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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 대중들은 이 남자의 매력을 반도 모른다.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의 까칠하지만 로맨틱한 황태자로만 공유를 기억하고 있다면, 당신은 그 매력의 딱 반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이제 드라마 속 달달한 공유의 눈빛은 잠시 잊자. 그리고 삶에 찌들어 지쳤지만 세상의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아가고 있는 한 남자의 깊고 애잔한 눈빛과 마주할 시간이다. 공지영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신작 <도가니>에서 주인공 강인호로 분한 공유를 만났다. 훨씬 맑고 깊어진 눈빛 속,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은 거기 없었다. 에디터 김수연 포토그래퍼 이규열
영화 평도 좋지만 당신 연기 평이 제일 좋은 것 같다. 내 연기가 영화에 누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너무 다행이다(웃음).
너무 겸손한 것 아닌가. 다들 이 작품이 당신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하든데. 그런 평가를 받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이 작품을 선택한 건 아니지만, 좋은 평가를 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만약 지금보다 어렸을 때 이런 칭찬을 받았더라면 붕붕 뜨거나 “거봐! 나 무시하더니만, 이젠 봤지!” 뭐 이런 식의 반응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칭찬들이 내겐 안도로 다가온다. 촬영 내내 작품에 누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했다.
제대 후 전략보다는 마음이 끌리는 영화를 선택했다고 했다. 그런데 궁극적으로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당신의 이면을 보여주는 영화(<김종욱 찾기> <도가니>)만 선택했다. 당신처럼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은 흔치 않은데. 어떤 사람은 <김종욱 찾기>가 기존에 보여줬던 로맨틱 코미디에서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며 <김종욱 찾기>보다 <도가니>를 먼저 찍지 그랬냐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김종욱 찾기>나 <도가니> 모두 내겐 둘 다 어렵고 힘든 도전이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도가니>가 실화 소재이다 보니 연기할 때 좀 더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었다.
영화화를 직접 제안했다고 들었다. 영화화 과정의 일등공신이다. 일등공신이라는 표현은 사실 말이 안 된다. 내가 아니었어도 <도가니>는 누군가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을 작품이다. 배우로서, 원하던 것이 스크린이라는 결과물로 나오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참 행복한 배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투자가 쉽지 않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라는 배우를 믿고 투자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런 과정을 지켜봐서 그런지 더 잘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이 다른 작품보다 컸던 것 같다. 그래서 힘도 좀 더 들었고.
이 작품이 영화화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지켜본 것인가. 군대에 있을 때 지휘관이 병장 진급 기념 선물로 ‘왠지 공 병장에게 어울릴 것 같은 책’이라며 공지영 작가의 소설 <도가니>를 건네줬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책을 읽어 내려갔는데 읽으면서 이 책은공지영 작가도 영화화를 원할 거라는 확신이 들더라. 소설 속의 디테일한 묘사가 읽는이로 하여금 영상을 떠올리게 만들었으니까. 게다가 난 직업이 배우이다 보니 소설 속 장면이 영상으로 쉽게 연상됐다. 다 읽고 나선 너무 충격이 커서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말인지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였다. 심장이 쿵쾅거렸고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소설의 힘으로 이렇게 평범한 내 가슴이 들끓었을 정도인데 이것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훨씬 더 파급력 있는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군에 있을 때 지인을 통해 판권 문제를 논의했고, 조심스럽게 내 실명까지 거론하며 공지영 작가에게 ‘혹시 이 소설이 영화화될 수 있겠는지’를 물어봤다. 그리고 만약 영화화된다면 그 소설의 남자 주인공 역할을 내가 맡아보고 싶다고도 말했다. 너무나 고맙게도 공지영 작가는 내 진심을 의심 없이 받아주셨고, 이 작품이 영화화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투자사, 제작사 등)이 내 손을 잡아줬다. 배우 시작한 지 올해가 10년째다. 과거엔 좋은 스토리를 읽고 나면 ‘와! 이런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는데, 누가 안 만들어주나?’ 이랬던 내가 직접 원하는 스토리 속의 주인공이 되고, 그 이야기가 영화화되는 과정의 초석이 됐다. 그 완성물과 마주하게 되니 참으로 행복했고, 마음이 든든해진다(웃음). 앞으로 나와 같은 배우들의 사례가 점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강인호는 소설 속 비극을 가장 담담히 관찰하면서 참담하게 표현하는 이다. 담담하게 가다가 격한 감정을 이끌어야 하는 캐릭터였는데 연기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다. 인호는 원작 소설에서의 무기력한 모습과 달리 영화 속에서는 좀 더 적극적인 감정표출을 한다. 그래도 인호는 인호다. 인호가 얼마든지 더 절규할 수 있고 더 펑펑 울 수도 있지만 캐릭터 본연이 지닌 무기력하고 담담한 내면은 어디 가지 않는다. 넘치지 않고 부족함이 없는 특유의 감정선을 찾아야만 했다. 그게 참 어려웠다. 현장에서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던 부분도 당신이 말한 그 감정선이다. 테이크 갈 때마다 감독님에게 “나, 지금(감정이) 너무 많죠?” 라고 물어보곤 했다. 내 감정이 조금만 넘쳐도 관객들이 “아, 이거 너무 영화잖아”라고 느끼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영화 후반부 물대포를 맞으며 보여준 눈빛은 지금껏 보여준 눈빛 연기 중 가장 깊이가 있었다. 따로 연기할 겨를 없이 그 순간 나는 그냥 인호였다. 소설과는 조금 다른 설정인 그 장면을 촬영하면서 감독님과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다. 실은 그 장면에서 난 눈물도흘리지 않은 채 소설 속 인호의 느낌처럼 좀 더 드라이하게 감정선을 가져갔으면 했었다. 그리고 소설 속 남루한 현실 그대로 인호가 묘사되길 바랐다. 그런데 감독님 생각은 달랐다. 그 물대포 신이 인호가 그동안 느끼고 응축해 왔던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신이라고 했다. 영화적으로 봤을 땐 그 장면만큼은 감정표현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다. 그 장면을 촬영하는 날, 무척 신경이 예민했었다. 감정 한끝 차이로 지금껏 연기해 온 인호의 캐릭터가 한순간에 다 무너져 버릴 수 있을 만큼 중요한 감정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장 여건이 좋지 않았다.
어떻게 좋지 않았던 건가. 현장에서 시위를 지켜보는 시민들은 현실에서는 영화 현장을 구경하러 나온 시민들이었다. 엑스트라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다 보니 모두 휴대전화 들고 사진 찍기에 바빴다. 현장 여기저기서 찰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그 신에서 영정 사진 들고 돌면서 그들의 얼굴을 봐야 하는데 그 와중에 사람들이 웃으면서 “와, 공유다!” 이러는 분위기였다. 한두 테이크 가다가 결국 영화에서 보여줘야 하는 장면의 분위기와 너무 맞지 않아서 연출부가 확성기를 들고 시민들에게 영화 내용의 심각성에 대해 말하고 간곡히 부탁드렸다. 그런데 참 감사하게도 모든 분들이 휴대전화를 넣어주고, 현장 분위기에 맞는 태도를 취해줬다. 우리 현장을 묵묵히 지켜보던 여성 두 분은 심지어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물대포 맞는 신이 너무 많이 편집되는 바람에 배우로서 살짝 아쉽기는 했지만(웃음), 기억에 남는 현장이었다.
극중 역할을 위해 수화를 배우기도 했다. 익히고 배우면서 청각 장애인들에게 어떤 감성을 배웠나. 현장에서 청각 장애인들이 수화하는 걸 직접 보면서 배우로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그분들은 수화할 때 얼굴로 감정표현을 한다. 그 표정이 얼마나 다양한지 모른다. 장애인이라는 편견 때문에 그들의 성격이 어두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성격이 무척 밝더라. 나도 처음엔 그분들이 장애 때문에 자격지심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우리보다 훨씬 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친다. 항상 먼저 다가와 현장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밝은 얼굴로 제작진을 응원해 줬다. 수화는 마치 다른 나라의 언어를 새로 배우는 것 같았다. 그 언어를 배우다 보니 그 사람들이 품고 있는 정서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내 편견을 불식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당신의 연기만큼 화제가 됐던 건 아역배우들의 놀라운 연기였다. 영화의 소재가 어두운만큼 제작진의 아역배우들에 대한 배려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아이들과 관련해서 가장 많이 배려하고 마음고생이 심했던 사람은 감독님이었다. 오디션 순간부터 영화 마칠 때까지 아역배우들의 연기 조율 및 그 아이들에게 생길지 모르는 감정적 상처에 대해 정말 많은 것들을 두고 고민했다. 그리고 나와 정유미 씨는 아이들이 필요한 신에서만 그 감정으로 연기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현장에서 웃을 수 있도록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들이 연기 밖으로 나왔을 때 가슴속에 응어리지는 어떤 감정이 생기지 않길 바라면서 슛 들어갈 때를 제외하곤 아이들에게 장난도 더 치고 그랬던 것 같다.
벌써 연기 10년차다. 연기를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나. 있다. 그런데 있다고 하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욕할 것 같은데(웃음).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이하 <커프>) 찍기 전이 가장 힘들었다. 사실 그때 많이 힘들어서 <커프> 출연도 안 하려고 했었다. 스물아홉 살 때였는데 군대 다녀오고 나면 내가 과연 좋은 배우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까를 두고 처음으로 고민했었다. 여기에서 좋은 배우란 인기 있는 스타를 말하는 게 아니다. 마치 제2의 사춘기처럼 스스로를 많이 괴롭혔다. 그런 심경이 인상에도 드러났었나 보다. <커프>로 이윤정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내 첫인상이 스스로에게 자꾸 상처를 주는 사람처럼 날이 서 있어 보였다고 하더라. 심지어 ‘이런 사람 데리고 드라마 찍는 게 과연 맞는 선택인가’ 싶기도 했다고(웃음).
그렇게 힘들었던 시기, 어떤 힘으로 버텼나. 작품으로 해갈했다. 드라마 <커프>를 찍으면서는 정말이지 방방 뛰면서 놀 듯 신나서 찍었다. 솔직히 나는 그 드라마가 그렇게 시청률이 좋을지 몰랐다. 당시 상처 치유의 중심에는 이윤정 감독님이 있었다. 감독님을만나 함께 작품을 하면서 그 당시 힘들었던 고민과 그로 인한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이었으니까. 배우가 느껴야 하는 초심의 열정을 다시 되찾을 수 있었던 현장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마음을 다지게 된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웬걸! 그 드라마를 사람들이 너무 좋아해주시는 거다. 드라마의 인기는 나한테는 솔직히 덤으로 얻은 보너스나 다름없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작품을 진심으로 즐기고 놀 줄 알면 그것을 봐주는 사람들도 즐거워질 수 있다는 걸.
슬럼프 극복도 극복이지만 <커프>로 인해 엄청난 인기까지 얻었다. 그 인기를 통해 당신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인간 공유로서는 <커프> 이후 지나칠 정도로 사생활 침해가 심해진 게 잃은 것이다. 내가 무슨 아이돌 스타도 아닌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나
한테, 속된 말로 호들갑을 떨까 싶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좀 촌스러운 사람이어서 그 당시 관심이 버거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인기를 유연하게 좀 즐겨도 되는데 말이다. 서른 전에 그렇게 큰 인기를 얻은 건 참 기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의 나는 그걸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웃음).
그렇게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다가 입대했다. 제대 후 사그라질지 모르는 인기에 대한 걱정은 없었나. 제대하는 날, 정말 많은 분들이 나를 반겨줬다. 많은 취재진과 해외 팬들, 국내 팬들… 제대와 함께 그분들 얼굴 보니까 나는 좋기만 하든데(웃음)! 솔직히 군대 이후 <커프> 때 그렇게 열화와 같았던 팬들이 다 빠져나갈 줄 알았다. 인기는 거품과도 같은 것이니까. 연예인은 그 거품과도 같은 이미지에 소모되는 게 현실이고. 현빈 씨가 군 입대하면서 “인기는 거품과 같은 것”이라고 이미 말하지 않았나. <내 이름은 김삼순> 때는 몰랐는데 <시크릿 가든> 때는 이미 한 번 경험해 본 터라 그 인기에 그렇게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는데, 나 역시 <커프> 때 한 번 겪어봤던지라 ‘이 친구 나보다 어린데 참 기특하네!’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마음을 비우며 살았다. 스스로를 뒤돌아보며 성숙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고나 할까.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나왔는데, 세상에나! 많은 분들이 기억해 주시고 군대 앞을 찾아주시니 그때는 그 상황을 진심으로 즐기게 되더라. 심지어 여유 있게 손까지 흔들며 나왔다(웃음).
군대 기간은 오롯이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 안에서 어떤 생각들을하며 살았나. 완벽하게 인간 공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군복무를 철원에서 반, 서울에서 반을 했다. 철원에서의 삶은 철저하게 개인이 지워진 삶을 살았다. 스물 한두 살짜리들이 고참이었는데 나이 먹어서 군대에 가니 어린 고참들의 머릿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더라(웃음). 내가 한 번 더 고개 숙여주면 애들은 그런 나를 더 좋아해 준다. 그런 인간 본성을 알고 군에 갔더니 나는 솔직히 군생활이 즐겁고 재밌었다. 또 내가 인복이 많아서 군에서 좋은 지휘관과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고(웃음).
서울에 와선 특이하게도 국군방송에서 DJ를 했다. 군대에서 DJ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DJ를 하면서 좋았던 건 하루 2시간씩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생방송을 할 수있었기 때문이다. 나 개인으로도 좋았지만 나를 기다려주는 팬들에게도 좋은 시간 아니었을까(웃음). 그 방송을 누가 듣겠냐? 다 내 팬들이 듣는 거겠지. 내 자랑을 좀 하자면 그 당시 청취율이 내 아래, 위로 홍진경 씨와 박소현 씨가 있었다(웃음). 또 방송하면서 기존 팬들 고무신 거꾸로 신지 않게 관리도 됐던 것 같다, 하하! 철원에서의 군 경험, 서울에서의 군 경험, 모두 내겐 참 소중하다. 가만히 보면 나처럼 군대를 알차게 다녀온 이도 없는 것 같다.
과거 20대 중반에 인터뷰로 만났을 땐 “빨리 서른을 넘기고 악역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했었다. 서른은 넘었는데, 악역 연기는 아직이다. 모든 배우들이 악역 연기에 매력을 느낄 것이다. 실제로 정신이상자, 살인자와 같은 악역 캐릭터 시나리오도 많이 받아봤다. 아직도 악역에 대한 매력은 여전히 느끼고 있지만 20대와 달리 생각의 변화가 생겼다. 20대 때는 솔직히 멋진 캐릭터에 연연했었다. 그런데 이젠 캐릭터에 연연하기보다는 그 캐릭터가 담겨져 있는 영화의 힘을 더 보게 된다. 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숲 전체를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됐다고나 할까.
<도가니>는 자신이 처음 기획에서부터 참여한 영화였다. 어떤가. 앞으로 배우 이외의 일, 제작이나 연출 쪽에도 관심이 있는가. 연출에는 욕심 없다. 그런데 기획 쪽에는 관심이 많다. 사람이 모여 서로의 시너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창작해 내는 일이 좋다. 배우가
업이지만 배우가 관여해 어떤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 작품이 아니어도 그런 일을 벌이는 걸 좋아하는데 일본 팬들을 대상으로 나와 관련한 이슈를 담은 잡지를 1년에 4번 정도 발행하고 있다. 전문적으로 만들어주시는 분은 따로 있지만 기획과 관련한 모든 부분은 나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만든다. 나를 잘 모르는 일본 팬들에게 나라는 사람의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잡지다(웃음). 내가 한국에서 진행하는 모든 활동의 메이킹 사진이 수록되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인디밴드들의 음악 등이 소개되기도 한다. 반응이 너무 좋아서 시즌 2를 기획하고 있는 중이다(웃음).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꿈과 인간 공유로 이루고 싶은 꿈이 다른가. 같다. 잘 늙고 싶다. 좋은 사람으로 늙어야 때 묻지 않은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배우는 맑음을 유지해야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고 부단히 용쓰며 노력 중이다(웃음). 비유를 하자면 오래되어서 훨씬 깊고 울림이 좋은 소리를 내는 빈티지 기타가 되고 싶다. 배우로 따지자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늙고 싶고. 미동조차 하지 않아도 얼굴 표정 하나만으로 화면 안에 울림을 주는 그처럼 늙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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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빅으로 다시보는 꽁배우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