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慶州의 어떤 사제
천년의 역사와 문화가 풍요롭고 아름다운 경주, 어디서 주일 미사를 할까 궁리하다 지역으로 움직이는 교회 전통대로 ‘ㅊㅎ성당’으로 가기로 했다. 숙소 게시판 메모지 내용도 좀 거들어 주었다. “ ‘ㅊㅎ성당’ 신부님이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네 개의 핸드폰 번호가 쭉.(1.본당신부님 2.사무장 3.총회장님. 4.시설분과장님) ‘아니 요즈음은 웬만하게 가까운 사이 아니면 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세상인데 이게 뭔 일? 게다가 짧게 머물다 가는 기간, 일이 있으면 무슨 일이 있다고...?’ 그래도 내심으로 속마음은 넉넉하고 좋았다.
“어서 와, 경주 잘 왔지?” 산자락 아래 아담하고 다정한 성당, 그 위에 높이 서 계신 예수님은 두 팔 한껏 벌리시고 환영해 주셨다.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 말씀을 읽고 잠시 묵상 삼매경에 들었다. 사람 되어 오시어 참 된 진리를 손수 가르쳐 주시고, 까먹고 잊을세라 당신의 몸과 피로써 각인시켜주신 예수님, 성모님, 부모님, 형제∙자매, 친지, 친구 지인과 은인들...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무수한 성체와 성혈이 되어 주신 분들과 차례로 만나며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찡하게 물결쳤다. 나 또한 보은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강복으로 미사 마무리를 하려던 신부님은 “아,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빠트릴 뻔 했습니다. 오늘 이 미사에 수녀님이 참석하셨습니다. 휴가 오신 것 같은데 박수로 환영합시다.” ‘봉사도 아닌 휴가 온 수녀에게 박수까지...?’ 예상치 못한 격한 환대에 황급한 인사로 답례를 하면서도 솔직히 기쁘고 감사했다. 비중 있는 위치에 계신 분의 말씀은 항상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솔직히 신부님의 인사 말씀이 아니셨다면 서로 목례 정도로 충분했다고 생각하고 지나쳤을 인연이지 않는가?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바로 다음 미사가 총총 기다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당 내 카페에서 커피를 뽑아 주시고, 주변에 계신 남녀노소 교우들에게 소개시켜 주시고, 심지어 수술 후 재활중인 살짝 시원찮은 내 걸음을 눈치 채시곤 치료 받고 가라고 하시며 한의사 선생님까지 소개해 주셨다. 신부님 말씀이 “본당에 수녀님이 안 계시니, 가끔 수녀님들이 오시면 참 좋다.”고 하셨다. 맞는 말씀이다. 사람도 물건도 갖추어야 풍요롭고 없어 봐야 귀하고 좋은 줄 안다. 본당을 가장 많이 활동한 내 경험상 본당에는 신자, 사제, 수녀가 다 같이 있는 것이 좋았다는 판단이다.
솔직한 현실을 적시에 잘 표현할 줄 아는 것은 아무나 다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즈음 나도 이 부분이 좀 취약하다 싶어 성찰하고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무엇보다 생각과 말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발휘하는 것은 큰 힘이며 지혜이다. 신부님은 따듯할 뿐 아니라 자유로운 분이셨다. 오래전부터 신부님의 조부모 부모님들께서는 “수녀들에게 잘 하라” 하셨다고 한다. 누구나 살면서 한두 번 이상 좋은 말을 듣지만, 항구하게 기억하고 성실히 반복하는 이는 드물다. 더구나 내가 어른이 되고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면 잊어버리거나 무시하기 십상인데 신부님은 내내 간직하고 실천하고 계셨다. 아주 진하게.
병원에 들려 꼭 치료받고 가라고 초대해주시는 공 한의원 선생님과 짧고 진한 커피타임을 마치고 숙소로 향하면서, 한 시간여 남짓 일어났던 일들을 정리해 보았다. 잠시 지나가는 낯선 나그네에게 최고의 환대를 해주시는 신부님과 교우들은 이미 성체성사적 신앙과 삶을 훌륭하게 증거 하시는 중이셨다. ‘나는?’ 나도 본당생활에 있을 때 외부에서 각종 모금과 후원 물품판매를 위해 오시는 분들에게 나름 관심과 환대를 했었지만 신부님 정도는 아니었음을 부끄럽게 반성해야 했다.
수녀원에 돌아와 함께 사시는 두 분 수녀님께 ‘ㅊㅎ성당’ 미담을 전했다. 함께 사시는 후배 수녀님 “그 신부님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또 다른 선배 수녀님 “나도 그 성당 미사 갔다가 돈까지 받았어요. 그것도 큰 금액의 돈을요.” 수녀님은 중국 선교사로 소임중이셨는데 비자 문제로 일시 귀국하여 잠시 경주로 휴가를 가셨다. 우연하게 주임 신부님의 친구 신부님도 성당에 방문 중이셨다. 서로 대화하는 자리에서, 중국)선교 활동 중이라는 수녀님 이야기를 들으신 친구 신부님은 잠깐 기다리시라고 하시더니 봉투를 들고 오셨다. 역시 중국)교포 사목을 마치고 귀국하시는 신부님을 위해 신자들이 십시일반 주신 전별금이었다. “이건 내가 쓸 돈이 아니라 중국에 있는 이들을 위해 쓰셔야 될 돈인 것 같다.”
두 분은 유유상종 우정을 빛내시며, “너희는 이 예를 행하여라.” 명하신 말씀을 증거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찬양하고 경배 드리고 싶게 하고 있었다.
첫댓글 주차 코너가 많으면 어디에 주차를 할지 망설이는 것처럼 이 글도 어디에 주차를 하지 쫌 망설였다.
성체성혈대축일에 있었던 일이고 그 날 참 풍요롭고 감동적인 체험과 배움을 가졌기에 대축일용 2탄처럼
"복음서"코너에 주차하기로 했다.
우리 창설자 수녀님 "좋은 말은 감동을 주지만 좋은 표양은 불을 붙입니다" 라고 격려하셨다.
우리에게 불을 지르러 오신 예수님
그러나 아직 그 불이 덜 타오르고 있다고 안타까워 하시는 예수와 세상을 향해 더 진일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