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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 교리의 진수 : 칭의 교리의 역사적 · 성경적 개관 - P&R 신학시리즈 1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마틴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교리를 교회가 서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는 믿음의 조항, 또는 교회가 서고 넘어지는 것을 결정하는 믿음의 조항이라고 불렀습니다.
루터의 이 말은 신약 시대의 교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교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믿으며 설교한다면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생동력 있게 서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이 교리를 홀대하고 질식시키며 부인한다면, 교회는 은혜에서 떨어지게 되고 그 생명은 유출되며 결국 흑암과 사망의 상태에 떨어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서문 중에서 책 머리에
옮긴이 머리말 예비적 서론 개론 제1부 칭의 교리의 역사 제1강 구약에서의 칭의 교리의 역사 제2강 사도 시대의 칭의 교리의 역사 제3강 교부 시대와 스콜라 철학에서의 칭의 교리의 역사 제4강 종교개혁 시대의 칭의 교리의 역사 제5강 종교개혁 이후의 로마 카톨릭교회의 칭의 교리의 역사 제6강 개신교 내에서 논쟁의 주제가 되었던 칭의 교리의 역사 제7강 영구 국교회의 칭의 교리의 역사 제2부 칭의 교리의 주해 - 칭의 교리의 주해, 개론 제8강 칭의 ; 용어의 성경적 의미 제9강 칭의 ; 축복의 고유한 본질 제10강 칭의 ; 하나님의 율법과 정의와의 관계 제11강 칭의 ; 그리스도의 중보적 사역과의 관계 제12강 칭의 ; 즉각적이고 유일한 기초로서의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제13강 칭의 ; 은혜와 행위의 관계 제14강 칭의 ; 믿음과의 관계속에서의 칭의의 본질과 이유 결론 저자 소개 ㅣ 찰스 왈커 부록 1. 본문의 각주 2. 찾아보기 뷰캐넌 박사의 본서는 칭의 교리에 관한 한 최상 최고의 작품이며 완벽한 저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서는 우리의 가슴을 적셔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지성을 충족시켜 주기에 충분합니다. 이러한 본서의 한국어판이 한국의 그리스도인 독자들을 위해 지평서원에서 번역 출판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 2002년 10월 이안 머레이 목사 : 영국, 진리의 깃발사 대표 "칭의 교리에 관한 최고의 고전인 뷰캐넌 박사의 이 역작은 철저하게 성경적이며, 확고하고 참신하다. 우리는 모든 이들에게 충심으로 본서를 추천하는 바이다." - Free Presbyterian Magazine "모든 목회자들은 반드시 이 책을 소장해야 하며, 모든 진지한 그리스도인들은 본서를 읽도록 격려해야 한다." - Evangelical Movement of Wales "만일 칭의 교리가, 교회가 서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는 신앙의 중대한 조항으로 주장한 루터가 옳다면, 바로 지금 우리는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루터 시대 이후 뷰캐넌의 본서만큼 칭의 교리에 관한 최고의 역작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 Expository Times "우리는 칭의 교리에 관한 한 정말 이보다 더 좋고 훌륭한 주해를 발견할 수 없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이 뷰캐넌의 본서가 고전적 언약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주제인 칭의 교리에 관한 한 우리 신학생들이 찾을 수 있는 최고의 교재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 James l. Paker 제임스 뷰캐넌
1804년 스코틀랜드에서 출생한 뷰캐넌은 에딘버러에서 토마스 찰머스의 지도아래 신학을 공부, 23세에 안수를 받고 로슬린에서 첫 사역을 했습니다. 일년 후 그는 레이스 북부의 큰 교회로 부임하게 도었고, 그의 설교는 충만함과 명쾌함 위에 역동적인 웅변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1840년, 건강 때문에, 고든박사와 함께 작지만 매우 비중 있는 에딘버러의 성 자일스 교회의 협동목사로부임, 스코틀랜드 교회의 분열이 있던 때인 1843년까지 사역했습니다. 그 후 '스코틀랜드 자유교회'를 조직했던 복음적 목사들과 교류하면서 에딘버러에 있는 '성 스테반' 자유교회의 첫 목사가 되었습니다. 교리적 특징 때문에 그는 스코틀랜드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잘 알려지게 되었고, 1844년 당시 뉴저지에 있던 프린스톤 대학으로부터 신학박사 학위를, 글라스고우 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1845년 에딘버러의 뉴 칼리지에서 변증학 교수로 사역, 1847년 찰머스의 죽음으로 조직신학 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수였지만 언제나 목사였습니다. 그의 탁월한 학문과 목회경험은 목회사역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의 명저 이 책 < 칭의 교리의 진수>는 <목회자를 위한 잡지>등 권위있는 매체들에 게재 되었고, 그가 웨슬리의 '칭의교리'를 매우 솔직하게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웨슬리 감리교 잡지>등 여러 정기 간행물에 실려 주목을 받았습니다. 1866년 출판된 이 위대한 역작은 이성주의자들과 의식주의자들에 맞서기에, 그리고 참된 신자들을 훌륭한 보증과 확신에 세워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1868년에 악화된 질병으로 인해 신학 교수직에서 은퇴했고, 1870년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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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나무 쉼터 원문보기 글쓴이: 생명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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