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가볼 만한 곳 베론성지
충북 제천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천주교성지 베론성지 베론성당 베론신학교
천주교 박해는 왜 일어났나?
1791년(정조 15년) 모친상을 당한 윤지충은 제사를 금지하는 천주교 법에 따라 제사를 금지하고 신주를 불태우는 일이 있었는데
불효자라는 죄목으로 주변의 고발로 서울에 알려지게 되어 그들을 참수하고 천주교를 배척하는 상소가 올려지게 된다
이후 윤지층과 권상연은 참수를 당하고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었다 이를 두고 신해박해라 부른다
이후 1801년(순조 1년) 천주교 박해사건으로 순교자가 52명이나 되는 신유박해가 일어난다
천주교에 대한 비교적 온화한 정책을 펼쳐왔던 정조가 1800년(정조 24년) 6월(음)에 승하하자
정조의 뒤를 이어 순조가 겨우 11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는데 대왕대비 정순왕후 김씨가 섭정이 되어
모든 정사를 마음대로 하기에 이르는데 왕대비는 노른벽파에 속해 있었으므로 집권하자 천주교도들과
남인시파 일망타진을 시작하게 된다
많은 천주교도 인들이 전국으로 흩어지게 되었고 그중 황사영은 베론으로 피하였으며
이 베론의 옹기 굽는 토굴에서 천주교 박해에 관한 글(황사영 백서)을 써서 중국 베이징 주교에게 보내려다
발각이 되어 대역부도죄로 사형에 처하게 된다
베론은 어떠한 곳인가?
베론은 치악산 동남 기슭에 솟아있는 구학산(985m)과 백운산(1,087m)의 연봉이 둘러싼
계곡 양쪽의 산골마을이며 골짜기가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고 하여 베론이라 불린다
한국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와 신앙을 지켜나간 교우촌이며
황사영토굴과 최양업신부의 묘가 있으며, 성 요셉신학교가 세워진 곳이다
2001년 3월 2일 충청북도기념물 제118호로 지정되었고 재단법인 천주교 원주교구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
박해를 피하려고 이곳에 모여든 신자들은 베론에서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했을까?
이들은 박해를 피해 베론으로 들어왔으며 화전과 옹기를 구워 생계를 유지하였다
옹기 굽는 일은 토굴에서 생활하였기에 신앙을 유지하기에 좋았고, 옹기장사는 특성상 가가호호 방문하여 판매가 이루어져
감시자들의 눈을 피해 여러 연락을 주고받기에 편리하였다
신학당 가는 길에 놓여있는 성경구절
나를 믿는 사람은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요한복음 7장 38절)
예수상이 순례자를 두팔벌려 반겨준다
베론신학교
한국 최초의 신학교이다
1831년에 설정된 조선교구는 1836년 3명의 신학생을 선발하여 마카오로 유학을 보내는데
이들은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이다
1855년에 베론신학교를 설립하였으며 1866년 병인박해 때 폐교당하였다
황사영토굴
그때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천주교박해 당시 교인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토굴에서 옹기를 구웠으며
그 토굴에서 황사영은 천주교박해사실을 알리는 황사영백서를 작성한다
이 사건이 발각되므로 인하여 황사영은 대역부도죄로 능지처참을 당하게 된다
최양업신부 조각공원
약속의 땅으로 가는길 (인생여정)
베론성당
제천 10경
제1경 의림지, 제2경 박달재, 제3경 월악산, 제4경 청풍문화재단지, 제5경 금수산
제6경 용하구국, 제7경 송계계곡, 제8경 옥순봉, 제9경 탁사정, 제10경 베론성지
베론성지 주변 추천맛집
제천맛집 사또가든 탁사정과 베론성지 근처 착한 수지가 알려드리는 착한 가격업소 5,000원
베론성지
충북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 640
043-651-4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