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개헌 과정이다. ㉠부터 ㉤까지의 내용 중 옳지 않은 것을 모두 고른 것은?
개헌 | 시기 | 정치체제 |
1차 | 1919년 | ㉠ 대통령제 |
2차 | 1925년 | ㉡ 국무위원 집단 지도 체제 |
3차 | 1927년 | ㉢ 국무령중심의 내각책임제 |
4차 | 1940년 | ㉣ 주석제 |
5차 | 1944년 | ㉤ 주석·부주석제 |
① ㉠㉡ ② ㉡㉢ ③ ㉢㉣ ④ ㉣㉤
정답: ②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법 변천사
1919년 4월 상해에서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임시헌장에서 의정원(입법부) 규정과 공화정 체제를 명시하였고 이후 임정 헌법의 기본틀이 되었다.
1919년 9월,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와 서울의 한성정부를 통합하여 상하이에 통합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1차 개헌으로 의정원, 국무원, 법원의 3권 분립 체제와 대통령제를 갖추었다(초대 대통령 이승만).
1925년, 임정은 미주 지역의 독립 자금을 독점하면서 대통령의 직무를 다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승만을 탄핵하고 박은식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며 곧 헌법을 고쳐 내각 중심의 국무령제 개헌을 하였다(2차 개헌). 그러나 위상이 약해진 임정의 국무령에 주요 인물들이 나서지 않았고, 결국 김구가 1926년 말 취임한 후 1927년, 국무령 중심의 집단지도 체제(국무위원제)로 전환하여(3차 개헌) 이동녕과 함께 체제를 재정비해 나갔다.
중·일 전쟁(1937)으로 일본군이 항저우로 침략하자, 임정은 호남성 창사 등을 거쳐 1940년 중국 국민당 정부를 따라 사천성 충칭에 정착하고, 동년 10월에는 주석 중심제 헌법을 채택하였다(4차 개헌: 김구 주석).
임정은 1941년 11월, 조소앙의 삼균주의에 입각한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발표하여 광복을 앞두고 분열된 민족 운동을 하나로 통일하려는 의지도 담았다. 그리하여 임정과 라이벌 관계였던 김원봉의 민족혁명당과 조선 의용대의 일부가 임정과 한국광복군에 편입하고, 1944년 4월에 임정은 5차 개헌을 하여 주석.부주석 지도 체제를 취하여, 민혁당의 김규식을 부주석에, 김원봉은 군무부장으로 임명하여 민족연합전선을 더욱 강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