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보졸레 지역에서 생산되는 햇 와인(Beaujolais Noubeau)이 11월 셋째 목요일을 기해 세계시장에 판매되는 것을 알리는 슬로건이다. 한국도 3년전부터 수출국 중 하나가 됐다. 그 열풍이나 수요 증가율(금년엔 70만병)에서 볼 때 무시못할 시장으로 여겨서인지 프랑스 업계에서 직영하는 홍보용 공식 웹사이트에 한국어 홍보문이 영어를 포함한 16개 언어중 하나로 들어있을 정도다.
이 달초 서울에 있을 때 일산의 어느 동네 마켓에 붙어있는 안내문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보졸레 누보 주문 받습니다.” 아니 한국인들의 와인 열기가 이 정도란 말인가 이곳으로 치면 동네 리커스토어 규모인 가게에서. 미국서 몇십년 살았어도 리커스토어 같은 곳에 그런 안내문이 붙어있는 걸 본 적이 없다.
올해 공식 판매일을 며칠 앞두고 유럽 비행에서 돌아온 모 항공사 조종사의 말-. “이번 비행의 승객은 사람이 아니라 화물이었다. 보잉 747 한대 가득 싣고 온 화물이란 다름아닌 보졸레 누보였다.”
누보를 못마시면 시류에 처진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겨냥해서인지 고급 호텔마다 출시기념 이벤트가 다채로웠다 한다. 누보 한잔 곁들인 디너 메뉴가 비싼 곳은 7만5천원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미국의 와인마켓은 어떤지 지난 일요일 대중적인 와인러버들이 즐겨찾는 트레이더 조스엘 들러봤다. 이 마켓은 와인·치즈·너츠 전문 스토어로 유명하기에 보졸레 누보가 물론 들어와있을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매장 어느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캐시어에게 물으니 “그게 뭐냐”며 다른 직원에게 넘긴다. 그 역시 모르는 눈치, 와인을 잘 아는 직원이 나왔다. 이유인 즉 “지금은 비쌀 때다. 이삼주 후 값이 좋을 때 대량 주문할 계획이다. 4∼5 달러선이면 살 수 있을 것이다.” 가게문을 나서며 코스트 플러스를 생각해냈다. 거기도 와인전문 코너가 구비돼 있는 곳이다.
예상대로 4종류의 햇와인이 있었다. 3종은 말그대로 보졸레 누보였고, 하나는 ‘캘리포니아 누보’였다. 라벨에 붙은 이름이 ‘베링거 누보 캘리포니아, 2003 레드 테이블 와인’. 베링거 누보(Beringer Nouveau)는 나파밸리에서 가장 오래된(127년) 베링거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햇와인이란다. 독일계 이민자가 설립한 양조장이라니 베링거가 맞을텐데 백인 판매원은 ‘베린저’라고 발음한다.
아무튼, “캘리포니아 누보의 맛은 어떠냐”니까 “베리 굿”이란다. 프랑스에서 수입된 것은 조지 두보프가 7달러99센트, 루이 테테가 8달러99센트 였는데 베링거는 5달러99센트로 훨씬 쌌다. 그동안 햇와인에 무관심해서였는지 ‘캘리포니아 누보’가 있는 줄 몰랐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베링거 누보는 첫 생산이 이미 1990년도였다.
맛을 봤다. 빈속이라 그런지 기대했던 맛이 아니었다. 그 해 딴 포도로 만들어 그 해에만 맛 볼 수 있는 희귀성이 있는데다(9월초에 수확한 포도를 4∼6주 숙성시켜 만듬), 6개월 이상 숙성된 와인에서 느낄 수 없는 신선한 포도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고, 또 타닌이 적어 떫은 맛이 덜해 평소 와인을 즐기지 않는 이도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것이 특징이라 했는데 향은 그렇다쳐도 맛은 시큼털털했다. 치즈 한조각을 먹었다. 두번째 모금은 처음보다 좋았다. 아하! 포도주 마시는데도 이렇게 시너지 효과라는게 있구나.
보졸레 누보가 세계적 명물이 된건(명품이 아닌 명물) 업자들 상술에서 비롯됐다. 와인러버들은 그냥 새 와인을 먹어보자는 것뿐인데 그 평범한 욕구를 마치 대단한 포도주를 시음하는 절호의 챈스로 부추긴 것이다.
프랑스계 미국인 상공회의소는 LA 등 전국 19개 도시에서 보졸레 누보가 출시된 20일과 21일 한바탕 축제를 벌여 조국의 와인 자존심을 애국심과 연결시키는 상술을 펼쳤다.
내일은 생스기빙데이다. 칠면조 요리와 햇와인은 잘 어울릴 것 같다. 보졸레 누보가 대단해서라기보다, 또 유행에 편승한다기보다, 소주보다는 포도주가 더 궁합이 맞을 것 같다. 실온에 마신다는 레드 와인이긴 하지만 누보는 약간 차갑게 해서 마시라는 조언이 라벨에 적혀있다. 캘리포니아 와인이 프랑스 와인에 비해 손색없다는 꾸준한 평이고 보면 햇와인 누보도 보졸레 것만 고집할 일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