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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가른 내유외강(內柔外剛)의 산, 내연산을 종주하다.
1. 일자 : 2011. 6. 5 (일)
2. 장소 : 내연산(930m)
3. 행로 및 시간
[주차장(04:05) -> 보경사(04:15, 문수봉 2km) -> 문수암(04:58) -> (된비알) -> 공터(05:13) -> 이정표(05:26, 문수봉 0.17km?) -> 문수봉(05:35, 622m, 삼지봉 2.6km) -> 수리더미 갈림(05:54) -> 은폭포 갈림(06:11, 삼지봉 0.6km) -> 삼지봉(06:27, 710m, 향로봉 2.6km) -> (잔디 밭) -> 시명리 갈림(07:26) -> 향로봉(07:56) -> (고메이등) -> ㄴ자 나무(08:28) -> 시명리(08:44, 400m, 보경사 6.2km) -> 시명폭포(08:54) -> (실폭, 북호 1,2폭포) -> 너덜겅(09:38) -> 출렁다리(09:51) -> 은폭(10:03) -> 관음폭포/연산폭포(10:25) -> (무풍폭포, 잠룡폭포) -> (학소대) -> 상생폭포(10:50) -> 보경사(11:17) -> 주차장(11:35)]
4. 동행 : 홀로, 동강산악회
< 내연산 산행을 준비하여 >
“빵처럼 부드럽고 순한 외양과 달리 그 속이 꽉 차고 단단한 산이 내연산이다. 이 산의 물줄기는 바위 고개를 넘어 때마다 절벽 아래 몸을 던져 ‘시명폭, 실폭, 복호 1,2폭, 은폭, 연산폭, 관음폭, 무풍폭, 잠룡폭, 삼보폭, 보현폭, 상생폭 같은 12개의 이름난 폭포로 산산이 부서진다. 흔히들 삼지봉을 내연산이라 표기하고 있지만 이 산의 주봉은 길고 긴 청하골 끝자락에 숨은 향로봉이다. 930미터라는 만만치 않은 높이의 향로봉은 명색이 내연산의 최고봉이면서도 길손에게 쉽게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 “바위와 폭포의 경승이 기묘하고 그윽하다. 내연산 골짜기의 압권은 단연 연산폭포 아래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벼랑과 관음굴 주변이다.” 산행 준비를 하며 이곳 저곳에서 뽑은 인상 깊은 글귀들이다.
내연산은 겉 보기에는 평범한 육산 이지만 단단한 뼈 속을 가른 12폭포를 품은 외유내강의 산이라 한다. ‘외유내강의 산이라’, 직접 접해보지 않고 상상만으로는 머리 속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가야 할 길의 대강을 그려 본다. 나름 본격 등산을 위한 워밍업이자 나만의 중요한 의식이다. 일요일 새벽 3시 30분 즈음 아직 어둠이 짙은 포항과 영덕 어름, 이름 모를 주차장에 도착할 것이고, 깔깔한 속을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미역국/된장국으로 달랠 것이다. 4시 30분경 새벽 안개가 살포시 내려앉은 보경사 길을 걷는 것으로 입산이 시작된다. 문수봉(622m)까지 1시간 30분, 삼지봉까지 2시간 50분, 정상 향로봉까지는 4시간 30분을 예상한다. 가파른 고빗사위는 없어도 대세 오름일 것이다. 문수봉으로 오르는 길에 어둠은 걷힐 것이고 향로봉 능선 길에서 일출을 맞을 것이다. 동해가 가까운 곳이라 혹, ‘큰 행운’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향로봉에서 고메이등(사전에서도 그 뜻을 찾지 못했다.) 가파른 내리막을 따라 1시간 만에 사명리에 도착할 것이고, 이후로는 내연산 최고의 경관 12폭포를 감상하며 다시 보경사로 하산할 것이다. 대략 20km, 휴식 포함 대략 8시간 30분의 산행을 예상해 본다.
모처럼의 3일 연휴에 가족을 두고 홀로 먼 길을 떠나려 하니 애들이 마음에 걸린다. 맛난 음식으로 저녁을 같이 먹고 길을 나서야겠다.
< 희망사항 >
법정 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 등산의 기쁨은 내 발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 가면서, 차분히 산봉우리들을 바라보고, 산의 향기를 맡고, 산의 맥박에 귀를 기울이는 일에 있다”. 무소유의 삶을 사시고 홀연히 떠난 스님께서는 등산을 즐기셨고, 나 같이 산을 오르는 행위에만 집착하는 이들을 위해 좋은 말씀도 남겨 주셨다. 그 뜻은 산과 호흡하며 여유와 관조의 삶을 살라는 것이리라.
현충일이 포함된 3일 연휴다. 내연산은 산림청 100대 명산 산행 중 좀처럼 계획 잡기가 힘든 산이었다. 이동거리가 멀고 산행시간도 6-9시간은 잡아야 제대로 둘러 볼 수 있으니 당일 코스로는 무리가 따른다. 동강산악회에서 토요 무박 산행을 게시하였다. ‘금요 무박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이라고 생각하다가, ‘모처럼 토요일 회사에 들려 잔업을 정리할 기회라는’판단이 들자 일정이 매력적으로 다가 온다. 만사가 마음 먹기에 달려 있고, 유연한 사고는 실익을 가져다 줌을 확인한다.
지난 가을 이후 오랜만에 시도하는 무박산행이다. 잠과의 사투가 힘겨움으로 다가 온다. 많은 날들을 장거리 산악회 버스에서 보냈건만 늘 이런저런 생각에 숙면을 취해 본 기억은 없다. 어쩌면 평생을 해야 할 일이기에 어서 빨리 버스에서 잠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해야 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할지 모르겠다.
아! 법정 스님의 여유의 삶을 말 한지 몇 분만에 다시 근심이 쌓이니 정말 병이다.
분위기를 전환한다. 삼지봉에서 향로봉으로 향하는 길의 잔디구장 같은 초록빛 초원의 싱싱함과 은폭포, 연산폭포, 관음폭포, 쌍생폭포의 시원한 장관을 상상한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맑아진다.
하산 후 귀경시간이 궁금해진다. OK마운틴에서 본 사진에는 보경사 입구는 상가 지역이다. 예정보다 일찍 하산이 완료되면 피곤한 몸을 목욕으로 달랠 기회가 있었으면 바래본다.
(이상은 산행 전 준비 과정의 생각과 추측들이고 실제 산행에서 벌어진 일과 거리와 소요시간은 차이가 있었다.)
< 포항 가는 길에 >
밤 11시 복정은 평소보다 한산한 듯 보이나 내 마음에는 긴장감이 돈다. 버스는
제 때 오는 것인가? 산악회에 문자를 보내 놓았는데 연락이 없다. 지난
모악산 산행 시 신청자 명단에 이름이 누락되어 버스를 놓친 이후로는 평소보다 일찍 약속 장소에 나오고도 조바심이 든다. 나쁜 경험은 오래 남아 날 괴롭힌다.
차창 밖의 어둠과 안의 어둠이 뒤섞인다. 버스는 깊고 어두운
침묵 속에서 심야의 도로를 질주한다. 자정이 지나도 여전히 잠들기엔 낯선 시간이다. 평소에도 잠 드는 시간을 놓치면 도리어 정신이 맑아지곤 하는데 낯선 시간과 공간에서는 오죽하랴. 낮에 잠시 눈을 붙이지 않았더라면 낭패를 볼 뻔 했다.
심야, 버스는 3시간여를 쉬지 않고 달려 대구를 지나 ‘위촌’이라는 곳에 잠시 멈춘다. 난생 처음 와 보는 곳이다. 영천 어름인가 보다. 밤안개가 옅게 낀 하늘에는 별 마저 잠들어 있다. 한기를 느끼며 서둘러 버스 안으로 들어온다. 산악회에서 준 주먹 밥을 먹는다. 먹는다는 것 보다는 쑤셔 넣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휴게소를 다녀온 잠시의 변화와 음식으로 인한 포만감이 분위기를 바뀌어 준 덕분에 조각 잠을 1시간여 잤다. 정신을 차리기엔 너무 이른, 깊이 잠들기엔 너무 늦은 시간에 잠이 들어 버렸다. ‘낯 섬’을 상대로 버티던 몸이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다. 잠시의 휴식이 몸과 마음을 조금 맑게 해 준다.
버스가
멈춘다. 새벽 4시다. 주변에
상가 건물들이 여러 체 보이는 커다란 보경사 주차장에 산악회 버스만이 덩그러니 서 있다. 황량한 새벽이다.
< 보경사에서 향로봉 >
대장은 오후 2시 하산 완료, 식사 후 3시 귀경이란다. 8시간이면 충분한 산행시간을 10시간으로 늘려 잡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가 대장이고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니 따를 수 밖에. 묵묵히 첫 발을 내 딛는다.
보경사로 향해 난 도로 길을 따라 입산을 한다. ‘미명(未明)이 점차 미명(微明)으로 바뀌어 간다.’ 동쪽 하늘이 엷게 열리고 있다. 반대편 계곡은 아직 감감(減感) 이다. 새벽을 연다는 것에는 늘 힘겨움과 선구자의 비장 감이 교차된다. 낯 섬은 계속 이어진다.
헤드랜턴은 또 고장이다. 지난 가을 오색에서 대청봉 가는 길에 애를 먹이더니 먹통이다. 믿어서는 아니 될 존재다. 손 전등에 의존해 어둠을 떨친다. 어둠 속에서도 큰 덩치가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절 집, 보경사를 지나 삼거리에서 우측 지능선을 탄다.
대장은 길 찾으러 가 나타나지 않고 객들이 길을 만들어간다. 출발 시 장황하게 길에 대해 떠들었지만 대장은 오늘 코스를 와 보지 않았다. 계단을 지나자 경사가 길게 이어진다. 된비알은 없을 줄 알았는데 낭패다. 가파른 고빗사위를 올라 능선으로 붙는다. 문수암의 작은 일주문이 어둠 속에서도 늠름히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문수암을 지나자 긴 된비알이 또 이어진다. 강도가 심하다. 가뜩이나 고갈된 에너지를 한꺼번에 요구한다. 무차별적이다.
15분여 간의 사투의 결과로 비탈을 밑으로 밀어내었다. 평지 능선 길이 이어진다. 한 시름 놓았다. 출발 1시간 20분 만에 도착한 이정표는 문수봉 0.17km를 가리킨다. 이제 다 왔구나 하고 마지막 오름을 치고 오르는데, 그 놈의 0.17km는 거의 1.17km 수준으로 느껴졌다. 언 놈이 만든 이정표인지 다음에 보면 요절을 내 버려야겠다. 문수봉의
고도를 100미터 낮게 생각하였고(추측 522m, 실제 622m) 추측과 현실의 갭으로 힘겨움은 배가되었다.
문수봉. 작은 표지석이
없었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작은 공터다. 자세히 보니 표지석 뒤편 나무에 리본들이 여러 개 매어져 있다. 누구나 본인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나 보다. 어둠은 거치고 있으나
카메라의 손 떨림을 막기에는 아직 빛이 부족하다.
< 문수봉 입구 >
초반 문수봉에서 고도를 끌어 올린 덕에 삼지봉 가는 길은 평지 수준의 ‘꽃 길’(쉬운 길을 난 이렇게 부른다.) 이었다. 낙엽이 수북이 싸인 길은 카펫 위를 걷는 기분이었고 공지선 위로 선 나무들은 푸르름을 뽐내고 있다. 갈색과 초록의 조화가 멋지다.
6시 20분 소나무 군락을 지난다. 카메라의 모드를 풍경에서 자동으로 변화시켰더니 손 떨림 표식이 없어진다. 작은 빛이 인위적으로 보태어진 결과다. 내연산의 나무들 식생은 참나무가 주류이고 간간이 소나무와 서어나무 등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침에 보는 솔의 푸르름과 기둥의 붉은 기운이 기분을 싱그럽게 해 준다. 정상 밑에 작은 공터가 있고, 삼지봉에 대한 설명 문구들이 새겨진 입간판이 여기 저기에서 보인다. 예고편이 요란하니 삼지봉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마침내 도착한 삼지봉은 널찍한 헬기장이다. 넓이 말고는 그리 인상적인 곳은 분명 아니다. 무엇보다 주변 경관이 너무도 평범하다. 내연산의 정상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하기까지 하다. 밑에서 본 예고편은 본 영화의 초라함을 막기 위한 물타기였음이 틀림없다.
보경사 주차장 출발 2시간 20분이 소요되었다. 내 걸음이 빠른 것이 아니라 지도상의 거리 추정이 잘못된 것이다. 산 길에 다리와 안전시설이 하루가 다르게 설치되다 보니 산행소요시간이 예전보다 빨라졌는데도 지도는 이를 반영하지 못한 결과다. 대장의 ‘10시간’도 동일한 시각에서 보아야겠다.
< 가을과 봄의 공존 >
< 삼지봉에서 >
삼지봉에서 향로봉 길은 녹색의 ‘잔디’ (실제로는 가늘고 긴 진녹색의 풀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임)가 깔린 편안한 길이다. 능선 길도 위로 보이는데 대부분의 등산로는 산허리 길로 이어진다. 다리는 편했지만 1시간이 넘게 이어지는 긴 단조로움에 지겨움 마저 들었다.
< 열린 하늘과 동해 >
산 허리 길을 돌아 움푹 꺼진 곳으로 돌아 드는 곳, 나무들이 잠시 한적해 진 틈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그 뒤편으로 붉은 기운이 느껴진다. 멀리 지평선인지 수평선이지가 보인다. 앗! 바다다. 산이 낮아지고 마을이 흔적이 없어지는 곳에 희뿌옇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분명 바다의 흔적이다. 잠시 맛 본 변화에 이 새벽 길을 오른 보상을 받은 듯 기분이 좋아진다.
첫 하늘의 예고편을 본지 1시간여를 묵묵히 걷기만 했다. 향로봉에서 비로소 제대로 된 하늘이 열렸다. 동쪽 저 멀리 모내기를 위해 논물이진 저수지인지가 보이고 그 뒤편으로 바다의 흔적이 다시 목격한다. 남쪽과 북쪽으로 산들의 파노라마가 물결친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곁들여 눈이 산을 따라 간다.
< 내연산 정상에서 >
< 내연산 12폭포 길 >
시명리 화전민 마을로 내려 가는 길 고메이등은 몹시 가팔랐다. 고도 530미터 차를 45분 만에 주파했다. 내려 가며 보니 앞 산이 몹시 가파르다. 반대편에서 보면 이 쪽도 그러할 것이다. 두 가파른 산 사이 협곡이 형성되고 곳곳에 폭포가 만들어졌다. 시명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물소리가 거세다. 내연산의 바깥 구경이 끝나고 고샅 길이 시작된다.
시명리를 알리는 해발 400미터 이정을 지나자 계류가 나타난다. 돌 많은 산 허리 길이 길게 이어진다. 향로봉 하산 길에 10분에 100m 이상씩 변화하던 고도가 더 이상 낮아지지 않는다.
내연산 12폭의 마지막(하산 길에서는
처음) 시명폭포 이정표 앞에 선다. 폭포는 가파른 돌 길을
따라 150미터를 내려 가야 한다. 시간도 많은데 하고 내려
선다. 급한 마음에 돌 길에 자빠진다. 몸을 추스려 물 가로
내려가니 길은 끊기고 폭포는 분간이 어렵다. 아차 하고는 바로 왔던 길로 올라선다. 일행 중 내려 가는 분들에게 “길도 폭포도 없습니다” 라고 말해도 그들도 좀 전에 나처럼 자기 눈으로 상황을 직접 확인하려 든다.
산꾼의 새 길에 대한 욕심을 누가 막으랴?
배가 고파온다. 새벽에
먹은 주먹밥 하나와 비스킷 만으로 이 험한 길을 가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막상 식당 바위를 찾으려
하니 쉽지 않다. ‘아까 자빠진 김에 시명폭포에서 해결했어야 했는데’후회가
든다.
< 엉덩이 모양의 나무 >
< 실폭포 부근의 소 모습 >
실폭포 부근에 작은 소가 형성되어 있다. 도시락을 들고 개울을 건넌다. 허겁지겁 먹다 보니 물 속에 고기들이 꽤 많다. 장난 삼아 밥풀 몇 개를 던지자 고기들이 몰려든다. 내 행위에 따라 모였다 흩어지는 빠른 생명체의 행보에 재미를 붙인다. 해코지 하는 것은 아니니 죄 될 것은 없다. 다만 인공의 음식 맛을 들여 하염없이 먹이를 기다릴 그들에게 쓸데없는 희망을 준 것 같아 후회가 든다. 에너지 보충이 끝나자 이런 생각이 든다. ‘뭣 하러 새벽부터 이 고생을 하고 있단 말인가?’ 답이 있을 리 없는 혼자만의 넋두리다. 이래서 배 부르면 딴 생각이 난다 했나 보다.
< 은 폭포와 그 주변 >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바위에 엎드려 쉬곤 했다는 전설이 깃든 보호 1, 2폭포는
멀리서 소리로만 들었다. 가파른 길을 오르내릴 여력이 없어서다. 길
사정이 말이 아니다. 너덜은 점점 더 해 간다. 외유를 경험할
때는 내강이 이리 험할 줄은 몰랐다.
흔들 다리를 지난다. 길은
여전히 위험한 돌 길이지만 경치는 점점 더 화려해진다. 여성의 생식기를 닮았다는 은 폭을 지나면서부터
길의 변화가 감지된다. 계류를 건너는 길을 상세히 설명해 주던 흰 옷을 입은 육감적인 여인의 잔상과
특이한 모양의 나무의 형상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음(陰) 폭포’가 상스럽다 하여 변한 ‘은
폭포’가 나를 시험에 들려 한다.
< 관음폭포 >
< 내 연산의 푸르름 >
긴 계단을 내려서자 관음폭포가 나타난다. 지금까지 본 폭포와는 차원이 다르다. 기묘하게 풍화된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깊은 음영의 굴도 만들고 날카로운 엣지로도 드러난다. 바위 틈으로 커다란 물기둥이 아래로 떨어진다. 바닥에는 깊은 소(沼)가 만들어져 있다. 감탄하며 돌다리를 건너는데 사람들의 눈이 한 곳에 머문다. 암벽 등반을 하는 이의 위태로운 곡예에 모두들 넋을 잃는다. 빙과류 장사 총각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고정된 거대한 자연보다는 작지만 움직이는 생명체에 더 관심을 갖는다. 난, 이 순간 사람보다는 숨막힐 듯 아름다운 자연에 더 끌린다.
관음폭포 위로는 현수교가 놓여 있다. 쏟아지는 햇살이 부담되어 그냥 지나치려다 이 많은 시간 어찌 다 주체할까 하는 생각에 위로 오른다. 다리 앞에 서서는 또 망설이다 건너편으로 건너 간다. 깜짝 놀란다. 다리 뒤에서 내연산 최고의 경관 연산폭포가 바위를 뚫을 기세로 하얀 포말을 내리꽂고 있다. 장엄하다는 말 밖에는 더 할 말이 없다. 단순한 물살 이외에 주위 기암의 경관도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지다. 가까이서 이리 큰 폭포를 본 것은 처음이다. 못 보고 갔으면 얼마나 후회를 했을까? (만약 못 보고 갔다면 그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니 아쉬워하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연산폭포를 지나자 무풍폭포, 잠룡폭포, 삼보폭포, 보현폭포 등이 연이어 나타난다. 연산폭포를 감동이 남아서인지 나머지 폭포들은 시시해 보인다. 사람이란 참 간사하다. 어찌 보면 최고만이 대접 받는 것이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 연산폭포에서 >
너덜은 덜 해 졌고 길은 정비되었지만 여전히 험로가 이어진다. 상생폭포를 마지막으로 12폭포 관람이 끝났다. 상생폭포는 쌍을 이룬 폭포였다. 보경사 쪽에서 올라오다 보면 첫 폭포인 샘으로 나들이 객들이 주변에 많다. 모두들
사진 찍는데 여념이 없다. 그들이 잠시 후 연산폭포와 관음폭포를 보고 보일 반응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나도 오늘의 12폭포를 본 소감이 벅차다. 내 평생 어디서 이렇게 많은 폭포를 한 곳에서 경험해 볼 수 있겠단 말인가?
새삼 오늘의 경험이 소중해 진다.
< 상생폭포 전경 >
< 내연산 12폭포 이름 >
11시가 조금 지날 무렵, 새벽에 곁눈질을 해 둔 보경사에 들린다. 새벽 어둠 속에서 훔쳐 보았던 절 집은 한 낮의 햇살을 받아 살아 움직이고 있다. 절 옆구리로 들어가 대웅전과 석탑을 보다가 ‘그리 볼 것이 아니다’ 라는 생각에 사천왕문으로 나온다. 사천왕문 사이로 본 석탑과 대웅전은 멋진 구도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사진에서도 제대로 된 구도가 중요한가 보다.
< 보경사 전경 >
< 에필로그 >
산행을 모두 마쳤는데도 11시 30분이 체 되지 않았다. 주체하지 못할 시간을 보내려 목욕탕엘 들려
심신의 피로를 잠시 씻어낸다. 오늘도 내 눈가 머리가 감동할 때 묵묵히 내 발은 자기 역할을 다 해
주었다. 늘 고맙고 미더운 존재다.
대부분의 일행들이 내려 왔지만 대장은 없다. 애초 자신의 시간에 맞추어 시간 안내를 했나 보다. 아니면 부인과
오랜만에 산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나 보다. 문뜩 흰 수염을 날리며 언제나 최선의 안내를 해 주시던 미투리의
최대장님 생각이 난다. 고수는 달래 고수가 아니다. 번지르르한
말보다 진실한 마음 씀씀이와 실천력이 고수를 만든다는 것을 다시금 느껴본다.
무려 2시간 30분을 기다려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덕분에 산행일기의 상당부분을 스마트폰으로 내연산 버스 정거장 평상에서 써 버렸다.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기다림에 지쳐 내 성질은 더 더러워졌을 곳이다.
산행을 마치고 나니 뜻하지 않게 좋은 경험을 하게 된 것 같아
기뻤다. 오랜 시간 준비하고도 기회가 닿지 않는 가리왕산, 바래봉
등과는 다르게 내연산은 큰 준비 없이 왔으나 많은 감동을 준다. 나와 궁합이 잘 맞는 산인가 보다.
오늘 입산하여 산을 오르내리며, ‘등산은 생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생각을 지우는 행위이다.’ 라는 말을 실감했다. 심신의 지친 상태에서도 하산하고 나니 몸과 마음이 개운하다. 머리가 맑아졌음을 확인한다. “산을 탈 때 발생하는 뇌파는 운동을 할 때의 베타 파가 아니라 명상을 할 때의 알파 파, 즉 근육이 이완되고 마음이 편안하면서도 의식이 집중되고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등산은 운동이 아니라 명상이다.” 라고 하더니 그 참이 참임을 확인한다.
서울행 버스는 떠난다. 눈을 감는다. 꿈 결에 ‘내연산이라는 대표어에 묻혀 뭉뚱그려졌지만, 오늘 내가 경험한 개개의 봉우리들과 계곡과 폭포들은 어느 하나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빼어난 경치를 자랑했다.’ 먼 산에서 보낸 1박2일의 힘겨움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그리고 긴 잠의 나락으로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