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는 베르디와 함께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오페라 작곡가이다.
푸치니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라보엠, 토스카,나비부인과 함께 가장 사랑받는 또 하나의 오페라가 바로 투란도트이다.
특히 투란도트는 2003년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중국의 장예모 영화감독이 초대형 무대로 연출하여
우리나라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오페라이다.
투란도트는 푸치니가 작곡한 마지막 오페라이다. 푸치니는 1920년 투란도트란 오페라를 만들기 위해 작곡에 들어갔으나
끝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채 1924년 11월 29일 후두암으로 65세에 생을 마쳤다.
이후 푸치니의 친구 프랑코 알화노(1976-1954)가 오페라를 마무리해 1926년 4월 25일 밀라노 스칼라 극장 무대에 올렸다.
'투란도트'의 가장 대표적인 아리아는 바로 '공주는 잠 못 이루고'이다.
이 노래는 3막이 시작되면서 왕자의 이름을 알아낼 때까지 아무도 잠들어선 안 된다는 공주의 명령에 '칼라프'왕자가
사랑의 승리를 확신하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품격과 멜로디가 테너의 아리아 중에서도 왕자라고 할 만큼 웅장하고 당당한 노래이다.
그래서 이 노래는 역시 하이 C(가온다의 두 옥타브 위의 '다'음)의 제왕이라 불리는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불러야 제맛이다.
예상대로 이 노래는 2006년 2월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파바로티가 불러 3만 5천 관중을 열광시킨 노래이다.
또 20년 전 이탈리아월드컵 전야제 때(1990년)에는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열창하여
월드컵 애창곡이 되었던 노래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파바로티는 2007년 예고없이 찾아 온 손님에게 삶의 자리를 내주어 지금은 우리 곁에 없다.
투란도트는 중국에서 전해지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모티브로 증오와 사랑 혹은 죽음과 사랑으로 잘 조화시킨 사랑이야기이다.
막이 오르면 관리가 나타나서 포고문을 읽는다.
'투란도트 공주가 내는 3개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사람은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겠지만, 실패하면 도끼로 사형에 처해진다.'
는 것이다.
이 때 아름다움에 반한 티무르의 왕자 '칼라프'는 아버지와 그를 사모하는 시녀 류가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도전장을 내민다.
그리고 공주가 내는 수수께기 3개를(희망, 피, 투란도트) 차례로 풀고 멋지게 승리한다.
애초 결혼할 생각이 없던 투란도트 공주는 자기가 공표햇던 약속을 어떻게든 없애려고 황제에게 매달린다.
그런 그녀를 보고 칼라프는 내일 새벽까지 자기 이름을 알아낸다면 그녀가 내걸었던 조건도 없애고 다른 왕자들처럼
기꺼이 그녀를 위해 죽겠다고 오히려 수수께끼를 내놓는다.
이에 다급해진 투란도트는 시녀 류를 붙잡아 고문하지만 끝내 왕자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사랑때문에 나는 왕자의 이름을 말할 수 없다.'고 외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류'의 모습에 당황한 투란도트는 결국 괴로워하다 결국 황제 앞에 가서 말한다.
'아버지 이제 이방인의 이름을 알아냈어요 그의 이름은 사랑입니다.'
얼음공주의 마음에 사랑이 싹튼 것이다.
비로소 무대 위의 사람들은 기쁨에 넘쳐 노래하고 얼음공주와 칼라프 왕자는 뜨겁게 포옹하는 것으로
오페라 '투란도트'는 막을 내린다.
보통의 사랑이야기는 주인공들의 애절한 사연을 담고 있는데 반해 투란도트의 사랑이야기는 주인공들이 각각
갖고 있는 사랑에 대한 감정을 보여 줌으로써 '사랑이야말로 가장 가치있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투란도트가 오랜 세월 세계에서 끊임없이 무대에 오르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음악의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푸치니는 다른 오페라에서 전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음악체계를 찾기 위해
참신한 화법, 관악기-타악기의 효과적인 사용법을 훌륭하게 연출해 냈다.
그래서 많은 평론가들이 푸치니의 3대 대표작을 모두 제치고 투란도트를 최고의 걸작이라고 꼽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자코모 푸치니(19858-1924]
이탈리아 루카에서 활동했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소년시절엔 주로 교회음악에 열중하였다.
18세 때 베르디의 '아이다'를 관람하고 오페라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1880년 밀라노 음악원에서 공부하면서 작곡한 오페라 '요정 빌리'가 오페라 경연대회에서 수상,
이 작품이 1894년 무대에 오르면서 음악전문출판사 '리코르디' 소속으로 작곡을 시작했다.
1893년 '마농레스코'가 성공하면서 이탈리아 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1896년 '라보엠'으로 세계적인 음악가로 이름을 떨쳤다.
이후 차례로 '토스카','나비부인'을 발표했다.
1910년에는 미국 '메트로폴리탄'에 진출해 '서부의 아가씨'를 초연했고
'3부작'으로 그 명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1924년 마지막 작품이 된 '투란도트' 작곡 중 후두암 치료를 위해 들렀던 브뤼셀에서 생을 마쳤다.
첫댓글 기회가되면 플라시도도밍고 주연의 '투란도트'를 다시 한번 볼 까 생각 중입니다 .공부하고 보면 더더욱 재미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