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김장을 하고 난 후에 남은 것을 말리게 되는데, 요즘은 늦은 김장으로 갑자기 수은주가 떨어지면 얼었다 녹았다 하기 십상이다. 건조하고 습도가 일정한 이맘때가 적기다. 단단하고 맛있는 무를 넉넉히 사서 말리는 게 좋다. 한꺼번에 많이 처리하느라 애쓰지 말고 적당한 양을 서너차례 나누어 말리는 게 요령이다. 무는 너무 크지 않고 푸른 부분이 많은 단단한 동치미무를 고른다. 무청은 달린 대로 가져와 손질한다.
무말랭이 무는 껍질을 벗기지 않아야 쫄깃하고 단맛이 난다. 너무 두껍게 썰지 말고 얄팍하게 썰어야 잘 마른다. 보통은 3~5㎝ 길이에 5㎜ 정도의 두께로 써는 게 적당하다. 대나무나 싸리채반에 골고루 펴 널어서 말리면 된다. 굵은 실에 바늘로 꿰 빨랫줄에 널면 손쉽게 잘 마른다. 너무 촘촘히 꿰지 말고 느슨하게 꿰는 게 요령. 공기가 잘 통하고 서로 몸이 닿지 않아야 검게 변색되지 않고 뽀얗게 말릴 수 있다. 채로 썰은 무말랭이는 살짝 불려 양념한 뒤 만두 속에 넣어도 별미다.
무청은 무 끝부분이 달려있는 상태로 잘라 지저분한 겉잎은 떼어내고 말린다. 초보 주부들은 좋은 무청만 골라내 잘게 썰어서 말리는 게 낫다. 떼어낸 겉잎은 약한 소금물에 데쳐내 끈으로 엮어 말리면 무청시래기가 된다. 무청시래기나 배추겉잎말림은 한겨울의 비타민 제공원이 된다. 굵은 멸치와 된장으로 맛을 낸 시래기 된장국과 배추우거지사골국은 특히 겨울철에 별미다.
가지와 애호박
물기가 많으므로 좋은 날을 별러서 말려야 한다. 욕심내지 말고 적당한 양을 서너차례 나누어 말려야 실패해도 부담이 덜하다. 가지는 보통 꼭지를 기준으로 길게 여덟 등분을 내서 철사나 실에 꿰어 말리지만 기름한 둥근 모양으로 썰어 채반에 널어 말리기도 한다. 가지 한 박스를 이웃과 나누어 말리면 정(情)과 실속을 함께 나눌 수 있다. 가지는 잘생긴 것보다는 채가 짧고 너무 통통하지 않은 것이 좋다. 호박은 둥근 조선애호박을 말리는 게 길쭉한 애호박보다 맛이 뛰어나다. 말린 애호박이나 가지는 한겨울에 물에 불려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춰 볶아 먹는다. 참기름보다 들기름으로 향을 내는 게 더 맛이 난다. 살짝 불려서 파스타를 만들 때 사용하면 동서양이 결합된 이색적인 맛을 즐길 수 있다.
늙은 호박고지
황금빛 늙은 호박은 산후 부황에 좋고 부인병·성인병에도 뛰어난 효험을 자랑한다. 어린시절 한 겨울에 먹던 호박죽이나 호박범벅의 추억 때문에 빠뜨리기 어려운 갈무리 품목이다. 호박 겉껍질을 벗겨내고 씨를 파낸 후 둥글게 썰어 긴 끈처럼 만들어 줄에 널어 말린다. 어느 정도 마르면 타래를 지어 보관했다가 쓴다. 잘 익은 호박은 껍질 벗기기가 만만치 않다. 세로로 팔등분한 후 껍질을 까고, 다시 세로로 도톰하게 썰어 말리면 손질하기도, 말리기도 간편하다.
토란대와 고구마줄기
토란대나 고구마 줄기는 우선 겉의 질긴 부분을 벗겨 낸다. 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넣고 데쳐낸 뒤 찬 물에 헹궈 겹치지 않게 채반에 널어 말린다. 길게 줄에 널어도 쉽게 마른다. 말린 토란대는 물에 불리면 육개장의 건지나 나물로 활용할 수 있다. 고구마 줄기는 다진 쇠고기와 함께 양념해 볶으면 훌륭한 나물반찬이 된다.
고구마말림
속이 노란 물고구마는 껍질째 깨끗이 씻어 동글동글하게 잘라 찐다. 채반에 펴 놓고 뒤집어가며 꾸덕꾸덕하게 말린 것은 그대로 들고 다니며 먹어도 맛난다. 쫄깃하게 씹히는 맛과 특유의 달콤한 맛을 기억하는 어른들도 많다. 간식거리로 삼으면 변비예방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도라지와 더덕말림
도라지는 약한 소금물에 헹군 후 서너 쪽으로 갈라서 말린다. 더덕도 소금물에 담가 방망이로 밀어 편편하게 편 후 말린다. 둘 다 좋은 볕에 얼른 말리지 않으면 누렇게 변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말린 도라지는 한겨울에 불려서 나물로 무쳐 먹는다. 더덕은 나물도 좋지만 고추장물을 만들어 박아 놓으면 훌륭한 장아찌가 된다.
말렸다가 튀겨 먹는 부각
감자·들깨송이·고추·김 등을 말렸다가 튀겨 먹는 부각은 식탁 위의 별미다.
감자 부각을 만들려면 껍질 벗긴 감자를 얇게 써는 게 중요한데, 요즘은 슬라이스 채칼이 많이 나와서 간편해졌다. 감자편은 약한 소금물에서 겉에 묻어 있는 감자 녹말을 잘 씻어내야 갈변(갈색으로 변하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 씻은 감자편을 다시 약한 소금물에 데쳐 내야 하는데, 이때 너무 일찍 꺼내면 말리는 사이 검게 변하기 쉽고, 오래 익히면 널 때 잘 부서진다.
들깨송이는 송글송글한 깨꽃이 오무라든 것을 살짝 데친 후 조선간장으로 간을 한 찹쌀풀에 담갔다가 말려 튀겨 먹는다. 두께가 도톰해서 볕이 정말 좋은 날을 골라 작업해야 한다. 양념한 찹쌀풀을 바르고 실깨를 뿌려 만들면 깨향이 아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