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주는 산 - 치악산

[Robert An]

치악산 산행기

치악산(1288m)은 창원에서 멀기도 하지만, 앞서 갔다 온 선생님들의 무용담에 질려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산이었다. 본교의 몇 몇 선생님들께서 올해 초에 사다리병창 쪽으로 등반을 했는데, 힘이 들어, 갔다 오고 난 뒤, 입이 다 지었다는 것이다. 원래 악(岳)자가 들어가는 산이 힘들긴 하지만, 치악산만한 데가 없더라고 엄살 아닌 경험담을 이야기 하는데, 마음이 움츠려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 악(岳)자가 괜히 들어갔겠는가? 그 고을에서는 “악”소리가 나니 그런 이름이 지어 졌을 것인데, 그것도 강원도의 악산이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산행대장과 이런 우려 아닌 우려로 우리는 사다리병창 쪽에서 등반을 하지 않고, 좀 수월하다는 황골 쪽에서 등산을 하여 사다리병창 쪽으로 하산을 하기로 했다.

산에 들어간 악이란 글자가 큰산 악(岳)이란 한자이지만, 우리글에 “악을 쓰다”란 표현이 있지 않은가? 악을 쓰지 않고는 오를 수 없는 곳이 악산인 모양이다. 악(岳)자가 들어가는 산을 조사해보자. 국립공원으로는 설악산(1708m), 월악산(1097m), 치악산(1288m)이 있고, 도립공원으로는 모악산(793m, 전북 전주, 완주, 김제 금산)이 있다. 그 외에도 서울에 관악산(632m), 경기도에 운악산(936m, 가평), 감악산(675m, 파주), 화악산(1468m, 가평)이 있고, 강원도에 삼악산(654m, 춘천), 충북에 백악산(858m, 괴산), 두악산(732m, 단양), 전남에 모악산(348m, 함평), 동악산(735m, 곡성), 경북에 황악산(1111m, 김천), 화악산(938m, 청도), 경남에 감악산(951m, 거창)등이 있다. 가보지 않아도 이름에서 벌써 그 산의 위용을 보는듯하다. 다음에는 악산만 모아서 도전을 한 번 해봄직도 하다.

치악산은 원래는 붉은 단풍이 산을 덮었다 해서 적악산(赤岳山)이라 불렀는데, 지금은 상원사¹⁾의 구렁이와 꿩의 이야기로 해서, 꿩 치(雉)자를 써서, 치악산(雉岳山)이라 부른다 한다. 상원사 꿩 전설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익히 알고 있던 살신보은(殺身報恩)의 이야기이다.

어느 이름 모를 산에 입산하여 수도하던 어느 선비가 물 맑고 경치 좋은 강원도 원주의 적악산 산길을 걷다 새끼가 태어날 알을 품고 있는 꿩을 잡아먹으려는 구렁이를 화살로 쏘아 죽임으로 꿩의 생명을 살려 주게 된다. 꿩을 구해준 선비는 날이 저물어 잠자리를 구해 민가를 찾게 되었다. 나그네가 찾아든 오두막집은 공교롭게도 여자 혼자 살고 있었지만 외딴집이었기에 할 수없이 그 집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오두막집의 여자는 낮에 선비가 죽인 숫구렁이의 아내 되는 암구렁이로 복수를 하기 위해 여자로 둔갑을 하여 선비를 유인한 것이었다. 장도의 산행에 피곤한 선비가 깊이 잠들자 암구렁이는 길다란 몸뚱이로 선비의 몸을 칭칭 감고 목을 옥죄며 혀를 날름거리며 잡아먹으려 했다. 잠결에 공격을 당해 목숨이 위태롭게 된 선비는 어쩔 수 없이 간절하게 살려 달라 애원했다. 그러자 선비의 목을 옥죄고 있던 암구렁이는 자신의 업보를 풀기 위해 '첫닭이 울기 전에 종이 3번 울리면 살려 주겠다' 했다. 오두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상원사라는 절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 절은 빈 절이었으니 종을 칠 사람이 아무도 없음이 너무 뻔하니 터무니없는 조건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죽었구나.'하고 목숨을 포기한 선비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느닷없이 '뎅~ 뎅~ 뎅~'하고 상원사에서 종이 3번 울렸다. 비록 미물이나 구렁이는 자신이 한 약속을 어기지 않고 자신의 남편을 죽인 선비를 놓아줌으로써 선비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 분명 아무도 없던 절에서 종소리가 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선비는 단숨에 상원사로 달려갔다. 상원사 앞마당에 있던 종 주위를 살피니 종 앞에는 선비가 낯에 구해준 그 꿩이 머리에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것이었다. 자기의 목숨을 구해준 선비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꿩은 자신의 목숨은 생각하지 않고 머리를 종에 부딪쳐 소리를 나게 해 선비의 목숨을 살려낸 것이었다. 꿩의 살신 보은으로 목숨을 건진 선비는 그 후 은혜 갚은 꿩을 기리기 위해 산 이름에 꿩 '치'자를 넣어 치악산이라 명명하니 오늘의 치악산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한다.

아침 6시에 출발하기로 했으나, 중앙고의 정선생님이 늦어서, 6시30분에 창원종합운동장을 출발했다. 참가하신 선생님들이 모두 점잖은 분들이라 아침시간을 그리 오래 기다렸는데도 짜증을 내지 않으신다. 집행하는 입장에서 너무 감사한 일이다.

일기예보에는 강원도에 10월 둘째 주에 단풍이 들것이라 했는데, 만산홍엽, 그래, 그것을 좀은 기대를 하면서 출발을 했는데,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단풍이 들것 같은 느낌이 다가오지 않는다. 강원도 쪽으로 북으로, 북으로 가다보면 좀 달라지려나, 소망을 하면서 차창을 내다보는데, 가을걷이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들녘에 벼들이 그냥 서있고, 경북으로 들어서니, 과수원에는 빨간 사과가 아직 주렁주렁 달려있다. 아직 수확이 되지 않고 있다. 올 해는 추석(9월14일)이 일찍 들어서 과일 소비가 많이 줄었단다. 과일 소비가 줄어든 것이 추석 탓만도 아닐 것이다. 경제가 이렇게 어렵다 보니, 어찌 과일하나에 손이 쉬 가겠는가? 우리네 자본주의적 삶은 돈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것을...

올 해는 경제위기가 전 세계의 화두이다. 자본주의가 산업자본에서 수익 기대가 어렵게 되자, 금융자본으로 이익 창출기법을 바꾼 후, 금융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척 많고, 복잡한 기법들을 개발해냈다. 오늘날에는 제조업 상품의 생산이나 교역보다는 금융 상품의 거래를 통한 이윤 창출의 규모가 훨씬 더 커지고, 금융시장의 규모도 세계화되어 있다. 

미국에서 발생해서 우리나라를 휩쓸고 있는 금융위기 쓰나미는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현재의 경제의 화두인 효율은 과연 무엇을 위한 효율일까? 현재의 경제 방향이 인간의 삶의 질과 행복을 담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작년부터 미국은 실업이 증가하고, 실업 증가에 따른 소비가 위축되고, 따라서 생산위축, 투자위축, 통화위축으로 이어져 가장 취약한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서브프라임이라는 것은 신용도를 말하는 것인데, 프라임이 건전 신용 자산이라면, 서브프라임은 그 보다는 건전하지 못한 신용도의 자산을 말함이다.

1990년대 말에 경제가 위축되자 미국정부는 신자유주의 경제 법칙에 따라, 국민과 기업에게 걷는 세금을 일부 낮추었다. 세금을 낮춘다는 의미는 국민과 기업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가처분소득이 증가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때 수혜자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비하여 저축을 하거나 안전자산을 늘리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소비가 미덕이다“라는 자본주의의 고전에 충실히 소비와 투자를 늘리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은행에 많은 돈이 유입되면 투자자금은 풍부해지지만, 소비의 증가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업의 생산 활동 위축으로 결국 금융기관들은 투자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워지고, 경제 침체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후자의 경우는 소비증가가, 기업의 생산 증가, 고용증가, 투자증가, 임금증가, 자산증가, 다시 소비증가로 이어져 경제가 활성화 되는 방향이다.

미국은 1980년대 레이건노믹스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따라 비정규직이란 노동상품이 생겨났고, 2000년대 초에 미래의 수입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이 확대되면서 다수의 미국 국민들이 안전자산 선호와 소비축소의 경향이 뚜렷해져갔다. 국민들은 저축을 하고, 그리하여 자금이 쌓이면 소비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대비의 수단으로 그 때까지만 해도, 안전자산으로 여겨졌던 부동산, 즉, 더 고가의 주택을 구입했다. 그래서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전래 없이 상승하게 되었다²⁾. 부동산 투자가 이익을 창출하게 되자, 모든 경제주체들은 부동산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국민의 저축 증대로 인한 초과예금에 대한 이익을 창출하기위해, 더 많은 대출자를 물색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리하여, 부동산을 담보로 신용도가 낮은 집단(미래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집단)에 대한 대출을 증대시키게 되었다. 이것이 서브프라임 모기지이다. 금융기관은 초과예금이 쌓이고, 부동산 가격의 상승 추세에 따라, 부동산을 담보로 부동산 가격의 90%까지 대출을 해주게 되는데, 이런 위험성을 보완하기 위해 위험을 분산시키는 보험성격의 파생상품을 개발하여 판매하였고,  파생상품이 또 파생상품을 낳아, 위기가 발생한 이 시점에 미국의 재무부장관도 파악하지 못하는 규모가 되었고, 전 세계의 금융기관들이 이 파생상품을 직간접적으로 구매하였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건설경기의 확대에 따라, 여타 분야 생산시설의 투자가 증가하고, 생산이 증가했으나, 비정규직³⁾의 미래에 대한 대비심리에 따라 소비는 그에 따르지를 못했고, 소비 증가가 지지부진함에 따라, 실업률은 2007년 2월 5%에서 2008년 8월 6%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비정규직이 일반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실업의 일시적 증가가 아닌 추세적 증가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미래에 대한 불안 심리로 해서 대규모 소비 둔화로 이어진다. 소비 둔화는 생산축소로 이어지고, 그 결과는 대대적인 감원으로 이어지는 것은 필연이다. 실업자들은 생활규모를 축소하기 위해, 부동산을 처분하게 되고, 팔려는 부동산이 남아돌고, 부동산 가격은 하락한다. 또한 실업자들은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금융기관들은 담보로 잡은 부동산의 경매에서 원금도 회수하지 못하는 상항이 발생한다. 이것이 서브프라임모기지가 부실화되어가는 과정이고, 서브프라임모기지의 부실로 채권의 위험성 증가, 주식가격의 폭락, 이에 따른 안전자산의 선호 증가, 위험자산의 해지 순에 따라, 파생상품도 부실화되었고, 제1금융권을 제외한 투자은행, 보험, 증권기관의 건전성이 의심되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고, 결국 그 여파가 제1금융권의 신용경색으로 까지 이어져 세계 경제의 핏줄인 돈줄이 막히는 사태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2008년 미국 경제규모가 절반으로 몰락하게 된 근본 원인은 1980년대부터 잉태된 비정규직의 양산이 아니었을까?

생산비의 효율성을 기하기 위한 비정규직 제도가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축인 소비를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고, 경제 위기 신호에 극적으로 축소시킴으로서 경제기반을 무너뜨리는 일이 발생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G7정상회담에서 비정규직 제도를 구조적으로 제거하기로 선언한다면, 각국의 산업의 효율성은 동일 선상에 있게 되는 것이고, 그러면 예측 가능한 장기적인 소비력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1920년의 미국 경제공항을 타개하기 위한 국가주도 복지주의를 표방하는 또 다른 형태의 케인즈류가 다시 등장하는 것은 아닌가?

소비를 중시하고, 소비를 위한 소득이 보장되고, 그래야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고...

자동차의 아버지인 포드(Ford)는 봉사주의(奉仕主義)의 경영이념을 주창하면서 "노동자가 아니면 누가 구매할 것인가!"라는 신념 아래 노동자에게 가능한 한 최고임금을 지급하고 소비자에게는 최저가격에 의한 판매를 통해 구매력 확대를 꽤했다. 다만 무조건 임금을 인상시키면 경영수익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수익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생산의 표준화와 이동조립법의 생산방식을 고안해 냈던 것이다.

헉! 나 혼자만 너무 빗나가는 것 같다. 얕은 생각이 방황을 하면 할수록 지향점 없이 해매고 만다. 포드주의는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발상이지, 대부분의 자본이 금융자본 하에 있는 지금의 경제 상황에서는 맞지 않는 이야기런지도 모른다.

우리도 예외 없이 세계화 과정에서 대규모 경제권에 종속되었고, 그래서 미국의 금융위기에 요즘은 사과하나 사 먹는 것도 조심스럽다. 과수원의 농부는 사과 값이 떨어져서, 사과 수확을 늦추고 늦추어 설 판매를 겨냥하여 저장을 하려는 요량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흐름이 경제의 페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다가오는 설에는 가격이 오를 수 있는 것인지? 미국의 경제흐름에 우리의 사과 값도 출렁일 것이다. 

복잡한 세상사를 너무 마음대로 해석하고 써 내려간 것 같다. 이런 세속의 상념을 잠시나마 잊으러 산을 간다. 산을 오르는 힘겨움이 더 하면 더 할수록 우리는 무념무상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이빨을 깨물고 악을 쓰며 올라가야 하는 치악산은 이에 꼭 맞는 산인지도 모르겠다. 산정에서 저 멀리, 발 아래로 성냥갑만한 아파트를 보며 30평과 40평을 구별하지 못할 때, 우리는 해맑은 웃음을 웃을 수 있다.

치악산은 북으로부터 비로봉, 향로봉, 남대봉의 세봉이 있는데, 이 각각의 봉에 오르는 산행코스가 있고, 종주코스도 있다. 비로봉은 치악산의 주봉으로 구룡지구에서 오르는 코스와 황골지구에서 오르는 코스, 부곡지구에서 오르는 코스가 있다.

우리는 황골코스로 등반하여 비로봉을 거쳐 구룡지구로 하산할 예정이다. 황골코스는 황골탐방소 - 입석사 - 비로봉에 이르는 4.8Km로 치악산 비로봉에 오르는 가장 단코스이며, 난이도도 그리 높지 않은 코스이다. 반면에 하산하는 구룡지구 코스는 구룡탐방지원소- 구룡사 - 세렴폭포 - 사다리병창 - 비로봉에 이르는 5.7km로 난이도가 높은 등산코스이다. 이 코스는 특히 사다리 병창으로 명성이 높은데, 사다리 병창은 구룡사에서 비로봉으로 가는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있는 거대한 암벽군으로 원래 말등바위라고 불렸으나, 1973년 치악산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고 탐방로를 정비하면서 여기에 지금처럼 철 난간을 설치한 것이 아니라 사다리를 많이 설치했다고 하여 사다리병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병창은 영서방언으로 '벼랑, 절벽'을 뜻한단다.

황골지구 출발 오전11시, 황골지역에는 도로가 정비되어 있지 않아서 버스가 황골매표소까지 이동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 일행 35명은 황골매표소 아래의 버스를 회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어느 식당 앞에서 하차하고 도보로 이동을 했다. 출발 때, 명곡고 전선생님이 발이 아파 출발을 할 수 없단다. 아침에 의령에서 산행 때문에 바삐 오셨는데, 발바닥에 문제가 생겼다하니 마음이 안됐다. 같이 할 수 없는 서운함을 뒤로하고, 원주에 있는 박경리의 토지문학관을 방문하고 오라고 조언을 했으나, 구룡지구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갈 수 있는 곳 까지 올라가 보겠단다.

박경리 토지 문학관은 박경리씨가 살던 집터에 세운 청소년을 위한 문학학습관인데, 1988년, 원주 있는 친구를 찾아 갔을 때, 박경리씨가 마당에서 채소를 가꾸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 더욱 잊을 수 없는, 정이 가는 장소가 되었다. 제 작년에 대관령 삼양목장을 둘러 휴가를 즐길 때, 옛 기억이 있어 들렀었는데, 세월이 얼마던가! 그 시골지역이 이제는 도시가 되어 도저히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전 선생님이 없는 서운함을 묻어 두고, 34명이 입석대쪽으로 이동을 한다. 입석대까지는 가파르긴 해도 소형 승용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의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있다. 포장길이라 부담없이 하늘을 보고 주변을 살펴보는데, 곳곳의 단풍나무들이 노란색 주황색을 터치하여 푸른 소나무을 배경으로 제법, 동양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채화 같은 단아함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유화 같은 짙고 깊은 질감보다는 수채화 같은 가벼운 터치를 더 좋아한다. 내 생리에 맞는 색이다. 깊은 가을의 화려한 단풍도 멋은 있겠으나, 어린 아낙이 얼굴에 가볍게 홍조를 띈 듯, 연홍색 단풍을 살짝 드러내는 초가을의 정취야 말로 오히려 정감은 더 할 수 있다.

풍경 사진은 작가에게 맞겨 둘 요량으로 나는 풍경 사진을 잘 찍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오늘 입석사에서 입석대를 보면 사진을 하나 찍어본다. 경일고 강선생님이 입석사 처마의 풍경과 입석대, 왼쪽의 소나무를 엮어 작품을 만들어 보란다. 무슨 예술적 감각이 있어 작품을 만들겠는가? 항상, 눈에 담아두었던 기억보다, 내가 찍은 사진으로 보는 풍경이 더 못하던 것을!

구룡지구보다 덜하다 해도, 황골지구도 오르는 각도는 보통이 아니다. 2차함수 곡선이 x값이 증가할 때 y값이 급격이 상승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그런 자태다. 입석사 스님이 지나는 우리를 보고 800m가 아주 힘들거요 라는 말이 맞다. 800m쯤 오르니 능선을 만난다. 능선 저편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이는데, 이는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종주길인 모양이다. 여기서 조금 더 향로봉 쪽으로 가면 부곡지구에서 오르는 길이 있을 것이다.

부곡지구에서 오르는 길은 부곡입산통제소 - 태종대 - 신선새 - 비로봉에 이르는 8.9km인데, 고목이 울창한 숲과 맑고 깊은 계곡, 가재바위 등 수려한 자연경관과 원천석 은거지, 태종대, 노고소 등 역사를 간직한 풍부한 볼거리가 산재해 있고, 또한 이 코스는 아직 개발되지 않아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조용한 산행을 즐기는 산악인들이 자주 찾아오는 곳이다 한다. 부곡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되는 이 탐방 코스는 계곡을 따라서 산행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산행이라기보다는 가볍게 산책한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하니, 다음에 이곳을 들린다면 꼭 이 코스를 한 번 타보고 싶다.

일행은 생각보다는 빠른 속도로 등산을 하고 있다. 능선에서 울산시교육청 소속 산행팀을 만났는데, 그분들도 아침6시에 출발했단다. 우리는 창원에서 6시30분에 출발했는데, 같이 산행을 한다. 울산이 창원보다는 좀 더 가까운 곳은 아닌가?

정상이 빤히 보이는 지점에서 중앙고 정선생님과 김선생님이 식사를 하고 계신다. 김선생님은 나이가 젊어서 그런지, 정말 빨리 걷는다. 두 분이 우리 팀에서 선착한 모양이다.

치악산은 거리를 두고 보면 정상에 큰 바위가 눈에 뛰는 것이 아니고 돌을 겹겹이 쌓아올린 소망탑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언제부터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나, 주변의 잡석을 주어 모아 쌓고 쌓아, 이제는 영겁이 지나도 흐트러지지 않을 자태로 서 있다. 언제 부터인가 인간의 염원을 담아 쌓아졌을 저 탑, 그는 돌을 포개 얹은 사람 사람의 숱한 사연을 기억하고 있을지...

나도 탑을 보며 조그만 소망을 마음속에 되 내어 본다. 사람이 별거던가. 그저, 소망하는 바를 기원하는 것으로 족한 것이 사람 아니던가? 저 탑을 이렇게 생각하면 잡석무더기가 될 것이고, 또 저렇게 생각하면 소망탑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것이 마음속에 있는 것이거늘... 잡석이 모여 어엿한 탑이 되었듯, 나의 잡석들도 모여 희망의 빛이 될런지...

비로봉 도착 오후1시, 비로봉에서 사진도 찍고 식사도 한다. 산행대장에게 주려고 남겨두었던 막걸리를 먹고 싶어 하는 다른 선생님이 차지한다. 산행대장은 오늘 막걸리를 먹을 운이 없는 모양이다. 그래 그것도 운수다. 하늘은 청명하다. 구름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만 밝으면 서울도 내려 볼 것 같은 느낌이다. 바람도 그리 불지 않고, 한 낮의 따사로운 햇살에 포근한 햇빛을 얼굴에 받으며 잠시나마 하늘의 따사로운 기운을 온 몸으로 느낀다.

산행대장이 마지막으로 올라오고 먼저 하산하는 분은 하산하시고 아직 사진을 찍는 분은 기표석 앞에 모여 있다. 우리는 그 유명하다는 사다리 병창으로 하산을 한다. 하산 길은 여유가 없다. 하기야 치악산 등반은 등산길이나, 하산 길 모두 가다가 길을 멈추지 않고서는 경치를 구경하기 힘들다. 산이 비탈지고, 조그맣게 튀어나온 암석이 많아서, 길에서 눈을 때지를 못한다. 사다리 병창을 지나, 세렴폭포 지나, 구룡사 들러, 주차장에 내려온 시각 4시 30분.

중앙고 정선생님이 아침에 늦었다고 막걸리를 낸단다. 더덕 막걸리에 그것도 얻어먹는 막걸리이다 보니 맛이 한결 더하다. 이러다 자꾸 이마 넓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원주 쌈밥집에서 저녁식사하고 출발7시, 창원도착 10시30분.

오늘 산행에서 강선생님이 넘어져서 다치셨다. 눈 위가 찢어졌는데, 성형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원주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토요일 오후에 문을 연 성형외과를 찾으라 하니, 오후3시가 되면 모두 문을 닫는단다. 연세대 부속병원인 원주기독병원을 찾아 갔는데, 병원 응급담당의사가 위급한 환자가 대기하고 있다고, 우리 사정을 봐줄 수가 없단다. 성형은 찢어지고 나서 24시간 이내에 기우면 결과는 동일하니, 창원 가서 치료를 받으란다. 내일이 일요일이라 성형외과가 문을 열 것 같지 않아, 창원과 마산에 있는 병원을 미리 수소문 해봤는데, 성형의가 휴일 진료를 하는 병원이 없다. 강선생님은 하는 수 없이 부산에 가서 성형치료를 받았다. 부산의 성형외과는 밤에 다친 사람들로 해서 제법 북적였다. 창원이나 마산에도 저런 성형외과가 있다면 병원으로서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강선생님 빨리 쾌차하셔요!

2008년 10월 12일

산악회 회장 안병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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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악산의 상원사는 오대산 상원사와는 다른 사찰이다. 치악산 상원사는 남대봉(1182m) 바로 아래 1,100m고지에 자리한 사찰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이라 주장하나, 지리산 천왕봉(1915m) 아래의 법계사는 해발 1400m에 위치해있다.

2) LA와 Miami의 주택 가격의 경우 2000년을 100으로 할 때 2006년 말 각각 280, 275까지 상승하였다가 2008년 6월경에는 동일하게 200까지 떨어진 상태다. 2005년 이후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은 주택가격의 하락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

3) 한국의 경우 2007년 임금근로자의 46%가 비정규직인 것으로 나타남.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미국의 경우 해고를 제한하는 법령이 없으며, 안정성의 측면에서 대부분의 직장이 비정규직(contingent workforce)으로 규정할 수 있고, 이런 연유로 2000년 초부터는 비정규직에 대한 통계도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