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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서론
1.예언자
예언하기 이전, 아모스는 예루살렘 남쪽 약 10마일 변망에 위치한 유다의 한 산골 성읍이었던 드고아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1;1d- "목자“라고 사용된 단어는 히브리어에서 통상 쓰이고 있는 로에라는 단어가 아니고 이것과는 다른 뜻을 나타내며 좀처럼 사용되는 일이 없는, 노케드,즉 양을 치는 사람이라는 뜻의 단어이다. 구약성경에서 이 모케드라는 단어는 꼭 한 군데 더 사용되고 있는데 그곳은 열왕기하 3:4이다. 그 부분에서 모압의 왕인 메사는 큰 규모로 양을 치는 일에 종사하게 되어 이스라엘왕에게 새끼양 십만의 털과 수양 십만의 털을 바칠 수 있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분명히 아모스는 큰 무리의 양이나 혹은 염소떼를 먹이는 사람이었고 다른 목자들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또한 아모스는 7:14에서는 선지자가 스스로에 대하여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라고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목자”라고 쓰인 말은 히브리어로 보케르인데 구약성경에서는 여기에 딱 한번 쓰이고 있을 뿐이며, 그뜻은 “소치는 사람들”혹은 “짐승치는 사람들”이다.
아모스는 가축을 두루 살피는 일 외에 아마도 일종의 부업으로서 뽕나무 가르는 일에 종사했을 것이다. 뽕나무는 두께가 두껍고 굵은 나무로서 25-50피트의 높이로 자라나며 무화과나무 열매와 비슷한 열매가 일년에 서너 차례 열린다. 뽕나무는 드고아의 고산지에서는 자랄 수 없었고, 요르단 계곡이나 사해 근처의 비옥한 오아시스 지방 같은 따뜻한 자지대에서만 자라났다. 이런 곳들은 아모스가 나무 돌보는 일을 감독하는 데 충분할 정도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7:14). 이 세용어는 모두 아모스가 목자로서, 목장을 감독하는 자로서, 또 농장주인으로서 유복했으며 그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안에서 존경받는 사람이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2.시대적상황
아모스는 물질적으로 번성했던 시대에 살았었다.
유다왕 웃시야(B.C.79-730)와 이스라엘왕 여로보암 2세(B.C.753-793)가 오랫동안 통치하면서 그 두 나라에 안정과 번영, 세력의 팽창을 가져다주었다. 북왕국은 서쪽으로는 불레셋을, 동쪽으로는 암몬을, 남쪽으로는 아람을 정복하였다. 웃시야의 정치적인 영향력은 에굽에까지 미쳤다(참조,대하26:1-15). 아모스의 메시지가 지적하고 있는 북왕국은 그 세력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 아람은 앗수르의 아닷 니라리 3세에게 B.C. 802년에 패배한 이래 아직 회복하지 못한 때였다. 그러나 앗수르는 더 이상 우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가 없었다. 무력한 통치자들이 왕위를 계승했고 앗수르 북방에 위치한 우랄산맥 부근에 거하는 자들이 티그랏 필레셀3세가 B.C.745년에 즉위할 때까지는 앗수르를 더 이상 뻗어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여로보암 2세는 좀더 자유로워져서 영토를 북쪽으로 아람 영역에까지 확장할 수가 있었으며 요단을 가로질러서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할 수있었다(참고,왕하14:23-29;암6:13). 이로 인해서 이스라엘의 교역로가 확장되었고 이스라엘의 성읍들은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무역이 번창했고(8:5). 상류계층이 등장하게 되었으며(4:1-3). 값비싸고 화려한 가옥들이 건립되었다(3:15;5:11;6:14,11). 가난한 자들이 법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착취를 당하는 반면에(2:6-7;5:7,10-13;6:12;8:4-6). 부자들은 방종과 방탕에 틱닉하고 있었다(6:1-6). 부채로 인해서 종살이를 해야만 하는 일이 허다했다(2:6;8:6). 도덕적인 표준은 이미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2:7).
반면에 종교는 성행되었다. 사람들은 연중 축제행사로 성전에 가득 모였고(4:4;5:5;8:3,10). 제물을 바쳤다(4:5;5:21-23).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며, 자신들은 재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5:14,18-20;6:1-3;9:10).
3.연대
아마도 아모스는 1년 이상 북왕국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것이다.
그의 사역은 잘 알려진 지진이 일어나기 전 2년 동안에 행해졌다(1:1). 요세푸스는 이 지진을 역대하26:16-20의 사건과 연관시키고 있다. 하솔과 사마리아에서 있었던 고고학적 발국의 결과 이스라엘에서 B.C.760경에 큰 지진이 있음이 명백히 밝혀졌다.
4.메세지
유다 사람 아모스는 이스라엘에 예언하라는 소명을 받았다.
이것은 아마도 B.C.762경이 맞을 듯싶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은 우선은 심판의 말씀이었으며, 그심판을 거쳐서 희망의 말씀으로 끝을 맺고 있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즉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권위에 불복종하여 항거하는 나라들을 심판하시는 분으로서 오실 것이다. 특별히 이스라엘은 주님을 배반하고 계명을 어긴 대가로 벌을 받게될 것이다. 비록 나라는 멸망하게 될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들 가운데서 회개하는 남은 자들을 보존하실 것이다. 엔젠가는 이 남은 자들이 놀라운 섭리 안에서 다시 세우심을 받으며, 약속된 축복을 누릴 것이다. 그런 연후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모든 나라들을 주님의 이름 안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1.서언(1:1-2)
A.저자와 연대(1:1)
1:1-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 받은 말씀이라.
드고아라는 성읍은 예루살렘의 정남쪽에 위치한 곳이다. 이말씀들과 메시지들은 그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본것(그의 환상들)으로부터 온것이다. 그것들은 유다왕 웃시야와 이스라엘왕 여로보암이 통치할 기간 동안, 지진이 일어나기 전 2년 동안 북왕국에 전해진 말씀이었다.
B.주제(1:2)
1:2-아모스서의 주제는 이스라엘과 이웃의 나라들이 그들의 죄 때문에 맹렬한 심판을 곧 받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는 주님을 맹렬히 포효하며 공격을 개시하려는 사자로 묘사하고 있다. 사자의 포효는 먹이가 될 짐승들로 하여금 사자 앞에서 공포로 인해서 절망하며 온 전신을 굳어버리게 만든다. 그런 후에 갑자기 달려들어 찢고 물어뜯기 때문에 그먹이에게는 죽음이 불가피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도 이와 유사하게, 마비시키며 기운이 빠져버리게 하는 효과를 가진다.
그 울려퍼지는 소리는 시온, 즉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되어 나라들에게까지 이를 것이며, 그소리는 땅을 움츠러들게 하고 또 온통 불살라버릴 것이다. 남쪽으로는 무서운 표효소리가 유다를 통해서 지나가고,또 계속하여 가사(암1:6-8)로, 에돔(11-12절)으로,그리고 모압(2:1-3)으로 지나갈 때 베들레헴 가까이에 있는 초장은 말라붙어 시들어버릴 것이다. 북쪽으로는,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 다메섹(암1:3-5)과 두로(9-10절)와 암몬(13-15절)을 삼키기 위하여 지나갈 때에 이스라엘에서 기름진 농장으로 손꼽히는 남쪽부분의 비옥한 땅과 갈멜산의 서부 경사지(사35:1-2;사33:9;나1:4)는 시들어 소멸되어버릴 것이요, 그소리가 지나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땅의 물기는 증발해버릴 것이요, 그땅이 황토빛으로 변하여 한발로 인해 모두 쩍쩍 갈라져버릴 것이다. 초장이 말라버리는 일과 더불어 양들이 죽어버림으로 인하여 목자들은 큰 손실을 당할 것이었다. 농작물이 시들어버림으로 해서 농부들은 심각한 곤궁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한발에 대한 묘사는 나라들이 하나님과 세운 계약을 어긴 데 대한 하나님의 진노임을 암시해주고 있다. 근동의 사회에 있어서 영주와 그아래 백성들 간에 계약이나 협정을 맺는 것은 보통 있는 일들이었다. 영주가 안전을 확보해주고 필요한 물품들을 확보해주는 대신에 백성들은 충성과 복종을 맹세했다. 조목조목 잘 살펴보고 난후 상호간의 동의에 의해서 성립되는 계약이라는 단어는 양측을 모두 속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백성들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조약문서에 명기된 바대로 엄한 처벌을 받아야만 했다. 한발의 저주는 계약에 불복종한 대가로서 종종 등장하고 있다.
아모스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계약을 범한 데 대하여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특별히 북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노가 들이 반역하기 시작한 중심 성소인 시온으로부터 일어난다는 말씀을 들어을 때, 이 계약 반역죄에 대한 책임을 그들이 져야만 했다.
2.맹렬한 심판(1:3-2:16)
하나님의 진노는 먼저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일곱 국가들에 임하고,
그리고 나서 이스라엘 저신에게 임하였다. 아모스의 말씀을 경청하는 이들이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몹쓸 적대국들인 아람(1:3-5)과 팔레스타인의 국가들(1:6-8) 가운데 심한 재앙이 임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아마도 그들은 과연 그럴까라고 말하면서 술렁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초점이 때로는 동맹국이었던(왕상5장) 두로(9-10절)로, 그리고 나소 에돔(암1:11-12)으로, 암몬(13-15절)으로, 그리고 이스라엘과 피를 나눈 친족들인 모압(2:1-3)에게로 맞추어지게 되었을 때, 그들을 둘러싼 기운은 “그들의 목을 조여들어 죽이려 하는 올가미의 심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스라엘 자신의 “형제”인 유다(2:4-5)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언급함으로 해서 하나님의 심판은 공평하다는 결론은 불가피해졌다. 각나라에 내려지는 재앙에 대한 선고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따라오고 있다.(1)항거할 수 없는 심판에 대한 일반적인 선포, (2)심판을 부르게 된 반역에 대한 상세한 설명, 그리고(3)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직접적이고 전적인 처벌에 대한 묘사,
A.나라들에 대한 심판(1:3-2:5)
1.다메섹에 대한 심판(1:3-5)
1:3-피할수 없는 심판에 대한 일반적인 선포가 반복하여 나타나고 있다.
서너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그앞에 쓴 숫자에 더한 숫자를 다음에 쓰는일은구약성경에 자주있다.(욥5:19;시62:11-12;잠30:15-16,18-19,21-23,29-31).
일반적으로 더 큰 숫자는 마지막 항목에 특별한 강조점을 두면서 세부적으로 조목조목 헤아리게 된다. 여기에서 아모스는 결국 하나님의 인내하심을 지나쳐버린 최후의 죄악에 대해서만 외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메이어 바이스는 “서너가지 죄악들”이라는 구절은 “세 가지 죄악에 대해서--네 가지 죄악에서조차도 --”로 해석되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만약 이것이 정확한 것이라면, 이구절은 그들의(가득 채워지고 완전해진) 죄 때문에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이 각 나라들에게 선고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단지 최종적이고 절정에 달한 죄악만이 지적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일곱에 대한 온전한 조항들이 모두 주어졌다(암2:6-8,12;6절에 하나, 7절에 둘,8절에 둘,12절에 둘).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때 이스라엘이 당할 고통은 아마 7배나 더할 것이다(2:14-16).
각 나라에 심판이 임하는 이유는 그들이 계약을 어긴 것, 즉 그들의 “죄”때문이었다.
“죄”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페사는 “반항”혹은 “항거”라는 뜻을 가지는데 이것은 세속적인 조약에 사용되는 용어로서 백성들이 계약에 불복종하는 경우에 썼다(왕상12:19;왕하1:1;3:5,7;8:22;잠28:2). 구약성경의 예언자들 역시 페사라는 말과 동사형 파사라는 단어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계약을 어겼을 경우에 사용하고 있다(사1:2,28;46:8;66:24).
아모스는 특별히 모세의 계약을 파기한 것으로서 유다(암2:4-5)와 이스라엘(2:6-16)의 죄를 꿰뚫어보고 있다. 유다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만이 하나님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죄를 범한 것은 아니었다.
이방 국가들 역시 하나님이 세우시고 우주적으로 받아들여서 동의한 법을 거역한 페사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것이다. 명백하게 아모스는 노아시대 때 인간과 더불어 세우신 하나님의 우주적인 계약을 그들이 파기했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창9:5-17).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으로 다시는 땅을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창9:11). 대신에 인간들은 피를 흘리는 일을 삼가야만 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것은 곧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하여 공격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창9:5-6). 인간의 생명은 파괴되거나 줄어들지 않고 땅 위에 증가하고 번창하였다(창9:7). 하나님께서는 땅을 보존하시고 또 인간은 사람의 생명을 존중히 여기고 번성케 한다는 상호간의 조약이 “영원한 언약”이라 불리워졌다(창9:16).
아모스 선지자가 이방 나라들이 범했다고 꾸짖었던 것이 바로 이계약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포악을 저지르고(암1:3), 종된 자들을 한꺼번에 다른 나라로 쫓아내버리고(6,9절), 본성을 잃고 맹렬히 미워하며(11절), 잔혹한 해위를 서슴지 않고 행하며(13절), 죽은 자들에 대한 모독을 감행하는(2:1)등의 일들을 함으로 해서 이와 같은 비인간적인 행위를 금하는 계약을 파기했던 것이다. 이러한 죄 때문에 땅을 통치하시는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선포하시는 것이다. “내가 그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와 비숫하게 선지자 이사야도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사24:4-6;26:20-21).
사람들이 피를 흘림으로 해서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음이라--그 중에 거하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신약성경이 증언하는 바와 같이 이방인들이 법에 대하여 전해들은 바도 없고, 또 씌어진 법조문을 받은 적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존중에 대한 요구는 그들에게 알려졌고 그들이 하나님의 표준을 범하게 될 때 스스로를 고발하는 자신의 양심이 이것을 그들에게 말해주는 것이다(롬2:14-15).
아람의 수도였던 다메섹의 극에 달한 죄악은(암1:13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에서 요단을 가로질러 있는 길으앗을 쇠가 박힌 채찍으로 타작을 한 것이다. 타자(잘라내어서 쭉정이부터 알곡을 갈라내는 일)은 곡식을 무거운 막대기로 때리면서 타작 마당에서 행하는 일이었다. 그막대기는 울퉁불퉁한 두 쪽의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앞쪽에서 보면 위로 휘어져있으며 갈퀴나 칼날 같은 것들이 박혀있었다. 죄수들을 고문하는 것을 묘사하면서, 여기에 있는 언급들은 거의 문자적인 표현에 불과한 정도이다. 이것 역시 혹독한 것과 완전히 짓밟아버리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아람 군대는 길르앗을 마치 타작 마당 위에 있는 것처럼 토막을 내고 짓이기면서 휩쓸어버렸다. 요단 동쪽에 있는 이 이스라엘의 영토 구역은 특별히 하사엘(B.C.841-801)과 그의 자리를 계승한 아들 벤하닷3세가 통치하는 동안에는 아람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전투가 벌어짐으로 해서 많은 고통을 당했다.
1:4-5-먼저 일곱 국가들을 처벌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은 반란을 일으킨 백성들에게 군대를 파견하는 영주로서 묘사되고 있다. 어느 경우나 할 것 없이 공격은 불을 지르는 일로 시작되어서 결국에는 성읍의 방벽과 요세를 모두 불태워 버리고 그을린 흔적들만 남겨 놓게 되었던 것이다(1:4,710,12,14;2:2,5). 다메섹을 벌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성읍 문을 닫고 있던 빗장을 부수어버리고, 성읍을 방비하던 모든 것을 벗겨버림으로 해서 폐허로 만들어버리겠다고 선포하셨다. 하나님께서 사악하고 자고한 나라들을 통치하던 반역한 왕들을 처 없애겠다고 하셨다.
아왠 골짜기와 벧에던은 아람과 바알벡과 빗아디니 등의 다른 지역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더 정확하게는 이 단어들은 “사악의 계곡” 혹은 “쾌락의 집”을 의미하면서 다메섹의 지역이나 장소에 대하여 모욕하는 말로 쓰여졌다. 하사엘의 집(왕조)은 결정되어지고, 아람 사람들은 키르라고 불리우는 그들의 본향인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 다시 도망쳐 돌아갈 것이었다, 본질적으로 이 처벌은 아람의 자고한 역사에 대한 완전한 역전이었다. 그들을 원래 길로부터 불러 내셨던 하나님께(9:7) 그들의 모든 업적들을 지워버린 후에 다시 되돌려보내시려는 것이었다. 이 심판은B.C.7:32년에 앗수르왕 티글랏 빌레셀 3세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서 실행되었다(참조,왕하16:7-9).
2.가사에 대한 심판(1:6-8)
1:6-6-8절 안에 불레셋의 5대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도시들 가운데 4되시가 언급되고 있다. 가사,아스돗,아스글론,그리고 에그론이다. 5번째 도시인 갓이 빠져있는 것은 B.C.815년의 하사엘 전투와 B.C.760년에 있었던 웃시야 전투로 인해 아모스 당시에 폐허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참조,왕하12:17;대하26:6,암6:2).블레셋이 자행한 인간성에 역행하는 범죄는
그들이 사회 깊숙이 노예제도가 성행하게 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람들을 팔아넘긴 사실이었다. 방어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물건처럼 취급당했고 에돔에 있는 노예 시장에서 거래되었으며 그곳으로부터 세상의 다른 것으로 배에 실려 옮겨졌다.
1:7-8-이 죄 때문에 블레셋의 도시들은 건물들, 왕, 백성들 할 것이 없이 모두가 완전하게 멸절당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의 마지막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손을 그들로부터 떼지 않으실 것이었다. 이 심판은 그후 B.C.8세기에 블레셋이 앗수르에 종속됨으로 부분적으로 행해지며, 더욱 완전하게는 마가비시에 행해진다(B.C.168-134). 통치하시는 주님(아도나이 야웨)이라는 말은 아모스서에 19번 쓰여지고 있으나 소선지서를 통털어서 아모스 이외의 다른 곳에서는 5번밖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 칭호는 하나님의 주님 되심과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과의 계약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3.두로에 대한 심판(1:9-10)
1:9-베니게의 수도인 두로의 죄악은 가사보다 더욱 관영했다.
두로는 사로잡은 모든 포로들을 에돔으로 팔아넘겼을 뿐만 아니라(참조,6절), 양쪽 모두가 지켜야 할 언약인 형제들간의 조약도 파기시켜 버렸다. 만약에 이스라엘이 피해를 입은 측이라면 아마도 그 언급은 솔로몬과 히람 간의 협정(왕상5장)이거나 혹은 그후에 아합과 이세벨의 결혼을 통해서 이루어진 관계들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왕상16:29-31).
1:10-두로에 내려지는 심판은 7절에 묘사된 것과 유사하다.
알렉산더 대제가 7개월간 두로를 포위한 후B.C.332년에 그도시를 함락 시켰다. 6천 명이 공공연하게 죽어갔고, 2천명이 처형되었으며 3만 명이 노예로 팔려갔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서 에돔에 팔아넘겼던 두로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들이 포로가 되었다.
4.에돔에 대한 심판(1:11-12)
1:11-에돔의 죄악은 계속적이고 무감각하게 형제들에 대한 적대행위를 자행하는 것이었다.
“형제”란 말은 잘 알려지지 않은 조약을 체결하는 데 있어 상대방을 뜻하는 의미로 쓰여질 수있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 에돔과 이스라엘 사이에 “형제”라는 언급을 자주하고 있는 것은 에서와 야곱으로부터 시작된 두 나라 사이의 혈연관계와 연관이 있음을 암시해주고 있다(창25:29-30;민20:14;신2:4;23:7). 이스라엘 역사의 어떤 부분에서는 에돔이 무자비하게 검을 빼어들고 패배한 형제를 추격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본래 인간들이 지니고 있는 동정심마저도 짓밟아 버리고 에돔은 마치 탈취한 먹이를 찢고 있는 맹수와도 같이 계속하여 분노를 발하고 있었다. 노가 억제됨이 없이 맹렬히 불타오르고 에돔은 그 분노 위에 피를 뿌렸던 것이다.
1:12-이 무자비하고 복수심에 가득찬 마음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는 데만과 보스라 위에 불을 내리실 것이었다. 데만은 남쪽 지경에서 가장 큰 성읍이었고 보스라는 북쪽 지경의 강한 요새였다. 그두 도시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전체 국가를 대표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데만은 보스라 가까이에 있는 북쪽의 성읍이었다고 말한다. 여하튼 두 도시는 에돔의 주요 도시임에는 틀림이 없다. 에돔은 B.C.8세기에 앗수르에 정복당했고B.C.5세기에 이르러서는 황폐하게 버려진 땅이 되고 말았다(말1:3). 그리고 B.C.400~300년경에는 아라비아 종족들 가운데 하나인 나밧족속이 에돔을 덮쳐버렸다.
5.암몬에 대한 심판(1:13-15)
1:13-암몬이 저지른 가공할 만한 무자비함은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가른 일이다.
이런 극악무도한 일은 때때로 고대의 전쟁에서 볼 수 있었던 것으로서(참조,왕하8:12;15:16;호13:16). 적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암몬 사람들은 자신들을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그들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서 방어할 힘도 없는 부녀들과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에게 이런 무자비한 가혹행위를 가했던 것이다.
1:14-15-이러한 무자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암몬의 수도였던 랍바성에 불을 내리려고 하셨다(참조,7,10절). 삼키는 불꽃 가운데서 주민들은 마치 먹이를 덮치는 듯한 공격자들의 고함 소리를 들을 것이었다(참조,2:2). 휘몰아치는 바람이 하나님 자신의 무서운 힘을 상징하면서 그도시를 강타할 것이었다. 그리고 적군들은 왕과 백성들을 붙잡아 데려갈 것이었다. 이 심판은 B.C. 734년 디글랏 빌레셀 3세의 영도하에 행해진 앗수르의 정복을 통해서 행해졌다.
6.모압에 대한 심판(2:1-3)
2:1-고대에 있어서는 죽은 자의 시체가 가족들이 묻히는 자리에 평화롭게 매장되어 그의 조상들과 더불어 무덤에서 조용히 안식하게 되는 것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무덤을 파헤쳐 도굴한다거나, 흐트러 놓거나, 속되게 더럽히는 행위는 가장 고귀한 질서를 깨뜨리는 것이었다. 현존하는 무덤비에 새겨진 비문에는 이러한 짓을 범한 자에게 내리는 가혹한 저주가 기록되어 있다. 모압은 에돔과의 전쟁에서 적대자들을 자기들의 영토로 끌고갔으며 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마치 사지에 불을 붙이는 것과 같이 에돔왕의 뼈를 모두 태워 없애버렸다. 이러한 성소 침입행위는 너무나 완벽하여서 태운 재가루가 분필을 갈아놓은 가루같이 희고 미세하였다.
2:2-3-비록 이것이 이스라엘에 대한 죄는 아니라 할지라도,
이것은 우주를 통치하시는 주님께 대한 반역죄, 즉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 자신의 형상에 대한 폭행인 것이다. 이런 모욕과 신성모독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는 모압을 군사적으로 멸절시키실 것이었다. 불은 그리옷을 삼켜버릴 것이었는데, 그리욧은 아마도 모압의 수도 아르를 다르게 부른 명칭일 것이다. 전쟁의 혼란 가운데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와 모압의 불운을 알리는 나팔 소리와 더불어 모압은 몰락할 것이었다. 여기에는 백성들과 통치자, 그리고 모든 범법자들이 포함되는 것이었다. 암몬과 마찬가지로 모압은 앗수르왕 티글랏 빌레셀3세에게 망하고 말았다.
유다에 대한 심판(2:4-5)
2:4-이방 국가들은 하나님과 그들이 노아시대 때 세운 “영원한 언약”을 깨뜨려버렸다(창9:5-17).그러나 유다의 죄는 모세의 계약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은 주님의 법법을 거절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맺은 독특한 법령,혹은 계약을 지키지 않았다. 하나님의 객관적인 진리를 준수하는 대신에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을 기만해왔던 그릇된 신들을 섬기며 자신들을 방치시켜 헤매도록 내버려두었다.그릇된 신을 나타내는 말로 카잡이 쓰이고 있는데 이것은 “거짓 혹은 속이는 어떤 것”이란 뜻이다. 우상들은 백성들을 도울 수 없기에 속이는 것이었다. 신명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족속들로 하여금 그릇된 신들을 따라가지 말것을 경고하셨다(신6:14;7:16;8:19;11:16,28등).
2:5-이러한 불신앙에 대한 처벌은 B.C.586년 느부갓네살왕이 침공함으로 이들에게 내려졌다. 느부갓네살왕은 오랫동안 성을 푀위한 후에 왕족들을 살해했고, 신전과 성 그리고 도시에 있는 모든 집들을 불태웠으며 거의 주민들을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왕하25:1-12).
B.이스라엘에 대한 심판(2:6-16)
주님께서 우주 전체를 통치하고 계시며 또한 주님께 반역하는 모든 나라들을 감찰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아모스는 지금 북이스라엘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의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은혜를 베푸셨지만 그들이 주님의 계약을 파기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도 역시 심판을 내리실 것이라는 것이었다.
1.깨어진 계약(2:6-8)
이스라엘은 사회적 불의(6절하)와 법률의 파기(7절상)와 성적인 죄악(7절하), 담보의 내용(8절상), 그리고 우상숭배(8절하)등과 같은 죄를 포함하는 모세의 계약을 여러 방법으로 범하고 말았다.
2:6-처음으로 그들의 책임을 묻는 것은 그들이 부채를 갚을 수 없는 사람들을 무정하게 노예로 팔아넘겨 버렸다는 것이었다(참조,왕아4:1-7).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정직한(의로운) 사람들은 그들이 빚진 은값으로 팔려갔다. 아주 궁핍한 자들은 샌달 한 컬레 값으로 노예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다(참조,8:6). 이 샌달은 저당잡히는 행위 혹은 땅을 법적으로 이전할 때 샌달을 주고받는 관습과 연관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보면 그 의미는 가난한 자들을 돈이나 땅을 주고받으며 팔아넘겼다는 것을 뜻한다. 외국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자신의 백성들에 대한 이같이 비정한 행위는 가난한 자들에게 관대함과 열린 마음을 가질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계약을 파기하는 것이었다(신15:7-11).
2:7상-아모스의 두 번째 고발 내용은 법적인 절차가 왜곡되어졌기 때문에 가난한 자들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명하신 하나님의 계약과는 정반대로(출23:6;7신16:19) 법정은 유력한 자들과 공모하여 업제당하는 자들에게 의롭게 판단해야 할 바른 일들을 부인하고 있었다. 이러한 압제는 너무 가공할 만하고 고통스러운 것이어서 마치 그들의 머리를 짓밟는 것과 같았다.
2:7하-세번째 죄악은 아비와 자식이 같은 여자를 대상으로 성관계를 가지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상대 여자들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창기들이나 내연의 처로 취한 여종들이었다(출21:7-9;레18:8,15). 이러한 난잡한 성행위로 인해서 사람들은 계약의 하나님을 저버렸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모독하고 있었다(예를 들어 이런 일들을 보통 있는 일로 간주한 것등). 하나님의 “명칭”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독특한 명령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의 명령을 공공연하게 업신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이며 그들의 삶 가운데 특별한 위치를 점하시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2:8상-네번째로, 하나님의 법은 저당잡는 물품들의 항목을 제한하고 있다.
맷돌같은 것은 곡식을 갈아 먹는데 필요하고 목숨을 부지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기 때문에 탈취할 수 없는 품목이었다(신24:6). 가난한 자들의 외투는 밤을 지내는 동안 담보로 잡아둘 수가 없었다(출22:26-27;신24:10-13;욥22:6). 과부의 옷은 전혀 담보로 취할 수 없었다(신24:17). 그러나 사람들은 악명높게, 또 공공연하게 금지된 품목들을 취하고 더 나아가서는 법을 조롱하면서 희생 제물을 드리는 축제 때마다 모든 제단 곁에다 이 물품들을 펼쳐두었던 것이다(참조,삼상9:12-13).
2:8하-다섯번째로 이스라엘은 모든 계약 규정 가운데 가장 근본이되는 것을 범하였다.
그들은 다른 신들을 섬겼던 것이다(유다가 그렇게 했듯이 4절). 가난한 자들로부터 불의하게 갈취해낸 술은 이방신을 높이기 위하여 바쳐졌다.
2.거절당한 은혜(2:9-12)
2:9-죄에 대하여 지적한 후 즉시 처벌을 선포하시는 대신, 다른 일곱 나라들에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한 이스라엘의 반역을 밝히 드러내셨다. 이스라엘이 한 나라로서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중재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혼자서는 가나안 족속들을 결코 정복할 수가 없었다. 아모리 족속은 가장 창대한 족속으로서 가나안 정복 당시 그 지경에 있는 모든 나라들을 대표하는 족속이었다(참조,창15:16-21;수24:8-15). 그땅의 거주민들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커서, 삼나무처럼 키가 크고 참나무같이 강하였다(참조,민13:28-33;신1:26-28).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뿌리채 뽑으시고, 위로 열매로부터 아래로 뿌리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멸절시켜 버리셨다.
2:10-애굽으로부터 불러내시고 광야 사십년 동안 이스라엘을 보존 하신 사실은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의 증거였다.
2:11-하나님께서는 또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영적인 지도자를 세우셨다.
그들의 후손들로부터 배출된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하였고, 정한 기간 동안 맹세하고 성별된 생활을 했던 나실인(민6:1-21)들이 모든 이스라엘이 나누어야 할 위탁의 말씀을 드러내보여주었다.
2:12-이러한 은혜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악 가운데서 두 가지를 더하게 되었다. 그들은 나실인들에 겁을 주어 맹약을 깨뜨리게 하고 술취하게 만들었으며 예언자들에게 예언하지 말도록 종용했던 것이다(참조,7:10-16). 이렇게 함으로 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힘이 부족한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말았다.
3.피할 수 없는 심판(2:13-16)
2:13-16-이러한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돌이키지 않으셨다(6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마치 곡식을 가는 곳에서 마차가 내리누르며 갈아버리는 것과 같이 처벌하실 것이었다. 전투가 벌어지는 황폐의 날에 그들에게 모든 희망은 사라질 것이었다. 모든 군사들 가운데(1)날쌘 자,(2)강한자(3)장수(4)궁예(5)걸음 빠른 군인(6)마병--그어느 누구도 그들의 생명을 구할 수 없을 것이었다. 강대한 세력이 그들을 쳐부수기 때문에 (7)가장 용감한 장수조차도 도망치려는 쓸데없는 일을 시도하다가 그들의 무기와 외투를 떨어뜨려 버릴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죄가 일곱이었던 것처럼 이 전쟁 때문에 당하는 고통도 일곱 갑절에 달할 것이었다(1:6절하-8,12).
북쪽 왕국의 역사는 수십년 후 B.C.722년 앗수르의 침공을 받고 포로로 잡혀감으로 해서 그 종말을 맞고 말았다(왕하17:1-23). 심판하는 맹렬한 고함 소리는 멈추어졌다. 땅을 통치하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이 하나님의 권위에 반역하는 죄를 짓는 일을 심판하기 위해서 힘있는 장수로서 올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주님의 계약을 파기했기 때문에 이스라엘도 역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3.심판에 대한 이유(3-6장)
북왕국에 내려질 심판을 선고한 후에 아모스는 하나님이 심판을 내리시는 이유를 모두 설명하기 위해서 연속되는 다섯 개의 메시지를 부여하고 있다. 처음의 세 메시지는 “이 말씀을 들으라”라는 구절로 표시되고 있다(3:1;4:1;5:1). 마지막의 두메시지는 “화 있을 진저 너희여”로 시작하고 있다(5:18;6:1). 각 메시지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오게 한 종교적, 법적,정치적,그리고 사회적인 반역에 대하여 더욱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메시지들 속에는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과 다가오는 재앙을 어떻게 개별적으로 피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A.첫번째 메시지(3장)
이 메시지 속에서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독특한 관계성 때문에 처벌을 받아야 할 것임을 선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백성들을 말할 수 없이 압제했기 때문에 심판이 불가피했다. 그메시지는 먼저 이스라엘과 유다 두 나라에 전해졌다(1-2절). 그러나 그 두 나라 중에서도 우선적으로 북왕국에 먼저 선포되었다.
1.독특한 관계
3:1-2-하나님께서 애굽으로부터 건져내신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땅의 모든 족속들 가운데 택함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택함을 입다”라는 말은 고대의 통치자가 백성에게 특별한 계약을 맺으면서 명령할 때 사용되었다. 그들만이 하나님의 백성들이요, 감찰하시고 돌보시려고 진정으로 택하신 하나님의 유일한 나라였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을 벌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셨기에 그들에게 자신을 친밀하게 계시해주셨고 군주가 백성에게 내리는 가장 위대한 계약의 축복을 유효하게 하셨던 것이다(출19:3-6;신28:1-14). 그들은 다시 돌이켜서 하나님을 알기 원하며, 그를 기쁘시게 해야만 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 때문에 그들의 사악함은 더욱 무서운 심판을 받아야만 했다.
하나님의 선택적인 은혜는 항상 우리들 자신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특별한 위탁과 축복은 종종 자신을 훈련하고 정결케 하는 특별한 성결을 포함하고 있다(눅12:47-48;고전11:27-32;히12:4-11;벧전1:7-9;4:17). 하나님의 사랑이 이다지도 크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룩해야만 하는 것이다.
2.피할 수 없는 심판(3:3-8)
이 절들은 이스라엘의 심판이 불가피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들의 일상 생활 가운데서 종종 두 가지 사건이 불가피하게 연관되어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계시가 아모스에 임한 일과 피할 수 없는 심판이 임하는 것과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3:3-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일곱 가지의 수사학적인 질문들을 통해서(참조,3-6절)
아모스는 어떤 사건들은 불가피하게 연루되어 있음을 듣는 자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첫 번째의 필요한 사건이 먼저 일어나지 않는다면 두 번째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즉 첫 번째의 사건이 발생해야 그 다음으로 두 번째 사건이 분명히 일어나게 될 것이다. 첫 번째로, 만약 두 사람이 먼저 만나서, 담소하고, 그리고 나서 길을 같이 가자고 서로 동의하는 일 없이는 두사람이 길을 같이 가는 일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3:4-둘째로, 만약 사자가 먹이를 움키고 잡아야겠다는 마음을 확정하지 않는다면 정극 속에서 사자는 부르짖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순간에 먹이를 탈취하기 위해 맹렬히 달려들기 시작한다면 상대를 마비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울음 소리는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섯째로,이와 유사하게 사자의 굴에서 만족스러워하는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려온다면 이것은 어떤 것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즉 사냥을 성공적으로 마쳤기에 만족스러운 포효를 하는 것이다.
3:5-넷째로,만일 올무에 미끼를 놓아 설치하지 않는다면 새는 그 올무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다섯째로, 그 올무에 어떤 것이 잡혀 당겨주지 않으면 올무는 땅에서부터 튕겨오를 리가 없다. 새나 야생동물이 잡혔다는 말은 올무를 사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3:6-여섯째, 전쟁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도시에 울려퍼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결코 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고의 소리는 사람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자아내는 것이다. 주님께서 재앙을 일으키시지 않는다면 그 성읍에 재앙이 내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번 결단을 내리시기만 한다면 그결과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재앙”이란 “역병”,“형편없는 수확”,혹은 “적들의 공격”등이 될 수 있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시는 일로서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고, 그들의 생활 가운데 주님께서 전권적으로 통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며, 구원을 얻기 위해서 주님을 신뢰할 것을 알게 해준다.
사건들과 관련된 일곱 가지 예들은 아무런 해가 없이 시작되었으나,
점차 나쁜 징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처음의 예(암3:3)에는 그것에 대한 폭력이나 재앙의 요소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의 두 예(4절)는 한 동물이 다른 동물을 움켜쥐는 일과 연관되어져 있으며, 그 다음의 두 예(5절)는 사람을 동물 먹이를 잡아들이는 정복자로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의 두 예(6절)에서 사람들은 먼저 도구로 쓰이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그다음으로는 하나님 자신에 압도당하고 만다. 하나님 자신을 인간의 재앙을 주관하시는 분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볼때, 이런 불길한 진전은 아모스로 하여금 점층적인 언급을 하도록 하고 있다(7-8절).
3:7-8-다른 필요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다면 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것과 꼭같이,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그의 종들인 예언자들에게 먼저 계시하시지 않고서는 결코 아무 일도 행치 아니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시가 어느 때 일어난다면, 바로 그때 사자의 포효하는 소리가 들리며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또 바로 그때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일이 분명히 있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주된 변화는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계시에 의해서 생격났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해서 경고하는 일 없이 결코 행하시는 법이 없다. 아히야는 솔로몬왕국의 분열을 예언했다(왕상11:29-39;이것은 왕상 12:15-20에 성취되었다). 한 무명의 예언잔가 요시야왕의 개혁에 대하여 예언한 바가 있다(왕상13:1-2;이것은 왕하 23:15-20에서 성취되었다). 아히야는 아비야의 죽음과 여로보암 1세가 세운 왕국의 종말에 대하여 예언했다(왕상14:1-16;이것은 왕상 14:17-18;15:29에서 성취되었다).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벌의 죽음에 대하여 예언했고 또한 아합의 후손들이 멸절될 것에 대해서도 예언했다(왕상21:17-24;이것은 왕상 22:29-37;왕하9:30-10:11에서 성취되었다).
주님께서는 항상 주님의 경륜을 먼저 그의 종들인 예언자들에게 나타내셨다.
예언이 수년전 혹은 수세기 전에 먼저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예언은 꼭 성취되었다.
주님께서 당장에 사자의 울음 소리와도 같은 진노를 발하시는데 어는 누구라도 그 결과에 대하여 두러워하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도를 아모스에게 나타내셨는데 예언자 아모스 이외에 그 누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겠는가?
3.혹독한 압제
3:9-10-아스돗(불레셋 지경 안에 있는)과 애굽으로부터 온 밀사들을 초청하여 사마리아 산 위에 모으고 그 성읍이 무엇과 같은지를 살펴보라고 하는 기상의 전령이 떨어졌다. 정의롭지 못한 행동들이 판을치는 나라들로부터 온 고관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의 수도에서 무엇을 고찰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놀라게 될 것이었다. 큰소요가 그성읍 안에 있었다. 평화와 질서 대신에 고통과 법질서를 무시하는 무서운 파괴가 그 가운데 성행하고 있었다. 정의 대신에 폭력과 압제가 판을 치고 있었다. 위협과 착취로 부자들은 개인적인 부를 축적했고, 가난한 자들로부터 탈취한 물건들을 집에 가득 쌓아두었다. 탈취,전리 등의 단어는 인격이나 소유에 대한 폭행에 관련된 단어로서 근본적으로 “침입과 빼앗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위협하는 것이 그들 삶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어떻게 행하는 것이 즉, 무엇이 바르고 정직하고 공평한 것이며, 옳은 일인가에 대하여 결코 알 수가 없다.
초대장은 이웃 나라의 요새들(3:9)에게로 보내졌다.
“요새”라는 것은 보통의 집들보다는 휠씬 높은 건물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여러층의 건물로서 방어하는 구실을 담당하며 때로는 이 건물 자체가 성읍의 방어 체제의 한 부분이 되기도 했다. 왕궁은 보통 방어하는 부분으로서의 요새를 그안에 포함하고 있었다. 이러한 건물들은 또한 부자들과 지배 계급들이 주거하는 건물로서 사용되기도 했다. 이러한 주거 방벽들은 국가의 자랑(암6:8)이요, 부와 세력의 상징이었기에 또한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시는데 있어 특별한 초점이 되기도 했다(1:4,7,10,14;2:2,5). 아모스는 아스돗과 애굽의 요새로부터 온 고관들을 사마리아로 소환하여 이스라엘의 요새에 살고 있는 자들이 억압당한 자들을 착취하여 부를 축적하는 정도가 그들보다 더하다는 사실을 목도할 것을 권하고 있지 않은가! 아모스의 고소는 바울이 고린도전서 5:1에서 말하고 있는 그것과 유사한 바, 이교도들 사이에서조차 일어나지 않는 죄악들이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자행된다는 것이다.
4.다가올 재앙(3:11-15)
발전해 나가는 세 가지 선포 속에서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말할 수 없는 압제 때문에 다가올 재앙을 펼쳐 보여주고 있다(참조,9-10절).
3:11-통치하시는 주님께서 한 적군이 침입하여 나라의 방벽들을 내리 무너뜨려 버리시면서 땅을 온통 짓밟아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약탈을 일삼던 요새들이 약탈을 당할 것이었다.
3:12-아모스의 말을 듣던 많은 사람들은 이스라엘 족속들은 건짐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말씀에 반대를 표명했다. 이것은 아모스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러한 재앙으로부터 구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그릇된 희망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아모스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재차 반복하였다. 즉“구원받을”이스라엘은 마치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내는 것과 같을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구원받은” 증거로서의 작은 조각들은 목자가 한 마리의 양을 잃어 버리거나 팔아넘겨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맹수의 먹이로서 그야말로 갈기갈기 찢기워졌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출22:10-13). 구원함을 받은 정강이 뼈와 귀 조각은 구원이 너무나 늦게 와서 그 동물이 이미 거의 먹혀졌음을 입증해주는 것이다. 방탕하게 침상이나 자리에 누워서 빈둥거리는 사마리아의 이스라엘 족속들은 구원을 반신반의하면서 아모스의 메시지를 놓쳐버리는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만 했다. 이스라엘은 비참한 모습으로,또 거의 대부분이 삼킴을 당할 것이었다.
3:13-15-하나님께서는 그들 조상들에게 명하신 것을 그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해서 족장의 이름을 사용하시면서 북왕국을 야곱의 족속이라 부르고 계신다. 지나간 과거에 있어서 하나님은 그들 편에서 싸우신 장수였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분은 그들의 죄들 벌하시기 위해서 다른 대적들을 이끄실 것이었다. 전능하신 하나님(문자적으로 “만군의 하나님”,“군대의 장”)께서는 가장 무서운 용사로 명명된다. 이스라엘의 범죄를 묘사하고 있는 이 장들에서는 주님께서 반역자를 벌하는데 있어 크고 저항할 수 없는 힘을 지닌 절대 영주와 같은 존재로 거듭 묘사하고 있다.
그들을 벌하는데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벧엘의 제단을 부수어버릴 것이었다.
벧엘은 여로보암 2세의 왕실 지성소였으며(7:10-13). 이스라엘서 가장 유명한 종교적 장소였다. 여로보암 1세에 의해서 황금 송아지가 세워졌던 장소였던 것과 같이(왕상12:26-30;호10:5) 그곳의 제단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끊임없이 반역하였다는 사실을 상징하고 있었다. 이 제단들의 모통이에는 뿔들이 나와있었다. 도망자들은 그들을 잡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보호 권을 주장하기 위해서 이 뿔들을 잡을 수있었다(왕상1:50;2:28;출21:12-13). 그러나 살인자들은 보호를 받을 수 없었고 제단에서 잡아내려져서 죽임을 당했다(출21:14). 이스라엘의 죄악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들이 보호권을 주장하는 수단을 제해버릴 작정이셨다. r들을 대작하여 침노하는 적으로부터 피신할 지성소는 아무 데도 없을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종교적인 중심지를 훼파하실 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착취를 통해서 만들었던 화려한 가옥들도 산산조각으로 부수어버리실 것이었다. 한때는 왕만이 겨울저택과 여름저택을 가질 수가 있었다. 예를 들면 9세기에 아합은 사마리아에 있는 저택 이외에 이스르엘의 평원에 겨울왕궁을 가지고 있었다(왕상21:1). 화려한 저택은 상아로 장식되었고 하려한 가구들로 치장하였다. 이러한 것은 왕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인 듯하였다(왕상22:39;시45:8). 그러나 부정부패로 재산을 모은 이스라엘의 상류계급도 이와같은 저택을 지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날이 이를 때에는 전부 다 파괴되고 말것이다.
B.두번째 메시지(4장)
두 번째 메시지에서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경제적인 착취를 일삼는 상류 계층의 부녀자들을 포로로 잡혀가게 할 것이며, 하나님의 계속적인 책망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인 위선을 일삼으며 완고하게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나라를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선포하였다.
1.경제적인 착취(4:1-3)
4:1-상류계층의 부녀들이 바산의 암소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요단 건너편 긴네렛(갈릴리)바다의 동쪽에 있는 바산은 풍부한 초장으로 유명하였으며(렘50:19;미7:14), 잘 길러진 가축들로도 유명하였다(겔39:18;시22:12).
아모스는 그들의 남편들이 독한 술을 그들에게 주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부인들도 똑같이 흥청거린다고 고발하고 있다. “가장”이라고 표현된 말은 히브리어로 일반적으로 가장을 뜻하는 말이 아니고, 좀처럼 쓰이지 않는 “주인”혹은 “주님”을 뜻하는 말이다. 아모스는 “주인”으로 추정되는 남편들을 꾸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종들처럼 순전히 아내들에게 복종하는 남편들에게 꾸지람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부인들이 가진 고급스런 입맛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착취하는 길뿐이었다(참조,암2:6-7;5:11-12;8:4-6. 또한 4:1에서 부녀자들이 압제를 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들이 남편을 지배하고 조종함으로 해서 그런 일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학대한다. 압제한다라는 단어는 무력한 사람들로부터 짜내기 위해서 위협하고 물리적인 상해를 가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4:2-3-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노가 얼마나 맹렬하며 그들이 벌받는 일이 얼마나 분명한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이 사회의 모든 부녀자들은 모두가 포로로 잡혀가든지 죽임을 당할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두고 맹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바뀔수 없는 선고에 대한 전적인 실재를 맹세하셨다. 한 적군이 성읍을 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리고 포로로 잡아갈 것이었다. 너무나 완전히 파괴되어 버리고 벽들 가운데 무너진 곳이 수없이 많을 것이기에 각 부녀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비상문을 향하여 도망가기보다는 성읍 밖으로 곧장 내버림을 당할 것이었다. 또한 바깥에서 갈고리가 달린 줄로 결박을 당하여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갈 것이었다. 끌려가는 것을 방해하거나 거부하는 자는 고기작살에 찍혀서 시장으로 팔려가는 고기와 같이 강제적으로 큰 작살에 찍혀 제거되어 버릴 것이었다.
이렇게 수모를 당하면서 하르몬 가까이에 행군 소리가 가까워오면 그들은 시체와 같이 버림을 당할 것이었다. “하르몬”은 앗수르로 가는 도상에 있는 바산 지역의 북쪽 첨단에 위치한 헤르몬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무서운 아이러니가 그들의 운명을 덮치고 있는 것이다. “바산의 암소”(암4:1)는 바산에서 죽은 고기로서 끝장을 보고 말것이었다.
2.종교적인 위선
4:4-5- 4절은 제사장이 순례자들에게 권고하는 것을 비꼬아서 하는 말씀이다.
일반적인 초대는 “지성소에 가서 경배하는 것”이었다(시95:6;96:8-9;100:2-4). 그러나 빈정대는 어투로 아모스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죄를 더하기 위하여 벧엘과 길갈로 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예컨대 그들의 하나님과 세운 계약을 깨뜨리기 위해서 말이다). 벧엘은 북왕국의 중심 성소였으며 그곳에서 왕이 예배를 드렸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먼저 들어간 일을 기념하는 돌들이 있는 길갈은 기원전B.C.8세기에 순례와 희생제물을 드리는 중심지로서 남아 있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희생제물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를 이 성소들에 가져다가 열심히 바치라고 명했다. 희생제물이란 짐승을 죽여서 바치는 것으로서 거룩한 음식의 한 부분으로 태워졌다(참조,삼상1:3-5). 수확물의 십일조는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해서 매 3년마다 따로 떼어두었었다(신14:28-29). 감사제물을 드리는 목적은 축복을 내려주시고 기도를 들어주신 데 대한 감사를 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례7:11-15). 자원하여 드리는 예물은 자발적이고 즐거운 마음에서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내적인 한신의 표시이다(례7:16;22:17-19).
그러나 아모스가 책망했던 이 모든 제사들은 허위로 변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행하는 모든 종교적인 행위는 다른 이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지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족속들은 그들의 헌신에 대하여 자랑했지만 일상의 행위들은 그들이 드리는 제사의 정신과는 위배되는 것이었다. 그들이 드리는 십일조의 일부는 훔친 땅에서 소출된 것들이었다. 그들이 드리는 짐승들은 부정하게 빼앗은 초장에서 풀을 먹고 자라 살이찐 짐승들이었다. 그들의 경배는 위선적으로 하나님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얻게 된 열매들로 드리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었다(참조,사1:10-20;미6:6-8).
3.회개하기를 거부함(4:6-13)
하나님께서 그들이 돌아오기를 누차 촉구하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6-11절) 백성들은 경제적인 착취 행위와 종교적인 위선 행위를 지속해나갔다. 그들이 끝내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을 내리기 위해서 그들에게로 오실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을 상면할 준비를 해야만 했고(12절)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13절).
4:6-고대 근동의 계약들은 군주가 백성들이 충성치 아니하고 불복종한 데한 저주와 벌을 내리는 일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6-11절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그에게로 돌이키게 하시려고 모세의 율법의 징계 조항들을 백성들에게 어떻게 실행하셨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29장에서는 백성들이 계약을 위반한 대가로 하나님께서는 기근(암4:6)이나, 한발(4:7-8)이나, 부실한 수확(4:9)이나, 재앙(4:10)이나, 전쟁에서 패배하는 일(4:10)등을 사용하신다고 경고했었다. 솔로몬 역시 하나님께서 백성들로 하여금 죄악으로부터 돌아서게 하기 위하여 이러한 방법들을 사용하신다고 예언하고 있다(왕상8:33-37), 이러한 재앙들을 통해서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설 것을 하나님께서는 바라고 계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것을 거부하였다.
다섯 번이나 거듭하여 하나님의 권고를 멀리하는 일은-그러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암4:6,8-11절)-백성들의 완고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계속적으로 거부하는 일이 이제는 쌓이고 쌓여서 무거운 죄악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기에 종국적으로 심판은 피할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텅빈 배를 움켜쥐게 내버려 두셨다(문자적인 의미는“이빨을 깨끗하게 하셨다”는 뜻이다. 즉 아무것도 씹지 못하게 되는 상태).굶주림과 기근이 온 땅, 즉 모든 성읍과 도시들에 고통을 더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다.
4:7-8-이러한 기근은 하나님께서 여름의 수확에 꼭 필요한 이른 봄비를 허락지 않으심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한발로 인한 것이었다. 이러한 시련은 때때로 선택적인 것이어서 어떤 성읍에서 비가 오지 않는 동안 어떤 성읍에서는 비가 내렸고, 또 어떤 지역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데 비해 어떤 지역에서는 비가 내렸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샘들과 저수지들이 바싹 말라버려서 사람들이 기진맥진하여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전전하면서, 그들에게 내리신 심판과 다른 도시에 베푸신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하여 다시 한번 숙고해보아야만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완고한 맘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일을 거부하고 말았다.
4:9-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농토에서 자라나는 채소와 과실들,
그리고 포도송이들을 내리치셨다. 해충을 들끓게 하고, 과실과 곡식이 열매를 맺기도 전에 죽고 시들어버리게 만들면서 아라비아사막으로부터 불어오는 열풍으로 무자비하게 내리치셨다. 기생충이 깜부기를 생겨나게 해서 푸르던 잎사귀들이 노랗게 변하고 말았다. 메뚜기떼가 무화과나무와 올리브나무의 잎사귀를 모조리 갉아 먹어버렸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회개하려 하지 않았다.
4:10-전쟁은 나라 전역에 재앙과 죽음을 몰고 왔다.
사람들이 방벽을 쌓은 성읍에 붐비거나 진에 모여들었을 때 전염병들이 생겨났고 곧 퍼져나갔다. 애굽에 대한 언급은 그들로 하여금 “재앙들”이 출애굽 당시 애굽의 가축들을 내리친 그것들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만들었다(참조,출9:1-7). 그러나 아모스 4:10에 언급된 군사적인 장면과 “염병”이라는 단어는 인간들 사이에 번져나가는 질병을 함축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아마도 여기에서 염병이라고 하는 것은 쥐들이 벼룩을 통해서 인간에게 옳기는 선 페스트일 가능성이 제일 크다. 애굽에 대한 언급은 “애굽에서 일어났던 재앙들과 같은 것들”로 해석하면 가장 좋을 것 같은데, 이것은 그 나라를 주기적으로 덮쳤던 악명높은 질병에 대한 언급이다.
전투를 벌이는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젊은 용사들과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뛰어난 사람들을 죽이셨다(적으로 하여금 죽이도록 하심). 그들의 말들과 마병들은 사로잡혀 버렸다. 그들의 진영은 대학살로 말미암아 죽은 자들과 썩어가는 시체들이 풍기는 악취로 코를 찔렀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다.
4:11-종국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성읍들 가운데 다소를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킬 때처럼 모조리 불태워 버리셨다.군대들이 포위하여 너무나 철저하게 파괴시켜 버렸기 때문에 어떤 성읍들은 그존재마저 소멸되어 버리고 말았다. 나라 전체가 존재조차도 사라질 위기에 직면했으며, 가까스로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조각과도 같이 위기를 모면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조차도도 완고한 그들에게는 별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4:12-이스라엘이 이처럼 하나님의 징계를 경히 여기고 죄를 지으며 반역을 계속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불길한 운명을 선고하실 것이었다.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3:11-15에 예언했던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온 땅을 황폐하게 휩쓸어 버리시겠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 나라로 하여금 이 무서운 순간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명령하셨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어떤 이들은 “예비하다”라는 단어를 이러한 재앙이 임하기 전에 회개하도록 촉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단어는 종종 전쟁을 준비하는데 사용되어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는 말은 치열하게 정면 대결을 하기 이전에 군대를 잘 정비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게 가장 합당할 듯하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에 직면하고 있었다.
4:13-아모스는 하나님께서 무서운 심판을 내리기 위해 가까이 오시는 것을 폭풍우가 점점 어둠을 더해가는 일에 비유하였다. 산들을 조성하시고 바람을 지으신 분께서 엉켜진 구름으로 높은 데를 덮으셨다. 어둠이 땅을 싸버리기 위해서 세력을 발하자 이른 새벽은 무시무시한 어둠으로 되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 소리가 진동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북쪽의 수도에 임하셨듯이 이 꼭대기에서 저 꼭대기를 “짓밟으시려는” 불길한 징조를 의미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각을 인간에게 계시하셨다. 즉 심판하시려는 뜻을 밟히 드러내셨다(암3:7). 이제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주 하나님으로서, 하늘과 땅의 권세들을 주관하시는 분으로서 그들에게 일을 시작하셨다. 그들에게 내려질 심판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C.세번째 메시지(5:1-17)
1.확실한 심판에 대한 묘사(5:1-3)
5:1-아모스는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죽음 때문에 애통해하는 그의 애가를 듣도록 권고하고 있다. “애가”는 통상 친척이나 친구, 지도자가 죽었을 때 장례를 치르면서 부르던 슬픈 곡조의 시조였다(참조,삼하1:17-27;3:33-34;대하35:25).. 그러나 예언자들은 또한 성읍과 백성들과 나라가 죽음에 직면했을 때도 이 시적인 형태를 사용하였다. (참조,렘7:29;9:10-1,17-22). 비록 이스라엘이 여로보암 2세의 영도하에 번영을 누리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내려질 심판이 너무도 명확했기 때문에 아모스는 마치 그일이 일어난 것처럼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듣는 자들에게 아모스의 슬픈 통곡은 마치 신문기사에서 자신의 사망 기사를 읽는 것처럼 귀에 거슬렸을 것이다.
5:2-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청춘의 원기로 만발했던 것으로 여겨졌던 이 나라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엎어지고 말았다. 장례식에서 부르는 노래에 나오는 “엎드러지다”라는 단어는 “검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짐”을 뜻한다. 이스라엘은 전투를 벌이다가 자신의 영토에서 죽임을 당했다. 시체들은 이리저리 뒹굴었고 하나님께서 그대로 내버려두셨다. “내버려두다”라는 단어는 종종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방치해두거나 포기하실 때 사용되었다(삿6:13;왕하21:14;사2:6). 이스라엘을 일으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이스라엘에게 생명을 회복시켜줄 자도 아무도 없었다. 도움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이스라엘을 단념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엎드러졌고 결코 다시 일어설 수가 없었다.
5:3-이스라엘의 군사들은 형편없이 죽어갔다.
천명씩 혹은 백명씩 군대를 파견했던 성읍들과 도시들은 전쟁에서 나갔다가 10%만이 살아 돌아오는 것을 목격했을 뿐이었다. 군대가 절반의 병사를 잃고서도 계속 버티며 싸움할 수가 있었다(삼하18:3). 그러나 만약 90%에 달하는 병사가 살해당했다면 그 나라는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소멸되어 버릴 것에 대하여 비통해하고 있었다.
2.개인적인 회개를 촉구함(5:4-6)
5:4-5-나라에 심판이 내려질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으나 개별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는 생명을 얻어 살아날 수가 있었다(6절). 그러나 그들은 성소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성소들도 이미 저주받은 운명이었기 때문이었다. 브엘세바는 유다 지경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분명히 이스라엘 족속들은 부족들끼리 연합하여 이룬 성소에서 예배드리기 위해서 국경을 넘어왔었다(참조,창21:31-33;26:23-25;46:1-4).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기념비를 세운 바 있던 길갈(수4장)이 이제는 나라를 두고 잡혀가는 상징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인 벧엘은 “아무 것도 없는집”혹은 “정신이 소멸되어 버린 집”이란 뜻을 가진 벧아웬으로 변하고 말았다. 히브리어에 있어서 성읍들의 이름 가운데 마지막 부분에“엘”이 붙으면 하나님을 의미하게 되는데 아모스는 이것을 “아웬”으로 바꾸어서 표현하고 있다.그런데 이것은 능력을 상실한 사악한 영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단어로서 “없음,텅비어 있음,존재가 없음”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비꼬는 아모스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찔렀을 것이다.
5:6-하나님께서 찾으라고 명령하시는 것(참조,4절)은 백성들이 의식적인 예배만 드릴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고 악을 미워함으로 해서(참조,14-15절)하나님께로 돌아설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살 수가 있었다. 즉 침입자들의 꺼지지 않고 맹렬하게 타는 불이 요셉의 집(북왕국)을 온통 휩쓸어 버릴 때, 하나님을 찾는 자들은 하나님의 긍휼 가운데서 남은 자로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15절).
3.법적인 불의에 대한 고발
5:7-7절은 문법적으로 10-13절과 연관되어 있으며 또 10-13절의 내용을 잘 반영해주고 있다. 8-9절의 말씀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능력에 초점을 맞추어 나아가고 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시는 첫 번째 이유는 법정에 만연해있는 부패성 때문이었다. 법정의 관리들은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져 짓밟아 버렸다. “공법”이라고 하는 것은 해당 사건에서 누가 혹은 무엇이 옳은 것이라고 바르게 선포할 수 있게 해서 사법적인 절차를 바로 수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정의”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목적을 지향하면서 그 사건에 관련된 사람에게 “바르게”처리해주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의인은 결백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릇되게 고소를 당해, 고통당하는 사람을 기꺼이 변호해주려고 했다. 정의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행위를 말하며 공법이라고 하는 것은 의로 말미암아 생겨난 결과를 뜻하는 것이다.
궁핍한 자를 위하여 “옳고”“의로운”일을 실행하는 것은 인간 행위에 있어서 보석과 같이 귀한 것이었으며(잠1:3;2:9;8:20;사1:21;5:7;28:17)., 그것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성임을 입증했다(창18:19;시72편;렘22:15-17) 공법과 정의는 희생제물을 드리는 일이나 예배를 드리는 행위보다도 휠씬 더 필수적인 것이었다(잠21:3;암5:23-24).그리고 그어느 곳에서보다도 법정에서 의와 정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법정에서 사회의 소외된 약자들이나 돈 없고 권세 없는 자들이 압제당하는 일로부터 보호를 받고 법 아래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욕심을 채우는 일을 통해서 공법을 인진으로 바꾸어 버렸다. “인진”이라고 하는 것은 문자적으로는 “쓴 쑥”을 의미하는 데 이것은 쓰기로 유명하며 일반적으로 유독성이다. 그러니까 법적인 체제가 잘못된 부분을 고쳐주고 고통당하는 부위를 회복시켜주는 약용식물처럼 기능하는 대신에, 나라 안에 독을 끼치는 치명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독성이 번져 나가는 데 대한 묘사는 5:10-13에 계속 이어진다.
4.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묘사
5:8-9-인간들의 이러한 그릇됨을 고발하는 가운데서 아모스는 우주의 만물을 움직여가시는 하나님과, 인간의 온갖 부정의를 뒤엎어 버리시는 하나님을 같은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묘성과 삼성을 만드신 분(참조,욥9:9;38:31-해가 진 후에 삼성이 떠오르는 것은 겨울이 시작됨을 알려주는 반면에 동이 트기 전에 묘성이 떠오르는 것은 봄이 다시 돌아옴을 알리는 것이었다), 새벽으로 어둠을 밝히시고 낮을 밤으로 바귀게 하시면서 밤낮의 24시간을 주장하시는 분, 물을 증발케 하셔서 바다의 물을 다시 모아지게 하시고 그물을 온 땅으로 나아가게 하시면서 자연의 현상들을 주관하시는 분-이모든 우주 전역의 위대한 통치는 바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신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이름은 여호와이시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이스라엘이 그계약을 충실히 이행하는지에 대하여 심판을 내리실 것이었다. 하늘에서 변함없이 통치하시는 이러한 하나님께서 땅도 또한 통치하신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 것도 그분의 훼파하시는 역사를 가로막아 설 수가 없었다. 아무리 강한 성벽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요새회된 성읍이라 할지라도 이것을 피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5.법적인 불의에 대한 고발(5:10-13)
5:10-13 10-13절은 7절에서 시작된 책망을 계속하고 있다. 1-17절의 대규모의 교차 대구법속에서 10-13절의 말씀은 다시 그안에서 교차 대구법을 형성하고 있다.
a.의로운 사람들을 협박함(10절)
b.가난한 자들을 짓밟음(11절상)
c.계약에 나타나있는 죄악에 대한 심판(11절하-12절상)
d.가난한 자들을 짓밟음(12절하)
a.의로운 자들을 협박함(13절)
그들은 불법적인 것을 법정에서 행하는 열심히 지나쳤기 때문에 그들의 불의를 책망하는 어떠한 의로운 심판도 몹시 싫어했으며, 결백한 자를 변호하면서 진리를 증언하는 이에 대해서도 경멸했다. 그들의 악독함과 협박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시기에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유익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13절).
이렇게 꾸짖거나 반대하는 세력들로부터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게 된 압제자들은 뇌물을 취하거나 가난한 자들로부터 정의를 수탈하면서 그릇된 재판을 자행했던 것이다. 부유한 토지 소유자들은 법적인 절차들을 교묘히 이용해서 가난한 자들을 짓밟고 땅을 빼앗았으며 그들이 계속해서 그땅에 소작농으로 남아있게 하려고 농작물에 높은 과세를 강제적으로 매겨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자들이 계약법을 범하는지를 알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가 얼마나 중한가를 알고 계셨다(문자적으로,그들의 행동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준에서 얼마나 “빗나가는가”이다). 그러기에 그들이 왕들을 위하여 돌로 호화주택을 짓고 이전에 가난한 자들의 소유였던 포도원을 빼앗아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었다.
그들을 통치하시는 주님께서는 계약의 법에 불복종하는데 대해서 약속하신 벌을 내리실 것이었다(신28:30,38-40). 그들의 욕심은 시적으로 표현된 정의와 맞부딪치게 될 것이다. 즉 그들이 가난한 자들을 헐벗게 했던 것과 꼭같이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헐벗게 하실 것이었다.
6.개인적인 회개를 촉구함
5:14-15-그러나 각 개인들을 죄악이 관영한 그 나라로부터 구분해낼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었다(참조,4-6절). 만약 백성들이 선한 것을 취하고 악을 버리게 된다면 그들은 살아날 수가 있었다. 만약 그들이 만연해 있는 부패한 악에 반대할 수 있다면, 즉 의로운 자들의 목을 메어다는 대신 악을 미워하게 된다면(10절), 법정에서 정의를 짓밟는 대신에 정의를 세워나간다면(11-12절),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그들의 심판자가 아니라 그들의 보호자가 되실 것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동거하심을 원하고 있는 바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정녕히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고 하는 외침은 이스라엘이 싸움을 벌일 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싸우시고(민23:21;신20:4;31:8;삿6:12;사8:10;습3:15,17).
그들이 역경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고 하는(시23:4;46:7,11)확신에 찬 부르짖음이었다. 그러나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그당시 상황 속에서 이와같은 외침은 한낱 하나의 공허한 슬로건에 불과했다. 아모스가 강조하기는 그들의 확신이 이제는 하나의 망상으로 되어버렸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그들과 함께”계시지를 않았다. 죄악을 범한 나라들은 버림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참조,암5:2). 그들의 외형적인 번영은 그들을 그릇되게 인도할 뿐이었다. 그것은 잘못된 안녕을 낳을 뿐이었다. 실제로, 전능자께서 심판을 통해 모두 쓸어버리시기 전의 짤막한 유예기간이 그들에게 주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만약에 동정을 구하는 마음으로 돌이켜서 주님을 찾았다면.
아마도 전능하신 주님께서는 여기에서 요셉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는 북왕국의 소수의 남은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
7.확실한 심판에 대한 묘사
5:16-17-아모스는 다시 애곡을 터뜨리며 처참한 죽음에 이를 일(1-3절)로 되돌아감으로 해서 세 번째 메시지를 마감하고 있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그들의 세력을 멸하신 연후에는 그땅이 상례행렬로 꽉 들어찰 것이었다.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거리에서(5:16)-모든 포도원에서(17절) 애곡하게 하며--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기 때문에 장례를 지내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조차 모자랄 것이다.
농부들까지도 애곡하는 일을 위해서 불려다니게 될 것이었다(불의로 압제를 당하던 가난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던 자들을 땅에 묻는 일에 부름을 받게 될 것이었다) .폭소를 터뜨리며 수확의 기쁨을 나누던(사16:10) 포도원은 통곡하는 소리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성읍의 모든 건물들과 들판의 모든 포도원에서 들려오는 애곡의 소리가 하나님의 심판의 표적이 어떠한가를 말해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가운데로 지나갈 것이기 때문에 애곡하는 소리는 땅을 가득히 채울 것이었다. 일찍이 애굽을 “지나가시기”위해서(출11:4-7;12:12-13) 이스라엘 지경을 “통과하신”그들의 하나님께서는 지금 그와 비슷한 죽음을 부르면서 그들을 “지나가실” 것이었다.
D.네번째 메시지(5:18-27)
이 네 번째 메시지에서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종교적인 위선으로 인해서 “여호와의 날”이 그들을 높이 고양시키는 날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포로로 잡혀가는 날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회개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재앙을 모면할 수가 있다.
1.확실한 심판에 대한 묘사(5:18-20)
5:18-화있을진저는 보통 죽은 자들에 대하여 슬픔을 토로하는 통곡이었다.
산 자에게 “오호라”라고 말하는 것은 곧 죽음을 선고하는 것을 의미했다(참조,암6:1;사5:8-24;10:1-4;미2:1-5). 이것은 또한 바로 당면했거나 다가오고 있는 재앙에 대하여 놀라서 지르는 탄성이기도 했다.
“오호라”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날을 간절히 갈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말이었다. 아모스는 그들의 열심있는 바램이 그릇된 기초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경고했다. 왜냐하면 그날은 어둠의 날이지 빛의 날이 아니기 때문이었다(참조,암5:20). 이스라엘은 생각하기를 “여호와의 날”은 이스라엘의 적대국들에 대한 가장 극적인 보복의 날이 될 것이요, 능력있는 통치자께서 그들의 편에 서서 싸우실 것으로 생각했다(사34:1-3,8;램46:10). 이스라엘은 생각하기를 그 날에는 자기들을 위협하던 나라들을 모든 재앙과 죽음으로 벌을 내리시면서 사악한 나라들 위에 진노를 내리실 것으로 여겼다(습3:8;슥14:1-3). 그 날에 이스라엘은 위험으로부터 영구히 보호를 받게 되고 땅위의 모든 나라들 중에서 존귀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사24:21-23;욜3장).
아모스의 말을 듣는 자들은 간절히 그날을 고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움이 그나라들 위에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임할 것임을 깨닫지 못했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신다고 잘못 믿고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정복하시는 그날에 이스라엘의 적들을 모두 물리쳐버리실 것이라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아모스가 선포했던 진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적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죄악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적대자가 되게 만들었다. 그러기에 “여호와의 날”은 기쁨의 날이 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날은 오히려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반역한 자들에 대하여 심판을 내리는 무서운 날이 될 것이었다.
5:19-그들이 그날에 경험할 일들은 사자로부터 피하다가 곰을 만나는 사람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두 번째의 위협으로부터 간신히 도망하여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으로 와서 벽에다 손을 대고 휴식을 취하는데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집에서 뱀이 도사리고 있다가 그의 손을 물어버릴 것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여 쉴만한 장소는 아무데도 없을 것이었다.
5:20-아모스가 반복하여 말하고 있는 여호와의 날은 빛이 없는 어둠의 날(욜2:1-2,10-11;습1:14-15). 즉 어둠이 온 천지를 덮어서 한 줄기의 빛이나 희망의 기미조차 없는 날이 될 것이었다. 구약성경의 예언자들은 또 하나의 밝은 여명을 간직한 “여호와의 날”을 말하고 있는데, 그날은 포로로 잡혀간 후에 징계를 당하고 고초를 체험한 남은 자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날이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회복시켜서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날을 가리키는 것이다(램30:8-11;호2:16-23;암9:11-15;미4:6-7;습3:11-20).
2.종교적인 위선에 대한 고발
5:21-22-하나님의 불같은 분노는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위선행위에 대해서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종교적인 축제들을 미워하셨고 또 경멸하셨다(미워한다는 의미를 반복하는 것은 아주 싫어하셨음을 나타낸다). 즉, 성소에서 해마다 축하를 베풀었던 무교절, 수장절, 장막절의 세 순례 축제를 미워하셨던 것이다. 그들이 예배를 드릴 때 바치는 제물들을 하나님께서는 참으실 수가(문자적으로는 냄새 맡으실 수가)없었다.
비록 그들이 끊임없이 번제와 소제를 하나님 앞에 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정당한 제물로서 받으시지 않으셨다. 비록 그들이 화목제를 하나님 앞에 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전혀 아는 체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종교적인 예배를 지긋지긋하게 여기셨다.
3.개인적인 회개를 촉구함(5:23-24)
21-22절에서 나오는 대명사 “너희의”와 “너희가”는 복수형인 반면에. 23-24절에 나오는 동사들 “그치다”와“흘릴지로다”는 단수형이다. 이것은 국가적인 책망으로부터(21-22절)개인적인 촉구로(23-24절)옳겨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5:23-하나님께서는 각 개인들에게 그들이 찬양하고 있는 듣기에 지겨운 소리들은 그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비파로 반주하는 노래도 듣기 싫어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코를 막으신 후에(21절하에“참다”라는 말은“냄새맡다”라는 의미를 가졌듯이),듣는 일마저 그만두셨다.
5:24-의식이나 형식적인 관례보다는 하나님께서는 공법과 정의를 절대적으로 지켜나갈 것을 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의 권리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에 결코 마르지 아니하는 물과 같이 공법과 정의를 실행할 것을 촉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매일의 삶을 온전하고 선에 가득차게 살기를 원하셨다. 내적인 의가 바깥으로 분명히 드러나는 일만이 이스라엘 족속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날에 다시 살아날 가능성을 줄수 있었다.
4.종교적인 위선에 대한 고발(5:25-26)
5:25-하나님께서는 희생제물과 의식들이 그들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모욕적인 일이었음을 상기시키면서 다시금 종교적인 위선에 대하여 책망하고 계시다. 애초에 시작부터 그들이 예배는 그릇된 길을 걸어왔다. 그들은 40년동안 광야생활을 할 때 황금으로 만든 송아지, 태양,달,몰록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거나 혹은 다른 신들에게 바쳤다.
5:26-그이래로 그들의 예배는 변질되어져서 “하늘의 천체들”을 경배하기 시작했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약법을 위반하는 것이었다(신4:19;17:3). 그들은 그릇된 경건함을 충족시킬 신전을 세웠고, 그들의 우상을 세울 받침대를 세웠고, 별을 그들의 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높이 숭앙했다. “신전”과 “받침대”라는 단어들은 하늘의 별들,특히 토성과 연합하고 있는 이방신들을 말한다.
5.확실한 심판에 대한 묘사
5:27-이러한 우상숭배와 그들 예배의 위선적인 성격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방향으로 향해있는 다메섹 밖으로 이스라엘을 내쫓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참조,4:3),“사러잡혀 가는 일”에 대한 공포는 싸움에 패하여 페허가 되는 것이나 볼모로 잡히는 일에 대한 공포보다 휠씬 더한 것이었다. 이것은 이스라엘로서는 약속의 땅, 즉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땅으로부터 옳겨가는 것을 의미했다. 결과적으로 사로잡혀 가는 일은 하나의 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만홀히 여겼던 계약법을 주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내리신 심판이었던 것이다.
E.다섯번째 메시지(6장)
다섯 번째 메시지에서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북쪽과 남쪽의 왕국을 모두 완전히 황폐하게 만드실 것이라 선포하면서 이스라엘이 심판을 당하게된 이유들을 다시 한번 지적해 주고 있다(1,14). 그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자만심에 가득찬 교만과 사치 가운데서 함부로 생활한 방종에 기인한 것이다.
1.그들이 자랑하는 자기만족(6:1-3)
6:1-화있을진저라는 말이 다시 언급되는데, 이번에는 이말이 신온에서 만족해하는 사람과 사마리아 산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었다. 아모스는 개탄하면서 남쪽의 수도인 시온을 포함하여 말하고 있는데 그까닭은 그들 역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러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메시지의 나머지 부분은 북왕국이 분별없이 자만하고 있는데 대한 책망으로 채워져있다.
사마리아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가장 뛰어난 나라를 통치하는 유명한 사람들이라고 여겼다. 그들의 나라는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강성했으며 그들은 가장 탁월한 시민들이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은 그들의 지도력과 국사에 대한 능력을 주시하고 있었다.
6:2-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고한 자들로 하여금 한때는 스스로 크다고 여겼던 성읍들로 가서 그들의 몰락으로부터 배우라고 명하셨다. 갈레(사10:9에서 갈로라고도 불리우고 있다)와 하맛은 북쪽 아람에 위치한 성읍으로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성읍들은 B.C.854-846사이에 있었던 살마네셀3세의 출정 동안에 앗수르에 의해서 짓밟히고 말았다. 팔레스틴에 있는 갓은 B.C.815에 아람왕이 하자엘에 의해서 초토화되었고 B.C.760에 유다왕 웃시야에 의해서 다시한번 무너졌다(왕하12:17;대하26:6).
이스라엘은 이러한 강대국들보다 방어할 준비가 더 잘 되어 있었는가?
그렇지 않다. 강대국들의 땅은 이스라엘의 영토보다 더 넓었는가? 그렇다. 그도시들과 그들의 관할 구역은 면적에 있어서 자만에 가득찬 사마리아보다 더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재앙을 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6:3-자신의 힘을 믿고 어리석게 자만에 빠진(참조,13절) 이스라엘은 흉한 날이 먼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모두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비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죄악에 가득찬 행동들로 인해서 순식간에 닥칠 공포에 점점 더 가까이 가고 있었다.
“공포가 통치한다”는 말은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서 포로로 잡혀가기 바로 전의 마지막 몇 년동안을 묘사한 것이다(왕하15:8-17:6). 여로보암 2세 이후의 31년 동안 여섯 왕들이 군림했는데 그들 가운데 셋은 정치적인 쿠테타로 정권을 장악했다가 암살당하고 말았다. 이 기간 동안의 공포와 흉포는 열왕기하 15:16의 잔악한 행위 속에 잘 반영되고 있다.
2.방종 속에서 누리는 사치
6:4-6-사마리아의 지도자들은 예언자가 일러주는 경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자신들의 몸을 썩어 문드러진 쾌락주의에 맡겨 버렸다. 그들은 상아로 화려하게 장식된 비싼 침대에 누워 있었다(참조,3:15). 그들은 화려한 향연을 배설해놓고 그들의 침상에서 “기지개를 켰다”. 히브리말로 기지개켜다라는 단어는 팔과 다리를 양편에다 늘어 뜨린 술주정뱅이나 포만하여 축 늘어진 사람의 무감각한 상태를 의미하고 있다.
그들은 어린 양과 우리에서 취한 송아지와 같은 가장 연하고 부드러운 고기를 먹으면서 미식을 즐겼다. 술에 취해 난장판이을 벌이는 자리에서 그들은 즉흥 음악을 연주하면서 그들 스스로가 다윗처럼 연주한다고 상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윗과는 너무나도 다르지 않는가! 잔으로 술을 마시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아서 이제는 대접으로 벌컥벌컥 마셔대고 있었다. 그들의 피부에는 가장 좋은 기름만을 발랐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향락을 누리는 사치스런 생활양식 뿐이었다. 그들은 요셉,즉 북왕국의 파멸이 다가오고 있는데 대하여 슬퍼하지 않았다. 그들은 풍전등화와 같은 국가의 운명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6:7-그러기에 열국 중에 가장 유력하고 그가운데 으뜸이 되는 자들(1절)이 맨 먼저 잡혀가게 될 것이었다. 그들의 향연과 마샤대는 일들은 이제 끝장이 날것이었다. 그들이 사로잡혀 가게 되면 흥청거리던 소리가 비통한 침묵으로 변하고 말 것이었다.
3.완전한 황폐(6:8-14)
6:8-이스라엘을 통치하시는 주님께서는 자기의 온전하심을 걸어 맹세를 하시며, 그땅을 완전히 멸망시켜 버리겠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들의 힘으로 나라의 강성함을 이루었다는 자만에 찬 말을 혐오하셨다(6:1,13). 요셉이라는 말과 같이 야곱이라는 말은 북왕국을 말하는 동의어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는 일로 가득찬 요세화된 도시들을 지긋지긋하게 싫어하셨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군왕으로서 그들의 성읍을 휘저의시며 그안에 있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다른 나라에 내어주실 것이었다.
6:9-10-너무도 완벽하게 하나님께서 그 성읍을 “넘겨주실 것”이기 때문에 10명의 사람이 칼을 피하여 한집안에 모여들지라도 그들은 역병에 걸려 다 죽을 것이다. 시체를 불 태우기 위하여 찾아온 친척이 만약 그 집안에서 생존자를 발견한다면 죽음을 너무나 두려워해서 그사람으로 하여금 두 번 다시 주님의 이름조차 거론하지 말도록 신신당부할 것이다(이것은 살육당한 데 대한 슬픔이나 분노 때문도 아니며 살아 남았다는 데 대한 찬미 때문도 아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 성읍을 무자비하게 훼파해버리신 그분의 이름을 언급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미처 보지 못했던 그들에게 시선을 모으는 결과가 되어서 그들 또한 죽임을 당하고 말 지경이었다.
6:11-정복하시는 군왕께서는 거주하는 사람들을 살해한 후에 그의 군대들에게 명하여서 크고 작은 집들을 산산조각내실 것이었다. 거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가난하든 부하든간에 모두 멸망당할 것이었다. 파괴하고 남은 부스러기들만 들판에 산재할 것이었다.
6:12-두개의 터무니없는 형상들이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전적으로 비뚤어졌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말들이 울퉁불퉁한 바위 위를 달리고, 또 이와같이 직각으로 곤두선 절벽에서 소를 몰아 밭을 간다는 것은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정의를 변하여 독이 되게 했으며 의의 열매를 변하여 인진이 되게 했다. 국가를 건전하게 보전하기 위하여 제정해 놓은 사법절차가 그 안에서 곪아터져 치명적인 “독소”가 되고 말았다. 세로운 활력과 기쁨을 불어넣어 줄 공평과 연합의 “열매”는 변하여 부패한 쓴 열매가 되고 말았다.
6:13-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세력이 강성했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기를 재앙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1-3절). 여로보암 2세의 통치하에서 그들은 강성한 세력을 앞세워 연전연승하였다(왕하14:25).그들은 요단 동편의 모든 지경까지 회복했었다. 그러나 아모스는 함락시켰던 도시 중의 하나인 “로드발”(요단 동편의 도시로 삼하9:4;17:27에 언급되어 있다)을 미묘하게 그리고 의도적으로 “로 드발”로 잘못 발음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뜻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또 아모스는 빈정대는 말로 그들이 함락한 또 하나의 도시 카르나임의 이름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이름의 문자적인 의미는 황소의 힘을 상징하는 ”뿔들“이다. 아모스는 그들이 정작 아무 것도 아님을 기뻐하고 있고, 또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부여잡은 힘에 대하여 그릇되게 생각하고 있다는데 대하여 조소를 던지고 있다.
6:14-그들의 무적의 태도는 그들의 강한 군왕께서 내리치심으로 말미암아 산산조각 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생각지도 못할 일을 행하실 것이었다.
즉, 한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벌한 채찍을 일으키셔서 그들을 “학대”하실 것이었다. 학대하다라는 단어는 묘하게도 애굽에서의 쓰디쓴 경험을 다시 불러 일으키며 또한 약속하고 있는 것이었고(출3:9), 사사들이 통치하던 시대를 회상하게 했다(삿2:18;4:3;6:9;10:11-12). 즉, 이스라엘은 또다시 노예 상태로 전략할 것이었다. 그들이 의기양양하게 집어삼켰던 북으로 하맛 어귀에서부터 긴네렛 바다에서 사해까지 펼쳐진 남쪽의 아라바 계곡까지의 지경은 침략하는 적들의 손에 넘어가버릴 것이었다(왕하14:25). 그때에야 이스라엘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누구의“힘”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었다.
1.심판의 결과(7:1-9:10)
3-6장에서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심판을 내리시는 이유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그것은 법적인 부정, 경제적인 착취,종교적인 위선,사치 속에서 누리는 방종,그리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기만족등이다. 이러한 일들을 자행함으로 해서 “전능하신 주 하나님”의 계약의 법을 어겼기 때문에 그의 군대를 거느리시는 군주께서는 반역하는 종들을 산산조각내실 것이었다(오직 아모스 3-6장 안에서만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란 칭호가 등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돌이키는 자들은 아직도 구원의 기회가 있었지만 온 나라는 앞으로의 불운을 돌이킬 수가 없었다.
7장에서 아모스는 다가오고 있는 이 심판으로 말미암은 결과에 대하여 묘사하기 시작하고 있다. 5개의 연속되는 환상을 통하여(7:1,4,7;8:1;9:1) 그는 하나님께서 온 지경과 건물들과 그백성들을 모두 파괴해 버리시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아모스는 이 부분(7:1-9:10)을 통털어 두 구절이 현저하게 눈에 뜨이는데 그것은 “통치하시는 주님”(7:1-2,4[2번],5-6;8:1,3,9,11;9:8)이라는 것과“ 내백성”(7:8,15;8:2;9:10)이다. 온 나라들을 다스리시는 주님으로서, 하나님은 그의 우주 안에서 역사하시는데 있어서 전적인 자유를 갖고 계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특별하신 은혜를 경히 여기는 백성들에 대하여 그의 약속을 이행하시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자유로우셨다(참조,3:2).
A.우글걸리는 황충(7:1-3)
7:1-다섯 환상의 첫머리에서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한해 중에서 가장 조심해야 될 시기에 우글거리는 황중을 실제로 준비하고 계시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히브리어 성경은 예언자가 이러한 일에 대하여 놀라는 장면을 표현해 주고 있다). 황충들은 왕의 분깃으로 할당된 곡식들을 수확한 후 곧바로 두 번째 곡물들이 자라나기 시작할 때에는 들판에서 별로 기세를 부리지 않았었다. 왕은 처음 수확한 곡물들을 군대에서 쓰는 동물들을 먹이기 위해서 바치도록 명령할 귄리가 있었다(참조,왕상18:5). “두번째의 경작”은 첫 번째의 곡식을 자른 후에 곧바로 자라나는 것이든 새로 뿌린 것이든 간에 여름의 건기가 닥치기 전에 하는 마지막 경작이었다. 만약 백성들이 이 기회를 놓쳐버리게 된다면 그들은 다음의 수확기까지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게 되어버리는 실정이었다.
황충의 떼는 고대 근동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재앙들 가운데 하나였다.
황충이 떼를 지어서 곡식들을 다 집어삼키며 땅을 휩쓸고 가는 때면 아무도 손을 쓸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절망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재앙이 지나가고 난 후에는 기근으로 인한 죽음과 고통들이 뒤따랐다. 이 재앙은 이스라엘에 강한 충격을 주었는데 그이유는 황충은 그들이 하나님의 계약의 법을 어긴 데 대해서 하나님께서 벌하시는 도구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신28:38,42;참조,암4:9;욜1:1-7).
7:2-아모스는 그의 환상 가운데서 황충들이 열매 맺은 농작물이든 야생하는 풀들이든 간에 모든 작물들을 깨끗이 집어삼켜 온 지경을 쓸어버리는 것을 보았다. 이 환상이 실제의 사실로 현실화된다면 온 나라는 죽음을 맞을 것임을 알고 있는 아모스는 주권자인 주님께서 이 백성들의 죄악을 사해주실 것을 간절히 탄원하게 된다.
비록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았지만, 비록 그에 대한 징벌을 내리심이 마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모스는 징계를 이 나라에 내리지 마시기를 간청하고 있다. 야곱은 결코 다시 살아날 수 없을 것이었다. 여로보암 2세의 통치하에 있던 의기양양했던 사람들은 스스로 안전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나(6:1-3,8,13;9:10). 하나님의 무서운 능력과 진노하심 앞에서 그들은 실제로 너무나도 작고, 가련하고, 불쌍한 존재들에 불과했다. 이스라엘을 “야곱”이라고 부름으로 해서 아모스는 아마도 하나님으로 하여금 아직도 야곱의 자손들에 의해서 거룩히 여김을 받고 있는 땅인 벧엘에 야곱이 거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일찍이 그에게 주신 약속을 상기 시키려 했을 것이다(창28:10-22;암3:14;4:4;5:5-6;7:13).
7:3-예언자의 간구하는 기도로 말미암아 마음을 돌이키신 주님께서는 관용을 베푸시고 황충이 생기는 일은 이루지 아니할 것을 약속하셨다. 나라가 용서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이 특별한 징계는 철회되었다. 아모스는 다시 용서를 구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위에 임할 심판들을 피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도를 함으로 해서 어떤 형태의 재앙을 허락하실 것인지에 대하여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B.집어삼키는 불(7:4-6)
7:4-두번째 환상을 통해서 통치하시는 주님께서는 아모스에게 두 번째의 공포, 즉 불에 의한 심판을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는 풀이 자라는 모든 땅들과 나무들이 바싹 말라버릴 때까지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 빛을 계속 강렬히 내리쬐게 하셨다. 그러자 불이 일어났고 그불길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온 지경을 휩쓸며 지나갔다(참조,욜1:19-20). 휩쓸어 가고 있는 지옥과 같은 현실과 싸워보려는 시도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왜냐하면 아주 깊은 곳이나 모든 샘들을 충만케 하는 지하를 흐르는 물조차 온 통 메말라버렸기 때문이다(창7:11;49:25;신33:13). 물의 근원들이 말라버림으로 해서 강과 시내들은 흔적조차 없어졌고, 온 땅을 몽땅 집어 삼키기까지 불길은 무시무시하게 맹위를 떨쳤다.
C.시험하는 다림줄(7:7-17)
1.환상(7:7-9)
세 번째로 선지자는 심판의 환상을 보게 되었다. 이번에 내려지는 심판은 변경할 수가 없었다.
7:7-8-주님께서 손에 다림줄을 가지고 계셨다.
다림줄이라고 하는 것은 건축자들이 벽을 쌓을 때 바르게 쌓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으로서 납덩이를 실에 달아 늘어뜨린 도구를 말한다. 다림줄은 기존의 벽돌이 잘 고정되어 있는지 아니면 헐어서 다시 지어야 할 정도로 기울어져 있는지를 시험하는 데도 쓰인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림줄을 설치하고 계셨다(이것은 하나님의 계약의 법과 이것이 요구하고 있는 것들을 의미하는 듯하다,참조,사28:17). 그 나라는 처음에 건축될 때에는 “다림줄에서 어긋남이 없게” 지어졌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할 정도로 그 선에서 어긋나버렸다. 하나님께서는 순식간에 그의 예언자가 내어놓은 탄원을 배척해버리셨다. 이미 사건은 결정되어버린 것이었다. 즉 다시는 하나님께서 용서 하지 않으실 것이었다. 그분의 심판이 행해질 형태가 이러했던 것이다.
7:9-다림줄로 시험해본 결과 이 일에 실패했기 때문에 그나라의 주요한 구조들, 즉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구조들은 허물어질 것이었다. 이상의 수없이 많은 높은 건물들(산당 성소들)이 무너질 것이었다. “야곱”이나“요셉”과 마찬가지로 “이삭”도 북왕국의 이름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벧엘이나 길갈같은 거대한 공식 예배성소도 무너질 것이었다. 여로보암 2세의 집(정치적인 왕조)은 하나님의 검이 내리침으로 해서 가루가 될 것이었다(왕하14:29;15:10).
2.사건(7:10-17)
10-17절에 기록된 사건은 두 가지의 방식으로 아모스의 세 번째 환상과 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7-9절). 첫 번째로는, 환상이 보여주는 바대로 즉각 역사적인 반응이 나타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1:1이후에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고 있지 않는 어떤 단어들이 환상과 사건 양쪽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그삽화가 계시에 즉각적으로 응하여 일어나는 것임을 가리키고 있다.
둘째로, 역사적인 사건은 환상과 연관되어져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번에는 개별적인 시험으로서 다림줄을 대어보는 일에 대한 확고한 설레임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환상은 이스라엘이 정치적인 그리고 종교적인 제도에 있어서 그 기준에 미달했기 때문에 기존의 것들은 헐고 다시 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마샤와의 사건에서 주님께서는 두사람, 즉 한 사람의 제사장과 한 사람의 예언자를 측량해보기 위해서 가까이 다가오셨다. 한 사람은 받아들여졌고 한사람은 그렇지 못했다. 한사람은 주님의 음성에 청종했고 다른 한사람은 그소리 듣기를 거부했다.
a.도전
7:10-13-아모스가 성소가 훼파되고 왕조가 붕괴되는 환상을 공식적으로 열거할 때 벧엘의 제사장인 아마샤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벧엘은 여로보암 2세가 B.C.931년 예루살렘과 그곳을 중심으로 왕국을 이룬 남왕국과의 관계를 끊었을 때 세운 두 지역 성소 가운데 하나이다(왕상12:26-33). 그가 통치하는 세력권 주의에 있는 10지파를 결속시키기 위해서, 여로보암 1세는 새로운 성전과 모조된 종교적 체계를 만들어 내었다. 송아지상과 제단을 만들고 제사장직과 벧엘에서의 축제를 만든 목적으로 여로보암1세가 통치하고 있는 북왕국으로부터 신임을 얻고 왕국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모스가 활약하던 시대에 벧엘의 성전은 왕의 성소였으며 또 왕국의 예배를 맡아 주관하는 곳이었다. 여로보암 2세가 경배드렸던 장소 이외에, 더욱 중요한 의미로 그곳은 왕국에 정치적인 공약을 규합했던 종교적 상징이었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다윗 자손들에게 헌신을 불러일으켰 듯이 벧엘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북왕국을 승인하시며 또 지지하신다는 뜻을 내포하게 되었다. 벧엘과 그곳의 예배 체제를 고발하는 것은 왕국의 근본 그자체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아마샤는 분명히 벧엘의 대제사장으로서 예배와 그것에 필요한 인사 관리를 책임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아모스가 성소와 왕국의 앞날에 대해서 예언하는 것을 들었을 때, 아마샤는 아모스가 북왕국의 중심 바로 그 자리에 서서 왕을 모반하고 있다고 책망하면서 여로보암에게 메시지를 보내었다. 아모스는 그 땅이 반복되는 재앙에 대한 메시지를 견디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여로보암에게 경고했다. 즉, 백성들의 풍기는 문란해질 것이고 또 얼마있지 않아 예언의 말씀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뜻을 달리하는 자들의 반란과 폭풍이 생겨날 것이었다.
가끔 예언자가 왕에 대하여 예언하는 경우에는 내란이나 왕조가 바뀌는 일이 뒤따라 왔었다(왕상11:29-12:24;16:1-13). 아마샤는 아모스를 정치적으로 혼란을 조장시키는 자로 보면서 아모스 예언의 신적인 근거를 전혀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아마샤가 여로보암에게 보내는 보고 서간에서 다음과 같은 무서운 말을 인용하여 머리말을 장식하고 있다(암7:11).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라는 말 대신에 아모스가 말하기를 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모스의 말을 인용하는 데 있어 그제사장은 “내가 일어나 탈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9절)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이 인간의 행위를 통해 드러날 것임을 시사하는 예언자의 말을 의도적으로 삭제해버리고 있다.
대신에 아마샤는 여로보암왕이 죽을 것임을 쓰고 있다.
그는 아모스의 예언들로 왕을 격분시키기 위해서 왕조가 망할 것이라는 사실(9절)을 여로보암 자신을 위협하는 말(11절)처럼 왜곡하여 전하고 있으며, 또 나라가 포로로 잡힐 것이라는데 가장 큰 강조점을 두고 있었다(11절). 아마샤는 아모스를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자로 생각하기보다는 현상에 대하여 위협을 주는 자로 보려고 했다.
그의 서신을 왕에게 급히 보낸 후에 아마샤는 꺼져라, 선견자야!
라는 강력한 명령형의 마로 아모스를 맞섰다. 벧엘에서의 자신이 통치하는 권위를 요구하면서 그 제사장은 아모스로 하여금 그의 고향땅인 유다로 되돌아가서 거기서 예언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선견자”(7:12)라는 말은 예언자라는 말의 다른 또하나의 명칭이었다(삼상9:9). 이명칭은 예언자가 내다보는 식견이나 “환상들”을 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붙이는 이름이었다(사1:1;2:1;옵1;미1:1;나1:1;암1:1).이러한 환상들은 예언자들에 의해서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보여질 수 있었다. 아마샤는 명예를 손상시키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아모스의 “환상들”에 대하여(7:1,4,7)반대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유다땅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고 말하는 그의 조롱섞인 말은 아모스가 예언의 말씀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적인 예언자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미3:5,11;참조,“두어 주먹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제마음대로 예언하는”겔13:17-20에 나오는 여자들).
아마샤의 말에 있어 강조점은 아모스가 활동하는 장소 혹은 지리적 위치에 있었다.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거기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왕의 제사장으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떠나가라”고 아모스에게 명령하고 있다. 그러나 아모스의 대답은 더 큰 권위를 가지신 분께서 이스라엘에서 예언하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었다.
b.응답(7:14-17)
7:14-15-아모스는 그의 사역이 순전히 하나님께서 미리 행하시는 일에 기인한 것임을 강조하면서 그것이 자기 임의대로 행하는 것임을 부인했다. 아모스는 선지자로서의 소명을 자기가 택한 일이 없었고 또한 선지자의 아들이 됨으로 해서 훈련을 받은 일도 없었다. 반면에 아모스는 목자로서 또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의 직책을 합당하게 생각했고 그일을 충실히 해나아갔었다. 그러나 어느날 주님께서 그를 양떼를 몰고 다니는 데서 부르시고-하나님께서 레위 족속이나 다윗을 부르시는 경우에도 동일한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주님께서(주님이라는 단어가 히브리 원어 성경에는 반복된다) 그로 하여금 가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 것뿐만 아니라 어디에서 그것을 말해야 할 것도 명령하셨다. 그권위는 아모스의 권위가 아니라 주님의 권위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말씀을 전해야 할 장소는 유다가 아니라 이스라엘이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고 아모스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예언해야 할 것뿐이었다.
7:16-17-이제 동일한 주님께서 하나님의 명령하심을 감히 금하는 제사장에게 말씀하셨다(참조,2:11-12). 아마샤가 그 나라에 대하여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와 그의 가족들은 그나라와 꼭같이 고통을 당해야만 할 것이었다. 포로로 잡혀가겠다는 하나님의 선고가 집행되어질 때, 그는 고향을 떠나 끌려가는 그무리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의 부인은 한때 명성을 떨치며 가장 유명한 자로 생활했던 바로 그 성읍에서 창녀노릇을 하며 생겨를 유지할 것이었다.
검이 아들과 딸들을 내리치게 되면 그의 후손들과 그의 이름은 땅에서 소멸되고 말것이었다. 그의 땅은 다른 나라 사람들 손에 의해서 줄 띄워 나뉘어질 것이었으며 그자신은 이방(문자적으로 “더러운”)땅에서 객이 되어 죽을 것이었다. 그는 그의 직책을 빼앗기고 성소에서 추방당하게 될 것이었고 이방 땅의 부정한 음식으로 더럽혀질 것이었다.
만약 아마샤가 다르게 응답했던들, 또 아모스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던들 그는 구원을 받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일대신에 땅의 군주와 결탁했고 자만에 가득 차서 안녕을 확실히 믿고 있었던 국가적 분위기에 빠져 들었고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자의 권위에 대하여 자신의 권위를 고집했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조용히 다림줄을 당기셨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더 이상 아마샤를 구원하시지 않으실 것이었다.
D.최후의 열매(8장)
1.환상(8:1-3)
8:1-2-통치하시는 주님께서 아모스에게 네 번째로 나타나셨다.
이번에는 어떤 사물을 보시면서 그에게 무엇인지를 물으셨다. 아모스가 그것은 여름 실과 한광주리니이다라고 대답하였을 때 주님께서는 “내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다”(문자적으로 “종국이 이러렀다”이다)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강조점은 “익은 과실”(1절)과 “때가 찼다”(2절)는 데 있다. “익은 과실”(카이츠)은,“여름 과실”혹은“끝물의 과실”로서 계절 중에 마지막으로 수확하는 과실이며 너무 무르익었기 때문에 곧 따서 먹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차버린 때”라고 하는 것은 “끝 시간”혹은 “잘라내어야 하는 시간”이란 뜻이며 “수확의 때”를 지나 죽음으로 이르는 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무서운 수확을 거둘 때가 가까워졌다 즉 종국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집행하는데 조금의 지체도 있을 수 없었고 남아있는 유예기간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주님께서는 더 이상 그들을 남겨두지 않으실 것이었다.
8:3-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생명을 앗아버리시는 그날에는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었다. 기쁨에 넘쳐 부르던 찬송소리와 주님 안에서 사졌던 신뢰가 변하여 울며 부르짖는 장송곡이 될 것이며 주님의 손으로 행하신 모든 일들로 말미암아 불신으로 변할 것이었다. 그들의 슬픔은 헤아릴 수 없는 정도로 많아질 것이며, 수많은 시체들이 모든 곳에 즐비할 것이었다. 살해당하는 일이 너무도 많아서 그 시체을 매장할 땅이나 사람조차 부족할 것이었다. 무수한 시체들이 땅에 버려져서 개나 새들의 먹이가 되고 땅의 토양을 북돋우는 거름으로 변할 것이었다(왕상14:11;렘8:2;9:22;16:4).
슬픔에 잠겼던 자들이 울음을 그쳤을 때, 그들이 눈물에 젖은 눈과 일그러진 얼굴을 들어 그들을 온통 삼켜버린 슬픔에 대한 이유를 찾게 되었을 때, 그들은 흐르고 있는 침묵만을 유일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을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하실 말씀이 없을 것이었다.
2.결과(8:4-14)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은 이두 결과, 즉 인간의 슬픔과 하나님의 침묵하심은 4-14절 안에 더욱 잘 묘사되어 있다.
a.인간의 슬픔(8:4-10)
그들의 욕심과 정직하지 못한 처서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땅에 전례없는 슬픔을 당하게 하셨다.
8:4-6-이스라엘에서 사업하는 자들은 단지 이를 추구하는 마음뿐이었고 그들이 궁핍한 자를 짓밟고 가난한 자들을 그땅으로부터 망하게 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주의하지를 않았다(참조,2:6-7;5:11). 돈을 벌겠다는 욕심에 사로잡혀서 사업가들은 매달 있는 월삭의 축제와 매주 안식을 지킴으로 해서 손해를 보는 것을 아까워했다. 그들은 이런 기회에 갖는 휴식이나 예배같은 것을 빨리 지나가도록 안절부절했으며(출20:8-11;23:12;31:14-17;34:21;민28:11-15;왕하4:23;사1:13-14;겔46:1-6;호2:11)그일이 끝나면 다시 미칠 정도로 장사하는데 몰두했던 것이다.
그들은 간사한 방법으로 그들의 이익을 더할 일들을 도모했다. 그들은 고객들이 지불한 액수보다 적게 주려고 되를 깎아 쟀으며 중량을 재는 추를 더 무겁게 하여 고객들로 하여금 더 많은 돈을 지불하게 했고, 저울의 눈금을 속여서 이익을 취하였다. 이러한 계약의 법을 어기는데 만족하지 않고(레19:35-36;신25:13-16;참조,잠11:1;16:11;20:10,23;호12:7;미6:10-11) 그들은 질이 나쁜 제품,즉 밀가루에 흙을 묻은 채로 쓸어모은 가루까지 섞어서 포장하여 팔아넘김으로 해서 그들의 죄를 더욱 중하게 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겪을 고통이나 가난한 자들이 그러한 가격을 지불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대신에 궁핍한 자들이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액수를 갚지 못할 때 강압하여 노예로 삼았었다(샌달 한 켤레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암2:6을 참조하라).
8:7-8-그러나 주님께서는 홀로 맹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행한 어떤 악한 일들도 영영 잊지 아니할 것이라 맹세하셨다. 그들의 양심 없는 욕심과 부정직 때문에, 그들이 계약의 법을 어긴 죄악 때문에 그들의 하나님깨서는 그들을 대적하여 행하실 것이었고 그래서 그땅은 그분의 발자욱 아래에서 두려워 떨 것이었다. 진동의 소리가 너무도 요란해서 온 땅이 하수의 넘침같이 솟아오르며 애굽강같이 뛰놀다가 낮아질 것이었다. 조각난 페허아 건물들은 주님이 다니신 길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로 하여금 슬피 울며 통곡하게 할 것이었다.
8:9-10-벌을 내리시는 그날은 어둠의 날이 될 것이었다.
왜냐하면 통치하시는 주님께서는 일식을 일으키실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태양이 정오에 사라져서 환한 대낮에 땅이 온통 어두워질 것이었다. B.C.784와 B.C.763에 있었던 일식은 아모스의 말씀을 듣는 자들로 하여금 이런 때에 당하게 되는 등골 오싹한 공포와 혼란을 상상할 수 있게 해 주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지진과(8:8)어둠 가운데서 갚으시는 주님께서는 그백성들을 처벌하는 일을 시작하실 것이었다(참조,5:2-3;6:9-10;8:3).
하나님께서 그들의 축제들을 장례식으로, 또 기쁘게 부르던 노래들을 슬피우는 통곡으로 변하게 하실 때에는 하나님의 검이 온 땅에 전례 없는 슬픔을 가져다 줄 것이었다(참조,3절). 생명을 잃는 일이 온 전역에 두루 일어나서 모든 가족들이 슬피 울고 모든 집들이 애곡하는 의식을 해야 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모두가 허리를 굵은 베로 동이게 할 것이었다(창37:34;삼하3:31;왕하6:30;욥16:15-16;단9:3).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슬픔의 표시로 그들의 머리를 깎게 하실 것이었다.
그들이 느끼는 슬픔의 정도는 아끼던 독자가 죽어서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가족들이 비통해 하며 애곡하는 것과 같을 것이었다(렘6:26;슥12:10). 그날이 끝난다고 해서 그들이 슬픔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슬픔의 절정은 그들을 또다른 괴로움의 날로 인도할 것이었는데 그것은 애곡하던 자신들이 죽음을 당하는 괴로움의 날을 말하는 것이다.다른 사람들 때문에 애곡했던 그사람들 자신이 죽을 것이었다.
b.하나님의 침묵(8:11-14)
인간의 이 슬픔의 고통은 하나님의 무서운 침묵의 면전에서 휠씬 더 참기 어려울 것이었다(3절).
8:11-12-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부하였기에(2:11-12;7:10-13)
이제 그들은 더 이상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을 것이었다. 통치하시는 주님께서 기근을 보내실 것이었는데 그것은 지난날처럼 양식이 없어서 기근이 아니라(참조,4:6)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일것이었다. 그들이 결사적으로 하나님께 부르짖겠으나 그분께서는 꿈으로도, 우림으로도,예언으로도(삼상28:6;참조,삼상3:1)응답하시지 않을 것이었다. 사람들이 이스라엘 전역을 돌아다니고 용서와 희망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주님의 말씀을 찾아 땅의 온 구석구석을 비틀거리며 다닐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찾지 못할 것이었다. 그들의 슬픔이 급기야는 그들로 하여금 “주님울 찾도록” 몰아갈 것이었으나(암5:4-6) 결코 주님을 발견할 수없을 것이었다. 때가 너무 늦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8:13-14-그날에는 아름다운 처녀나 젊은 남자라 할지라도,
즉 열심히 찾는데 잘 견디어 낼 수있는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갈증을 느낌으로 해서 피곤하게 될 것이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을 그릇 행한 자들이나, 사마리아나 단의 송아지 우상에 맹세하였거나 하나님의 능력의 상징인 브엘세바의 상에 맹세한 자들은 허세 속에서 가장 먼 길을 건너갈 것이었다. 사마리아의 우상은 부끄러움으로 불리워지거나, 더욱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죄로 불리워졌다. 왜냐하면 우상숭배는 사마리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게 했기 때문이다(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은 땅의 전역을 에워싸는 것이다;삿20:1;삼상3:20;삼하3:10;17:11;24:2,15;왕상4:25;대하30:5).그러나 그들의 간청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저 침묵하시고 계실 따름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었다(참조,암5:2).
E.갚으시는 주님(9:1-10)
다섯 번째이며 또한 마지막인 환상에서 아모스는 그분의 백성들 가운데 죄를 지은 모든 죄인들에 대하여 피할수 없는 검을 휘두르시는 우주의 통치자에 대한 증언을 하고 있다.
1.피할 수 없는 검(9:1-4)
9:1-가을에 행해지는 축제 때에 많은 무리가 벧엘에 있는 성소에 모이고 북왕국이 그들의 희생제물을 가지고 제단에 모일 때에(왕상12:31-33). 아모스는 주님께서 제단 곁에 서 계신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실로 “그들과 함께(암5:14)” 계셨는데 이것은 그들을 축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였다. 제단에,성소에,그리고 백성들에게 “종말”이 다가왔던 것이다(3:14;5:5-6;8:1-3).
주님께서 명령하시기를 기둥머리를 쳐서 지붕이 부숴지게하고 이것이 큰 문지방조차도 움직이게 하도록 하셨다. 문지방이라고 하는 것은 그위에 문설주가 세워지도록 만들어진 큰 바위덩어리였다(사6:4;겔40:6).
그의 환상 가운데서 아모스는 모여서 경배드리는 사람들의 대부분을 죽이면서 모든 구조물이 내려앉아 버리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왜냐하면 아직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의 목을 베어 버리라고 하시는 두 번째의 명령하심이 속히 임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아무도 도망 못하게, 즉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게 하시려고 작정하셨던 것이다. 그분께서는 살아 남아서 재앙을 면한 자들을 쫓아가서 검으로 그들을 죽이실 것이었다.
9:2-4-그들이 아무리 노력하여 우주 바깥에까지 도망친다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그들을 찾아 죽이실 것이었다. 음부로 내려갈지라도, 하늘로 올라가 숨을지라도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피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참조,시139:7-8) 그들이 갈멜산의 우거진 숲 속에 숨거나 혹은 석회석으로 만든 무덤 안에 피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찾아내어 끌고 나올 것이었다. 만약 그들이 주님을 피하여 바다의 밑바닥에 숨는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곳에 있는 뱀들조차도 그분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봄으로써 그곳 역시 주님께서 통치하고 계시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뱀은 바다에 사는 괴물로서,바다의 패배당한 권세를 의인화한 것으로 때때로 레비아단 혹은 라합이라 불리워졌다(참조 욥26:12-13;시74:13-14;89:9-10;사27:1;51:9-10). 원수들이 그들을 사로잡아 짐승처럼 다루면서 이방의 왕과 신의 권세아래 둔다 할지라도 아무도 그들을 하나님의 무자비한 검으로부터 보호해 줄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그들이 가는 어느 곳이든지 간에 주님께서 그들이 저지른 선이 아닌 악을 모두 감찰하셨기 때문에 도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모조리 훼파하실 것을 작정하셨던 것이다.
2.우주적인 통치
9:5-6-아모스가 제단 곁에서 뵌 분은 전능하신 주님, 즉 그능력을 피할 수가 없는 위대한 통치자이셨던 것이다. 이스라엘과 모든 다른 나라들 뿐만 아니라(1:3-2:16;3:9;9:4,7)광대한 우주를 통치하시는 분으로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우주 안에서 피할 곳이란 아무데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산들이 흔들리고 “녹아버리게”하시고,모든 땅을 나일강처럼 홍수로 덮어 버리시고,거민을 애통해 하도록 하시면서 단순히 손가락으로 땅을 만지시는 분께서는 분명히 땅의 어느 지점으로부터 반역자들을 “잡아내는” 능력있는 “손”을 가지고 계실 것이었다. 하늘에 높은 전을 세우신 그분께서는 하늘에 안식처를 찾는 자에게 이르지 못하실 리가 없었던 것이다(2절)
바다의 물결을 움직이시는 분께서는 그 가운데 거하는 것들을 복종시키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9:3). 주님이 바로 그분의 이름이신 것이다. 피조물에 대하여 그분께서 위엄을 가지고 통치하시며 능력으로 역사하신다는 말은 그 피조물들은 그분을 피해 도망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으로서(야훼,계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으로서)구분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지키시며 동시에 반역하는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었다. 의미심장하게도 아모스서에서 “그 이름은 여호외시니라”라고 선포하고 있는 두절은 그분께서 온 우주를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5:8;9:6).
3.공정한 처치(9:7-10)
9:7-그분의 백성으로서 지니고 있던 이스라엘의 특별한 위치도 그들이 벌을 받아야 하는 일로부터 구원해 줄 수는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통치 안에 있는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대하실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오늘날의 이집트 남방이나, 수단 전역, 그리고 북쪽 이디오피아에 해당하는 지역에 기거하고 있었던,구스 족속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스라엘 족속들의 생각으로 구스 족속은 이방사람들로 알려진 세계의 변방에 거주하고 있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 불과하였다.
하나님은 모든 나라를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건져내셨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주위를 싸고 있던 적들을 옯기시는 일을 역사 가운데 행하시기도 했다. 즉, 아마도 그레데 섬의 다른 이름이었을 갑돌로부터 블레셋 족속을 메소포타미아에 위치한 길로부터 아람 족속을 옮겨놓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들 두나라들의 운명을 돌이키지 아니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혀가도록 작정하셨던 것이다. 그분께서는 어느 곳에서든지 반역하는 일이 일어나면 벌하실 것이었다.
9:8-10-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다른 나라들 사이에 아무런 구분을 두지 않겠다고 선포하신 후에 엄하게 죽음을 선포하는 최후의 포고를 내리셨다. 8-10절의 말씀은 아모스에서 심판에 관하여 언급하는세 개의 마지막 진술들이다. 그것들은 땅위에서 범죄한 모든 사람들에게 내려질 공정하고도 명백한 죽음을 공언하고 있다.
비록 이 세언급들이 국가의 어두운 장래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또한 하나님께서 심판 후에 있을 회복을 말씀하고 계시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예고해 주고 있다(11-15절). 처음의 두진술들(8-9절)은 각각 남은 자들에 대한 간단한 암시로 마감하고 있다. 세 번째 진술(10절)에는 회복과 축복을 온전히 성취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뒤따르고 있다.
통치하시는 주님의 눈길(참조,4절)은 심판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입증하기 위해서 죄지은 왕국(이스라엘)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그분의 목적은 이스라엘을 땅의 표면으로부터 훼파시켜버리는 것이었다. 그들의 왕되시는 분께서는 그나라의 흔적조차 없어질 때까지 약속하신 저주를 온전히 내리실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 아니하실 것이었다. 약간은 살아남을 것이었다.일찍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었던 일이 지금 확실해 것이었다.
분명히 회개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이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느 민족들 가운데 흩어져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곡식이 체질하는 키 안에서 굴러다니듯이 공평하게 그들을 휘저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한 알갱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잘 만들어진 체가 티끌이나 먼지를 잘 걸러내듯이, 하나님께서도 걸러내는 작업을 통해서 그분의 백성들 가운데 의로운 사람들을 가려낼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말하고 있는 체는 작은 곡식 알갱이가 구멍을 통해 땅에 떨어지게 하면서 돌이나 흙덩이를 모으는 일에 쓰여지는 성글게 엮어놓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만약 그렇다면“알갱이”(문자적으로 “조약돌”을 의미함,참조,삼하17:13에 나타나고 있는 성벽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조각”).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도피하도록 허락되어져 있지 않는 죄인과 관련이 있게 되어 진다.
각각의 해석에 있어서 최후의 요지는 같은 것이된다.
즉, 하나님의 공정한 체질은 의인과 죄인을 구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모든 죄인들은 하나님의 피할 수 없는 점에 의해서 죽음을 당할 것이었다. 약속된 재앙이 그들을 훼파할 것이었므로 그들의 자만에 찬 자랑은 결국 끝장나고 말것이었다.
6.심판 후의 회복(9:11-15)
하나님의 모든 심판이 지나간 후에, 즉 그나라가 그죄 때문에 받아야하는 심판을 다 받고난 후에, 주님께서는 자비하심으로 그의 백성들을 새롭게 회복시키실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왕국인 북왕국과 남왕국 모두를 회복시키고, 그일을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들을 축복하실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저주를 돌이키시고 전에 없었던 번영을 그땅에 가져다 주실 것이었다. 흩어졌던 이스라엘은 그들의 본향으로 되돌아 오게 되고 그곳에서 안전하게 거하며 그땅의 선한 일을 즐거워하게 될 것이었다. 그때에 그들을 늘 “내 백성”이라 부르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너희 하나님”(암9:15)이라고 허락해 주실 것이다.
A.정책적인 갱생
9:11-그날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실 것이다. 앞장에서“그 날”이라 언급한 것은 어둠과 파멸의 날을 의미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시련이 모두 끝나는 날에는 “그 날”은 분명히 다시 갱생하는 날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북왕국과 남왕국의 다윗의 “천막”을 다시 일으키실 것이다.
찬막혹은 간단하게 몇 개의 골조를 세우고 거기에 작은 가지들을 대충 얹어서 만든 것이었다. 이것을 만든 우선적인 목적은 들판에 진을 치고 있는 군인들이나 위병 근무를 서는 초병들 혹은 순례하는 자들이 그아래에서 보호처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던 다윗왕조는 북쪽 10지파와 남쪽 2지파로 갈라짐으로 말미암아 무너지고 말았다(왕상12장). 이 천막이 두조각으로 갈라져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이 두 왕국을 다윗의 통치 하에서 연합하도록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참조,렘30:3-10;겔37:15-28;호3:4-5).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과거처럼 일으키시면서 기거하는 천막을 다시 세우시고 부서진 부분을 고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행하신 신실한 약속을 수행하실 것이다. 그것은 다윗의 후손일 일으키셔서 주님의 통치를 영원히 세우실 것이라는 것이다(삼하7:11-16,25-29).
B.국가적인 목적
9:12-다윗왕의 통치하에 있는 통일된 왕국은 곧바로 모든 이방인들에 대한 축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하여 영구적으로 적대하는 위치에 있었고, 그랬기에 이스라엘의 모든 적대국들을 대표했던 에돔은 다윗에게 하신 약속 안에서 분깃을 상속받는 자가 될 것이다.즉, 이스라엘은 에돔의 남은 자를 소유하게 될 것이다(참조,옵19절). 사실, 모든 족속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게 될 것이므로, 그들 모두는 다윗왕의 통치하에 있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의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그사람의 통치와 보호 아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하였다(참조,신28:9-10;삼하12:26-28;왕상8:43;사4:1;63:19;렘15:16;단9:18-19).
모든 족속들은 하나님께 속하기에 앞으로 다가올 왕국의 축복안에 거하게 될 것이다.
태초부터 하나님의 경륜은 이방 나라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그의 자손들을 통해서 “땅위의 모든 사람들”이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었다(창12:3).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다윗 혈통의 왕인 메시야가 빛과 정의를 가져다줄 것이고 주님을 아는 충만한 자식을 땅 위의 모든 족속들에게 베풀 것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확증하셨다(사9:1-7;11:1-13;42:1-7;45:22-25;49:5-7;55:1-5).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손이 통치하게 하시면서 왕국을 회복하실 때(천년왕국-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지상을 통치하신다는 신성한 천년간)에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모두가 주님의 이름을 간직하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의 회의 때에 야고보는 그가 살고 있는 당시에 이방인들이 구원받기 위해서 할례를 행하거나 유대인들처럼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증거로서 아모스 9:11-12의 말씀을 인용했었다(행15:1-20). 야고보는 이스라엘의 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참조,주님께서 성전이 파괴될 것이고 박해가 다시 시작되어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24:1-22;눅21:5:24,그리고 아직 회복은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참조,행1:6-7).
그러나 야고보는 아모스의 간결한 진술과 다른 예언자들이 여러 곳에서 폭넓게 말씀해 놓은 것들로부터 약속된 왕국이 올 때에 이방인들은 유대인과 유사한 사람들이 아닌 이방인으로서 그왕국의 분깃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이었기에 야고보는 교회가 이방인들에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내어버리고 유대인들처럼 살아야만 한다고 강여해서는 안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야고보는 교회가 아모스9:11-12에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을 이루어 간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그는 이방인들은 아직 오고 있는 천년왕국 때에 구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교회시대에 유대인들이 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C,번영,평화,그리고 영구성(9:13-15)
9:13-하나님께서는 모든 저주를 거두시고 그땅에 약속하신 축복을 회복시키실 때(참조,레26:3-10;신28:1-14) 그날은 이를것이다. 한발과 기근 대신에 영구한 번영이 있을 것이다. 전쟁의 소용돌이 대신에 이스라엘로 하여금 애쓴 열매를 즐거워 하게 하는 깨어지지 않는 평화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그날에는 땅이 너무도 기름지기 때문에(참조,시27:6)10월에 밭가는 자가 5월에 추수를 마쳐야만 하지만 곡식 베는 자를 구하지 못해 기다려야만 할것이다. 7월에 포도를 밟는 사람은 오랫동안 기다려던 쟁기 가는 사람이 일구어놓은 땅에 계속해서 새로운 씨앗을 뿌리며 경작하는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 포도로 나무는 산중턱에 너무나 많이 열매를 맺게 되어 언덕은 온통 새 술로 넘쳐나 흘러갈 것이다. 너무도 많은 즙이 포도송이에서 떨어지거나 저장한 통에서 흘러나와서 산들을 멀리서 볼때 부드럽게 된 진흙이 경사면을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9:14-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신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화 가운데서 살아갈 것이며 호화로울 정도의 풍요로움을 즐기게 될 것이다. 전쟁 때문에 야기된 혼란과 불안정은 지나간 일에 불과할 것이다. 그들은 집을 지을 것이며 거대한 성읍도 건축할 것이며 그 가운데서 살아갈 것이다. 그들은 먹고 마시며 그들의 손으로 행하는 노고 가운데서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다.
9:15-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본토에 심으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땅으로부터 두 번 다시 뽑히거나 포로로 잡혀가지 않을 것이다. 그땅에 이스라엘이 거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 이일들을 행하실 것이다“(암9:12). 왜냐하면 하나님은 과거에도 계셨고, 지금도 함께 하시며, 또 장차 올 그날에도 항상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