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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내가 고등학교에서 ‘세계사’를 가르치면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모르는 것과 처음 본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배우지 않은 인도사, 동남아시아사, 서아시아사, 아프리카사, 중남미사, 그리고 미국사는 물론이고, 제법 공부했다고 하는 동아시아사조차도 그랬다. 백과사전을 뒤지고 역사사전을 뒤지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해결책도 생각해보았다. 워낙 방대한 내용을 다뤄야 하는 중등학교 교육과정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역사교육과 교수로서 볼 때 무엇보다 역사교육과의 교육과정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은 수 없다. 목적대학인 사범대학에서 중등교육의 교육과정을 고려하지 않은 사범대학의 교육과정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며, 이런 심각성을 인식하면서도 적극적인 개혁에 나서지 않은 자신의 소심함과 게으름에 대해서도 질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동양사분야에서는 동남아시아사, 일본사, 동양사탐구, 동양사특강 등을 통해서 다소나마 보완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는 동양사탐구를 몇 년째 강의하고 있다. 이 과목은 역사교육과, 지리교육과, 일반사회교육과의 복수전공 필수과목이어서 항상 45명 이상이 되어 폐강되지 않지만, 비슷한 과목인 사학과의 아시아사입문은 학생들이 외면하여 폐강 되었다. 동양사탐구는 아시아론, 동아시아론, 동· 남· 서· 북아시아사 개관으로 구성하여 강의하고 있는데, 이는 위에서 말한 내 경험에 따른 것이다. 구체적으로 일본, 대만, 류큐, 동남아시아, 인도, 중동, 북아시아 등 중국과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사 전체를 수박겉핥기식으로 지나가고 있다. 그래서 편의상 두 가지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논문으로 접근하기와 개론서로 접근하기이다. 지금은 책의 홍수 시대라고 하지만 나의 수업 목적에 맞게 교재를 구성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짧은 시간에 광대한 지역의 많은 이야기를 접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이번 학기 서아시아 부분 수업 교재로 쓴 <<중동의 역사>>(버나드 루이스 지음, 이희수 옮김, 서울 : 까치, 1998; 원본 The Middle East는 1995년 출간)이다. 원본 기준으로 볼 때 이미 10년이 된 책이지만 중동사의 대가가 쓴 책이란 점에서 그 가치는 조금도 퇴색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또 강의하면서 즐겁게 읽었고 그 가운데 깊이 있는 공부가 다른 사람들에 어떤 즐거움을 줄 수 있는가를 여러 번 체험하였다.
저자(Bernard Lewis)는 1916년 런던에서 출생했다. 1949년 런던 대학교의 오리엔트-아프리카학 대학(SOAS) 교수가 되었고, 1974년까지 이 대학 교수를 지냈다. 1974년부터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를 지내다 1984년 정년퇴임했으나, 학교측의 요청으로 석좌교수를 맡아 지금도 중동학 강의와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지은책으로는 <아랍인의 역사>(1963), <근대 터키의 성장>(1961), <이스탄불과 오스만 제국 문명>(1963), <암살단-아사신>(1967), <무슬림의 유럽 발견사>(1982), <이슬람의 정치언어>(1988), <중동의 인종과 노예제도>(1990>, <문화갈등 : 지리상의 대발견 시대의 기독교, 무슬림, 유대인>(1995) 등이 있다. 국내에 번역된 저자의 책은 <<이슬람 1400년(원제 The world of Islam)>>[김호동 역, 서울 : 까치글방, 2001/11. 이 책은 <<이슬람문명사 >>(이론과실천,1994/9)을 다시 간행한 것임]과 <<무엇이 잘못되었나 - 서구와 중동, 그 화합과 충돌의 역사(원제 What Went Wrong)>>(서정민 역, 서울 : 나무와숲, 2002/9)가 그것이다.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목차를 함께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고대 문화
1. 고대 문화 - 기독교 발생 이전의 중동
2. 이슬람 이전의 중동 : 기독교 시대의 종말
제2부 이슬람의 태동과 성장
1. 이슬람의 태동과 성장 - 기원
2. 압바스 칼리프조
3. 스텝 부족의 등장
4. 몽골 침입 이후의 변화: 티무르와 오스만 제국의 등장
5. 오스만 제국의 위용
제3부 중동사회와 문화
1. 중동 사회와 문화 - 국가
2. 경제생활
3. 엘리트 지배계층
4. 평민계층
5. 종교와 법
6. 문화
제4부 변화와 근대화
1. 변화와 근대화 - 도전: 큐축카이나르자 조약과 서구의 도전
2. 변화: 중동 경제의 쇠퇴와 서구 자본의 침투
3. 응전: 서구화와 개혁 그리고 종교적 반응
4. 새로운 사상: 프랑스 혁명과 민족주의
5. 전쟁에서 전쟁으로 : 오스만제국의 붕괴에서 제2차 세계대전까지 중동
6. 자유에서 자유로 :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오늘날의 중동
목차를 보면 바로 느껴지겠지만 제3부는 중동의 국가, 사회, 문화, 경제, 계층, 종교와 법 등을 다룬 주제사, 분류사라고 할 수 있으며, 제1, 2, 4부는 통시대적인 역사이다. 책의 구성 자체가 제1부, 제2부의 시대를 거쳐 형성된 제3부 중동의 사회와 문화가 제4부 근대화를 겪으면서 변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고대-중세-근대라는 삼분법 역사서술을 사용하고 있다. 이슬람 사회와 문화가 지금 급속한 변화의 와중에 있음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형태로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입장에 따라서는 비판의 소지가 적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다양한 관점을 함께 소개함으로써 자신의 관점과 개설서로서의 일반성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하였다. 나는 중동사의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므로 구체적으로 비평하거나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는 이 책에서 느낀 몇 가지를 제시하는 데 그치고자 한다.
제1부에서는 우선 다양한 언어, 문화, 민족의 존재를 다양한 지역과 관련지어 서술하였다. 처음부터 정신 차리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고 따분하게 느껴진다. 이는 중동의 지역적 특성에 따른 복잡성과 긴 역사로 말미암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나만 들면 다소 이해가 될 것이다.
페르시아(Perisa)나 페르시스(Persis)는 한 국가나 민족의 이름이 아니었다. 원래는 걸프해의 동쪽 해안의 남서부 지역에 있는 파르스(Fars 또는 Pars)라는 한 주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페르시아인들은 한 번도 그 단어를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단지 페르시아를 그들의 언어명으로 사용했다. 왜냐하면 파르스 지방 방언이 나라 전체의 지배적인 문화적, 정치적 언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토스카나어가 이탈리아어, 카스티야어가 스페인어, 런던을 중심으로 한 여러 주의 방언이 영어가 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페르시아인들에 의해서 항상 사용되었고, 1935년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부터 그들에게 주어진 이름은 이란이었다. 이 용어는 “아리아인의 [땅]”을 의미하는 단어의 소유격 복수형인 ‘아리야남(aryānam)’이라는 고대 페르시아어에서 파생되었다. 그 시기는 인도-아리아족의 초기 이주시대로 소급된다. (p.30)
페르시아 하나를 설명하는 데에도 이렇게 복잡하니 다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밖에도 일신교 개념의 등장, 국가종교로서의 조로아스터교의 흥망, 그리스 철학과 과학이 중동에 미친 영향 등이 흥미 있었다. 제2장에서는 대체로 2세기 이후 로마(또는 동로마)와 파르티아(또는 페르시아) 사이의 대립과 주변 약소국의 관계를 재미있게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이 대립을 중국산 비단 무역의 이익을 둘러싼 교역망 장악과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저자의 경제사적 식견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역사를 이해할 때도 경제사적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준다. 또 강대국 사이의 싸움이 주변국들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측면도 서술하고 있다.
제2부 제1장에서는, 초기 자료가 주로 전승이라는 면에서 불확실했음을 제기하였으며, 아랍 정복자들의 추진력의 배경으로 척박한 아라비아 반도의 인구 압력을 강조하고 사막에서의 경험과 사막을 전쟁에 잘 활용한 점도 들었다. 또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들은 절충과 내부조절을 통해 임무를 수행하였던 점을 지적하고, 이것이 제국의 통합과 정복 지속, 사회와 문화의 토대 수립 등에 도움이 되었지만 동시에 이념의 약화와 내부 분열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음도 들었다. 또 금화 만들기, 바위의 돔 모스크 건설, 다마스커스 대모스크 건설 등의 의미를 세계의 중심으로서의 이슬람 건설과 관련지어 설명한 것 역시 흥미 있다. 제2장에서는 이슬람 제국인 압바스조에서 건국에서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이란의 중요성을 알 수 있게 하였으며, 압바스조가 왜 분열하게 되었는지를 지리적 그리고 지역적 특성과 관련지어 이해할 수 있었다. 제3장에서 특히 순니파의 대부활이 투르크인들 덕이었음을 설명하였으며, 이것은 후에 이란과 오스만제국의 대립의 결과 쉬아파가 이란에서 주류가 되었던 과정과 대비하여 이해하면 흥미 있을 것이다. 아울러 스텝민족의 등장에서 칼리프를 중심으로 한 종교 우위의 국가에서 술탄이란 군사령관의 지배가 확립되는 과정도 엿볼 수 있다. 또 몽골 침입과 이집트의 저항의 결과 압바스 왕조의 중심이었던 바그다드가 주변지역으로 변했던 것도 흥미 있다. 제4장에서 몽골침입 이후 티무르와 오스만 제국이 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제5장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성공과 제도적 정비, 그리고 유럽과의 대립을 그렸다. 특히 내부적인 봉건화 과정을 지방 유력세력의 성장, 봉토제의 변질, 예니체리 군대의 세습화, 수도에서의 파벌간의 싸움으로 정리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종교적 관용과 더불어, 유럽에 비하여 농민의 부담이 적고 더 많은 기회가 제공되는 오스만 제국의 강점을 강조하였다.
제3부 중동 사회와 문화는 국가, 경제생활, 엘리트 지배계층, 평민계층, 종교와 법, 문화라는 주제로 나누어 다루고 있다. 만약 중동의 사회와 문화만을 알고자 한다면 이 부분만 읽어도 대략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하여 소제목만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경제생활 부분에서는 농작물, 차, 커피, 농업기술, 가축사육, 광물, 산업기술과 에너지, 직물과 국제무역, 노예무역, 실크와 향료, 중동경제의 쇠퇴 등 11개 항목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어 전근대 중동의 경제의 모든 측면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또 엘리트 지배계층은 관료계층, 울라마와 종교계층, 시인과 학자층, 군부계층, 교역상인층, 지주계층 등 6개 항목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으며, 종교와 법에서는 이슬람의 개념, 모스크(이슬람 사원). 샐;(이슬람 성법), 이단, 이슬람의 다섯 기둥, 금기사항, 지하드(성전), 수피즘(이슬람 신비주의) 등 8개 항목으로 세분하여 다루고 있다. 그리고 문화에 대해서는 고대 중동 문명의 불연속성, 언어, 예술, 시, 마까마(단편문학), 연극, 역사, 학문의 번역, 과학, 인쇄·출판 등 10개 항목으로 나누어 서술하였다.
제4부는 근대 중동사이다. 그 시점을 어디서부터 볼 것인가에 대하여 1798년 프랑스의 이집트 원정, 1774년 러시아와의 큐축카이나르자 조약, 1683년 제2차 비엔나 원정의 실패 등 몇 가지 시각이 있으나 저자는 큐축카이나르자 조약을 중시하고 있다. 전체 구성은 6장으로 구성하고, 앞의 3장은 도전, 변화, 응전이란 제목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뒤의 3장에서는 프랑스 혁명과 민족주의의 영향, 1차대전과 오스만제국의 붕괴에서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중동 상황,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오늘날의 중동으로 구성하고 있다. 구성상에서 앞의 3장이 오스만 제국의 독자적인 대응 노력으로 군대개혁, 제도개혁, 외교적 대응 등을 다루고 있다면, 후자에서는 터키, 아랍, 이란으로 나누고 이들 셋이 각각 독자적으로 서구에 대응하고 내부적으로 갈등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특히 제6장은 ‘자유에서 자유로’라는 제목에서 암시하는 바와 같이 프랑스혁명과 민족주의, 그리고 자유주의의 유입과 실험을 겪은 중동이 다시 이슬람적, 전체주의적 체제를 구축하였으나 서서히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성장하고 있다고 비교적 낙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제4부를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중동지역의 근대화 과정이 한국이나 중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근대화의 지역적 특수성도 적지 않겠지만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현상이 주목되는 것은 역사발전의 보편성을 다소라도 확인할 수 있다는 면에서 재미있었다. 둘째, 불평등조약의 기원이 오스만제국이 서구 국가들에게 주었던 특혜였다는 사실이다. 군사적, 경제적 그리고 외교상에서 우위에 있을 때에는 특혜로 주어도 별문제가 없었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특혜는 특권으로 변하여 불평등 상태를 심화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그 불평등조약이 다시 중국이나 조선에 강요되어 국가간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던 사실에서 불평등체제의 형성 과정에서 오스만제국이 가진 중요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서구 세력의 침입이 오스만제국 내의 사회계층을 변화시키고 불평등 구조를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소수파인 기독교도들이 보호제도(불평등조약)를 이용하여 금융, 산업 등의 경제계를 장악하게 되고 반대로 무슬림이 피해를 입은 현실이 그것이다. 넷째, 오스만제국의 무기력은 군사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적 분열에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저자는 수도의 권력투쟁이 정부와 왕궁, 즉 관료들과 대신들 간의 충돌은 지나친 단순화라고 하면서, 각각은 또 많은 파벌과 붕당으로 쪼개져서 싸웠다. 구체적으로 예니체리와 종교계층, 독자적인 정치와 이해를 가진 독립단체들, 중앙과 지방관료, 지방의 귀족과 소군주, 상인과 금융업자들, 잔존 봉건 기병대가 그것이었다. 그 결과 “대신들과 관료, 노예와 자유인, 카프카스인과 루멜리안인들이 서로 정부 부서를 지배하고 강탈하기 위해서 다투는 동안 제국 그 자체는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여 지고 있었던 것처럼 죽어가고 있었다.”고 하였다.
오스만의 응전으로 서구화와 개혁, 그리고 종교적 반응을 제시하였다. 적어도 이 부분은 중·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서 다소나마 다루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정부의 측면에서는 군대의 현대화와 행정의 중앙집권화였으며,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나크쉬반디 수도승의 개혁종단의 활동과 와하비 운동으로 요약된다. 특히 군대의 현대화와 행정의 중앙집권화는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그리 낯설지 않은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또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자유주의의 중요성은 저자의 중동사 전망을 위해서도 중요한 포석이지만 전체적 맥락에서 볼 때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된다. 또 중동의 반서구정서로 인하여 친독일정책이나 1950년대 중반이후 친소련정책을 취하였는데, 이는 ‘적의 적은 친구’라는 명제와 현실정치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즉, 오스만 제국이 1차대전에서 독일편을 든 것은 ‘적의 적은 친구’라는 단순명제에 기초한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으며, 또한 2차대전 후 아랍국가의 소련에의 쏠림 현상 역시 아랍국가의 발전에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면에서 그렇다.
한편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일으킨 이란-이라크 전쟁과 쿠웨이트 침략 전쟁에 대한 서술도 흥미 있다. 우선 이란-이라크 전쟁은 아랍-이스라엘 전쟁과 비교할 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이스라엘의 존재문제, 그렇다면 그 국경은? 그리고 그 국경의 다른 영역은 누가 통치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반면에 이란-이라크 전쟁에는 많은 다른 측면들이 있다. 개인적 측면에서는 호메이니와 사담 후세인이라는 두 사람의 카리스마적 지도자 간의 대결, 종족적인 측면에서는 페르시아인과 아랍인, 이념적인 측면에서는 이슬람 복고주의와 세속적인 모더니즘, 종파적인 측면에서는 순니파와 쉬아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역내 석유 지배권에 대한 경쟁, 전통적인 정치적 측면에서는 지역패권 장악을 위한 투쟁과 영토분쟁 등의 대결로 묘사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전쟁은 국내와 외부 압력에 방해받지 않고 양국 모두 석유 수출국으로서 심각한 재정적 한계 없이 상호 파괴적인 전쟁을 8년간 지속할 수 있었다. 저자가 명시적으로 쓰지 않았지만 이 전쟁은 미국, 소련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들이 즐긴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한국의 저유가는 이 전쟁으로 말미암은 바가 컸다는 면에서 우리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1990년 8월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병합한 전쟁은 시대의 흐름과 국제적 감각을 상실한 사담 후세인의 오판의 결과였다. 소련의 붕괴, 안정적인 석유 공급을 바라는 국제적 열망을 과소평가했던 것이 중요한 예이다.
미국이 주도하여 걸프전을 일으켰으나 당시 미국은 사담 후세인을 쿠웨이트에서 몰아냈을 뿐 권좌에서 축출하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나는 차라리 그때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정리하였더라면 21세기 들어와서 미국의 이라크 침략은 생략되지 않았을까 생각하였다. 이후 후세인 치하의 이라크에서 나타났던 반인륜적, 반민주적 행태를 알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은 차라리 제1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에서 아랍의 승리로 끝났더라면 하는 아쉬움과도 맥을 같이한다.
이 책은 개설서라서 다루지 않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산만한 부분도 있다. 또 학자의 꼼꼼함 때문에 따분한 부분도 적지 않으며, 같은 내용을 다른 장에서 다룬 것도 있고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 부분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중동사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얼마나 알고 가르치고 있는가? 이러한 반성을 불러일으켰다는 면에서 이 책은 자신의 최소한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것이다. [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