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의 알프스 배내골
영남의 알프스라고 부르는 배내골을 동경했지만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매월 둘째 주일은 가족 주일로 지킨다. 이 날은 저녁 예배가 없다. 가족끼리 혹은 각 기관별로 야외로 나가거나 회원들 집을 방문하여 거기서 예배를 드리며 친교한다.
5-6년 전에 프랑스에서 이태리 국경선을 넘어 간 적이 있다. 버스는 알프스를 왼쪽에 끼고 달렸다. 그때와 비교해 보면 알프스는 남성적이라면 배내골은 여성적이라고나 할까. 차창 밖으로 저 멀리 보이는 알프스는 하늘에 닿을 듯이 높고 높은 산에서 하얀 물줄기가 떨어져내리고 산 중턱에는 목가적인 분위를 자아내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자유, 평화 그 자체였다. 금방이라도 요들송이 들리는 듯 했다. 분위기를 맞추어 가이드는 요들송을 들려주었다. 그림같이 예쁜 집들은 보였지만 사람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산들은 얼마나 높고 험준한지 산자락과 중턱에는 숲을 볼 수 있었지만 높은 곳은 바위 덩어리들이 뭉쳐 있었다. 산들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워낙 높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이태리 국경선에는 긴 터널이 많았다. 나폴레옹이 이태리를 이곳으로 침공했다고 한다.
한국의 알프스 배내골은 나무들이 울창하지만 산들을 지척에서 볼 수 있었다. 올망졸망하다고나 할까. 손에 잡힐 듯한 아기자기한 산들이 즐비했다.
넓은 계곡을 따라 펜션들이 좌우에 들어섰을 뿐만 아니라 산속 깊숙이 들어가니 펜션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 알프스는 그렇지 않았다. 농가 외는 경치가 좋다 하여 사람들이 집을 짓지 않았다.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물론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왜 그러지 못 하는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인간이 땅을 밟았다 하면 자연은 망가진다.
경남 양산군 원동면 선리에 있는 배내골은 신불산, 가지산, 재약산과, 천태산, 토곡산 등의 중심에 있다. 주위에 통도사, 내원사, 석남사, 표충사등 유명사찰이 있으며, 탄산유황온천인 가지산온천과 약알칼성의 등억온천도 있다. 한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얼음골과 1급 청정수의 맑은 계곡 옆으로 야생배나무가 많이 자란다하여 이천동이라고도 부르는 배내골이 자연그대로 숨쉬고 부산의 젖줄인 낙동강과 밀양댐이 위치한 그야말로 자연과 어우러져 있는 이곳은 물 맑고 공기가 좋아 요양원으로 안성맞춤이다.
그럼 우리 모두 배내골로 한번 가보자!
우리 제3남전도회원들과 아내들, 도합 21명은 이봉재 집사가 운전대를 잡고 교회를 출발했다. 우리가 출발한 시각은 오후 1시, 점심은 각자 해결하기로 했다.
배내골은 박근원 집사가 가자고 제의했다. 거기에는 박근원 집사가 근무하는 한의원 원장의 별장이 있기 때문이다. 김해에서 배내골까지 약 2시간이 걸렸다. 박근원 집사와 서인기 집사가 선발대로 출발했다. 버스는 새로 건설된 대구 부산 고속도로를 달렸다. 초행이라 찾아가는데 애를 먹었다. 결국 묻고 물어 언양에서 석남사 아래쪽에서 배내골로 들어갔다. 배내골 가까워 오자 서인기 집사가 마중 나왔다. 우리는 그 차를 따라갔다. 큰 다리를 건너자 바로 여기저기에 펜션들이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었다. 팬션촌을 이루고 있는 마을 앞에는 너비가 100미터가 넘는 하천이 흐르고 있었지만 날씨가 가물어 계곡 물이 말랐다. 다리 입구에 상수도보호구역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계곡을 따라 좌우에 울창한 숲으로 덮인 산들이 펼쳐져 있고 펜션들이 들어선 뒤쪽은 그리 높지만 않은 산들이 완만한 경사를 유지하며 남북으로 걸쳐있었다. 여기가 바로 펜션마을. 대충 둘러 보니 50-60 채는 될 듯했다. 펜션들이 얼마나 하릅다운지 말로 글로 표현할 수 없다. 그 날은 주일이었지만 아직 여름휴가철이 아니라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집집마다 기묘한 자연석과 어우러지는 잔디를 깔았고 온갖 꽃들로 뒤덮여 있었다. 담장에 장미가 많았다. 물레방아가 있는 집들도 몇 있었다. 뒤에 들은 이야긴데 하루 빌리는데 평당 만원, 50평 펜션이라면 50만원이 든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펜션들을 처음 보았다. 비록 자연은 파괴되었지만 이 아름다운 곳에서 며칠 쉬다 가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했다.
버스에서 내려 15분쯤 걸어가면서 경관과 멋진 펜션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대문 앞에는 마음씨 좋게 생긴 큰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낮선 우리를 향해 짓지 않았다.
펜션은 모두 세 채였다. 맨 아래, 중간에, 맨 위에 한 채. 우리는 맨 아래채에서 여장을 풀었다. 선발대들이 야외에 불판을 마련하여 고기 구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펜션에 딸린 방은 30평, 회의실은 20평, 주방 옆에 화장실, 앞에는 산수유를 심어놓았고 그 옆으로 계곡이었는데 가물어 물이 조금밖에 없었다. 계곡 물이 콸콸 흘러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도착하자 말자 선발대들이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일행 21명은 두 군데 마련한 불판 주위에 둘러 앉아 돼지불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예상 외로 고기를 잘 굽히지 않고 불꽃이 피어 올라 타기 일쑤였다. 총책임자인 이일남 집사와 이정애 권사는 며칠 동안 수고하여 오늘 쓸 물건들을 준비했다. 그 수고에 감사했다. 넓은 회의실과 방은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는데 이명희 집사가 했다는 말을 듣고 그 분의 속성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은 알려면 일주일만 여행을 같이 해보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단 몇 시간 만에 사람 됨됨이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제일 위에 있는 펜션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그 노래 소리는 펜션 주인의 생림초등학교 동창들이라고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인다나.
어느 정도 배를 채운 다음 박집사의 안내로 몇 사람은 펜션 옆으로 흐르는 계곡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마침 하루 일정을 모두 끝낸 원장님 동창들은 떠날 차비를 하며 나무 그늘 아래 설치된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박집사가 말했다.
“원장님께 인사하세요.”
밀짚모자를 쓰고 기계를 돌리는 분이 원장님이란다. 송한의원과 우리 약국은 불과 20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원장님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원장님은 어떤 분일까? 평소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잘 되었다 싶었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저 송한의원 근처에 있는 동신약국에서 왔습니다.
좋은 자리를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장님은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향해 조용히 웃었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원장님은 나와 동갑이라는 사실을 거기 모인 동창들을 통해 알았다. 평소에 나는 그 분이 50대 중반쯤 되는 줄 알았다. 원장님은 방목하는 염소들이 달아나지 말라고 쳐 놓은 울타리를 직접 열어주며 올라가 보라고 했다. 친절했다. 백 평은 될 듯했다. 약초들 아래는 한약찌꺼기들을 수북이 쌓였다. 방목장을 지나 바로 계곡과 연결되었다. 조정숙 집사랑 우리들은 어린아이들처럼 차운 계곡 물에 발을 담구며 사진을 찍었다. 물은 차웠다. 두어 시간을 우리는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도시의 더러운 공기를 씻어내었다. 우리가 계곡에 올라간 연세가(?) 지긋한 임수영권사, 박숙자 권사, 박기조 권사는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원장님 일행들이 먼저 자리를 떴다. 우리도 떠날 준비를 했다. 남은 음식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박근원집사 준비한 추어탕을 한 그릇 먹었다. 수박도 먹었다.
이번 배내골 여행은 한 달 전부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소망한 만큼 유월 햇살은 뜨거웠다. 파란 잔디가 깔린 펜션 앞은 새소리, 바람소리,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파란 잔디 위에 떨어지는 하얀 햇살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씻고 잔디 위에 물을 뿌렸다. 여기저리를 거닐며 나는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계곡 아래도 내려가 보았다. 맑고 깨끗한 공기를 마음껏 마셨다.
떠나기 전에 단체 사진을 찍고 우리는 가지산유황온천으로 핸들을 돌렸다. 산속 저녁은 빨리 왔다. 해는 서쪽 하늘에 숨어버렸다. 버스는 굽이굽이 돌아 가지산온천을 향해 달렸다. 진짜 배내골은 여기부터였다. 넓은 계곡을 끼고 아래로 아래로 내달렸다. 약 20분 동안 배내골 풍경을 마음껏 감상했다. 무엇이나 풍성했다. 맑은 공기, 파란 하늘, 숲에서 뿜어내는 나무 냄새 풀 냄새, 자연이 주는 고요가 나를 압도했다. 차창을 스치는 배내골을 감상하는 동안 차 안에서는 박숙자 집사와 임희택 장로는 열창했다. 두 사람은 목소리가 좋았다. 젊은 시절, 노래로 한 가닥 하던 사람들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앙코르.”
노래를 들으며 가지산온천을 향하는 동안 어느덧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팬션들은 불빛을 밝혔다. 온천장에 도착하니 주위는 한산했다. 저녁이라는 관광객들은 벌써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이 온천장은 수영장과 온천욕을 같이 즐길 수 있었다. 요금은 남자 5천3백원, 여자 4천 7백원이었다. 단체도 할인해 주지 않았고 남자 요금이 여자 요금보다 비싼 이유는 남탕엔 비누, 수건, 비누수건이 비치해놓았지만 여탕은 아무것도 없어 수건을 여자들은 수건과 비누를 별도로 샀다.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탕안은 텅 비었다. 목욕하는 사람은 겨우 몇 사람 정도였다.
탕은 제법 넓었다. 열탕, 온탕, 냉탕, 미지근한 탕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온탕은 35도 가량이라 수영하기에 알맞았다. 나는 마음껏 자유수영을 즐겼다. 박동석 집사가 나보고 수영을 정식으로 배웠냐고 물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주위는 완전히 깜깜했다. 자동차 전조등을 켜놓고 우리는 수박에 썰어 먹었다.
자동차는 어두운 밤길을 달렸다.
감사하며 하루를 마감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마음이 가벼웠다. 2007-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