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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충돌론’에 대한 비판적 연구
- 문명의 조화를 위하여
박 종 균 교수(기독교윤리학)
1. 들어가면서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항공기 자살 폭파 사건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미국이 그해 10월 8일 대대적인 보복전에 나서면서 세계는 세기적인 충격에 몸을 떨었다. 정치 중심지 워싱턴과 경제 중심지 뉴욕, 그것도 ‘국제경찰’ 역할을 자임해온 펜타곤과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불려온 세계무역센터가 공격당함으로써 미국의 자존심과 체면이 참담하게 짓밟혔다. 평화와 번영을 다짐하며 힘차게 출발한 21세기의 첫 해가 추악한 전쟁으로 인해 대량 살상과 문명 파괴의 참담한 모습으로 점철되었다.
그 시점에서 헌팅턴(Samuel Huntington)의 ‘문명 충돌론’이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았다. 그는 『문명의 충돌』1)에서 냉전 종언 이후의 세계정치를 전망하면서 상이한 문명들 간의 충돌에서 비롯되는 문화적 갈등이 세계정치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2) 그렇다면 헌팅턴에게 문명과 문화란 무엇인가? 그는 문명과 문화를 동일한 의미에서 사용하며, 그 이해방식이 매우 추상적인 데, 한 사회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세대들이 우선적으로 중요성을 부여한 가치, 기준, 제도, 사고방식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3) 요컨대 문명은 크게 쓰여진 문화이며, 언어, 역사, 종교, 관습, 제도, 그리고 주민들의 주관적 자기정체성을 통해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헌팅턴은 문명의 규정에서 종교의 역할을 강조한다. 세계 도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세속화와 현대 사회의 탈신화화 경향에 비추어 매우 의심스럽긴 하지만, 그는 종교를 구심점으로 하여, 세계의 주요 문명을 7-8개 ― 서구(유럽과 북미대륙의 국가를 포함), 중화, 일본, 힌두, 이슬람4), 정교문명(러시아를 핵심으로 한),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문명 ― 로 구분하고 있다.5)
다가오는 세계에서 문명과 문명의 충돌은 세계 평화의 가장 큰 위협이며, 이제 문명에 바탕을 둔 국제 질서만이 세계 대전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어수단이라는 것이 헌팅턴의 주장이다. 후쿠야마는 자본주의적 자유민주주의야말로 인류가 만든 궁극적 이데올로기로서 더 이상 발전의 여지가 없는 진보의 종점이며, 역사의 수렴점이자 종말이라고 예언한 적이 있다.6) 그러나 헌팅턴의 주장은 반대다. 그는 후쿠야마같은 헤겔류의 역사인식(일원론적이고 보편적인 역사 인식)을 거부하고 오히려 이념이 후퇴한 자리에 문명이 자리함으로써 세계정세는 갈등의 정도가 심화되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두 개의 문명의 이익이 상충되었을 때, 문명의 충돌은 불가피해진다는 진단이다.
여러 문명권 중에서도 헌팅턴은 이슬람 문명과 중화 문명의 부상에 특히 주목한다. 먼저 이슬람 문명의 부상과 관련하여, 21세기에 문명간 충돌을 조장하는 가장 핵심적인 변수는 종교인데, 세계 전역에서 불고 있는 종교 부흥 바람, 그 중에서도 특히 이슬람의 약진은 서양 대 비서양 문명의 갈등을 증폭시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서양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7) 첫째는, 종교 문화적 특성 때문이다. 카톨릭-개신교에 바탕을 둔 서양 문명과 이슬람 문명은 유일신을 숭배하며, 강한 목적론적 역사관을 내포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비극은, 이들이 숭배하는 유일신이 서로 다르다는 데서 비롯된다. 이 때문에 두 종교는 자칫하면 서로를 향해 '지하드'와 '성전'을 선포할 운명에 놓여 있다. 두 번째 갈등 요인은 인구이다. 헌팅턴은 상당수 이슬람 국가에서 젊은층의 인구 증가가 절정에 달하는 2000~2010년에 기독교 대 이슬람 문명의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젊은층 증가는 원리주의․테러리즘과 폭동에 필요한 인력을 제공하며, 역사적으로도 청년층 인구가 많은 사회는 변혁으로 치달은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 다음으로 우려하는 것은 중화문명과 관련하여, 특히 중국의 부상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중국의 경제발전이 십 년만 더 계속되고, 후계자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겪으면서도 정치적 통합성이 유지된다면, 중국은 패권국으로 떠오를 것이고, 천 오백 년 이후 세계 역사에 등장한 모든 패권국들을 초라하게 만들 것으로 전망한다.8) 헌팅턴은 이처럼 새로운 패권국으로 떠오르는 중국이 기존의 패자인 서구 문명, 특히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가능성에 강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나아가 중국과 이슬람 국가들 간에 군사적 유대가 강화되는 것을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9) 헌팅턴은 이미 1993년 Foreign Affairs誌에 기고한 논문에서도 서구가 유교-이슬람 국가들의 군사력 팽창을 억제하고 서구의 군사력 감축속도를 완화시키면서 동아시아와 서남아시아 지역에서 군사적 우위를 유지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10) 따라서 헌팅턴이 최초에 논한 복수 문명들간의 경쟁과 각축은 궁극적으로 두 진영, 즉 서구 문명과 아시아의 중화-이슬람 연합 문명간의 대립으로 귀결된다. 이 점은 『문명의 충돌』의 마지막 장에서 헌팅턴이 제시한 미국과의 중국의 가상 전쟁 시나리오에서도 확인된다.11)
전체적으로 볼 때,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은 냉전의 종언이라는 새로운 상황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을 정치학적으로, 과거의 냉전논리를 문화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다.12) 따라서 논자는 2장에서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에 대해 새로운 냉전질서의 논리라는 논제로, 그리고 3장에서는 ‘문명 충돌론’이 서구가 기존에 취해오던 오리엔탈리즘의 재판이라는 논제로 비판을 가할 것이다. 특히 여기에서는 그의 오리엔탈리즘이 우리 동아시아에 연관되어 함의되는 바를 고찰할 것이다. 그리고 4장에서는 ‘문명 충돌론’과 9. 11 사태의 유관성 여부에 대한 검토가 있은 다음, 마지막으로 ‘문명의 조화와 공존’을 위한 과제와 그것을 위해 공헌할 수 있는 기독교적 역할을 모색할 것이다.
2. 새로운 냉전 논리
『문명의 충돌』의 전체적인 구도는 아시아 문명 ― 곧 중화 문명과 이슬람 문명 ― 의 부상에 대한 경고, 서구의 쇠퇴에 대한 우려, 그리고 서구문명 ― 특히 미국과 유럽 ― 의 결속 필요성에 대한 강조로 구성되어 있다. 거기에서 헌팅턴은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예들을 적절히 구사․배치함으로써 이슬람 문명과 중화 문명에 대한 서구인들의 적대감을 교묘하게 고취시키고13) 두 아시아 문명이 서구에 대항하여 연합할 가능성을 현실보다 과장해 부각시키고 있다.14) 동시에 그는 세계의 인구, 생산력, 군사력에서 서구가 차지하는 비중의 상대적 감소, 윤리의식의 약화, 문화적 쇠락, 정치적 분열 등을 이유로 서구 문명이 쇠퇴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15) 헌팅턴은 이처럼 경고와 우려를 적절히 배합하여 서구인들의 경각심을 유발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배려도 잊지 않고 있다. 그는 새롭게 부상하는 공동의 적에 대항하여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을 중심으로 대서양 공동체를 재건할 것을 제창하면서,16) "북미와 유럽이 스스로를 쇄신하고 문화적 동질감을 쌓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안보협력을 보완하는 경제적, 정치적 결속의 틀을 강화해 나간다면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영향력을 구가하는 제3의 유러아메리카 단계로 약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17)
헌팅턴의 이러한 예견과 주장은 미소 냉전이 끝난 이후에 서구 문명이 새로운 정체성을 찾기 위해, 가상의 적을 설정하고, 나아가 그 적과의 대립 및 대결의식을 고취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냉전질서의 논리에 다름 아니다.18) 왜냐하면 그의 문명 충돌론의 틀에서 이슬람 및 중화 문명 국가들이 과거 냉전시대 소련을 비롯한 공산 진영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점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이념적 대립을 중심으로 한 과거의 동서 냉전질서는 이제 서구 문명과 아시아 문명의 대립(문화적 갈등)을 중심으로 하는 또 다른 차원에서의 동서 냉전질서로 재현되고 있다. 중화-이슬람 연합 문명과 서구 문명간의 대결구도가 서구의 패권과 국익을 수호하기 위해 단지 상대를 바꾸어 전개된 신 냉전질서의 논리에 불과하다는 점은 다음 세 가지의 보충적 논의를 통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첫째, 헌팅턴은 문명충돌의 시대에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미국이 서구 문명의 고유한 특성을 견지하고 수호하며 쇄신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역설하면서19)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서구의 생존은 미국이 자신의 서구적 정체성을 재인식하고…비서구 사회로부터 오는 위협에 맞서 힘을 합쳐 자신의 문명을 혁신하고 수호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20) 따라서 냉전 종식 이후 다문명 체제 하에서 서구의 목표가 서구의 이익을 위협할 수 있는 비서구 국가들의 군사력 확장을 막는 것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냉전시대의 요구에 따라 설정된 정책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헌팅턴은 비판한다.21) 그러나 헌팅턴 역시 중국과 이슬람 국가들을 가상의 적으로 설정하여 그 국가들의 팽창을 저지하는 새로운 ‘봉쇄전략’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냉전적 사고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아울러 과거 냉전시대에 미국이 같은 사회주의 진영에 속하는 소련과 중국을 분열시키려고 노력했듯이, 헌팅턴은 같은 동아시아 문화를 공유하는 중국과 일본을 수호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으로 다음을 제시한다. “일본이 서구로부터 떨어져 나와 중국에 접근하려는 속도를 늦추도록 해야 한다.”22) 이 전략을 이 책의 다른 곳에서 비서구 문명들에 대한 서구의 전략으로 제시된 “서구는 다른 국가들이 서구 국가들을 이간질하지 못하도록 결속을 다지고 정책공조를 공고히 하며 비서구 국가들간의 차이점을 부각시키고 활용해야 한다”23)는 주장과 대비해 볼 때, 우리는 앞서의 전략이 비서구 국가들을 이간질하고자 하는 헌팅턴의 책략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의심이 설득력을 지닌다면, 일본 문명을 중화 문명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문명으로 구분하는 그의 논의 역시 비서구 국가들간의 차이를 적극 부각시켜야 한다는 자신의 전략을, 이른바 학문적 논의로 위장하여 제시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요컨대 ‘다른 국가들이 서구 국가들을 이간질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헌팅턴의 주장은 사실상 비서구 문명권에 대해 서구가 취하는 전략의 전도된 이미지, 즉 ‘거울 이미지 효과’(mirror image effect)에 불과하다.24)
둘째, 헌팅턴이 전망한 문명충돌의 근본적 원인은 냉전에서와 마찬가지로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국익과 패권의 추구라는 점이다. 헌팅턴은 힘의 차이와 군사적․경제적․제도적 힘을 추구하는 투쟁이 서구와 다른 문명권간의 갈등의 한 가지 근원이며, 가치와 신념에 해당하는 문화의 차이가 두 번째 근원이라고 지적한다.25) 여기서 헌팅턴은 갈등의 원인으로서 양자의 우선 순위를 명백히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갈등이 ‘국익과 패권의 추구’에서 비롯되는 갈등에 비해 부차적인 지위를 갖는다는 점은 헌팅턴의 거듭되는 진술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예컨대 이러한 사실은 『문명의 충돌』말미에서 그 자신이 제시한 미국과 중국의 전쟁 시나리오가 인권과 민주주의 또는 이민 등의 문제를 둘러싼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남중국해 유전의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된 중국과 베트남의 교전에 미국이 베트남을 지원해 개입하는 형태로 시작한다26)는 예상에서도 확인된다.
또한 헌팅턴은 서구의 이중성 ― 인권, 민주주의, 군축 등의 문제에서 우방이 인권을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하거나 군비를 증대하는 것은 묵인하지만 잠재적 적국에 대해서는 동일한 사항에 대해 비난․공격을 서슴지 않은 행위 ― 에 대해 비서구인들이 비판적이라는 점을 적절히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27) 다른 한편 문명이 충돌하는 세계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친족국가와 다른 문명권의 나라에 대해서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법”28)이라고 말하면서 서구의 이중성을 변호한다. 그러나 냉전질서 하에서나, 냉전 종식 이후의 ‘문명충돌’의 세계에서나 미국을 비롯한 서구가 일관되게 사용한 이중 잣대의 실질적인 기준은 국익과 패권을 중심으로 한 적/동지의 관계였지, 문명의 차이는 아니었다. 그 점은 이중 잣대의 구체적 적용이라고 할 수 있는 사례, 즉 인권탄압에 관해 서구가 중국은 비난하면서도 사우디아라비아나 알제리 군부정권, 러시아의 체첸에서의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묵인하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셋째, 과거의 냉전과 새로운 냉전간에 존재하는 유사성은 양자 모두 서구의 기득권을 수호하고 전 지구적인 보편 문제를 외면하기 위해 고안된 구도라는 점에서 확인된다. 문명적 차이를 주요한 갈등의 원천으로 하여 서구 문명과 아시아 문명이 충돌한다는 헌팅턴의 구상은 냉전의 종식 이후 전 지구적 관심사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고, 또 그 해결을 위해 범세계적 노력이 필요한 의제들, 곧 가난한 비서구 국가들에 만연된 기아와 빈곤의 문제를 비롯한 지구적 정의(justice) 문제, 지구 생태계 파괴와 그 책임 및 해결을 둘러싼 서구와 비서구 국가들 간의 갈등,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문제, 군비축소를 통한 평화와 복지의 실현 등 인류 보편적 문제를 외면하기 위해 설정된 장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러한 비판은 과거의 냉전구도가 표면상으로는 이념의 차이를 강조했지만 그 심층적 차원에서는 부유한 서방 국가들과 다수의 가난한 제3세계 국가들간의 빈부격차에서 비롯되는 갈등을 호도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는 비판과 맥을 같이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세계정치의 미래를 조망하는 헌팅턴의 저서에서 이상의 문제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다는 기이함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문명적 차이를 중심으로 문명의 충돌이 전개된다는 헌팅턴의 주장은 기껏해야 부차적인 설득력을 가질 뿐이다. 곧 패권이나 국익이라는 실질적인 요소가 국가간 또는 문명간 갈등의 주된 요소이며, 문명적 차이는 그 갈등을 정당화하거나 증폭시키는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하다는 점을 헌팅턴 자신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문명 충돌론’에서 강조되는 ‘문명적 차이’는 냉전을 가져온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비교적 소멸된 세계에서 문화적 변수가 국익이나 패권 다음가는 변수로 상승되었다는 점을 의미하는 데 불과하다. 곧 냉전의 종식 이후에도 세계정치의 주요한 갈등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국익과 패권의 추구에서 비롯될 뿐이며, 문명을 단위로 한 문화적 대립과 갈등은 그 갈등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은폐하고 선전하기 위해 동원되는 데 불과하다. 그렇다면 최근 상품적 가치와 주가를 올린 ‘문명 충돌론’은 단지 ‘공갈빵’이었음이 드러난다.
3. 오리엔탈리즘29)
사이드(Edward Said)는 『오리엔탈리즘』에서 서구의 문학작품 및 문헌의 분석을 통해, 서구인들이 보는 동양은 동양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 부정확한 정보와 왜곡된 편견을 통해 투사된 허상일 뿐이라고 통박하면서, 지식(오리엔탈리즘: 동양에 대한 서구인의 지식)과 권력(서구의 동양지배)의 상호 불가분적인 담합관계를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기존의 오리엔탈리즘이 서구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리고 동양 지역의 문화를 폄하하는 방식으로 기술하는 것이었다면, 헌팅턴의 정치학적 오리엔탈리즘은 자신들의 패권을 양보할 수 없는 서구문명, 특히 미국이 서구의 패권에 도전하는 중화-이슬람 연합 문명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지식-권력’이다.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은 이슬람과 서구의 갈등을 필연적인 것으로 보면서 그 책임을 이슬람에 전가시킨다30)는 점에서 오리엔탈리즘의 극단적 사례라 할 수 있다. 헌팅턴은 이 두 문명이 충돌로까지 나아가는 이유를, 이슬람 문명권의 급속한 인구 증가에 따른 공격성의 증가, 소련의 붕괴로 인한 공동의 적 소멸, 서방 세속주의의 침투에 대한 이슬람 문명의 적대 의식 강화, 이슬람교의 부흥과 유일신 사상에 근거한 보편주의적 세계관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헌팅턴은 이 모슬렘의 적대 의식이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서구의 이슬람 식민 지배와 이스라엘에 대한 일방적인 편애로부터 기인하였다는 정당한 주장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결국 헌팅턴의 이러한 문명 대결구도는 그 자신이 애초에 비판한 ‘동서 양분론’의 세계질서를 충실하게 답습하게 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문명의 충돌』서두에서 탈냉전 이후의 세계질서를 이해하기 위해 제시된 기존의 이론 틀 중에서 ‘두 세계: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론 틀을 검토하면서 동양과 서양으로 양분해 세계를 이해하는 모델이 상정하는 “비서구 세계의 통일성과 동서 양분론은 서구가 창안한 신화”라고 비판했다.31)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문명의 수호라는 목적을 위해 헌팅턴은 미국과 유럽이 정치적․경제적․군사적 결속을 강화하고, 정교문명의 핵심국인 러시아 및 라틴아메리카와의 동맹을 강화하며, 일본이 서구로부터 떨어져 나와 중국에 접근하는 속도를 지연시키면서, 이슬람 및 중화 문명 국가들에 대항하는 구도를 제시하고 있다.32) 즉 헌팅턴의 새로운 세계질서 모델 역시 궁극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대립을 기본축으로 하는 전통적인 ‘동서양분론’으로 환원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헌팅턴은 세계가 하나의 서구와 다수의 비서구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자신의 문명 패러다임이 ‘두 세계’ 모델보다 현실을 좀더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33) 그러나 그의 ‘문명충돌’ 모델은 비록 다양한 비서구 문명들을 논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비서구 문명들을 ‘친서구’ 대 ‘반서구’로 편가르기하고, 서구가 반서구 문명들의 세력팽창을 봉쇄할 것을 조언하고 있기 때문에, 그 목적과 구도에서 전통적인 ‘동서 양분론’ 보다 낫다고 볼 수 없다. 지금부터 그의 오리엔탈리즘을 아시아적 관점에서 들여다 보자.
60, 70년대 풍미하던 근대화론에서는 ‘근대화’(modernization)와 ‘서구화’(westernization)를 동일시했다. 그러나 헌팅턴은 근대화와 서구화를 명시적으로 구분하면서, 근대 사회가 단일한 형태인 서구적 형태로 접근하고, 근대 문명은 곧 서구 문명이라는 가정을 정면으로 부정한다34)는 점에서 과거보다 진일보한 인식임에는 틀림없다.35) 나아가 그는 문명적․사회적 상호의존도가 증대하는 지구화의 추세 속에서도 “문명적․사회적․민족적 자의식이 심화”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36) 그가 근대화와 서구화를 구분하는 기준이 반드시 명확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말하는 근대화란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이에 수반해 나타나는 문자 해독률, 교육, 부, 사회적 유동성의 수준이 높아지고 직업구조가 복잡․다양해지는 현상을 지칭한다. 이에 반해 서구화는 서구문명의 독특한 특징에 기반을 둔 개념으로서, 그 특징은 근대화 이전부터 서구에 존재해 왔으며, 현대에 들어와서도 서구를 다른 문명들과 구별짓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다. 그리스-로마 유산,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유럽어, 종교적 권위와 세속적 권위의 분리, 법치주의, 사회적 다원주의, 대의제, 개인주의 등이 이에 해당된다.37) 이를 통해서 볼 때 전체적으로 근대화는 서구 문명의 보편화 가능한 물질생활 측면을, 서구화는 보편화가 어려운 정신생활, 즉 문화적 측면을 중심으로 파악하는 개념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헌팅턴은 근대 이전의 전통사회가 문명에 따라 매우 상이한 모습을 취했던 것처럼, 근대화를 통해 출현하는 근대 사회 역시 문명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를 띨 것이라고 주장한다.38)
그러나 서구화, 즉 “서구적 이념”에 대한 헌팅턴의 논의는 서구 중심주의를 넘어 서구 우월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서구문명에 고유한 서구적 이념조차 서구에서 격렬한 투쟁의 역사적 결과이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도 겨우 20세기에 들어서야 정치적 참여가 재산 및 교육 정도로부터 자유롭게 보장되는 상황이 등장함을 고려한다면, 21세기 다른 문명에서 이 같은 발전이 불가능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서구의 19세기 제국주의와 20세기의 파시즘의 야만,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서구 문명의 산물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결국 서구적 이념은 바로 이러한 야만과 파국에 대한 깊은 반성이 있었기에 현실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서구적 이념이 실현된 역사적 맥락을 언급하지 않고, 그리고 이와 유사한 이념들이 다른 문명에서도 실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지 않은 채, 이런 이념이 서구의 고유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거의 “문명론으로 무장한 인종주의”39)에 가깝게 들린다.
다른 한 편으로 헌팅턴은 서구의 패권과 우위가 쇠퇴함에 따라, 곧 문명차원의 권력이동이 일어남에 따라 비서구 사회에서 자기문화에 대한 문화적 자긍심과 서구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또 이러한 전망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40) 비서구 문명권의 국가들이 종래 서구의 경제적 번영, 고도의 기술력, 군사력, 정치적 응집성을 부러워하면서 그 원인이라고 생각되던 서구의 가치관과 제도를 모방하던, 즉 서구화를 추구하던 태도를 바꾸어 이제 서구적 가치의 보편성에 저항하거나 거부하고, 나아가 비서구적 가치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현상, 즉 토착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41) 그는 이러한 토착화의 과정이 “세계 전역에서 일고 있는 종교의 부활에서, 특히 경제와 인구의 활력이 낳은 아시아와 이슬람 여러 나라의 문화적 부활에서 광범위하게 확인된다”42)고 말한다. 헌팅턴은 이러한 토착화 현상이 동아시아에서는 경제발전에 고무되어 일어났으며, 동아시아인들은 자신들의 눈부신 경제발전을 서구 문화의 도입에 힘입은 것이 아니라 자기문화를 고수한 결과로 이해한다고 지적한다.43)
예를 들어 그는 중국 정부가 새로운 중체서용(中體西用)의 전략으로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도 정치적 권위주의와 전통문화를 고수하고 있으며, 그 결과 민주주의를 레닌주의와 마찬가지로 수입된 외래사조로 평가절하하고 있다고 말한다.44) 그리고 최근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정권의 정통성을 중국 문화의 고유한 특징에 기초한 민족주의와 경제발전에서 찾으며, 경제발전의 원인을 유교에서 찾고 있다고 언급한다. 리콴유 또한 싱가포르 성공의 주된 원천을 유교에서 찾으면서 유교적 가치관을 전 세계에 알리는 전도사가 되었으며, 대만의 리덩후이 총통 역시 대만의 민주화가 공맹사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중국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인용한다.45) 마찬가지로 동아시아 발전의 선두주자인 일본 역시 1980년대에 들어와 자신들의 경제성장의 원인이 일본 고유의 문화에 기인한다고 주장하면서 과거의 전통적인 탈아입구(脫亞入歐) 정책에서 탈피하여 ‘재아시아화’ 또는 ‘아시아의 아시아화’를 들고 나왔다고 말한다.46)
이처럼 헌팅턴은 동아시아의 자신에 찬 태도를 기술하면서 아시아인이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에 고무되었고, 그들의 경제성장이 방종, 게으름, 개인주의, 범죄, 부실한 교육, 권위에 대한 경멸, 정신적 경직화로 특징지어지는 타락한 서구 문명보다 우월한 아시아의 문화에 입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47) 동아시아인은 동아시아 각국 내의 다양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이 중요한 문화적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 바, 그 동질성으로는 역사적으로 존중해 온 유교의 가치체계, 특히 ‘근면, 가족, 노동, 규율을 중시하는 가치관,’ ‘개인주의에 대한 거부감,’ ‘부드러운 권위주의’를 거론하고 있다.48) 나아가 확신에 찬 동아시아인 들은 동아시아의 발전과 동아시아의 가치를 다른 비서구 사회는 물론 서구가 자기쇄신을 위해 채택해야 하는 모델이라고 내세우고 이를 통해 태평양 세계주의를 고취함으로써 세계를 ‘아시아화’시키려 한다고 헌팅턴은 주장한다.49)
지금까지 제시된 아시아에 관한 헌팅턴적 오리엔탈리즘을 몇가지 관점에서 비판해보자. 첫째, 헌팅턴은 아시아권에서도 특히 서구에 대해 상대적으로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동아시아의 싱가포르, 중국, 일본 등의 정치 지도자와 지식인들의 다분히 정치적인 발언을 전후 맥락을 무시한 채 선별적으로, 다소 과장해 기술함으로써 동아시아에 대한 서구인들의 적대감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일부 아시아인들의 발언은 서세동점(西勢東漸) 이후 그들이 내면화하게 된 서구에 대한 심층적인 열등감을 극복하거나, 상처받은 자존심을 만회하기 위해 나온 반발심리의 표현에 불과하다. 따라서 헌팅턴을 비롯한 서구인들은 서구가 비서구 세계에 대해 저지른 지난 3-4세기 동안의 야만적인 행동과 탄압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을 느낀다면, 아시아인들의 발언에 대해 경청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시아인들은 서구 문명이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여타 문명권의 인간들과 자기문명 내의 하층민중들에게 많은 해악을 끼쳤지만, 다른 한편 발전적이고 진보적인 면을 담지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으며, 단지 서구 문명이 지닌 한계를 비판적으로 인식함으로써 맹목적인 서구화를 경계하고자 할 따름이다.
둘째, 민주주의든 경제발전이든 그것을 동아시아의 국가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 전통에 귀착시키려 하는 것은 민주주의나 경제발전의 조건들이 단순히 외래적이거나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전통문화와 공존 가능하다는 점을 나름대로 주장함으로써 근대화 과정에서 민주주의나 경제발전의 토착화를 도모하는 ‘전통의 재활용’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온당하다. 따라서 그러한 태도를 마치 서구를 전면적으로 배척하려는 태도로 받아들이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이다.
한 문명이 다른 문명의 일정한 요소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문명간의 조화 현상은 서구 역사에서도 쉽게 입증되는 바다. 대표적인 예로 근대 서구인들이 중세 서구 문명에 생소한 민주주의라는 제도와 이념을 도입하기 위해 원래 근동 문명의 주변부에 속하던 그리스의 민주제를 근대적으로 재생시킨 현상50)이나, 중세 기독교 문명에 매우 이질적인 자본주의를 기독교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자본주의에 필요한 문화적 에토스를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와 접합시키고자 노력한 막스 베버의 학문적 노력에서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산업화든 민주화든 그 뿌리를 유교를 비롯한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에서 발견하려는 아시아인들의 노력도 아시아의 근대화가 이제 초기의 ‘아시아의 서구화’ 단계를 넘어 ‘서구의 아시아’ 단계, 또는 환언하면 자본주의적 산업화와 민주주의 토착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해야 한다.
요컨대 이러한 토착화 현상을 ‘아시아의 자신만만한 자기주장’ 또는 일종의 전통 국수주의(國粹主義)로 치부하는 헌팅턴의 태도는 문명간의 상호침투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한 태도이거나 아니면 서구인들에게 반아시아 의식을 심기 위한 의도적인 왜곡이라고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아시아의 자기주장’을 헌팅턴이 근대화의 사실상 유일한 대안으로 권장한 바 있는,51) 개혁주의적 근대화가 거둔 성공의 파생물로 이해한다면, 스스로 개혁주의를 추천한 헌팅턴이 다른 한편으로 그 성공의 결과에 거부감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자가당착에 빠지는 셈이다. 개혁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비서구 사회는 전통 문화와 서구 문화의 차이를 부각시키지 않을 수 없고, 그 과정은 어느 정도 서구에 대한 저항과 비판을 불가피하게 수반한다. 게다가 동아시아 여러 국가들이 경제발전에서 거둔 성공이 부분적으로 그들의 문화적 유산에 힘입은 것으로 판명된다면, 동아시아의 자기주장은 나름대로 일정한 설득력을 확보하게 된다. 그러나 헌팅턴은 그러한 현상을 반서구적인 자신만만한 태도로 경계하고 적대시한다.52)
결국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은 서구의 비서구에 대한 오만과 편견으로 점철된 오리엔탈리즘에 다름 아니다. 비서구 사회가 실현 불가능한 서구화를 추구하는 것은 정체성을 포기하는 경멸의 대상이 되는 한편, 근대화는 추구하되 서구화를 거부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내세우면, 당장 서구에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되어 서구의 경계 대상이 되는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아무리 경제적 결속이 강화된다 하더라도 아시아와 미국은 근본적인 문화적 차이로 한 살림을 차릴 수 없다”53)는 그의 말에서 오리엔탈리즘의 진수를 발견할 수 있다.
4. 문명 충돌론과 9. 11사태
과연 문명 충돌론과 9. 11사태는 유관한 것인가? 만일 9. 11사태를 문명의 충돌로 이해한다면, 이는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 대량학살을 감행하는 극소수의 과격단체를 10억이 넘는 인구를 포괄하는 다양한 이슬람 문명권과 혼동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9. 11이 테러냐 아니냐의 성격 규정은 여기서 논외로 하고서라도,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권, 평화에 대한 중대한 범죄 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마찬가지의 논리로 72만의 병력과 3,700대의 탱크, 6척의 항공모함, 장갑차 2천 여대, 공군기 2,700대가 동원되어 무려 42일간 4만8천 번의 폭격 비행으로 8만 8,500톤의 폭탄이 투하된 걸프전이나 변변한 건물 하나 없는 시골 동네를 무지막지하게 초토화시킨 아프간 전쟁 역시 야만적이고 반인륜적인 범죄 행위임이 명백하다. 따라서 사태의 성격 규정에 대한 난해함과 복잡성은 숙제로 남긴 채, 그것이 발생하게 된 원인에 더 주목하고자 한다. 사실 그 원인에 대해서도 전문적이고 차별화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적어도 문명 충돌론의 접근 방식으로는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기는커녕 오히려 왜곡하기 십상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문명의 차이에 대한 강조는 오늘날 이슬람 문명권이 당면한 수다한 문제에 대한 서구와 미국의 역사적 책임을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역사적 책임에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첫째, 이슬람의 위기는 이미 오래 전 서구가 피비린내를 풍기며 아랍 세계를 침범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이었으며, 이 침략이래 아랍 세계는 150년 동안 서구로부터 굴욕과 압박, 착취를 당했다.54)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식민세력은 이슬람권 경제 대부분을 장악했으며, 반식민주의적 저항을 군사적으로 억압했다. 이 억압은 특히 알제리와 같은 지역에서 극도로 잔인한 모습을 띠었으며 서구에 대한 증오라는 역사적 상흔으로 남았다.55) 많은 아랍인들의 서구에 대한 뿌리깊은 원한은 이슬람과 기독교, 또는 이슬람 근본주의와 서구의 근대성 사이의 적대감 때문이 아니라, 이슬람 세계가 서구와 만나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겪은 고통과 치욕의 경험 때문이다. 즉 이슬람과 서구 문명 사이의 긴장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역사의 결과일 뿐이다.
둘째, 자본주의적 모델을 지향했든, 사회주의적 모델을 지향했든 간에 서구의 이름 아래 차용된 근대화의 전략은 이슬람권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의도한 경제적 성공을 가져오지 못했고 오히려 사회 문제들을 심화시켰다.56) 근대화 과정은 이들 사회를 소수의 근대화의 수혜자들과 대다수의 근대화의 패배자들로 분열시킨 것이다. 광범위한 빈곤층의 대두, 높은 실업률이 가져오는 절망감은 지켜지지 않은 근대화의 약속에 대한 배반감과 함께 반서구주의, 이슬람 근본주의가 확산되는 기반으로 작용한다. 요컨대 이슬람 근본주의의 확산은 이슬람의 호전성 때문이 아니라, 근대화와 결부된 사회경제적 문제, 그리고 이 근대화 과정을 담당했던 부패한 정치권력에 대한 반발로부터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서구, 특히 미국에 대한 아랍권의 적대감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빼놓고는 얘기될 수 없다. 점령지역으로부터 군대를 철수하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인정하라는 국제연합의 결의를 이스라엘은 지속적으로 무시해왔고 오히려 점령지역에서 유대인 이주 정책을 통해 아랍인들의 생존권을 파괴해 왔다. 미국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명백한 범죄행위를 지지함으로써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넷째, 걸프전쟁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는 이라크에 대한 가혹한 무역 제재는 수십만으로 추정되는 민간인들의 희생을 가져왔다. 즉 미국의 무역 봉쇄는 부패한 후세인 정권에 타격을 주기보다는 수많은 민간인들과 어린이들의 희생을 결과했는데, 이는 이슬람권 주민들의 깊은 반감을 사고 있음은 물론이다.
결국 문명 충돌론이 설파하는 ‘문명간의 경계를 명확히 긋는 정치’는 미국의 책임에 대해 면죄부를 부여하려는 노력이며, 이슬람이라는 가상의 적을 창출함으로써 새로운 냉전을 조장함으로써 시대착오적으로 과대한 군사비 지출을 정당화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또한 국내적으로 볼 때, 현실적으로 세계 어느 곳에도 미국에 맞설 적수가 존재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 문명충돌을 운운하는 것은, 미국 내 다문화주의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노림수일 수도 있다. 헌팅턴은 “동화를 거부하고 자기가 떠나온 나라의 가치관, 풍습, 문화를 여전히 고수하고 전파하려고 애쓰는” 내부의 이민자 집단들로부터 미국과 서구 문명이 도전 받고 있다고 말한다.57) “서구인들 사이에 기독교가 힘을 잃고 있는 것은 최악의 경우에 서구 문명의 건강성에 대한 대단히 장기적인 위협이 될 것”58)이라는 그의 염려는, 그가 비판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대척점에 서있을 뿐인 동일한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5. 나오면서: 문명의 조화를 위하여
문명간의 충돌이 아닌 문명간의 조화와 공존의 길은 없는가? 하랄트 뮐러(Harald Müller)는 헌팅턴의 이론을 비판하면서 문명의 조화와 공존이 가능한 새로운 세계질서를 모색한다. 뮐러는 현대 정치체제의 전형을 권력국가가 아니라 교역국가로 이해한다. 교역국가의 특징은 정부가 경제계의 요구에 개방적이고, 외교 목표를 설정할 때 경제계를 위시한 이익단체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권력과 안보의 문제보다 경제관계를 우선하고, 또 군비지출을 최소 수준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데에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59) 물론 교역국가는 오늘날 권력국가를 대체한 것은 아니지만, 권력국가의 헤게모니에 강력히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특히 세계화를 통한 상호의존의 과정, 그리고 세계 사회의 전지구적 커뮤니케이션의 심화는 교역국가에 내재한 역동성을 보다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 역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뮐러는 이러한 역동성이 등장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국민의 부를 증가시켜야 한다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독자적인 행보로는 더 이상 도달할 수 없다. 고삐 풀린 경쟁이 가져올 손실을 피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규칙이 필요하다.… 국가는 협력을 강요받고 협상에 참여하여 국제 정체, 다시 말해서 법의 형식을 갖춘 합의를 마련하여 경쟁의 부작용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한다.60)
그 결과 국제법과 국제기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권력국가의 세력 균형의 논리 곁에 국제 협력이라는 교역국가의 역동성이 관철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교역국가의 역동성이 상이한 문명의 다양한 특징과 규범에 영향을 미친다고 뮐러는 강조한다. 물론 이 변화 과정은 자동적인 것이 아니며, 때때로 규범의 변화 속도는 아주 더딜 수도 있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이 오랫동안 심도 있게 작동하면 할수록, 문명간 커뮤니케이션은 보다 강화되며, 그 결과 옛 문명이 새 문명을 통합하려는 시도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요컨대 세계화와 근대화의 과정은 헌팅턴이 오해하듯이 문명적 자의식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각 문명들을 근대의 요구에 적응시키면서 서로 유사하게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 뮐러의 생각이다. 결국 근대화 과정의 독자적 법칙성은 문명의 자기 주장 기회를 제한하며, 문명간의 공통 영역을 넓히기 때문이다.61)
헌팅턴이 ‘서구의 이념’이라 선언한 서구 문명의 속성, 예컨대 근대의 자유와 그것을 보장해주는 제도(사회국가)는 힘겹게 투쟁해서 얻어진 것이며,62) 관용과 연대를 확고한 가치로 여기는 시민의 적극적 참여에 의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뮐러의 생각이다. 바로 이 점에서 온갖 포스트주의에도 불구하고 근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따라서 사회적 연대감을 다시 활성화하면서 상대주의, 근본주의, 그리고 과도한 자유주의의 공격으로부터 근대를 강력히 수호하는 것이 세계화 시대에 서구가 맡은 임무라고 지적한다.63)
물론 서구 문명은 완벽하지도 않고, 위기로부터 자유롭지도 않으며, 현대의 도전에 대처할 대답을 발견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서구 문명은 비교적 유연하고, 비교적 개방적이며 자유롭고, 자신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협력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뮐러의 생각이다. 그러나 서구는 타 문명에 대해 더 많이 배워야 한다.64) 왜냐하면 문명들간의 경계 설정과 구획화가 아니라 개방과 대화만이 문명의 공존을 가능케 하며, 또한 지구적 협력만이 오늘날 세계가 당면한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뮐러의 ‘문명 공존론’이 많은 강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판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 그에게는 근대화가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최고의 상위 개념으로 특권화되며, 그 결과 차별화되어 분석되어야 할 여러 현상들이 근대라는 이름 하에서 간과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러한 접근으로는 오늘날의 심각한 위기의 원인들이 제대로 설명되기 어렵다. 둘째, 뮐러는 세계화가 현실에서 야기하는 긴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세계화가 경제적 상호의존과 전지구적 커뮤니케이션의 심화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엄청난 경제적 불평등 및 사회적 파편화를 산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뮐러의 경제적 복지를 추구하는 교역국가의 상호협력, 그리고 국가를 벗어나 형성되는 사회 세계의 커뮤니케이션의 강화에 대한 일방적 강조는 어느 정도 과장되고 희망사항의 수준이 아닌가 사려된다. 경제적 불평등 및 사회적 파편화를 완화하려는 의도적인 정치적 노력이 등장할 때 비로소 상호협력 및 상호의존의 과정을 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뮐러의 낙관적 사고와는 달리, 오늘날 이슬람 국가들 및 제3세계 국가들 대부분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은 전지구적 불평등이 교역국가의 논리에만 의존해서는 해소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상적인 교역국가의 논리가 현실에서는 냉혹한 신자유주의 논리로 변용될 수 있다는 사실65)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부터는 결론을 대신하여, 문명의 조화를 위해 고려되어야 할 사항을 제안하고자 한다. 그것은 윤리적인 차원의 다원주의와 관용의 가치이며, 기독교가 추구해야할 종교적인 차원에서 평화의 가치이고 그리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강자인 서구가 반성적으로 취해야할 조치이다.
먼저 윤리적인 차원을 살펴보자. 여기서 다원주의란 문명의 다원주의를 말한다. 각 문명은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가치를 갖는다. 문명적 가치의 위계를 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모든 문명적 요소를 똑같이 수용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누구든 자신이 속한 문명적 가치를 다른 문명보다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누구든지 어떤 특정한 환경에 살 수 밖에 없고, 문명이 환경에 대한 적응 기제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하다. 예컨대 열대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한대 지역의 문명으로는 살아갈 수 없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들이 생존을 오랜 세월 동안 가장 효율적으로 보장해준 자신들의 문화가 적어도 자신들에게는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문명도 그 문명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마찬가지로 가장 가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다원주의이다.
다음으로 관용(toleration)의 가치이다. 관용은 킹(Preston King)이 정의한 대로 반대(objection)와 용인(acceptance)이라는 두 요소가 결합된 말이다.66)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행위나 이념이나 조직이나 예술 작품 등에 대해 심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반대하고 시인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용인67)할 때, 우리는 그가 관용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한다. 경우에 따라 어떤 저항할 수 없는 힘에 눌려 반대하면서도 용인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관용이 아니다.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하는 것을 용인할 때, 진정한 관용은 성립한다. 결국 관용은 나와 반대되는 어떤 것에 대해 내가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적 행위를 자발적으로 중지하는 태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왜 관용의 정신이 필요한가? 그것은 우리의 이성이 완전하지 않고, 무오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불완전과 오류가능성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 이성은 우리와 다른 가치, 다른 사상, 다른 종교, 다른 문명에 대해 관용을 베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관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약하고, 불일치하고, 변덕스럽고, 잘못을 범하기 때문이다.”68)
둘째, 기독교가 추구해야할 종교적인 차원에서 문명의 조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바를 살펴보자. 다원주의와 관용의 맥락에서 기독교 교회가 타종교를 이해하고 대화를 모색한다면, 그것 또한 문명의 조화를 위해 크게 기여할 것이다. 한스 큉(Hans Küng)은 “종교간의 평화를 배제하고는 국가 간의 어떠한 평화도 불가능하며, 종교간의 대화를 배제하고서는 종교간의 어떠한 평화도 불가능하다”69)고 말한다. 그렇다면 종교간의 대화의 전제조건은 무엇인가? 한스 큉에 의하면 그것은 종교의 자체비판이다. 각 종교가 자신의 과오와 실수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성찰할 경우에 비로소 진리의 빛에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가장 설득력 있는 명제가 바로 “모든 것은 동시에 선하고 참일 수 없다”(Nicht alles ist gleich gut und wahr)70)는 것이다. 모든 것은 언제나 선하고 참이지 못하고, 어떤 경우와 어떤 것에 대해서는 참이지만,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악일 수도 있다. 기독교인들의 절대적 신앙관 역시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악으로 파악될 수도 있다. 중세 때 진리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종교재판과 이단자 숙청(마녀사냥)은 악이요 비진리임에 틀림이 없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우리는 종교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허용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역사적 기독교는 사랑과 평화의 윤리를 내세우면서도 배타적이고 편협한 차별정책을 구사하였고, 구원과 은총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인간의 죄의식을 병적으로 과장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나치게 배타적으로 왜곡시켜 왔던 것이 사실이다.71) 그리고 나서 종교간의 대화를 위한 보편적 기준을 모색하는 일이다. 각 종교가 그 자체의 독특한 진리기준 이외에 타종교의 신앙인에게도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전지구적 차원에서의 진리기준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종교간의 대화는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한스 큉은 그와 같은 보편적인 도덕성의 기준은 바로 진리와 비진리, 참된 종교와 거짓된 종교를 가늠하는 척도라고 생각하였으며, 그것은 바로 도덕적 가치로서 “인간적인 것”(das Humanum)이라는 것이다. 기독교는 사랑과 평화의 윤리에도 불구하고 배타적이며 용서가 없고 공격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역사적으로 사랑과 평화의 윤리보다는 미움과 전쟁의 철학을 지지해 왔던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가 인간적인 것을 무시하였던 시대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한스 큉은 종교의 이름으로 어떤 비도덕적 또는 비인간적인 일도 허용될 수 없다72)고 강조하면서, 도덕성과 인간성이야말로 세계종교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 규범이나 자기비판의 기준, 또는 “일치적 근거기준”(das Humanum als okumenisches Grund-kriterium)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73) 참된 종교는 “신적인 것”(das Divinum) 속에 반드시 “인간적인 것”을 무조건적(unbedingt), 보편적으로(allgemein) 정초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참된 종교는 보다 구체적으로 인권 보호, 여성해방, 사회정의 실현, 전쟁의 비도덕성과 같은 문제에 적극적으로 간섭해야 한다.74) 이로써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인간성, 또는 인간적인 것은 모든 참된 종교의 가장 보편적인 기준으로 정초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종교들 사이의 대화가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가 타종교와 대화하고, 그리스도인들이 타종교인들과 “인간적인 일”을 위해 서로 연대하고 서로 협력할 때, 종교간의 평화는 물론, 문명간의 조화와 공존의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끝으로 역사적으로 비서구를 착취․억압․유린한 서구가 문명의 조화와 공존을 위해 반성적으로 취할 수 있는 정치적인 차원의 조치를 알아보자. 먼저 문명간의 조화를 위한 주요한 담지자로 부상하는 세계 NGO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생각할 수 있다. 서구는 문명적 조화와 정치적 민주화의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전지구적인 NGO에 대해 인류애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들은 문명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촉발시킨 인권․ 여성․환경 등의 문제로 서로 연대할 수 있다. 한스 큉이 제시했던 바와 같이 인권․여성․환경 문제는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 추구를 위한 근거가 되기 까닭에 이것을 끈으로 문명의 경계선을 초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차원을 달리하여, 지구적 불평등에 대한 다소 급진적인 정치적 조치인 데, 예컨대 이슬람 국가를 비롯한 가난한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외채의 전면 탕감(이미 대부분의 국가들은 외채보다 많은 이자를 지불하였다), 선진국 개발원조기금의 대폭적인 증대, 국제 금융시장의 거래에 대한 과세 및 이 수입의 제3세계에 대한 이전 등등의 조치가 문명의 조화와 공존이라는 명분아래 단호하게 합의되고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강대국이 주도하는 세계화 논리에 대한 저항을 극단적인 수단을 통해 표현하고자하는 세력에게 또 다른 9. 11의 유혹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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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jkp.bjc.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