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Asia Sentinel 2007-3-1 (번역) 크메르의 세계
[르뽀] 태국 왕실의 자산운용 방식 (상)
Thailand's Royal Wealth : Part 1
기사작성 : 현지 특파원
방콕의 중심가에 거주하는 한 남성의 이름을 솜차이(Somchai)라 부르기로 하자.
현재 60세의 솜차이 씨는 현재 거주하는 집을 거의 30년 전에 스스로 설계해서 건축했다. 그는 해당 대지를 소유하지는 못했고, 토지 소유주에게 단돈 400바트(11달러)를 내고 임차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다른 곳에 살고싶어 한다. 그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그는 본지에 답하기를, "기한이 끝나면 이 땅에다 다시 집을 짓고 싶지 않다. 불안하다. 언제든 쫒겨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는 자발적으로 떠나고 싶지는 않다.
솜차이 씨가 사는 집의 땅주인은 바로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라마 9세) 태국 국왕이다. 실제로 방콕의 알짜배기 부동산 대부분은 태국 왕실의 소유로, 국왕의 개인적 자산운용을 담당하는 "왕실재산 관리국"(Crown Property Bureau: CBP)을 통해 관리된다.
솜차이 씨는 수십 년 전에 CPB 관리에게 뇌물을 먹이고 집을 지었다. 솜차이 씨가 만일 주택을 팔게 되면 판매대금의 75%는 CPB로 귀속되며, 저축도 별로 없이 은퇴한 그가 퇴거를 한다고 해도 마땅히 더 주어지는 돈도 없게 된다. 그는 "이 동네 사람들 모두가 쫒겨날까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너무 은밀한 이야기라 말을 하지도 못한다"고 했다.
태국의 CPB에 관한 정보들이 거의 공개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하자면, 태국에서 군주제와 관련된 두려움에 대해 설명해야만 하는 먼길을 돌아가야만 한다. 푸미폰 국왕의 황금빛 장삼은 CPB에 대한 공개적 비판에 대한 보호막이 되고 있고, 이러한 현대적 형태의 봉건주의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조차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CPB는 그 어떤 기관보다도 방콕의 모습을 결정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했고, 최근 수년 간에는 그 속도에 가속을 붙이고 있다. 1997년의 "아시아금융위기"(Asian Economic Crisis) 때 발생한 막대한 손실로부터 회생한 CPB는, 방콕 중심지의 토지들로부터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공격적인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그곳에서 몇 대를 이어 살아온 가난한 소상인들이나 임차인들이 밀려나기도 했다.
대형 쇼핑몰과 호텔들, 그리고 사무용 빌딩들이 끝없이 건설되는 와중에도 CPB의 활동에 관한 공개적 비판이나 토론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관료들은 입을 열 때마다 푸미폰 국왕이 주창했다는 "충족경제론"(sufficiency economy)을 찬양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푸미폰 국왕의 "충족경제론"은 겸허함과 분수에 만족함, 그리고 적응함을 주창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경제 불황에 최고도로 적응하는 법을 찾아낸 CPB는, 생득적 재산인 부동산을 이용하여 막대한 현금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토지 소유권의 행사
"충족경제론"에 관한 담론은 방콕의 유서깊은 "라차담는 거리"(Ratchadamnoen Road, ถนนราชดำเนิน)를 "아시아의 샹젤리제"(Champ Elysees of Asia)로 불리는 쇼핑가로 만든다는 계획으로 변모했다. "아시아의 샹젤리제"란 명칭은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당시 총리에게는 웃기는 일로 비쳐졌고, 결국 왕당파 군부 지도자들이 "2006년 쿠테타"를 일으켰을 때, 탁신이 국왕의 "충족경제론"을 확고히 파지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명분이 되기도 했다. CPB는 이 일대의 많은 부분을 소유하고 있었고, 2004년에 만료되는 임대차 계약 137건에 대해 계약을 갱신하지 않을 것이라 발표했다.
CPB의 새로운 전략에는 주요한 지역들을 쇼핑센터와 럭셔리한 주거단지로 재개발하는 것도 포함됐다. CPB는 "센탄 빠따나"(Central Pattana) 그룹과 30년간의 리스 계약을 체결하여, 칫롬(Chidlom) 역 인근에 위치한 "월드 트레이드 센터"(World Trade Centre)를 호텔, 쇼핑몰, 사무용 공간이 결합한 거대한 단지인 "센탄 월 타워"(Central World Tower)로 재개발했다. 또한 싱가포르의 부동산 회사인 "캐피털랜드"(CapitaLand, 嘉德置地)와도 손을 잡고 태국 내 자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CPB는 "센탄 월" 외에도 "MBK 쇼핑센터"(MBK Shopping Center), "시암센터"(Siam Center), "시암파라곤"(Siam Paragon) 등 방콕 최대의 쇼핑몰 집산단지의 토지도 소유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유럽 기업이 대주주로 있는 "켐핀스키 호텔 리조트"(Kempinski Hotels and Resorts)의 대지도 CPB 소유로, "시암파라곤" 옆에 새로운 럭셔리 호텔로서 들어설 것이다.
최근 수년 동안 CPB는 여러 전통시장들의 오랜 주민들에게 갑작스런 퇴거통보를 내보내 충격을 주었다. 이들 주민들은 과거 "국왕 폐하의 땅"에서 항시 안락함을 누리고 있었다. "차이나타운"에서도, CPB 소유의 "서이 르언릿"(Soi Luenrit, ซอยเลื่อนฤทธิ์)에서 3대째 거주하던 중국계 태국인들(화교)이 주변지역의 역사적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쇼핑몰 건설로 인해 쫒겨났다. "짜른폰"(Charoen Phon, เจริญผล)에서는, 주민들에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텟꼬 로땃"(Tesco Lotus, เทสโก้ โลตัส, 卜蜂莲花) 건설을 위해 철거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또다른 차이나타운 시장인 "껑톰"(Klong Thom, คลองถม)에서는, 개발업자가 보다 고율의 임대료를 받는 시장 리모델링 사업을 할 수 있도록, CPB가 계약해지 통보를 보냈다. 또한 짜오파야(Chao Phraya: 차오프라야) 강가에 위치한 "짜른꿍"(Charoen Krung, เจริญกรุง)의 낡은 생선시장에서는, 거래인들이 수천명의 미숙련 노동자들을 조만간 해고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빠져들었다. CPB가 이 재래시장을 70억 바트(약 2,500억원)를 들여서 고층 호텔 및 주상복합단지로 개발할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에서 역사적 사적지로 여기는 89년이나 된 스포츠 클럽인 "실롬 클럽"(Silom Club) 역시 고층 건물로 재개발될 예정이다.
CPB가 수립한 새로운 전략의 결과는 막대했다. 2003년도에 CPB는 40억 바트(약 1,500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그 중 17억 바트는 임대료 증가에 따른 것으로, 이는 찌라유 이사랑꾼 나 아유타야(Chirayu Isarangkun na Ayutthaya) CPB 국장이 그보다 4년 전에 최초 기획했을 때 기대했던 것을 훨씬 넘어서는 결과였다. 2004년도의 CPB 수입은 50억 바트가 되었다. 찌라유 국장은 CPB가 1997년 금융위기 이전보다 훨씬 건전성을 갖게 됐다고 발표했다.
방콕 최고층 마천루
하지만 CPB의 야심이 커지면서, 더 많은 대중적 주목을 받게 되었다. 철거는 결코 쉽지 않았고, 특히 주요한 2곳에서는 더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보베 시장"(Bo Bae market, ตลาดโบ๊เบ๊)에서, 방콕광역시청은 상인들더러 떠나라고 했지만, 상인들은 도로를 차단하고 또다른 건물을 점거하기도 했다. CPB 스스로는 아무도 퇴거시키지 않았다. CPB는 다만 새로운 시장을 만들 개발업자에게 양허권만 발급했는데, 그 장소가 바로 보베의 상인들에게는 삶터였던 것이다. 상인들이 퇴거를 거부하자 경찰이 동원됐고, 일부는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한편 해당 개발업자는 새로운 건물로 옮기지 않으려는 많은 이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싸움은 계속됐다. 일부 상인들은 확고하게 저항하면서, 감옥에 가는 것도 불사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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