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7일, 우리 제주향교에서 <논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올가을의 나들이길 맛기행에 나섰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우리의 리더는 임동춘 교수다. 제주대 중문과 교수인 그는 7년 동안 한결같이 향교에서 논어를 가르쳐 왔다. 그의 해박한 지식, 심오한 사상체계, 균형잡힌 현실인식, 걸출한 입담은 정평이 나있고 중국학계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7년 동안 우리 학생들을 이끌고 매년 봄가을 맛기행을 떠난다. 임동춘 교수, 정철희님, 양태경님, 김형기님, 강수선님, 이선희님, 양유심님, 윤미순님 그리고 우리 부부(권무일, 노인숙) 등 10명이다. 그 동안 섭렵한 전라도 여러 지역의 맛갈스런 음식의 맛은 생각만 해도 입에 군침이 들고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지금까지는 배를 타고 완도 또는 목포로 바다를 건넜지만 이번에는 항공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전북까지 맛을 찾아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임 교수가 렌터카의 핸들을 잡는다. 그는 운전에, 길에 그리고 맛집 구석구석까지 훤히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공항에서 출발한 차는 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호기있게 달린다. 전주에 이르러 <삼백집>에 내릴 때는 오전 11시경이다. 새벽에 떠난 우리는 벌써 배가 출출했다. <삼백집>은 68년의 역사를 자랑하기에 나는 전에도 전주에 출장을 오면 들르던 곳이다. 어느 날이건 하루에 삼백 그릇을 팔면 문을 닿는다 하여 <삼백집>이다. 콩나물국밥이 나오기 전에 모주가 상에 올려진다. 모주 맛은 변함없이 달큰하여 입에 착 달라붙는다. 콩나물국밥은 담백하고 시원하며 콩나물 씹히는 느낌이 좋다. 바로 이 맛이야 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하우인 것이다.
이어서 전주 한옥마을을 어슬렁어슬렁 걷는다. 한옥의 고풍스러움을 감상할 여지도 없이 각종의 주전부리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떡갈비완자꼬치, 치즈닭꼬치, 문어꼬치, 오짱(오징어다리를 나무가지처럼 펼쳐 튀긴 것) 등등, 먹거리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우리는 동심으로 돌아가 아이들처럼 손에 들고 걸으며 먹는다. 야금야금 먹어댄 주전부리로 포만한 느낌이다. 거리에는 한복을 입은 이팔청춘 여인들이 사뿐사뿐 활보한다. 수학여행 온 여학생들이 한복을 빌려입고 걷고 있기 때문이다. 나많은 여인들도 덩달아 한복차림이다. 형형색색의 자태가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다.
우리는 전주향교를 찾아들어 곳곳을 살폈고 이태조(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慶基殿)을 둘러보았다. 경기전은 태종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묘사(廟祠)로 <조선왕조실록>이 보관되어 있기도 하였다. 우리는 천주교의 모진 역사가 담겨있는 전동성당을 찾았다. 많은 천주교인들의 순교의 현장이며 뛰어난 건축미를 자랑하는, 명동성당을 닮은 건물이다.
우리는 차를 달려 임실의 국사봉을 찾는다. 저 아래 펼쳐진 옥정호는 섬진강 다목적댐을 건설하면서 생긴 호수로 호수 가운데 있는 붕어섬은 호수에 물이 차면 붕어모양으로 보인데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오늘은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국사봉 전망대에서 둘러보는 봉우리와 산자락들이 그림같다.
이미 해는 서산으로 누엿누엿 지고 있다. 어스름을 밟으며 우리는 내장산으로 달린다. 호숫가에 <호수장가든>이 우리를 기다린다. 중년의 아리따운 여주인이 우리를 맞아 민물매운탕을 대령한다. 빠가사리, 구구리, 메기, 새갱이는 건져도 건져도 냄비 밑에 남아 있다. 구수한 국물 맛, 입 안에서 살살 녹는 살점. 소주를 곁들이니 살 맛 난다.
내장산 웃마을에 자리한 황토집에 짐을 푼 우리는 그냥 잠들기엔 너무 아쉬워 인근 간이주점에서 토토리묵 등을 안주로 하여 일배하였다. 다음날 새벽 우리는 가랑비를 맞으며 내장산의 단풍을 보러 내장사로 향하는 길을 산책했다. 여기 내장산에는 아직 그 유명한 단풍이 찾아들지 않았다. 그러나 성급한 우리를 위하여 약간의 성급한 단풍이 얼굴을 내보였다. 이런 광경도 아름답다.
우리는 정읍시내로 들어가 <세원해장국>에 차를 세웠다. 임 교수는 해장국으로 유명한 이 곳도 알고 있었다. 순두부의 맛이 상큼하다. 육개장을 시켜먹은 이들은 그 맛도 일품이란다. 식사를 끝낸 우리에게 주인 왈 뼈해장국은 더 맛있으니 다시 오란다.
차는 전라북도를 벗어나 전남 영광군으로 접어든다. 우리가 방문한 설도(雪島)는 애초에 섬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간척사업으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는 곳이며 여기에 세워진 염산교회는 한국전쟁 때 목사 가족 등 수십 명이 인민군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교회다. 설도는 젓갈시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우리는 쭉 늘어선 어시장의 한 곳에 들어 서대회와 백합회, 문저리 망둥어 회무침에다 갓잡아온 대하를 곁들여 배터지게 먹어댔다. 우리는 각각의 독특한 맛에 매료되어 있었다. 서대회의 깔끔한 맛, 백합의 쫄깃한 맛, 문저리망동어의 담백한 맛, 찐 새우의 탱글탱글한 씹힘은 쉽게 맛보기 어려운 맛의 즐거움이다. 젓갈시장에 들르니 5명의 여인들이 바쁘다. 새우젓, 명란젓, 창란젓, 황석어젓, 낙지젓, 어리굴젓, 조개젓을 흥정하느라 정신들이 없다. 포장된 여러 종류의 젓갈이 택배에 맡겨진다.
혀끝에 감도는 뒷맛을 다시며 우리는 고창의 고인돌 유적지로 발길을 옮긴다. 마침 국화꽃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선사시대 유적인 고인돌은 조상들의 웅혼한 기상을 엿볼 수 있었다. 뒤이어 우리는 불갑사로 향했다. 일설에 의하면 백제 침류왕 때(384년) 인도의 마라난타가 세운 절이라 한다. 불갑사로 향하는 길은 상사화가 피고지는 유명한 곳이지만 지금은 볼 수가 없다.
나주에 이르러서는 옛 나주목사가 기거하던 내아(內衙)를 숙소로 정했다. 군불을 땐 방바닥은 어린 시절 정들었던 온돌방처럼 포근하고 아늑했다. 우리는 가까이에 있는 곰탕집 <노안집>을 찾아들었다. 수육을 시켜 안주 삼고 곰탕으로 마무리하니 구수한 국물맛이 진국이고 배지근한 건더기 맛이 맛의 진수다. 그냥 잠자리에 들기 아쉬워 우리는 2차로 맥주집을 찾았고, 다시 못내 아쉬워 3차로 노래방을 찾아들어갔다. 뒤로 빼던 사람들도 마이크를 잡으니 명가수들이었다. 다음날 우리가 찾은 <시골밥상>은 반찬이 15가지로 모두가 맛갈나고 쫍조름하다.
광주로 달려가 아울렛에 들러 모두가 한 가지 이상의 옷을 사들고 송정리의 떡갈비 골목에서 갈비탕이 곁들인 떡갈비를 포지게 먹고 광주공항으로 향했다.
우리는 장장 670km를 달려 맛집을 섭렵한 것이다. 일행들 면면을 보니 윤기가 흐르고 젊음이 용솟음 치는 듯했다. 길지 않은 인생 가끔은 웃으며 맛보며 나들이하는 여유를 우리는 즐기는 것이다. 불갑사 저수지 상류에 적혀있는 글귀를 인용한다.
人生!
먹고 싶은거 먹고
하고 싶은거 하고
가고 싶은데 가고
보고 싶은 사람 보며
사는 것 그게 인생이지
뭐 있나?

전주 삼백집 콩나물국밥

전주향교에서

임실 국사봉에서

호수장 가든 민물매운탕


정읍 세원 해장국


설도 젓갈타운

나주 시골밥상

떡갈비

불갑산 가는 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