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25장 21~22절, 마태복음 26장 44절, 야고보서 4장 8절, 에베소서 6장 18절
이삭은 자기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아내가 아이를 가지게 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였다. 주님께서 이삭의 기도를 들어 주시니,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리브가는 쌍둥이를 배었는데, 그 둘이 태 안에서 서로 싸웠다. 그래서 리브가는 "이렇게 괴로워서야, 내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하면서, 이 일을 알아보려고 주님께로 나아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그대로 두고 다시 가서, 또 다시 같은 말씀으로 세 번째로 기도하셨다. <마태복음 26장 44절, 새번역>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8절A, 새번역>
여러분은 또한 언제나 기도하며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십시오. 모든 경우에 성령의 도움을 받아 기도하십시오. 늘 깨어서 꾸준히 기도하며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십시오. <에베소서 6장 18절, 공동번역>
이삭과 리브가가 결혼한 지 어느덧 20년이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리브가에게 임신 소식이 없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어머니 사라처럼 그냥 무작정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했던 이삭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아브라함과 사라는 한 번도 하나님께 아이를 가지게 해 달라고 기도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사라의 신체적 능력을 보면서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아브라함과 사라는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어린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하였어도 이삭 역시 20년이란 시간동안 그저 기다리기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역시 그런 이삭과 리브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바로 이삭과 리브가의 '기도'를 기다리고 있으셨던 것입니다.
이삭은 자기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아내가 아이를 가지게 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였다. 주님께서 이삭의 기도를 들어 주시니,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게 되었다. <창세기 25장 21절, 새번역>
드디어 이삭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아이를 가지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다리셨다는 듯 하나님께서 이삭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리브가가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쉽게 될 일을 왜 20년이나 기다린 것일까요? 이삭은 너무도 놀라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동안 기도하지 않았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했을 것입니다. 너무도 아쉬운 시간, 20년이 흘러가 버렸습니다. 이 20년은 의미없는 시간입니다. 이삭이 60세가 되던 때부터 이삭은 하나님의 언약에 조금은 다가선 인물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이삭의 기도로 리브가가 임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임신을 한 것까지는 좋은데, 리브가에게는 너무도 괴로운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리브가의 뱃 속에는 쌍둥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쌍둥이 둘이 태 안에서 서로 치열하게 다투게 됩니다. 리브가는 임신을 한 것까지는 너무 좋았지만,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런 괴로운 결과를 원한 것은 아니었기에 괴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아이 한 명을 임신하여, 다른 이들처럼 평안하게 임신 기간을 거쳤으면 좋겠는데 하나님께 기도한 이삭이 미워질 정도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여기 리브가가 한 일을 한 번 보십시오. 역시 리브가는 위로자였고,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여기서 리브가가 하는 행동을 통하여 우리는 슬기로운 신앙생활의 팁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쌍둥이를 배었는데, 그 둘이 태 안에서 서로 싸웠다. 그래서 리브가는 "이렇게 괴로워서야, 내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하면서, 이 일을 알아보려고 주님께로 나아갔다. <창세기 25장 22절, 새번역>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알아보려고 주님께로 나아가는 리브가입니다. 기도에 기도가 더해지는 슬기로운 신앙생활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럴 때 불평과 불만이 먼저 나옵니다.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해 주시긴 하셨지만, 그 결과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의 응답이 아닐 때 우리는 다시 기도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불만을 토로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응답해 주시지 않은 것에 화가 나서 그 응답이 차라리 응답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그런 불평과 불만이 아닌 다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시는지 하나님께 여쭈어보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결과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궁금할 때는 하나님께 여쭈어 보면 됩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면 됩니다. 보여주신 그 결과를 보면서 이유에 대해서 내가 추측하거나 예상하거나 억측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응답을 주셨는지, 왜 이렇게 일을 행하셨는지,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인지, 믿음으로 '아멘'할 수 있다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고 계속 의문이 찾아온다면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할 일은 불평도, 불만도, 원망도, 답답함도 아닙니다. 기도의 자리로 '다시'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도에 기도를 더 해야 하는 순간인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찾아온 리브가에게 하나님은 말씀을 허락하십니다.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두 민족이 너의 태 안에 들어 있다. 너의 태 안에서 두 백성이 나뉠 것이다.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할 것이다.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창세기 25장 23절, 새번역>
하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것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할 때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 기도 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도에 기도를 더 해 계속 기도를 쌓아가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가 쌓이다보면 이제 하나님과의 대화가 됩니다. 하나님과 언제든, 무슨 대화든 마음껏 나눌 수 있는 '친밀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기도가 어렵다는 분이 너무도 많습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분도 많습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 지 고민이 된다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건 전부 '기도'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어떤 거창한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대화입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여쭤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와 말씀 읽기가 병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많은 부분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모르겠다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기도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위대한 습관이 '기도'에 '기도'를 더하는 것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먼저 기도를 쌓아나가는 본을 보이셨습니다. 하물며 우리들이겠습니까? 예수님도 그런 습관을 가지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그 습관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기도한 것으로 기도를 다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 또! 다시! 기도하셔야 합니다. 기도했다고 하더라도 다시 기도해야 할 일이 생기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으로 이어져 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그대로 두고 다시 가서, 또 다시 같은 말씀으로 세 번째로 기도하셨다. <마태복음 26장 44절, 새번역>
Never stop praying.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 NLT)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 슬기로운 신앙생활, 슬기로운 기도생활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기도 한 후에 다시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이삭이 기도한 후 리브가가 기도를 더 한 것처럼 우리 역시 기도한 후에 오는 응답에 의문이 들 때면 기도를 다시 더해야 하는 것입니다. 삶의 순간 순간에 찾아오는 모든 문제들에 '기도'를 더하셔야 합니다. 내가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보다 기도하려는 노력을 더해야 합니다. 불평과 불만과 답답함과 원망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며 쏟아져 내리는 순간, '기도'를 더함으로 튼튼한 댐을 지으셔야 합니다.
여기 기도가 너무나도 익숙했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다윗'입니다. 그는 매 순간 하나님과의 대화를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나에게 귀를 기울여 주시니, 내가 평생토록 기도하겠습니다. <시편 116편 2절, 새번역>
여기 도무지 기도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기도에 기도를 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다니엘'입니다. 세상의 위협에 맞서 기도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늘 후회가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왕이 금령 문서에 도장을 찍은 것을 알고도,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서,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그 다락방은 예루살렘 쪽으로 창문이 나 있었다. 그는 늘 하듯이, 하루에 세 번씩 그의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감사를 드렸다. <다니엘 6장 10절, 새번역>
여기 이방인이었지만 유대인들보다 더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고넬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이웃에게 자선을 베푸는 행동에 기도를 기초로 더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으로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유대 백성에게 자선을 많이 베풀며,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사도행전 10장 2절, 새번역>
더 기록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은 언제나 '기도에 기도를 더했다는 것'입니다. 그리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해 졌습니다. 나약하고 부족해서 하나님을 늘 의지하기 위해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가 가장 중요했기에, 기도가 가장 좋은 방법이었기에 가장 먼저 기도를 선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족함없이 늘 풍성하고 강했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도, 세상적인 방법으로도 해결해 보려면 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 방법에 가치를 두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을 기대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을 빛나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성경 안에 가득합니다. 그래서 우린 기도하는 그들을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우리도 동일합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기도가 가장 빠르고, 훌륭하고,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방법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의 방법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원하는 이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무엇보다 기도한 후에 다시 기도를 더 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계속 기도를 쌓아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과 점점 친밀해 지실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 우리의 소원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8절A, 새번역>
마지막으로 기도에 기도를 더함으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앞당기는,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선택한 모든 분들과 함께 이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또한 언제나 기도하며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십시오. 모든 경우에 성령의 도움을 받아 기도하십시오. 늘 깨어서 꾸준히 기도하며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십시오. <에베소서 6장 18절, 공동번역>
https://www.youtube.com/watch?v=G74biAyx60I
https://www.youtube.com/watch?v=XoIlCWpMAqw&list=PLVbVhDrpd5BfwFUzCYS-5-pZLF5BQ5gKF&index=21
https://www.youtube.com/watch?v=xzS9pFn-Nb8
https://www.youtube.com/watch?v=rMjVB6c8Nsk
https://www.youtube.com/watch?v=goMvBJTAw4I
https://www.youtube.com/watch?v=0tzSTCYksQ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