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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보물선의 마지막 대항해 / 서동인. 김병근
마침 집에서 가까운 곳에 박물관이 두 군데나 있는 호사를 누리며 산다. 한 곳은 인천시립박물관이고 또 한 곳은 송암미술관이다. 송암미술관은 그리 크지 않은 전시 공간에 비해 유물의 알찬 전시 때문에 내가 자주 찾는 곳이다. 그곳에서 특히 내가 좋아하는 유물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철불이다. 이 듬직한 부처님은 예전엔 미술관 들어가는 중앙로비에 자리 잡고 방문객들을 맞아주었었다. 나는 신라의 불상들에 비해 정교하지 않으며 조금 촌스럽기까지 하지만 왠지 인간적인 그 불상이 좋아서 가끔 미술관엘 들러서 불상과 눈을 맞추기도 하고 관람객이 없을 땐 슬쩍 부처님의 풍성한 엉덩이를 손으로 쓰다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었다. 송암미술관의 주인이 바뀐 후 다시 가보니 아쉽게도 불상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물러나 불교미술품을 한 데 모아둔 관람실의 여러 불상들 틈에 앉아있었다. 왠지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 미술관측에 조금 서운하고 아쉬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미술관 큐레이터의 시선은 이미 고려 불상의 그 기(氣)를 읽었었는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가 고려불상과 그 이전의 통일신라 불상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하는 점인데, 그것은 눈에 있다. 통일신라나 삼국시대의 불상은 눈이 맑고 깨끗하다. 티없이 맑아서 바라보면 마음이 정화된다. 부처의 근엄함에 경배심이 일어난다. 그러나 고려불상의 눈은 가늘고 길게 찢어져 있다. 그런데 그 눈엔 색기(色氣)가 가득하다. 인자한 모습이어야 할 불상이 색마의 눈을 가졌다면 그것은 100% 고려불상이라고 보아도 된다.(page152)
이번 [신안 보물선의 마지막 대항해]는 오래간만에 책 속에 흠뻑 빠졌던 즐거운 책읽기였다. 역사를 공부할 때 최소한 통일신라와 발해까지는 대부분이 여러 번의 반복학습 덕분에 조금 덜 어려워한다. 그러나 고려시대로 넘어오면 누구든 어렵고 재미없어 하기 마련이다. 왜 그런지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니 우리가 의외로 고려인들의 생활상이나 시대상을 더 오래된 고조선보다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학교도 박물관도 역사교재도 통일신라까지는 각종 자료가 넘쳐나지만 고려시대로 오면 인색하리만치 자료가 궁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고려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상을 모두 포괄하는 좋은 역사 교재이기도 하며 학교 역사시간엔 배울 수 없는 이야기들이 담긴 이야기책으로 읽히기도 한다.
42쪽의 ‘백유흑화당초소문병’은 사진만으로도 섬세함과 기품이 느껴진다. 이 아름다움에 취해서 마침 집에 들른 후배에게 책을 펼쳐 보여줘가며 극성을 떨기도 했다. 128쪽의 ‘백자도형잔’도 꼭 눈여겨보길 바란다. 이 복숭아모양의 작은 잔은 무엇이든 담기기만 하면 그것이 술이든 물이든 복숭아 향기가 배어나올 것만 같다. 아름답다. 이 책에는 이런 진귀한 유물 사진이 도록처럼 실려 있다. 마치 박물관을 한 바퀴 도는 것처럼 눈이 호강을 한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이미 ‘쌍화점’ ‘만전춘’ 같은 고려가요에 대해 공부를 하며 당시 시대상에 대해서도 공부를 한 터, 그럼에도 고려말기의 시대상황을 다시 만나는 것은 옛날이야기나 아줌마들이 좋아하는 연예인 얘기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 서긍의 [고려도경]에서 인용된 고려시대 사람들의 삶은 정말로 흥미롭다.
서긍이 바라본 고려인들은 인색하여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이 적었다. 재물을 중히 여기고 여색을 좋아하였다. 오늘의 한국인들과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바닷가 개경붙이들은 짠돌이에 색골이었을까? 고려인들은 남녀 간의 혼인도 가볍게 여겼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합치고 툭 하면 헤어졌다. 남녀 모두 연애와 결혼. 이혼이 자유로웠고 이혼율이 놓았던 것 같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이런 고려인들의 풍속을 야만시하여 매우 좋지 않게 여겼다. 특히 사람마다 욕심이 많고 뇌물을 주고받는 것이 성행하였다. 아무리 좋은 일도 뇌물이 없으면 성사되지 않았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뇌물이면 해결되는 사회였던 것 같다. 그런 사회는 딱 한 가지. 망하는 길밖에 없다. 아무튼 고조선도 중국인의 뇌물로 망했으니 한국인이 뇌물을 좋아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page156)
보물선에서 건져 올린 유물애 대한 전반적인 보고서를 읽으며 이렇게 통렬하게 세상을 꼬집는 말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을 것이다. 눈으로 보여주는 유물의 스펙트럼도 근사하고 재미있지만, 책 속에 숨겨진 이런 이야기들을 불현듯 만나는 것 또한 즐겁다.
우리 민족이 단일민족이었던 것은 아마도 삼국시대까지 또는 이 책의 내용을 되짚어보건대 고려초기까지이지 않았을까싶다. 쌍화점에 등장하는 회회아비가 외국인이라는 것은 이미 아는 내용이고 충렬왕과 공민왕 시대에 특히 외래 성씨가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이다. 조성 세종 때 작성된 [문헌비고(文獻備考)]를 바탕으로 뽑아 소개한 대표적인 외래성씨만으로도 어머나! 하는 놀라움을 넘어 그럼 우리 조상도 혹시? 하는 생각을 해 보게한다. 아무튼 그럼에도 고려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이 심해서 이 혼란 속에서 외래성씨와 구별하여 씨족별로 정통성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것이 바로 ‘족보’였으리라고 한다.
한 번에 후루룩 읽고 책꽂이에 꽂아두기엔 아까운 책이다. 고려시대를 좀 더 알고 싶다면 꼭 이 책을 보시길 권한다. 물론, 400페이지가 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그러나 어느 페이지를 먼저 펼쳐서 보든지 관계없다. ‘제1부 난파선에서 건져 올린 보물들’에서부터 ‘제15부 바다를 오간 상품과 문화 그리고 사람들’까지 모두 따로따로 그렇지만 번잡하지 않고 일목요연하게 고려를 공부할 수 있을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