⑶ 경교의 신라(BC 57-953 통일 668) 전래 가능성
1) 근거
통일신라는 당나라와 긴밀한 관계(사절, 유학생, 상인, 신라방, 신라소, 신라원)를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아라비아, 페르시아 등과의 교역의 가능성이 높았다. 그 예로 처용(處容)의 전설이 전해진다.
처용은 울주 지역에서 온 해신 일곱 중에 하나이다. 해신으로 표현된 그 존재가 무엇이냐? 코가 크고 눈이 움푹 들어간 모습을 보고 귀신같이 보여서 아라비아 상인들을 상징한 것이 아닌가? 학자들이 그런 식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 페르시아나 아라비아 같은 곳에서 처용가에 나타나듯이 이 때 아라비아나 페르시아 종교가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 하는 것이다.
2) 제기
영국의 여류 역사학자 고든(E.A. Gorden- The symbols of the Way, Toyo, 1916; Asian Christology and the Mahayana, Tokyo, 1921)이 처음으로 경교의 한국전래 가능성을 주장했다. 그 증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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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의 신장, 십일서관음상(十一西觀音像), 나한상/ 12支像 / 무인상의 옷무늬와 신발과 유리장식 등이 페르시아의 것으로 경교영향을 받은 것으로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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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대진경교유행중국비”의 모형이 금강산 장안사에서 발견되었다. (혹자는 고든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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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불국사(佛國寺)에서 석제(石製) 십자가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Piesta)을 발견하였다.
경주 불국사에서 출토 (1956년)

십자무늬장식(8-9세기 통일신라)
3) 발전:
김광수는 「동방 기독교사(東方基督敎史)」에서 경교의 모조비(模造碑)에 관하여 언급하며, 이조(李朝)의 헌종(憲宗) 때의 이규경(李圭景)이 쓴 「오주연문(五州衍文)」의 한 구절에 경교를 알고 있음이 표현되고 있다고 한다.
김양선은 「한국 기독교사 연구」에서 통일 신라 이후 능묘 제도(陵墓制度)의 특색이 되어 있는 호석(護石)에 부조(浮彫)된 12지상(支像)과 능묘 앞에 배치된 페르시아의 무인상 등이 경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김득황(金得榥)은
「한국 종교사(韓國宗敎史)」에서 경교가, 불국사가 건축된 해인 751년 이후에 전래된 것으로 본다.
오윤태는 「한국 기독교사 1」에서 석가 사후 400년에 소승불굑 약화될 시기에 인도북방에 도마의 전도로 기독교가 왕성해 지면서 대승불교(大乘佛敎)가 생겼다고 주장한다. 그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분리를 184년경으로 보았다. 한국에 들어온 불교는 기독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아미타불(阿彌陀佛), 미륵불(彌勒佛), 대일여래(大日如來)는 예수라는 것이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예수와 성모 마리아에게서 온 것이라는 것이다.
2. 원(元, 1234~1367)나라 때의 야리가온(也里可溫) 과 로마가톨릭: 고려(918~1392)
⑴ 몽고족의 세계제국 건설: 종교와 사상의 포용성
돌궐 계통의 위구르 등은 시리아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를 흡수했다. 그들은 몽고를 통해 네스토리안 기독교를 중국에 전파했다.
이들 기독교도들을 야리가온, 아이개온(阿爾開溫)이라고 했는데 몽고어 아리카운(Arikaun, Arcoun, 복음을 섬기는 자)에서 유래했다.
징기스칸은 Kerart족 공주(기독교신자)를 아내로 맞았다. 몽고 수도에 Kerart 출신의 야리가온들이 있었고, 궁중 안의 3만의 경호원들은 Alains족의 기독교도들로 조직했다는 설이 있다.
⑵ 고려에 선교 가능성
김양선 등은 몽고 왕실과 고려와의 깊은 관계(몽골의 고려침략, 1231-60, 그후 100년간 친교) 및 왕세자가 베이징에 가서 원나라 공주와 결혼하여 충렬왕, 충선왕 등이 출현한 것으로 보아 그 선교가능서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고려인들은 몽고 및 원나라 수도에 이주했다.
몽고군와 고려군이 일본정벌 연합군을 결성했는데 몽고군 중에는 야리가온이 많았다.
그러나 이상의 가능성들은 구체적인 실증이 약해서 가설에 그치고 있다.
[출처] 제1장 기독교의 동양전래 -경교편(2)|작성자 물길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