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새날입니다.
1주차는 책소개, ‘제1부 인간의 조건’
2주차 ‘제1부 인간의 조건’ 나머지, ‘제2부 만나고 사랑하는 것’ 일부
3주차 ‘제2부 만나고 사랑하는 것’ 나머지
4주차 ‘제3부 우리가 가야 할 그곳’을 같이 읽어 보았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주차인 이번 주는 ‘제4부 행복한 인생을 위하여’를 살펴보겠습니다.
제4부 행복한 인생을 위하여
일과 성장 … 212
취미, 오락, 유머 … 224
많이 살고 싶다 … 240
죽음의 다른 이름, 삶 … 248
고독의 본질
〈 생각 나눔 〉
‘제4부 행복한 인생을 위하여’에서는 ‘일과 성장’, ‘취미, 오락’, ‘많이 살고 싶다’, 죽음의 다른 이름, 삶’, ‘고독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개별적으로 생각해 볼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행복한 인생에 대해 사색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학교만 끝나면 교육과 성장은 끝난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고등학교는 대학에 가기 위해 있고 대학은 취직을 하거나 결혼을 하기 위해 있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신체는 20여 세로 그 성장이 끝나지만 우리들의 정신력은 노력만 계속하면 70~80세 이후까지도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일과 함께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저자는 네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첫째, 우리가 맡은 모든 일의 지식적 근거를 찾아 공부하는 것입니다. 둘째,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인간적 성장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의 인격이 균형있게 성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넷째로, 우리들의 성장을 위한 불가결의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사회적 성장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이상과 같은 자아의 성장을 계속한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일생을 가장 귀하고 값있게 이끌어 갈 뿐 아니라 직업을 통해 사회에 기여한다는 뜻도 높여 갈 수가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에 대해 전영민 지음의 『어떻게 일하며 성장할 것인가』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서 맥락상 연결되는 부분을 요약, 각색하여 가져왔으니 위의 내용에 덧붙여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은 몇 살까지 살 것 같은가?’라고 물어보면 대략 70퍼센트의 사람들은 80세 전후로 답하고 30퍼센트는 100세로 답합니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2012년 기준(이 책은 2014년 1월에 출간되었습니다)으로 여성은 84.4세이고 남성은 77.3세입니다. 뭐, 그렇다면 대답이 꼭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평균수명’은 전년도 사망자 나이의 평균으로 개념적 오해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교통사고와 같은 비명횡사는 계산에 넣지 않는 게 일반적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노쇠해서 죽는 걸 말합니다. 이런 식이라면 평균수명이 아니라 ‘최빈사망연령’, 즉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망하는 나이가 몇 살이냐로 봐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늙어서 신체 기능이 나빠지고 노쇠해져서 병에 걸려 죽는 나이의 평균이 몇 살인가라는 뜻입니다.
현재 한국인의 최빈사망연령은 87세입니다(앞서 문맥 내용으로 보아 2012년 기준 추정). 그러면 지금은 87세까지는 살 수 있겠구나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고려해야 할 사항 중 하나 빠진 것이 또 있습니다. 최빈사망연령이 최근 2년마다 1세씩 증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문가들은 2020년이 되면 한국인의 최빈사망연령이 90세를 돌파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까 ‘나는 80세 정도는 살겠다’고 이야기한 사람은 인생에 대한 계획을 완전히 다시 해야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의 인생계획은 아마도 한 60세까지 직장에서 현역으로 살며 부지런히 은퇴자금을 모으고 은퇴한 후에는 한 20년 정도 노년의 은퇴생활을 즐기면서 살면 되겠다 싶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전영민 저자는 이렇게 묻습니다. 무려 100세까지 살게 되면 어쩔 건가? 40년을 은퇴생활로 보낼 건가? 아무 일 없이 소일하면서? 인생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세월인데? 그리고 애 키워서 대학 보내고 시집 장가보내는 데 돈을 다 쓰고 나서 40년을 아무 일 없이 먹고살 노후자금을 어떻게 모을 작정인가? 왜? 지금 생각해보니 완전히 갑갑해지는가? 저자의 이런 공세적 질문에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당장 먹고살기도 죽을 지경인데 수십 년 뒤를 어떻게 내다봅니까? 뭐 어떻게 되겠지요.”
그런데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휙~ 하고 지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또 이렇게 밀어 붙이며 묻습니다. 그렇다면 무려 인생의 절반에 육박하는 40년 이상의 세월을 아무 일 없이 어떻게 지낼 작정인가? 그 길고 긴 시간을 매일 등산이나 하고 노인정에 가서 장기나 두면서 보낼 생각인가? 그러기에는 내 인생에 허락된 그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앞서의 질문들에 대해 전영민 저자는 아래 그림과 같은 해답을 제시합니다.
먼저 학교라는 교육기관에서 학습하는 세월을 약 30년, 대기업과 같은 경제적인 조직에서 한 30년,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사업이나 일을 통해 세상에 이바지하면서 사는 세월을 한 30년. 그리고 10년 정도의 은퇴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인생의 단계를 그렇게 나누어서 계획하라는 것뿐만 아니라 그 시간 내내 다음 단계를 위한 학습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으니 알고 있는 지식과 기술이 금방 낡을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하는 속도에 맞추어서 내 지식과 기술도 계속 새롭게 업그레이드해야 사회적 가치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학교공부만 공부가 아님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위의 전영민 저자의 주장은 김형석 저자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두 저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학생이 책상에 앉아서 책을 보는 것만 공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직장과 같은 조직도 매우 중요한 ‘학습터’이니 일과 학습을 겸해나가도록 하며, 직장을 그만둔 이후에도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봉사하는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장이 그대로 사회의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김형석 저자의 나이는 현재 100세가 넘습니다. 이제 ‘100세 시대’라는 말은 우리 주변에서 자주 듣게 되는 흔한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100세 시대는 축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김형석 저자와 같지는 않습니다.
노인의학전문의이자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 의과대학의 교수인 루이스 애런슨이 지은 『나이듦에 관하여』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나이듦을 재정의하고 의료서비스를 혁신하여 우리 삶을 재구상하는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무려 844페이지로 방대합니다).
애런슨 저자는 오늘날 사회가 갖고 있는 노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사지가 멀쩡한 왕년의 유명인사도 늙으면 결국 평범한 동네 할아버지가 되기 십상”이라 표현하며 그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 받는 ‘투명인간’이 되는 비극적인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러한 처지에 놓인 노인은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저자는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과 그들이 받는 차별적 대우를 자신이 실제 담당한 환자들의 사례와 노인의학 발전사 속의 사례를 통해 알려줍니다. 그 중 의미있게 다가온 한 사례를 축약하여 아래와 같이 소개합니다.
안개가 자욱하던 2015년의 어느 날 아침, 나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 도착했다. 가이 미코Guy Micco 교수와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교수가 매년 가을, 의대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어떤 실험에 관한 소문을 듣고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강의실은 푸릇푸릇한 학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이때 미코 교수가 연단에 올랐다. 교수는 한쪽에 모여 앉은 열여섯 명 정도로 이루어진 그룹에게 누군가를 노인이라는 표현으로 지칭한다고 할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를 적어 보라고 말했다.
책상에는 곧바로 수거해 집계하기에 편리하도록 미코 교수가 미리 준비한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교수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학생들은 단어를 휘갈겨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1분이 흐르고 교수는 메모지를 걷었다. 그러고는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다른 내용은 다 똑같고 불리는 호칭만 어르신으로 바뀌었다.
이때 몇몇 학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이 시험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다.
미코 교수는 이 실험을 벌써 몇 년째 해 왔다. 강의실에서 마주하는 얼굴들은 매번 달라지지만 이 2단계 연상 테스트의 답안은 해마다 판에 박은 듯했다. 학생들이 나이 든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적어도 교수가 실험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는 말이다.
노인이라는 단어를 듣고 학생들이 주름살, 굽은 허리, 굼뜬 움직임, 대머리, 백발을 떠올렸을 때 그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한 학생은 ‘진심으로 죄송해요, 교수님’이라는 사과 메시지를 남겼다). 쇠약함, 힘이 없음, 기력 없음, 골골거림이라고 적은 학생도 있었다. 또, 조부모는 기본이고 부모를 가리키는 다양한 표현이 적힌 메모지도 심심찮게 나왔다. 의대 신입생의 부모 정도면 대개 4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 사이임을 감안할 때 기껏해야 중년일 텐데 말이다. 지혜로움이라는 응답도 소수 있었지만 우울함, 답답함, 꼬장꼬장함, 궁상맞음이라 적힌 메모지들에 금세 묻혔다. 심지어 ‘좀약과 퀴퀴한 담배 연기 냄새가 남’이라고 적은 학생도 있었다.
반면에 어르신이라는 표현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나온 응답은 지혜로움이라고 했다. 그 밖에 존경, 리더십, 경험, 권력, 재력, 지식이라는 답변도 있었다.
미코 교수가 이 실험을 하는 이유는 노년층이 의사로서 시간과 공을 들일 가치가 있는 상대임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는 이것이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임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학생들이 어리다는 것도 미숙하다는 것도 아니라고 그가 내게 말했다. 그는 병원의 동료들은 물론이고 의학과 완전히 무관한 일을 하는 친구들에게도 똑같은 실험을 해 봤다고 한다. 그중 상당수는 본인이 충분히 노인으로 불릴 법한 연령대였다. 교수가 내린 결론은 “노인이라는 단어는 이제 가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이 단어를 계속 사용하기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란다.
이상주의 성향이 강한 의대 신입생들과 의사를 친구 혹은 동료로 둔 상냥한 성격의 사람들조차도 문화적 선입견 때문에 노인이라는 표현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가. 현재 이것은 전 세계적인 추세다. 그럼에도 포기하기엔 이르다. 아직 희망의 여지는 있다.
사람들은 노인의 동의어인 어르신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들이 직접 포착한 어르신의 긍정적 덕목들 역시 진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두 동의어 사이에는 묵직한 단절감이 존재한다. 이것은 그들이―그리고 우리들이―늙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음을 암시한다. 혹시 사람의 일생을 이등분이 아니라 삼등분하는 게 맞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노년기를 인생의 제3막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의 두 차례 무대에서 보여 주었던 것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고민과 호기심과 열정 충만한 또 하나의 시작이라고 말이다.
위의 사례를 보면서 대한민국 1세대 철학자로서 철학계의 거장으로 불리며 100세를 넘긴 지금도 강연과 집필을 쉬지 않고 있는 저자를 통해 나이들어가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제 100세 시대는 삼모작의 시기입니다. 100세를 살아오신 김형석 저자는 100세를 살아보니 60세에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100세 시대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직업 선택도 유연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한번 직장은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과 은퇴라는 일방적인 공식을 버리고, 100세 시대에 맞게 80세에도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KFC를 창업했을 때 샌더슨 대령의 나이는 69세였습니다. 100세 시대에는 60은 새로운 일을 하기에 알맞는 연령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노인이 아닌 어르신으로 자리매김 하지 않을까 합니다.
다음 주에는 『Gigged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는 책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참고 도서 〉
O 『어떻게 일하며 성장할 것인가』, 전영민 지음, 클라우드나인 출판, 2014.01.10 출간, 280쪽
O 『나이듦에 관하여』, 루이즈 애런슨 지음, 최가영 옮김, 비잉(Being) 출판, 2020.02.05 출간, 8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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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해가 뜨고 지는 일이 늘 반복되지만
그래도 어제보다 좀 더 나은 내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더불어 함께 오늘을 충실히 잘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남과의 비교가 아닌,
어제 나와의 비교를 통해 하루하루 성장하는 나를 만나고 싶습니다.
-새날 드림/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