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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순의 종통 종맥 원문보기 글쓴이: ◐誠敬信◑
제 6 장
1. 구천상제(九天上帝)께서 병오년(丙午年) 정월(正月) 초(初)오일(日)에 종도(從徒)들에게 하명(下命)하시기를『오늘은 호소신(好笑神)이 올 것이니 너희들은 웃음을 조심(操心)하라 만일(萬一) 웃는 자(者)가 있으면 이 신명(神明)이 공사(公事)를 보지 아니하고 돌아가리라. 그가 한 번(番) 가면 어느 때 다시 올지 모르느니라.』하시니라. 여러 사람이 각별(恪別)히 조심(操心)하더니 뜻밖에 성백(成伯)이 웃으므로 일좌(一座)가 따라 웃으니라. 이날 하오(下午)에 성백(成伯)이 갑자기 오한대통(惡寒大痛) 삼일간(日間)을 일어나지 못하는데 상제(上帝)께서 어루만지시며 글 한 귀절(句節)을 읽으시니 고대 나으니라. 이때 상제(上帝)께서 날마다 물형약도(物形略圖)를 그리셔서 소지(燒紙)하시니라.
2. 이달 이십일(日)에 원일(元一)이 동곡(銅谷)에 와서 상제(上帝)께 배알(拜謁)하고 여쭈기를『제가 일찌기 궁감(宮監)이 되어 궁도조(宮賭租) 수백석(數百石)을 범포(犯逋)하였사온 바 그 궁(宮)에서 부안군수(扶安郡守)에게 위촉(委囑)하여 독촉(督促)이 자심(滋甚)할 뿐 아니라 장차(將次) 가산(家産)을 적몰(籍沒)하려 하므로 피신(避身)하여 왔나이다.』 하니 『그 일은 어렵지 아니하니 이곳에 머무르라. 오늘부터 칠십칠일(日)이 되는 날 너에 게 생문방(生門方) 도수(度數)를 붙여주리라.』 하시니라.
원일(元一)이 그 후(後)에 상제(上帝)를 모시고 서울을 다녀와서 집에 돌아가니 궁토(宮土)의 제도(制度)가 혁파(革罷)되고 따라서 궁감(宮監)들의 범포(犯逋)도 모두 면제(免除)되었으므로『까다로운 궁폐(宮弊)가 없어지고 여러 궁감(宮監)이 살길을 얻었으니 이 모두 천은(天恩)이로다.』 하며 감격하여 우니라.
3. 삼월(月) 초(初)이일(日)에 큰 공사(公事)를 행(行)하시려고 서울로 향발(向發)하실 때 형렬(亨烈)에게 하명(下命)하시기를 『전함(戰艦)은 순창(淳昌)으로 회항(回航)하리니 너는 지방(地方)을 잘 지키라.』하시니라. 다시 종도(從徒)들에게 각기(各其) 소원(所願)을 기록(記錄)하게 하시고 그 종이로 안경(眼鏡)을 싸서 간수 하신 다음 남기(南基), 성백(成伯), 갑칠(甲七), 광찬(光贊), 병선(炳善) 등(等)을 거느리시고 군산(群山)에서 기선(汽船)을 타기로 하시고 원일(元一) 등(等) 오인(人)은 대전(大田)에서 기차(汽車)를 타라고 명(命)하시며 『이는 수륙 병진(水陸竝進)이니라.』 하시니라.
또 원일(元一)에게 명(命)하시기를 『너는 입경(入京)하는대로 『천자부해상(天子浮海上)』이라 써서 남대문(南大門)에 붙이라.』 하시므로 원일(元一)이 봉명(奉命)하고 일행(一行)과 함께 대전(大田)으로 떠나니라.
4. 상제(上帝)께서 일행(一行)을 거느리시고 군산(群山)으로 발정(發程)하실 때 병선(炳善)에게 명(命)하셔서 『영세화장건곤위(永世花長乾坤位) 대방일월간태궁(大方日月艮兌宮)』을 외게 하시고 군산(群山)에 임(臨)하셔서 종도(從徒)들에게 하문(下問)하시기를 『바람을 걷고 감이 옳으냐 놓고 감이 옳으냐』하시므로 광찬(光贊)이 『놓고 감이 옳으리이다.』하고 아뢰니라. 이에 종도(從徒)들로 하여금 오매(烏梅) 오개씩(個式) 준비(準備)하게 하시고 기선(汽船)에 오르시자 바람이 크게 일어나고 배가 심(甚)히 흔들려 모두 멀미를 하므로 각기(各其) 오매(烏梅)를 입에 물게 하시니 안정(安定)되니라. 이날 밤에 갑칠(甲七)에게 하명(下命)하셔서 종이로 싼 안경을 북쪽방향으로 바다위에 던지게 하셨으나 갑칠(甲七)이 선상(船上)에서 방향(方向)을 분별(分別)하지 못하여 주저하는데 『왜 빨리 던지지 아니하느냐?』하시므로 『방향(方向)을 분별(分別)하지 못함이니다.』 하니 『번개치는 곳으로 던지라.』 하시니라.
갑칠(甲七)이 다시 올라가 살피니 문득 번개가 치므로 그제야 그 방향(方向)으로 던지니라.
이튿날 인천(仁川)에서 기차(汽車)로 서울에 임(臨)하셔서 모두 금연(禁煙)하게 하시고 광찬(光贊)의 인도(引導)로 황교(黃橋)에 사는 그의 종제(從弟) 영선(永善)의 집으로 행행(行幸)하시니라.
5. 원일(元一)은 서울에 먼저 당도(當到)하여 즉시(卽時) 『천자부해상(天子浮海上)』 이라는 글을 써서 남대문(南大門)에 붙이니 크게 장안(長安)이 소동(騷動)하여 인심(人心)이 흉흉(洶洶)하므로 조정(朝廷)에서는 엄중(嚴重)히 경계(警戒)하니라.
서울에서 십여일간(餘日間) 계시며 여러가지 공사(公事)를 행(行)하시고 벽력표(霹靂票)를 묻으신 후(後)에 종도(從徒)들에게 하명(下命)하시기를 『모두 흩어져 돌아가라. 십년(年) 후(後)에 다시 만나리라. 십년(年)도 십년(年)이요, 이십년(年)도 십년(年)이요, 삼십년(年)도 십년(年)이니라.』하시니라. 한 종도(從徒)가 여쭈기를 『사십년(年)은 십년(年)이 아니옵니까』하니 『사십년(年)도 십년(年)이야 되지마는 넘지는 아니 하리라.』하시며 모두 돌려 보내시고 오직 광찬(光贊)만 머무르게 하시다가 수일(數日) 후(後)에 다시 만경(萬頃)으로 보내시며 『통지(通知)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라.』 하시니라.
6. 서울에 행재(行在)하실 때 진고개 극장(劇場)에 가셔서 마술(魔術) 구경을 하시는데 입으로 화괴(火塊)를 먹고 긴 양지(洋紙)를 한(限)없이 뽑아내는 것을 보시다가 종도(從徒)들에게 『좌수(左手)를 허리춤에 넣고 있으라.』 하시니라. 그대로 하니 술사(術士)가 갑자기 흔도(昏倒)하므로 극장(劇場)이 크게 혼란(混亂)하여 헌병(憲兵)까지 출동(出動)하였으나 쉽게 진압(鎭壓)되지 않으니라. 상제(上帝)께서 냉수(冷水)를 머금어 품으시니 고대 소나기가 쏟아져 군중(群衆)이 스스로 흩어 지니라.
7. 영선(永善)의 이웃에 사는 오의관(吳議官)이 삼년(年) 전(前)부터 폐병(肺病)에 걸려 위기에 이르렀더니 상제(上帝)의 신성(神聖)하심을 듣고 배알(拜謁)한 다음 고쳐주시기를 간청(懇請)하므로 글을 써 주시며 『이것을 그대의 침실(寢室)에 갈무려두라.』 하시니라. 오의관(吳議官)이 그대로 하니 병증(病症)이 완쾌(完快)되니라.
8. 오의관(吳議官)의 아내가 청맹(靑盲)으로 소시(少時)부터 고생(苦生)하더니 상제(上帝)께 시료(施療)를 애걸(哀乞)하니라. 상제(上帝)께서 그 침실(寢室) 문(門) 앞에 임(臨)하셔서 양산(陽傘)대로 땅을 그어 돌리신 다음 소금 을 조금 먹이시고 해 쪼이는 곳에서 사성음(四聖飮) 한 첩(貼)을 달여 땅을 파고 붓게 하시니 그 눈이 고대 환하게 밝아지니라. 오의관(吳議官) 내외(內外)가 크게 감복(感服)하여 지성(至誠)으로 봉대(奉待) 공궤(供饋)하니라.
9. 이 때 광찬(光贊)이 상제(上帝)께 의복(衣服) 한 벌을 올리니 그 정교(精巧)한 침선(針線)을 칭찬 하시니라. 광찬(光贊)이 여쭈기를 『이 옷을 지은 여자가 범절(凡節)은 극가(極佳)하오니 앉은뱅이이므로 불쌍하나이다.』 하니 『내가 한 번(番) 가보리라.』하시며 광찬(光贊)을 거느리고 가셔서 『그대의 정성(精誠)을 보아 걷게 하리라.』하시니 그 여자(女子)의 굳은 다리가 절로 펴지고 힘을 얻어 자유(自由)로 보행(步行)하게 되니라.
10.이 때에 또 갑칠(甲七)이 설사(泄瀉)끝에 변비(便秘)로 십여일간(餘日間) 통변(通便)을 보지 못하여 고생(苦生)하니라. 마침 영선(永善)의 아우가 와서 과거(過去)에 순검(巡檢)이 되어 병욱(秉旭)을 잡으러 갔던 일을 말하니 상제(上帝)께서 들으시고 그 때 쓰던 군도(軍刀)를 가져오게 하셔서 영선(永善)의 침실 벽(壁)에 세우시고 갑칠(甲七)을 홀로 자게 하시며『오늘 밤에 담배 한 갑(匣)을 다 피워 연기(煙氣)를 내라.』 하시니라. 갑칠(甲七)이 새벽에 칼이 쓰러지는 소리에 크게 놀랬더니 변비가 절로 나으니라.
11. 서울에서 갑칠(甲七)을 동곡(銅谷)으로 돌려보내시며 하명(下命)하시기를 『네가 가서 형렬(亨烈)과 성백(成伯)으로 더불어 사십구일간(日間) 매일(每日) 지등(紙燈) 한 개씩(個式)을 만들고 또 각기(各其) 짚신을 한 켤레씩(式) 삼아두라. 그 신으로 천하(天下) 사람을 신게 할 것이요, 그 등(燈)으로 천하(天下) 사람의 어두운 길을 밝히리라.』 하시므로 갑칠(甲七)이 돌아와서 명하신 대로 하니라. 그 후(後)에 상제(上帝)께서 만성리(萬聖里)로부터 동곡(銅谷)에 임어(臨御)하셔서 짚신은 원평(院坪)장에 내다 팔게 하시고 지등에는 각각(各各)『음양(陰陽)』두 자(字)를 쓰신 다음 불사르시며 갑칠(甲七)에게 은행(銀杏) 두 개(個)를 구(求)하여 오라 하시니라. 갑칠(甲七)이 그 종형(從兄)에게서 두 개(個)를 구(求)하여 올리니 지등(紙燈) 사른 재 속에 넣으신 후(後)에 그 재를 모아 냇물에 한 줌씩(式)을 띄워내리시며 하늘을 보라 하시니라. 갑칠(甲七)이 우러러보니 재가 물에 퍼져 흐르는 모양(貌樣)과 같이 구름이 피어나니라.
12. 사월(月) 그믐에 상제(上帝)께서 동곡(銅谷)에서 형렬(亨烈)을 거느리시고 만경(萬頃) 광찬(光贊)의 집으로 가시니라. 이 때 최면암(崔勉庵)이 순창(淳昌)에서 의병(義兵)을 일으키매 마침 한발(旱魃)로 인심(人心)이 흉흉(洶洶)하고 의병(義兵)에 가입(加入)하는 자(者)가 날로 더하여 그 군세(軍勢)가 크게 떨치니라. 상제(上帝)께서『칠순노인(旬老人)의 위국충절(爲國忠節)은 가상(嘉賞)하나 천시(天時)가 불리(不利)하니 무가내(無可奈)로다.』하시고 세정(世情)을 걱정하셔서 비를 많이 내리게 하시니 각기(各其) 농사(農事)로 돌아가 인심(人心)이 가라 안도(安堵)되니라.
13. 상제(上帝)께서 만경(萬頃)에서 익산(益山) 만성리(萬聖里)로 가시며 종도(從徒)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번(番)에 면암(勉菴)의 동(動)으로 인(因)하여 천지신명(天地神明)이 크게 동(動)하였으니 이는 그 혈성(血誠)에 감동(感動)된 까닭이니라.
그러나 그 도수(度數)가 맞지 않으므로 한갖 생민(生民)만 사멸(死滅)에 몰아뜨릴 따름이니 답답한 일이로다. 더구나 이 번(番) 공사(公事)로 한해(旱害)를 물리치지 않았더라면 기근(飢饉)이 더하지 않으리요, 그의 만사(輓詞)나 미리 지어 두리라. 』하시며 종도(從徒)들에게 말슴하시기를 이러하니라.
『독서최익현(讀書崔益鉉)
의기속검극(義氣束劒戟)
시월대마도(十月對馬島)
예예산하교(曳曳山河교)』
14. 동곡(銅谷)에 행재(行在)하실 때 병선(炳善)에게 콩 약간(若干)을 주시며 『삼략(三略) 수장(首章)을 일주야간(晝夜間) 읽되 콩으로 그 산(算)을 하라.』하시니라.
병선(炳善)이 벽(壁)을 향(向)하여 읽으면서 콩으로 다하매 다 읽었느냐고 하문(下問)하시므로 그 콩 을 세어보니 꼭 일천개(千個)니라.
15. 동곡(銅谷) 근처(近處)에 사는 김도일(金道一)이 상제(上帝)께 거만(倨慢)하게 대(對)하더니 복통(腹痛)으로 수일간(數日間) 고생(苦生)하므로 상제(上帝)께서 감(鑑)하시고 배꼽 위를 만져주셨는데 그 후(後)로 배꼽 위는 통증(痛症)이 가셨으나 배꼽 아래는 여전(如前)하니라.
도일(道一)이 다시 와서 뵈고 만져주시기를 간청(懇請)하니 방(房)에 눕히시고 문(門) 밖에 나가셨다가 들어오시며 꾸짖으시기를 『네가 어찌 감(敢)히 어른 앞에 누웠느냐.』하시고 종도(從徒)들을 명(命)하셔서 축출(逐出)하시니라. 도일(道一)이 크게 성내어 돌아갔더니 병(病)이 곧 나으므로 그 꾸짖으심이 곧 약(藥)이었음을 깨닫고 이로부터 개심(改心)하니라.
16. 도일(道一)이 다시 요통(腰痛)이 풀리지 아니하여 지팡이를 짚고 상제(上帝)께 와서 뵈니『병(病) 나은 뒤에도 아직 지팡이를 짚고 다님은 어인 일이뇨.』 하시니라.
도일(道一)이 『요통(腰痛)이 나서 그러하나이다.』하고 아뢰니 광찬(光贊)을 시키셔서 그 지팡이를 꺽으매 요통(腰痛)이 곧 나으니라. 또 도일(道一)에게 『서천(西天)에 붉은 구름이 떠 있는가 보라.』하시므로 나가 보고 『붉은 구름이 떠 있나이다.』 하니 『금산(金山)을 도득(圖得)하기가 어렵도다.』 하시니라.
17. 형렬(亨烈)이 다리가 아파서 식음(食飮)을 전폐(全廢)하고 오한두통(惡寒頭痛)하는데 상제(上帝)께서 주역(周易) 육십사괘명(卦名)을 암송(暗誦)하게 하시므로 그대로 하니 곧 나으니라. 형렬(亨烈)이 그 까닭을 여쭈니 『팔괘(八卦) 가운데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이치(理致)가 있고 약(藥) 또한 음양오행(陰陽五行)의 기운(起運)에 응(應)한 연고(緣故)니라.』 하시니라.
18. 오월(月)에 상제(上帝)께서 광찬(光贊)을 거느리시고 임피(臨陂) 이봉현(李鳳鉉)의 집에 행행(行幸)하시고 광찬(光贊)은 봉현(鳳鉉)과 숙친(熟親)한 사이니라. 이 때 봉현(鳳鉉)은 습종(濕腫)으로 행보(行步)를 못하던 중(中)에 반가이 맞아 주효(酒肴)를 대접(待接)하면서 평소(平素)에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하고 구마(俱馬)하여 점잖게 출입(出入)하던 광찬(光贊)이 이날은 동저고리 행색(行色)의 손님과 동행(同行)하여 옴과 손님이 광찬(光贊)보다 연하(年下)임에도 존대(尊待)함을 이상(異常)하게 생각하더니 그 손님이 바로 상제(上帝)이시라. 상제(上帝)께서 봉현(鳳鉉)에게 술을 권(勸)하셨으나 병(病)을 빙자(憑藉)하고 받지 아니하니『그 병(病)을 낫게 하리니 염려(念慮)말고 받으라.』 하시고 광찬(光贊)도 또한 그리하므로 봉현(鳳鉉)이 드디어 대작(對酌)하니라. 술을 마신 후(後)에 상제(上帝)께서『다리를 냉수(冷水)에 씻으라.』하시므로 하명(下命)하신대로 하니 곧 나으니라.
19. 봉현(鳳鉉)의 이웃사람 강화운(康華運)이 창증(脹症)이 심(甚)하여 죽기만 기다리더니 그 부(父)가 상제(上帝)의 신성(神聖)하심을 듣고 와서 문(門) 앞에 부복(俯伏)하고 살려주시기를 애걸(哀乞)하니라. 상제(上帝)께서 감(鑑)하시니 몸이 크게 부어 배는 독과 같고 다리는 기둥과 같으므로 말씀하시기를 『부골(富骨)로 생겼도다.』하시며 손가락으로 부은 배를 누르시니 한 자나 들어가니라. 이에 사물탕(四物湯) 네 첩(貼)은 지어 두 첩(貼)은 문 밖에 흩게 하신 다음 글을 써서 소지(燒紙)하시고 환어(還御)하시니라. 이튿날 화운(華運)의 부(父)가 와서 기뻐하며 『병(病)이 크게 차효(差效) 있사오니 한 번(番) 더 보아주소서.』 하므로 다시 감(鑑)하시니 부기(浮氣)가 거의 내려있으니라.
상제(上帝)께서『미역국에 쌀밥을 말아 먹으라.』 하시고 환어(還御)하셨다가 이튿날 재림(再臨)하셔서 시렁에 얹었던 사물탕(四物湯)을 문(門) 밖에 흩으시고 활석(滑石) 한 냥중(兩中)을 방(房) 가운데 흩으시며 화운(華運)에게 『이렇게 앉아서만 지낼 것 이 아니라 걸어보라.』 하시고 억지로 걷게 하시더니 이로부터 완쾌(完快)하니라 칠일(日) 후(後)에 상제(上帝)께서 군둔리(軍屯里)로 향발(向發)하실 때 화운(華運)이 사금(謝金) 삼십냥(兩)을 올렸으나 받지 아니하시더니 굳이 올리므로 받으셔서 내왕행인(來往行人)에게 음식(飮食)을 사주시니라.
20. 어떤 사람이 아내의 중기(重期)에 이른 폐병(肺病)을 상제(上帝)께 구(求)하여주시기를 애걸(哀乞)하므로 그 집에 임(臨)하셔서 청홍색(靑紅色) 염료(染料)를 물에 풀어 그 사람에게 손으로 젓게 하시니 그 손이 염색(染色)되니라. 상제(上帝)께서『손을 씻지 말고 그대로 두면 그 염색(染色)이 질 때에 아내의 병(病)도 나으리라.』 하시더니 과연(果然) 그러하니라.
21. 그 이웃 이명택(李明澤)이 안질(眼疾)로 고통(苦痛)하다가 상제(上帝)께 고쳐주시기를 간청(懇請)하므로 술을 마시게 하시고 글쓴 종이로 심(心)지를 비벼 눈에 대시니 눈물이 흐르면서 곧 나으니라. 상제(上帝)께서 동천(東天)을 가리키시며 우러러보라 하시므로 모두 보니 백주(白晝)에 밝은 별이 나타나 있으니라. 말씀하시기를 『저 별의 정(精)이 눈에 옮았느니라.』 하시니라.
22. 봉현(鳳鉉)의 집에서 이어(移御)하실 때 말씀하시기를 『네 집에 폐(弊)를 많이 끼쳤으나 갚을 것이 없으니 너의 병쇠(病衰)한 노모(老母)를 세상(世上) 떠날때까지 건강(健康)하게 하여주리라.』 하시고 푸른 대 한 개(個)를 가져오게 하셔서 발에 맞는 길이로 끊으신 다음 글 쓴 종이로 감으셔서 문(門) 앞에 가로 놓으시고 모래로 그 양단(兩端)을 덮으신 후(後)에 『오늘 밤에 징조(徵兆)가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날 밤 그곳으로부터 서기(瑞氣)가 일어나 하늘에 뻗쳐 달빛과 같더니 이로부터 봉현(鳳鉉)의 노모(老母)가 팔십이 넘도록 무병강건(無病康健)하니라.
23. 김낙범(金洛範)의 아들 석(碩)이 폐병(肺病)으로 사경(死境)에 이르렀다 하므로 상제(上帝)께서 김덕찬(金德贊)을 거느리시고 그 집으로 임(臨)하셔서 석(碩)을 사랑으로 업어내어 엎드리게 하시고 허리를 밟으시며 『이제부터 네 병(病)이 나으리라.』하시고 일으켜 걷게 하신 다음 닭 한 마리를 삶아 먹게 하시니 이로부터 완쾌(完快)하니라.
24. 상제(上帝)께서 치병(治病)하실 때에는 가끔 병든 병자(病者)로 하여금 그 뱃속을 들여다보게 하시므로 들여다보면 환하게 보이는데 경락(經絡)과 장부(臟腑)의 병(病)난 곳을 낱낱이 가르쳐 주시니라.
25. 이 후(後)에 군둔리(軍屯里)를 경유(經由)하여 함열(咸悅) 회선동(會仙洞) 보경(甫京)의 집에 임(臨)하셔서 그 에게 대고(大鼓)를 대들보에 달게 하시고 종야 타고(打鼓)하시며 『병자(丙子) 정축(丁丑)』을 연달아 외시고 『이 북 소리가 세계(世界)에 울려 퍼지리라.』하 시니라.
26. 다시 보경(甫京) 등(等)의 종도(從徒)들을 거느리시고 경상도(慶尙道) 부산(釜山)에 행행(行幸)하셔서 『이곳 이 바로 산진수회처(山盡水廻處)며 세계(世界)의 관문(關文)이요, 후천선경(後天仙境)의 기지(基地)가 될 곳이므로 소 백두(白頭)를 잡아 공사(公事)를 보아야 하리로되 번거로우니 백우(白牛)로써 대신(代身)하리라.』하시며 성대한 치성(致誠)을 올리게 하시고 공사(公事)를 행(行)하시니라.
27. 또 군산(群山)에서 공사(公事)를 행(行)하시며 글을 써 소지(燒紙)하시니 이러하니라. 『지유군창지(地有群倉地) 사불천하허(使不天下虛) 왜만리(倭萬里), 청만리(淸萬里) 양구만리(洋九萬里) 피천지허(彼天地虛) 차천지영(此天地盈) 군기군창(君起群倉) 천하함몰(天下陷)』
28. 최면암(崔勉庵)이 순창(淳昌)에서 피금(披擒)되었다는 소식(消息)을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일심(一心)의 힘이 크니라 같은 탄환(彈丸)속에서 정시해(鄭時海)는 죽었으나 최면암(崔勉庵)은 살았으니 이는 일심(一心)의 힘으로 탄환(彈丸)이 범(犯)하지 못함이라. 일심(一心)을 가진 자(者)는 한 손가락으로 퉁겨서 만리(萬里)밖의 군함(軍艦)도 깨뜨리느니라. 』하시니라.
29. 상제(上帝)께서 김경학(金京學)의 집에 대학교(大學校) 도수(度數)를 정(定)하시고『학교(學校)는 이 학교(學校)가 크니라. 이제는 해원시대(解寃時代)이므로 천(賤)한 사람에게 도(道)를 먼저 전(傳)하여야 하리니 박수 육명(名)을 불러오라.』 하시니라.
경학(京學)이 봉명(奉命)하고 불러오니 건립(巾笠)을 벗게 하신 다음 각인(各人)의 사람 앞에 맑은 청수(淸水)를 놓게 하시고 거기에 절을 사배(拜) 시키신 후(後) 시천주(侍天呪) 세 번(番)을 외게 하시고 주소(住所)와 성명(姓名)을 물으시며 『세상(世上)이 다 아는 이름이냐. 』하시고 『청수(淸水)를 마시라 이것이 곧 복수(福水)요, 복록(福祿)이니라.』하시니라.
30. 하루는 종도(從徒)들에게 하교(下敎)하시기를 『귀신(鬼神)은 천리(天理)의 극(極)이 니 공사(公事)를 행(行)할 때는 반드시 귀신(鬼神)을 시켜 판단(判斷)하노라.』 하시고 글을 쓰셔서 형렬(亨烈)의 집 벽(壁)에 붙이시니라.
31. 경학(京學)의 집에서 백지(白紙)를 사지(肢) 오리듯 하셔서 벽(壁)에 붙이시고 물을 머금어 품으시니 빗방울처럼 떨어지니라. 이에 청수(淸水) 한 동이를 길어오게 하셔서 한 대접(大褋)씩 마시게 하시니라.
32. 동곡(銅谷)에 행재시(行在時)에 종도(從徒) 구인(人)을 시좌(侍坐)시키시고 말씀하시기를 『이제 도운(道運)을 전(傳)하리라.』 하시고 갑칠(甲七)에게 청죽(靑竹) 한 개(個)를 자의(自意)로 잘라오게 하셔서 그 절수(節數)를 세어보니 모두 십일절(節)이니라.
다시 명(命)하셔서 일절(節)을 끊어내게 하시며 『이 십절중(節中) 일절(節)은 대두목(大頭目)이라, 내왕(來往)과 순회(巡廻)를 마음대로 할 것이요, 다음 구절(節)은 도(道)받는 자(者)니라. 하늘에 별이 몇 개(個)나 나타났는가 세어보라.』 하시니라. 갑칠(甲七)이 밖에 나가 우러러보니 구름이 하늘을 덮었는데 다만 하늘 복판이 열려서 별 아홉 개(個)가 나타났으므로 그대로 아뢰니 『이는 도(道)받는 자(者)의 수효(數爻)를 응(應)함이니라.』 하시고 또 『도운(道運)의 개시(開始)가 초장봉기지세(楚將蜂起之勢)를 이루리라 그러나 대두목(大頭目)은 오직 일절(節) 뿐이니라.』 하시니라.
33. 십월(月)에 야소교당(耶穌敎堂)에 임(臨)하셔서 모든 의식(儀式)과 교의(敎義)를 친감(親鑑)하신 종도(從徒)들에게 하교(下敎)하시기를 『별반(別般) 취(取)할 것이 없느니라.』 하시니라.
34. 하루는 종도(從徒)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世上)이 학교(學校)를 널리 세워 사 람을 가르침은 장차(將次) 천하(天下) 문명(文明)을 크게 일으켜 천지사(天地事)를 도모(圖謀)하려 함인데 현하(現下)의 학교교육(學校敎育)이 학인(學人)으로 하여금 비열(卑劣)한 공리(功利)에 빠지게 하니 그러므로 판 밖에서 성도(成道)하게 하느니라.』 하시니라.
35. 상제(上帝)께서 함열(咸悅)에 즐겨 임(臨)하시며 말씀하시기를『이곳은 만인함열(萬人咸悅)의 뜻을 취(取)함이니라.』하시니라. 삼계공사(三界公事)를 행(行)하시며 순행(巡幸)하신 곳은 전북(全北) 칠군(郡)이 위주(爲主)니 곧 전주(全州), 태인(태인), 정읍(井邑), 고부(古阜), 부안(扶安), 순창(淳昌), 함열(咸悅)이니라.
36. 남기(南基)가 일진회원(一進會員)이 되어 상제(上帝)의 가입(加入)을 강권(强勸)하며 회원(會員) 십여인(餘人)과 함께 상제(上帝)의 두발(頭髮)을 늑삭(勒削)하고자 하여도 베어지지 않더니 손수 머 리 한 갈래를 베시며『내 이것으로써 여러 사람을 해원(解寃)시키노라.』하 시니라. 다시 남기(南基)에게 탈회(脫會)를 권(勸)하시며 『네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면 일 후(日後)에 뉘우쳐도 어찌할 수 없으리라.』하시니라. 과연 그 후(後)에 패가망신(敗家亡身)하고 몸을 망쳐 그 유족(遺族)이 유리(流離)하니라.
37. 어느날 전주(全州) 문태윤(文泰潤)이 와서 뵈매 상제(上帝)께서 그 보자(褓子)를 보시고『 이 방(房)은 한적(閑寂)한 공부방(工夫房)이며 사방(方)에 의요(義擾)가 있어 정찰(偵察)이 심(甚)하므로 속 모르는 사람은 함부로 들이지 아니 하느니 그 보자(褓子)를 풀어보라.
그 속에 반드시 전쟁(戰爭)의 장본(張本)이 있으리라.』하시니 태윤(泰潤)이 재삼 고사(固辭)하다가 부득이(不得已) 끄르자 그 숙질간(叔姪間)의 재산관계(財産關係)의 송사문서(訟事文書)가 들어 있으니라. 태윤(泰潤)이 여쭈기를 『이런 불미(不美)한 일이 있으므로 선생(先生)님께 해결책(解決策)을 여쭈러 왔사오나 부끄러워 차마 아뢰지 못하였나이다.』 하매 『전쟁은 가족전쟁(家族戰爭)이 크니 한 집안 난리(亂離)가 온 천하(天下)의 난리(亂離)를 끌어내느니라.』하시고 글을 써서 봉(封)하여 주시며 『이 봉서(封書)를 조카의 집에 가서 소지(燒紙)하라.』하시므로 그대로 하니 과연(果然) 화해(和解)되니라.
38.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풍운우로(風雲雨露) 상설뇌전(霜雪雷電)을 일으키기는 쉬우나 오직 눈 뒤에 곧 비 내리고 비 뒤에 곧 서리치게 하기는 천지조화(天地造化)로도 오히려 어려운 법(法)이라. 내가 오늘 밤에 이와 같이 일을 행(行)하리라.』 하시고 글을 쓰셔서 소지(燒紙)하시니 과연(果然) 눈이 내린 뒤에 비오고 비가 개이자 곧 서리치니라.
39. 이달 그믐에 원일(元一)이 건재약방(乾材藥房)을 개설(開設)하고 약(藥)을 사러 공주(公州) 약령(藥令)에 갈 때 상제(上帝)께 뵈고 여쭈기를『지금(只今) 길이 질어서 행인(行人)의 불편(不便)이 심(甚)하오니 원(願)하옵건대 길을 얼게 하옵소서.』하니 하락(下諾)하시고『술을 가져오라.』하시므로 봉행(奉行)하였더니 그날 밤 길이 얼어 붙어 세말(歲末)까지 녹지 아니하니라.
40. 형렬(亨烈)의 집에 행재(行在)하실 때 하루는 해가 제비산(山) 봉우리에 반(半)쯤 떠오르는데 상제(上帝)께서 종도(從徒)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러한 난국(難局)에 처(處)하여 어찌 정세(靖世)의 뜻을 품지 않으리요, 내 능(能)히 일행(日行)도 멈추는 권능(權能)을 너희에게 보이리라.』하시고 축인 담배 세 대를 갈아 피우시는 동안 해가 산전(山巓)을 솟아오르지 못하다가 담뱃대로 땅을 치시니 해가 문득 수장(數丈)을 솟아오르니라.
41. 김익찬(金益贊)을 거느리시고 전주(全州) 세천(細川)으로 행행(行幸)하실 때 왜인(倭人) 사냥군이 기러기떼가 앉은 곳을 향(向)하여 총을 겨누고 쏘려 하므로 상제(上帝)께서 말씀하시기 를『잔학(殘虐)하도다 군자(君子)가 차마 볼 일이 아니니라.』하시고 왼 발로 땅 을 한 번(番) 구르시니 그 총(銃)이 쏘아지지 아니하니라. 사냥군이 이상(異常)히 여겨 총(銃)을 검사(檢査)하는 사이 기러기 떼가 다 날아가므로 이에 걸음을 옮기시니 총(銃)이 그제야 발사(發射)되니라.
42. 상제(上帝)께서 전주(全州) 이서면(伊西面) 불가지(佛可止) 김성국(金成國)의 집에 행재(行在) 하실 때 텃밭에 꿩떼가 많이 내리므로 성국(成國)이 덕찬(德贊)과 함께 꿩을 잡으려고 흘치기를 많이 만들어 그 밭에 놓으니라.
상제(上帝)께서 말씀하시기를『너희는 잡을 공부(工夫)를 하나 나는 살릴 공부(工夫)를 하느니라.』 하시더니 이로부터 꿩떼는 많이 내렸으나 흘치기는 한 마리도 걸리 지 아니하니라.
43. 불가지(佛可止)로부터 전주(全州)로 행행(行幸)하실 때 동남풍(東南風)에 대우(大雨)가 몰려오므로 상제(上帝)께서 막대기로 길가운데 금을 그으시니 빗줄기가 나뉘어서 한 갈래는 동(東)쪽으로 한 갈래는 서(西)쪽으로 흩어져 내리니라.
44. 응종(應鐘)과 갑칠(甲七)을 거느리시고 원평(院坪) 앞 다리를 지나시며 왼 발로 한 번(番) 구르시고 길 가에 서시니 말탄 사람 삼명(名)이 다리 건너편(便)에서 오다가 말발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못하니라.
한 사람이 걸어서 다리를 건너와 상제(上帝)께 절하고 애걸(哀乞)하매 발걸음을 옮기시니 말도 비로소 움직이니라.
45. 하루는 금산사(金山寺)의 미륵금불(彌勒金佛)과 기대(基臺)를 감(鑑)하시고 종도(從徒)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과시(果是) 증정일체(甑鼎一體)며 양산도(兩山道)로다.』하시고 화위전녀(化爲全女)와 주초위왕(走肖爲王)을 하교(下敎)하시니라.
46. 또 태인(泰仁) 도창현(道昌峴)을 순행(巡幸)하시다가 종도(從徒)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곳이 군신봉조지국(群臣奉詔之局)이며 상유도창(上有道昌)하고 하유대각(下有大覺)하니 백의군(白衣君) 백의신(白衣臣) 운회지지(運廻之地)니라.』하시고 그 길 옆에 단장(短杖)을 꽂아 놓으시며 『이 단장목(短杖木)은 인가목(人架木)이라. 이 나무가 살아서 후일(後日)에 곤봉(棍棒)감이 되면 반드시 인명피해(人命被害)가 있으리라.』하시 더니 과연 그것이 살아서 자라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