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위밍
풀 = 욕망의 상징 프랑스와
오종의 국내 첫 극장 개봉작으로 기록될 <스위밍 풀>은 예술가라면
누구나 생각해 볼 자신의 자의식을 표현한 영화다. 하지만 자신의 자아를
대신할 인물로 그는 영국의 범죄 소설가를 설정하였으며 표현 양식 역시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어 <스위밍 풀>은 표면적으로는 미스테리적인
성격이 강한 심리물처럼 인식된다. 오종의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은 마지막에야
밝혀지며 관객들은 영화를 다시 되짚어 보며 '창작'에 대한 오종의
이야기를 되새기게 된다. 프랑스와 오종은 DVD에 수록된
인터뷰를 통해 영화 속의 '스위밍 풀'은 여주인공 사라 모튼(샬롯 램플링
분)의 욕망을 상징하는 '스크린'이라고 표현하는데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여러번 등장하는 '수영장' 장면들은 열려 있거나 등장 인물이 수영을
한다든가 하는 단순한 사건의 표현을 넘어 여성으로서의 성적 욕망
그리고 충동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마음의 영사기'같은 역할을 하는
영화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와
오종의 세계
표면적으로
<스위밍 풀>의 내러티브는 오종의 전작들인 <바다를 보라>(1996)와
<사랑의 추억>(2000)을 연상시킨다. <바다를 보라>에서
해안가에 위치한 집에 사는 중류층의 여인은 자신의 집을 여행하던 여인에게
호의를 베푸는데, 호의를 받게 된 악한 여행녀는 오히려 선한 중류층
여인을 파멸시키고 만다. 악이 선을 압도한다는 <바다를 보라>처럼
<스위밍 풀>의 모티브 역시 평온한 중산층 여성에게 다가오는
무례한 또 다른 여인과의 갈등을 그리고 있어 유사한 대립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또 <사랑의 추억>에서 다루었던 갑자기 사라진 남편을 찾는
여인의 심리적 여정은 <스위밍 풀>에 밑바닥에 깔리며 영화 속에
숨어 있는 다른 의미의 내러티브 역할을 한다. 또 두 편의 영화는 모두 '물'이라는 이미지가 인간
심리의 상징 체계로 사용되었는데 <스위밍 풀>에서도 '물'은 '욕망'의
구체화된 표현으로 사용되는 것은 매한가지다..
오종은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유럽 중산층의 심리적 심연에 숨어 있는 욕망을
공격적으로 해석하고는 했는데, 그의 영화들 속에 자주 등장하는 근친상간,
동성애, 섹슈얼리티, 살인 등의 소재들은 단순한 흥미 요소를 넘어 관객들을
도발하며 내적 충돌을 빚게 하는 영화적 장치로 사용되어 왔다. 무정부주의적이라 평가되던
오종의 영화도 <사랑의 추억>부터 좀 더 세련되고 은유적인 방식으로
표현되기 시작하는데 사람의 감정선을 잘 잡아내는 그의 능력은 <스위밍
풀>에도 잘 담겨 있다. 오종은 파스빈더를 제일 존경하여 파스빈더의
희곡 <워터 드랍스 온 버닝 락>(2000)을 연출하기도 하였으며
플롯의 갈등들은 히치콕적인 경향을 띈다고 평가된다. 거기에 일부 평자는
더글라스 서크와 루이스 뷔누엘의 이름을 거론하기도 한다. 거장의
만신전에 올리기에는 아직 오종은 젊지만 확실히 독특한 자신의 영화
세계를 쌓아가고 있음을 확실하다. 좀 더 프랑스와 오종의 작품 세계를 접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비록 검열로 인해 일부 장면들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스위밍
풀> 이전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는 <프랑스와 오종
박스 세트>(이 박스 세트는 검열이 완화되어 온전하게 재출시되면
교환을 약속한 보증서가 포함되어 있다)를 보시기를 권한다. 프랑스와
오종 스타일의 '뮤즈' <스위밍
풀>의 초반 20분은 부진에 빠진 범죄 소설가인 사라 모튼의 일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편집장 존의 권유로 프랑스의 서부 지역 뤼베롱에서
평안한 휴가를 보내던 사라에게 예고 없이 존의 딸이라는 줄리(뤼디빈
사니에르 분)가 찾아 오고 사라는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시끄럽게 전화
통화를 하고 남자를 끌어들여 잠자리를 불편하게 하는 줄리.. '수영장'은
사라와 줄리, 둘의 갈등 상황을 보여주는 주요 매개로 작용한다. 처음에는
자유롭게 수영장을 누비는 줄리와 달리 사라는 줄리를 응시하기만 할
뿐인데 중반부에 이르면 역시 수영을 즐기는 사라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위축되는 쪽은 줄리다. 특히 후반부에는 닫혀진 수영장을 열어 놓는
사라의 모습이 발견되는데 이는 자신에게 찾아온 욕망이 봉쇄될까 두려워
벌이는 사라의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사라와 줄리의 관계는 권력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주도권을 누가 갖는가에 따라 그
관계가 변화하는 상호 갈등적인 측면이 강하다. 초반부
청교도처럼 절제되었던 사라의 모습은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생기를 찾아가고
그 분기점이 되는 것은 사라가 줄리에 대한 글을 노트북에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이것은 사라의 마음에 줄리가 들어오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며, 초반부 수영장을 일컬어 '박테리아가 들끓는 것
같다'며 수영을 거부하던 사라의 변화에는 줄리라는 대상물이 있었기에 변화가
가능했음을 보여준다. 결국 줄리는 사라에게 있어 예술가의 영감을 불어 넣는다는
'뮤즈'와 같은 역할을 한다. 만약 헐리우드라면 영화는 다분히
경쾌한 코메디로 향했겠지만 프랑스와 오종은 역시 자신의 스타일로
'원초적인 뮤즈'를 그려낸다. 사라와 줄리는 주도권을 놓고 심리적인
갈등을 빚으며 둘의 심리적 충돌장이 되는 것 역시 '수영장'이다.
영화 속에서 두 여인은 같이 수영하지 않는데, 그것은 '수영장'이 개인적
욕망의 출구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욕망에 충실해지는 사라는 충동적인
살인을 저지른 줄리의 범행을 은폐하며 정점에 이르게 된다. 또 동시에
영화는 열정적으로 작품을 완성해 내는 사라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앞서도 말한 것처럼 <스위밍 풀>에 담긴 또다른 의미 즉 '창작자의
자의식'이라는 면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라는 근심을 멈추고 창작의 생기를 찾아가는가 ?
스타일적으로
스릴러같은 긴장감을 조성하지만 <스위밍 풀>은 '누가 범인인가
?'가 중요한 헐리우드 전형적인 스릴러와는 거리가 멀다. 오종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스위밍 풀> 속에서 '왜 살인을 저지르는가
?', '결국 잡히는가 ?' 등의 물리적 문제들은 차후의 문제일 뿐이다.
결국 이 작품의 관심은 표면적으로 두 여인이 갖는 갈등 그리고 그 바닥에
깔린 욕망에 의해 추동되는 창작의 모티브 문제다. 초반부 줄리로부터
'추잡한 것은 다 쓰면서 실천은 못하지 않는가 ?'라는 힐난을 들었던
사라는 결국 '살인'에 참여하며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고 의존하던 남성으로
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욕망'은 창작의 고삐를 당기는 심리적
원천으로 해석된다. 과거의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욕망'을 제어해야하는
'악'으로 보았다면 현대의 프랑스 철학자들은 '욕망의 탈주'가
새로운 미적 의식을 영역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이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이성의 중요성을 넘어서는 찬란한 욕망, <스위밍 풀> 속에서 감독이
표현하고 싶었던 것 역시 금기와 한계를 넘어서는 창작자의 자세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초
암전이나 단축이 예상되던 <스위밍 풀>의 음모 노출신들은 심의의
완화 덕분인지 온전히 살아남아 '무삭제'로 발매되었다. 일체의 암전,
단축이 없다. 영화 속에서는 꽤 강도 높은 누드씬들이 등장하고는 하지만
에로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스위밍 풀>은 프랑스와 오종이라는
새로운 시네아스트를 접하기에 매우 편안한 영화이며 독성이 강하지만
매력적인 그런 작품이다. <피터팬>의 '팅커벨'역으로 헐리우드에도
진출한 루드뷘 사니에르와 원숙하고 매력적인 샬롯 램플링의 연기 역시
이 작품의 빼 놓을 수 없는 매력이라고 하겠다.  ■ Menu 영화
속의 정적인 장면들을 배경 화면으로 설정한 메뉴 화면은 독특한 영화의
분위기를 잘 설명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깔끔한 인상이지만 조금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 Videol ★★★ 평균적인
정도의 화질을 보여주는 <스위밍 풀>은 실내외의 장면에 따라
영상 퀄리티에 차이가 꽤 나는 편이다. 초반부 실내 장면들의 경우,
배경 디테일의 묘사에 지글거림이 발견되며 상대적으로 거친 입자들이
발견된다. 중반부 이후 훨씬 안정된 영상을 보여주는 편이기는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라고 하겠다. 또 몇몇 장연에서는 인위적 해상도를 올리느라
그랬는지 인물의 윤곽선이 강조되어 고스트 현상같은 모습이 발견되기도
한다. 하지만 실외 장면들의 색감이나 채도 등이 잘 살아 있으며 인물
질감 묘사 등은 꽤 좋은 편이다. 상대적으로 실내 장면들의 표현력이
떨어져 아쉽기는 하지만 감상에 문제가 있는 정도는 아니다. ■ Audio ★★★☆ 필립
롬비가 음악을 맡은 스코어는 의도적으로 피아노음이 강조된 단조로움을
되어 의도적으로 단조롭게 표현되는데 반면에 마루가 삐걱거리거나 가방
지퍼를 올리는 소리, 수영시의 물이 출렁거리는 소리 등의 생활음은 세심하게
표현되고 있고 필요에 따라 리어부에 잘 분배되어 기대 이상의 깔끔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DTS와 DD5.1 을 다 지원하지만 영화의 특성상 대사음이 강조되는
센터부에 집중되며 우퍼는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 ■ Special Features ★★★
삭제
장면(12:44)
4장면의
삭제 장면이 수록되어 있다. 본편에 지원되지 않는 감독의 코멘터리가
제공되어 잘려나가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주로 영화의 전개에
대한 좀 더 설명적인 장면들이 수록되어 있다. 인터뷰 (26:15) 메이킹
다큐멘터리가 없는 <스위밍 풀>의 DVD 서플 중 가장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메뉴는 풀장 앞에서 이루어진 '인터뷰'다. 문답 형태로
진행되는 인터뷰를 통해 작품의 각 캐릭터들과 의미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심도가 아주 깊은 편은 아니지만 꽤 많은 질문에 대해 성실히
답변해 주는 감독과 주연 배우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QC에서는 샬롯
램플링을 선택하면 뤼디빈 사니에르의 인터뷰가 나오는 오류가 발생하는데
실제 출시작에서도 발생하는 오류인지는 알 수 없다. etc.. 그 외의 서플먼트로는 두
개의 갤러리, 예고편, 감독과 배우 소개 등이 담겨 있다. <스위밍
풀>DVD의 국내판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서플먼트를 제공하는 프랑스판에
미치지 못하지만 북미판보다는 다양한 서플먼트가 수록되어 있다. 상징적인
장면들이 꽤 많아 코멘터리 등이 포함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스위밍
풀>은 국내에 상업적으로 개봉되는 프랑스와 오종의 작품이다. 최근
관객 1000만 시대를 맞이했다는 국내 영화계는 축제 분위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헐리우드 방식의 와이드 릴리즈를 통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는 최근의 상황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한편에서는
엄청난 흥행 성공을 축하하지만 정작 작고 소중한 영화들은 스크린 확보에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런 현상에 따라 '시네아스트'라고
불리우는 작가들의 작품은 영화제나 특별전 등을 제외하면 접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DVD는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영화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만큼 콘텐츠는 다양하며 선택의 폭이 넓어야 하는데 실상은
꼭 그렇지 못하다. 프랑스와 오종은 '미래의 시네아스트'로 손꼽히는
인물이며 독특한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젊은 나이에 이루어가고 있는
성장하는 아티스트다. 그런 점에서 <스위밍 풀>은 오종의 영화
세계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 같다. 더구나 기대하지 않았던
'무삭제' 버전의 작품이므로 검열에 강한 불만을 품어 해외에 눈을 돌렸던
사람들도 비싼 외국산 DVD를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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