제 만난 노동조합 간부와 만나기로 한 다라비 마을 근처의 역으로 향하였다.
한편으로는 20여년의 풀뿌리노동자교류와 연대, 협력의 활동가운데 다음과 같은 APWSL의 지향점들이 일정부분을 발전되기도 하였는가? .
- APWSL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국제자본과 초국적 기업들의 급증하는 침투와 지배, 그리고 지역의 정부들과 기업들에 의한 노동자 민중들의 인권이 계속적으로 침해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하여 만들어졌으며, IMF-세계은행에 의한 구조조정 프로그램과 GATT, WTO의 소위 자유무역 정책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해 왔다.
- APWSL은 적절한 생활수준, 상당한 건강 및 안전 조건, 기타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이 지역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지원하는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있다. APWSL은 지 지역의 많은 노동조합들이 진정으로 친 노동자적으로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APWSL은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이해를 실질적으로 옹호하는 노동자들과 노동조합들을 지지한다.
2. 현재 정부에서 자진출국기한 연장 방침을 내놓았습니다. 외국인노동자 관련 단체들 사이에서 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목사님은 정부방침과 농성해산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답 : 한국에서는 90년대 초기부터 교회를 중심으로 시작된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는 열악한 노동인권차원의 대책과 후원을 하여왔다. 그러나 90년대 중반기 민주노총이 생기고 당당한 노동자의 3권이 보호되는 시대의 변화 속에 최소한의 노동권확보를 위한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반으로 90년대 말부터 외국인노동자후원의 개념이 차별적인 요소가 있음을 인식하고,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의 개념으로 발전되어 새롭게 시작되었다.
지금은 민주노총의 조직속에 평등노조 이주지부로 활동이 시작되었다. 노동자의 연대와 기본권리는 국경을 넘어, 인종과 언어를 넘어서 차별 없는 평등세계를 이루는 세계사회운동의 대안체계를 추구하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의 문제와 함께 큰 이슈가 되고 있다.
한국정부의 최근 이주노동자의 정책과 입법은 단기적인 안목으로 자본의 이익에 급급한 정책이며 이주노동자를 통제하여 노예 노동을 강요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그 동안 우리노동자들이 100여년전 해외에서 이주노동을 하는 것 같은 어려움을 주고 있으며, 여러 가지 시행착오의 어려움 속 터득된 이주노동의 자유와 민주적인 시민정신의 혜택과는 정 반대적인 노동자권리의 탄압과 자본의 노예화로 지난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 때 이주노동자들도 함께 죽어갔다. 당연히 국제사회의 비난과 함께 저항에 부딛치고 있다.
3.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과 미국등에서 외국인 불법체류자로 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혹시 미국이나 일본쪽에 이 문제를 문의해줄 사람을 알고 계신다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 일본에는 일제의 식민지 시대부터 이주를 시작한 우리노동자들이 지금까지 재일 한국인으로 살고 있으며, 일제때 중국으로 이주한 노동자 조선족들이 무리를 지어 한국계 중국인으로 살다가, 최근에는 한국으로 이주노동을 하러 많은 수의 동포들이 고국에서 차별대우를 받는 노동을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가 우리 나라에 40만이 들어와 있는 최근에 일본으로 이주노동을 떠나는 건설일용공노동자, 유흥업소 써비스 노동자가 생각보다 많다. 지금도 계속 일본에서 이주노동을 하고있다. ( 재일대한기독교회 도시농어촌선교위원회. APWSL- J )
역시 미국에도 100여년 전 이민을 간 세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미국과 카나다, 호주 등으로 부의 실현을 꿈꾸며 이주노동자의 산출은 계속되고 있다. 70-80년대 근대사회의 산업역군이라는 독일로 떠나간 광부와 간호사들이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독일에서 노동을 하고 있다.
4. 이주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아시아 지역 국제연대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문제에서 국제연대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답) 코카콜라와 삼성처럼 자본은 자유롭게 다국적 기업활동을 하며 교류, 유통하며 가난한 나라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 바쁘게 움직이는 금융자본의 불로소득이 노동자들을 뼈빠지게 일하고 그러나 자유롭게 살 수 없는 노예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현실 이주노동자의 문제들은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는 각 국의 노동자들의 연대와 교류, 단결된 행동을 통해서만 인간답고 당연한 노동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
5. 이주노동자 문제 관련 국제연대의 현황과 경과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답) 여러 가지의 사례와 실제가 있지만 APWSL 이 접하는 중심적인 사항을 정리한다.
사례1) 로 아시아의 이주노동자 최대 송출국은 핀리핀 이고 한국에서도 이미 10여년 전부터 핀리핀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핀리핀노동조합의 노동조직가들이 파견되어왔습니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 부터 자국노동자의 권리와 이권을 지키기 위한 조직적인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각국에 그러한 네트웍을 가지고 국제적인 연대의 틀을 만들고 있다.
사례2) 로 한, 일간에는 산업선교회와 인권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30여년 간 노동자문제를 함께 공동의 주제로 하여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 그리고 APWSL은 일본의 다국적 진출기업이 한국에 와서 노동력을 착취하고 부당한 폐업이나 노동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긴밀하고 강력하게 연대하여 15년간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였다.
사례3) 한국에 들어와 13년간 일한 이주노동자는 최근 고국으로 돌아가서 자국의 민주노총과 함께 한국에 있는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아시아지역 이주노동자들의 연대와 이주노동탄압의 문제해결을 위한 국제 연대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위 사례 1, 2, 3)에서 볼 수 있드시 이주노동운동은 앞으로 국제사회변혁운동의 중심 연결고리이며 그러한 노동자국제연활동이 길게는 10여년 적게는 3-4년을 한국에서 살아가며 노동한 이주노동자가 조직화되고 언어와 문화의 상당한 이해를 갖고 단결했을 때 세계의 평화와 평등한 변혁의 세계를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이 될 것이다.
한계) 썩은 돈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는 황금 만능 자본중심의 사고와 언어소통을 구실로한 소수 엘리트의 형식적이며 관료적인 상층부의 교류, 연대는 민중들의 삶과 요구를 배제하고 한 관중심의 연대를 통한 기득권자들의 힘과 권력을 유지 발전시키려는 한계가 있다.
과제) 작지만 아름다운 풀뿌리 민중들의 실질적인 연대와 교류가 빈번하여 질 때 국제연대의 중심이 설 수 있다. 지금은 실날같은 민중들의 자주적 교류와 연대가 강물처럼 큰 줄기로 자리잡아 원할하게 흘러갈 때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된 사회가 이루어지고 국내노동자와 똑같은 권리와 대접을 이주노동자가 받는 평등세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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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길의 감회 )
앞으로 연대활동을 하려는 인도 노동자의 가정에 초대되어 인도식 점심을 정성컷 대접받았다. 인도의 식사는 깨끗하게 손을 씻고 한 손으로 한다. 다른 한손은 화장실에서 사용한다 체험적으로 실행해보니 엄머니의 젓을 먹는 식사와 자기의 신체의 소중한 한부분을 정확하게 점검하는 기회를 갖는 것을 알수 있었다.
초기 함께 시작했던 노동자 연대활동에 참가하지 않는 있는 사람들의 하고 있는 활동과 하려는 일들이 얼마나 발전적으로 이루어 지고 있는지를 생각해본다.
항공기 기내식은 인도항공사들의 큰손과
에어 인디아의 낡은 완행항공기라 안개속에 이륙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최신식 항공기라 생각했던 점보 대한항공기도 인천공항에 착륙하지못하고 제주도에서 5시간을 머물렀다. 대한항공의 비행기들이 최신식 일 것이라는 착각과 경제성장과 수입이 높으면 최고의 행복이 있을것이라 생각했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 생각을 한다.
한국사회에 최근 일고 있는 세계여행과 인도 영성의 열풍이 성수기 비행기표를 예약하기도 힘들다고 하는 여건 속에서 보람있는 여행이 되었다.
노동자들에게 가한 경찰폭력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누워 있을 때 방문한 친지들이 건내 준 봉투속의 정성을 모아서 비행기표를 구입하였다.
내주변의 사람들이 더욱 절실하게 소중하고 사랑하도록 만드는 약 3주간의 긴 인도 여행이었다. 붐바이 세계사회포럼과 뉴델리행 횡단열차를 22시간 타고 인도의 거대함을 맛보며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델리의 추운날씨와 한국의 여행가들의 중간거점
숙소 옆 동네의 민속적인 결혼행사가 3일간 잔치를 열고
최대 국경일 제헌절의 거리퍼레이드 행사 걸어서 돌아봄
인도 북철도 노동조합본부에서 대표자와 임원들을 만남
방콕행 비행기 안에서의 잠이든 해푸닝
태국 방콕의 스리파이의 공항 상봉후
YCW 젊은 여성 노동자의 집에서 숙박 후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앞 한국이주노동자문제 항의 거리시위 참석함
태국 노동부 건물앞에 일본기업의 관리자 폭행에 항의하는 태국노동자들의 집단항의 방문단 둘러봄 만남
노동연구소 단체대표가 태국식 점심식사를 대접함
오후 YCW 회원들의 모임과 대화후 저녁식사
29일 기독교회관에서 열리는 ACPOD회의에 참석하여 대표자에게 항의하고 자료를 제출하였다.
노동단체를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방문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며 여
민중들
아시아태평양노동자연대가
4.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포루투갈과 영국의 식민지 역사속에 부서진 동적인 전통문화
계급사회을 이용한 대리 통치와 달릿계급
이 정도면 됐어, 시간의 흐름을 즐기며
다시 태어나면 소가되지 내세관으로 발달된 영서
식물성을 섭취하며 소식으로 단련되어 사는 영성의 사람들
거대한 땅과 인구는 참재력 있는 국력이며 대부분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국가로 집약되는 힘은 다른 국가의 침범을 용인 할 수 없다.
과학기술자의 양성-핵보유국가-영어의 산업화를 시도하며 -IT산업의 발달
5. 다짐의 기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다른 세상
평등과 해방으로 기뻐 춤추는 민중들의 세상을 열어가기 위하여
바닥의 노동자들이 연대하여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꿈이 가능하다는 희망으로
아시아와 태평양지역의 노동자들이 만나고 있습니다.
사회변혁의 역사적 순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