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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글: 김옥 , 그림: 김유대/ 창비사 )
달빛이 도서관 유리창으로 쏟아지던 밤이었어요. 그 날 밤, 국어사전 880쪽 '축복' 방에서 아기 책벌레가 태어났답니다. 아빠 책벌레가 엄마 책벌레에게 말했어요. "앞으로의 행복을 빌어주는 방에서 태어났으니, 우리아기는 정말 축복받은 벌레요." 엄마 책벌레는 아빠 책벌레를 보고 살짝 눈을 흘겼어요. 그러고는 온몸의 주름을 느리게 폈다 접으면서 한마디 덧붙였어요. "당신, 또 글자들을 읽었죠? 글자는 그냥 먹는 것이지, 읽을수록 우리 벌레들에게는 좋지 않다는 걸 잊었어요?" "허허, 우리 집안은 다른 책벌레 집안과 다르다는 걸 잊었소?" 아빠 책벌레가 엄마 책벌레를 달래듯이 말했어요. "우리 집안은 오래 전부터 책 속의 글씨를 읽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소? 이제 우리 아기가 그 꿈을 이뤄 줄…‥"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해요?" 엄마 책벌레가 아빠 책벌레의 말을 중간에서 뚝 끊었어요. "먹을 글자 많겠다, 온갖 책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편히 사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이 있나요?" 엄마 책벌레와 아빠 책벌레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어요. 이런 싸움은 책벌레 마을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해오던 싸움이기도 하답니다. 책벌레들은 늘 두 편으로 갈라져 있었어요. 이 책 저 책 돌아다니며 글자들을 배불리 파먹고 즐기자는 '먹자파'벌레들이 있구요. 글자들을 먹지만 말고, 열심히 읽어서 지혜로운 벌레가 되자는 '연구파'벌레들로요. 그 때, 아기 책벌레가 잠에서 막 깨어났어요. 아기 책벌레는 움직일 때마다 '꼬무르 꼬무르르'하는 귀여운 소리를 냈어요. 그러자 엄마 책벌레가 기뻐서 소리를 질렀어요. "우리 아기가 벌써 조금 자랐나 봐요. 어서 이름을 지어야겠어요." '축복'방위의 '축배'방으로 꼬물락 꼬물락 기어가는 아기 책벌레를 보며 아빠 책벌레가 중얼거렸어요. "아가야, 너는 훌륭한 책벌레가 될 거야. 네 맑은 눈을 보면 알 수 있단다." 아빠 책벌레는 소중한 아기 책벌레에게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어요. 이웃 동네 "꽃꽂이 안내"네 '꺽꽂이'나 "바둑 해설"네 둘째 '검은돌', 아니면 흔하디 흔한 '엉금이' '꿈틀이' '밍기적' 같은 이름말고요. 아빠 책벌레는 그런 이름은 정말 싫었어요. 온몸에 주름을 잡으며 고민고민하다가, 아! 마침내 생각해 냈답니다. '행진'아빠 책벌레가 지은 이름이에요. "행진? 행진이라니, 좀 이상하지 않아요?" 엄마 책벌레가 고개를 가우뚱거렸어요. "보름 전에 982쪽에 들렀다가 '앞으로 걸어 나아감'이라는 뜻이 좋아서 기억해 둔 거라우.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새로운 배움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이지." 아빠 책벌레가 말했어요. "자, 이제 이름도 지었으니 잔치 준비를 서둘어야지." 엄마와 아빠 책벌레는 어서 빨리 다른 책벌레들에게 이 사랑스런 아기를 자랑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도서관 나라의 모든 책벌레들에게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초대합니다. 국어사전 집에 첫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축하 잔치가 국어사전 880 쪽 '축복' 방에서 열리오니 많이 와주세요.
모이는 시간: 도서관 나라에 어둠이 찾아오고 노란 철문이 닫히는 시간 준비한 음식: 맛있는 글자와 같이 버무린 색색깔의 그림, 파란색 띠를 두른 '창고'와 '주의'. 교양 있는 벌레들이 두루 먹는 표준어 부록. 달짝지근한 불량 글자 부록. 아기 책벌레 손님들을 위해서는 특별히 옛적부터 내려오는 '줄줄이 글사탕을 마련했습니다.
초대장이 나가자마자 책벌레들이 모여들었어요. 국어사전 880쪽 방뿐만 아니라 앞뒤 방인 '추임새'나 '축제'방까지도 손님으로 가득가득했어요. "축하해요. 드디어 아기를 봤군요." 책벌레 손님들이 꾸물꾸물 들어왔어요. 아빠와 엄마 책벌레는 즐겁게 맞이합니다. "와 주셔서 고마워요. 많이들 드세요."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책벌레 손님들은 국어사전 집을 정신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맛있게 생긴 글자들을 찾아 먹어치우느라고 난장판이 벌어진 거죠. 책벌레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곳은 472쪽의 '산해진미'나 835쪽의 '진수성찬'방이었어요. '과자'와 '사탕'방은 아기 책벌레들이 들랑거리며 어찌나 갉아댔던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980쪽의 '햄버거'나 '햄버그 스테이크', 심지어는 그 아래아랫방인 '햅쌀''햇곡식''햇과일'도 인기가 좋았답니다. 아빠 책벌레는 눈살을 찌푸렸어요. "글자란 먹어치우는 게아니라 머릿속에 쌓아 가는 것이라는 것도 모르고. 한심하군." 그러자 엄마 책벌레가 아빠 책벌레 배에대고 소곤거렸어요. "쉿! 여보, 손님들이 듣겠어요." "알아, 오늘은 내가 참겠소. 내 집에 온 손님들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저길 좀 봐." 아빠 책벌레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온몸에 있는 대로 주름을 잡으며 눈짓을 했어요. "저기, "쉽게 벼락부자가 되는 법"에서 온 저 양반 말이야. 허리 한번 펼 새 없이 먹어대고 있잖소." 아빠 책벌레는 잔치 내내 520쪽의 '속상하다'방에 처박혀 있었어요. 새로 태어난 아기보다 먹는 데 더 관심을 보이는 손님들이 원망스러울 뿐이었어요. 참다 못한 아빠 책벌레는 166쪽으로 기어가 빨간색 포장에 싸인 ‘꾹’을 꿀꺽꿀꺽 삼켰어요. ‘꾹’은 괴로움을 끌고 견디는 모양이라는 뜻의 글자였어요. 새벽이 가까워 오자 엄마 책벌레는 앞뜰에다 후식을 차렸어요. 두꺼운 종이로 된 앞뜰에는 여러 가지 음식이 놓였어요. 야들야들한 종이 위에 조그맣게 새겨진 꼬불꼬불한 글자들이 있었구요. 너덜너덜한 한지위에 시꺼멓게 그려진, 독특한 향내가 나는 그림 같은 글자들도 있었어요. 책벌레 손님들은 새로운 음식 주위로 몰려들었어요. “우리 ‘사전’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집들에서 가져온 전통음식이에요. 5백년도 더 된 글자도 있답니다.” 엄마 책벌레가 자랑스레 말했어요. 모여든 책벌레 가운데 하나가 맛을 보더니 탄성을 질렀어요. “음, 정말 신비롭고 색다른 맛이오.” 그라자 ‘지혜로운 주름’이라는 이름의 책벌레가 말했어요. “잠깐만요. 이 글자들은 그냥 먹어서는 안 될 것 같군요.” 그러자 모두가 그 책벌레를 바라보았어요. “이것들을 먹기 전에 그 뜻을 알아보고 머릿속에 담는 것이 책 속에 사는 벌레로서의 예의일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아빠 책벌레를 비롯한 몇몇 ‘연구파’ 책벌레들이 배를 마구 흔들어 댔어요. 찬성한다는 표시였어요. “맞아요. 그냥 먹어 없애기에는 아까운 글자들이군요. 주의 깊게 살펴본 다음 먹읍시다.” 아빠 책벌레도 신이 나서 한마디 거들었어요. “그래요. 그것이 가장 보람 있고 즐거운 일이지요.” 그러자 그 음식을 얼른 갉아먹고 싶었던 다른 책벌레들이 벌컥 화를 냈어요. “골치 아픈 연구파 녀석들, 또 잘난 체하고 있네.” ‘게걸스럽다’ 방에서 ‘게걸’까지만 먹다 나온 성미 급한 책벌레가 소리쳤어요. “머릿속에 담는 거나 뱃속에 담는 거나 다를 게 뭐 있어. 먼저 배가 불러야 글자들도 눈에 들어오지.” 그러자 ‘아구 아구’라는 이름의 책벌레가 말했어요. “맞아. 머리로 느끼는 것보다 입으로 맛보는 것이 더 빠르지.” 그리고는 쟁반의 글자들을 움켜쥐더니 잽싸게 삼켜 버렸어요. 다른 ‘먹자파’ 책벌레들도 우르르 몰려들었어요. 깜짝 놀란 ‘연구파’책벌레들이 그 글자들을 먹지 못하게 말렸어요. 그러자 먹자파와 연구파사이에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어요. 책벌레들은 힘껏 배를 내밀어 상대방을 저쪽으로 밀어냈어요. 꼬리를 물어뜯는 책벌레들도 있었어요. 양쪽 다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어요. ‘난리’방과 ‘법석’방이 국어사전에서 찢겨져 나왔어요. 잔치가 난리법석으로 엉망이 된 거예요. 그때였어요. 갑자기 주위가 정신없이 흔들리는 것이었어요. “큰일 났다. 지진이다. 지진!”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국어사전이 쭈욱- 뽑히더니 공중으로 들려 올라갔어요. 순식간의 일이었어요. 앞뜰에 모여 있던 책벌레들은 모두 쭈르륵 차가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어요. 아침 일찍 도서관에 온 여자아이가 오랫동안 먼지를 뒤집어쓴 채 꽂혀있던 바로 그 국어 사전을 뽑아든 거예요. 그 여자아이는 사전을 이리저리 뒤적이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어요. 그러고는 사전을 탁! 소리나게 내려놓고는 투덜거렸어요. “이상하다. 글자들이 다 어디로 가 버렸지? 순 엉터리 사전이잖아.” (원고지 26매)
감동포인트: 이작품은 책벌레를 모티브로 상상력을 펼친 판타지다. 책별레 아기 '행진'이의 탄생 잔치날 벌어진 연구파 책벌레와 먹자파 책벌레의 난장법석이 참 재밌다. 이 작품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마치 우화처럼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사전에 있는 글자들의 뜻을 적절하게 들어 작품에 녹아내린 것이다. 세심한 조사와 관찰을 한 작가의 노력이 엿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대결구도를 제시하여 흥미를 자아내게 하였다. 긴장과 재미 둘다 잡은 점을 본받고 싶다. 또한 자연스럽고 미소를 띄게 한 마무리도 좋았다.
걸레물방울 -(글: 함영연, 그림 신진아/대교출판)
소나기가 한차례 후드득 지나갔습니다. 움푹 패인 땅에 빗방울이 모여들어 웅덩이가 되었습니다. 빗방울들은 서로 옹송그리며 몸을 비벼댔습니다. “아, 그 때가 그리워! 여기는 너무 갑갑해.” 강물 쪽 길을 따라 유유히 여행을 하고 왔다는 빗방울이 푸념을 했습니다. “으윽, 나는 강한 물살에 휩쓸렸지 뭐야. 그래도 끝까지 버틴 걸 보면 참 대단해. 안 그래?” 힘겹게 이겨 내고 냇가에 이르렀다는 빗방울이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빗방울들은 다투어 입을 열었습니다. 빗방울들이 본 세상은 서로 달랐습니다. 빗방울이 되기 전까지는 모두들 다른 물방울이었기 때문입니다. 빗방울들은 어느 새 물방울로 돌아가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어림없는 소리. 대단한 걸로 따지면 나야. 난 꽃밭에 뿌려졌거든.” “어째서 그게 대단하니?” “꽃잎을 말끔히 닦아 주었으니까.” 꽃물방울이라고 불러 달라는 빗방울이 잘난 체를 했습니다. 평화로움은 순식간에 깨졌습니다. 물방울들은 서로 서로 자기를 내세우느라 바빴습니다. “흥, 그게 뭐 대단하다고. 난 호수에서 지냈는데 사람들이 뭐라 불렀는지 알아/ 은빛 물결이라고 불렀지.” 호수물방울이 질세라 거들먹거렸습니다. “은 ‧ 빛 ‧ 물 ‧ 결.” 이렇게 누군가 한 글자 한 글자씩 또박또박 발음을 했습니다. 반짝이는 물결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습니다. 호수물방울은 더욱 신이 나서 우쭐거렸습니다. “너는?” 호수물방울은 옆에 있는 물방울에게 물었습니다. “나? 난 빨래를 헹군 허드렛물이었어. 걸레도 빨았고.” 걸레물방울이 말했습니다. “우욱, 땟국에 찌든 걸레?” “어휴, 더러워.” 다른 물방울들이 고개를 돌렸습니다. 모두들 자기가 최고라고 떠벌리더니, 이젠 똘똘 뭉쳐 흉을 보았습니다. 걸레물방울을 헐뜯는데 마음을 딱딱 맞췄습니다. “난, 내가 할 일을 한 거야. 그런데 뭐가 더러워.” “야, 그래도 어지간해야지. 걸레를 빨던 물이라니.” 물방울들의 놀림은 계속되었습니다. 걸레물방울은 무척 속이 상했습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다 같은 웅덩이 물이기 때문입니다. “야, 해님이다.” 웅덩이에 햇살이 스며들었습니다. 물방울들은 너나없이 술렁거렸습니다. 하늘이 점점 맑아지더니 따사로운 햇볕이 웅덩이를 채웠습니다. 물방울들은 서둘러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이 곳을 영영 못 떠나면 어쩌나 했는데……, 룰룰루, 나는 또 호수에 가게 될 거야.” 호수 물방울이 신나게 아지랑이를 만들며 하늘로 올라랐습니다. “ 아, 빨리 꽃이 피었으면…….” 꽃물방울의 몸도 하늘거렸습니다. 얼굴이 꽃처럼 활짝 피었습니다. “나도 서둘러야겠어.” 덩달아 걸레물방울의 마음도 바빠졌습니다. 걸레물방울의 마음을 아는지 해님이 반짝 웃어 주었습니다. 걸레물방울의 몸이 스멀거렸습니다. 걸레물방울도 다른 물방울처럼 하늘로 올라가 구름집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벌써 그 곳엔 앞서 간 물방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물방울들은 곧 다른 데로 떠날 듯 술렁이고 있었습니다. 구름집이 움직였습니다. 쌀쌀한 기운이 덮쳐 왔습니다. 걸레물방울은 자석에 끌리듯 다른 물방울들과 섞였습니다. “우, 우리가 너와 같이 가게 될 줄 몰랐어.” 꽃물방울, 호수물방울이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그러나 걸레물방울은 낯익은 모습들이 싫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런 추위에 구름집에 있던 물방울이 하얀 눈송이로 변했습니다. “으, 추워. 어디로 가게 될까?” 눈꽃이 된 물방울들이 걱정을 했습니다. 걸레물방울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람이 휘잉 불었습니다. “우리가 좋아서 너랑 간다고 생각하지 마!” 꽃물방울이 톡 쏘아 댔습니다. “같이 가는 처지면서…….” 걸레물방울은 화가 났지만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걸레물방울도 바람의 입김으로 날았습니다. 얼마나 휘날렸는지 모릅니다. 드디어 어느 기와지붕에 다다랐습니다. 호수물방울과 꽃물방울은 지부에 앉자마자 무엇이 급한지 서둘러 빠져 나가려고 했습니다. “어디 가려고?” 기왓골에 내려앉은 걸레물방울이 물었습니다. 다른 물방울들이 서두르는 것을 보니 공연히 불안해졌습니다. “넌, 알 것 없어!” 호수물방울이 쏘아 붙였습니다. “그러지 말고 우리 같이 지내면 어떨까?” 걸레물방울은 웅덩이에서 다정하게 웅숭그리던 때를 떠올리며 말했습니다. “흥, 넌 우리들하고는 안 어울려.” 꽃물방울이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걸레물방울은 구석으로 밀려났습니다. 이끼가 낀 응달이었습니다. “빨리 여기를 떠날 거야.” 호수물방울이 말했습니다. “나도, 여기 오래 있고 싶지 않아.” 꽃물방울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햇살이 기와지붕을 반짝 비췄습니다. 햇볕을 쬔 눈송이들이 녹아 내렸습니다. 호수물방울과 꽃물방울도 녹아 기왓골을 따라 미끄럼을 탔습니다. 그러나 해님의 손길이 걸레물방울까지 미치지 못했습니다. 다시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구름이 해님을 가렸습니다. 걸레물방울은 추위에 오들오들 떨었습니다. ‘아, 나는 여기서 끝나는 걸까?“ 걸레물방울은 슬펐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어도 점점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눈물마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구름에 가렸던 해님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걸레물방울은 너무 반가워 몸을 뒤척였습니다. 햇살이 점점 길게 누웠습니다. 걸레물방울도 따뜻한 햇볕에 몸이 녹아 내렸습니다. 걸레물방울은 신이 나서 처마 끝을 향해 부지런히 흘러내렸습니다. “아, 거꾸로 매달려 있는 신세라니! 흐으윽, 흑흑…….” 꽃물방울과 호수물방울의 목소리였습니다. “너, 너희들은 …….” 꽃물방울과 호수물방울은 서둘러 떠나더니 고드름이 되어 처마 끝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걸 어쩌지? 이걸 어쩌지?” 걸레물방울은 처마 끝에서 주춤거렸습니다. 더럽다고 소리칠 것만 같아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것도 잠시, 걸레물방울의 몸이 주르르 미끄러져 고드름을 탔습니다. 걸레물방울은 미끄러지면서 꽃물방울과 호수물방울의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 “괜찮아. 그동안 놀린 것 미안해.” 호수물방울이 속삭였습니다. “나도.” 꽃물방울도 힘없이 말했습니다. 더럽다고 뿌리칠 줄 알았던 꽃물방울과 호수물방울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걸레 물방울이 손을 잡기도 전에 금세 고드름의 끝에 다다랐습니다. 눈앞이 아찔하니 깜깜했습니다. 걸레물방울은 그만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어머, 반갑기도 해라.” 까무러쳐 정신을 잃고 한참이 흘렀나 봅니다. 모래흙이 걸레물방울을 흔들었습니다. “으음, 목말라. 물…….” 모래흙 저 편에서 신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까만 씨앗 한 톨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정말 잘 와 주었어. 우리는 쟤가 말라 죽는 줄 알았어.” 모래흙은 걸레물방울을 씨앗 곁으로 밀었습니다. 그 동안 걸레를 빤 물이라고 놀림을 받던 일이 퍼뜩 생각났습니다.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서 쟤 좀 품어 줘. 그래야 싹을 틔울 수 있거든.” 모래흙들이 재촉했습니다. “…….” “뭘 망설여. 어서!” 모래흙이 다시 부추겼습니다. 걸레물방울은 까만 씨앗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까만 씨앗이 배시시 웃었습니다. 걸레물방울의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래, 내가 필요하다면…….” 걸레물방울은 웅크렸던 가슴을 쫙 폈습니다. 그리고 까만 씨앗 곁으로 힘차게 길을 내며 다가갔습니다. (원고지 20매) 감동포인트 : 함선생님의 걸레물방울은 동화의 모범답안 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선생님께 들었던 "소설은 작가가 되지 않지만 동화는 작가가 그대로 드러난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독자가 작품을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선명한 구성이 좋았다. 그리고 촘촘하고 정선된 문장이 깔끔하여 독자에게 머릿속에서 그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본받고 싶다. 필사과제를 다양하게 하기 위해 워밍업과제는 의인화동화로 했다. 의인화동화를 필사하면서 느낀 점은 완전히 작품속에 푹 빠져야한다는 것이다. 내가 책벌레도 되고 물방울도 되어 동화되어 상상하는 것이 전제조건일듯 싶다. 동화되는 연습이 필요할 듯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