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요즘에 들어 쌀에 잡곡을 섞어 한 밥을 영양식이라 하여 가정마다 즐기는 경우가 많다. 잡곡 중에 많이 쓰이는 것이 보리일 텐데, 이 나라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사실 보리밥이 싫었고, 쌀밥 배불리 먹는 것을 원으로 하며 살았다. 가끔은 그 시절을 생각하며 보리밥 식당에도 가는데, 그게 싫었던 사람들이 무슨 일로 보리밥을 돈 내고 사 먹는지 이해가 잘 안된다.
쌀은 귀한 것이었다. 돈 보다도 귀했다. 지금에 비해 소출이 많은 품종이 없었고, 병충해로 생산이 덜했고, 관개시설이 미비하여 천수답이 힘을 못 쓴 탓이다. 쌀이 주가 된 경제였기에 ‘사다, 팔다’란 말도 쌀이 중심이었다. 시장에 쌀을 팔러 가는 사람은 ‘돈 사러 간다’ 하였고, 이를 사서 오는 사람은 ‘쌀 팔아 온다’ 하였다.
벼를 정미소에서 쌀로 찧어 오면 보통은 자물쇠까지 갖춘 안방 뒤주에 넣어 두었다. 마루에 두면 도둑이 들고, 용돈이 궁한 집안의 누군가가 손을 댈 수도 있기 때문인데, 술집에 가져가면 술이요, 과자 집에 가져가면 과자였다.
쌀은 오로지 밥하는 것이고, 명절이나 제사에 떡 하는 것 말고는 여느 주전부리로든 쓰는 것이 아니었다. 비 오는 날 둘러앉아 콩이나 보리를 볶아서는 먹어도 쌀로 그러지는 아니하였다. 생쌀을 간식으로 먹던 아이들도 간혹 있었는데, 벼락을 치거나 회충 생긴다는 등의 말로 막았다.
쌀을 만드는 벼는 하나 버릴 게 없었다. 탈곡한 짚은 소의 사료로 쓰였고, 마구간에 깔아 거름을 만들었다. 초가지붕을 이는데 쓰이며 새끼, 가마니, 멍석, 삼태기 등을 만드는 자료였고 땔감이기도 하였다. 벼를 정미하면 처음에 나오는 왕겨는 땔감이나 가축의 깔개 등으로 쓰며, 이들은 다 나중에 농사용 거름이 되는 것이다. 그 다음은 등겨인데, 가축의 영양가 만점인 사료이다.
근래에 들어 그 귀하던 쌀에 여유가 많아졌다. 그러니 ‘귀하다’란 말은 오히려 죽어가고, ‘흥청망청’이란 말이 더 흥하는 세상이 되었다. 누구든 경제적으로 여유로워 자식들 잘 키우고 주위에 베풀며 살고픈 생각들 클 텐데, 쌀처럼 귀한 것을 귀히 여기는 절약이 몸에 밴 다음에야 풍성한 세월이 와서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