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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8:26~31(신 200) 소중한 만남 2020. 5. 17.
참 좋은 5월의 셋째주일인 오늘 이 아침에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교우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게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아울러 오늘 주일예배가 여러분들의 생애에 있어서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소중한 날이 되길 진심으로 원합니다.
이 세상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큰 소리 치는 사람들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 살면서도 인간의 품격을 유지하고 고귀함을 잃어버리지 않고 사는 사람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혼자 살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이후로, 모든 사람들은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삽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에 있어서 <만남>이라는 단어를 제외할 수가 없습니다. 좋은 만남도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잘못되고 안타까운 만남도 있습니다. 좋은 만남으로 인생의 큰 버팀목이 되는 사람을 만나는가 하면, 잘못된 만남으로 인생이 송두리체 망가지기도 합니다.
소개하는 영상 하나를 보고 갑시다. 잘못된 만남이었지만 아름답고 가슴 따뜻한 만남으로 이어지는 영상입니다. (유투브 상영)
실수로 흑인 남성을 총으로 쏘아 죽인 여자는 경찰관이었던 <앰버 가이거,32>입니다. 이 여성이 쏘아 죽인 남자는 <보텀 진, 26>이었고, 형을 죽인 여자를 사랑으로 포옹하며 용서하는 젊은 청년은 <브랜트 진 18>이라는 청년입니다.
살해자 앰버라는 여성과 형의 만남은 잘못된 만남이었죠, 유능한 회계사였던 보텀은 자신의 집 거실에 앉아 있다가, 착각을 한 여성에게 영문도 모르고 살해를 당해 버립니다. 보텀이 앰버라는 여성을 만난 것은 잘못된 만남이지만, 보텀의 동생 브랜트와의 만남은 앰버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는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방금 본 영상에는 나오지 않지만, 다른 영상 자료에 보면, 브랜튼이 앰버를 껴안고 난 뒤에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뉘우친다면, 나도 하나님에게 당신을 용서하겠다고 다짐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에게 귀의한다면, 하나님에게 당신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깨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네 인생에 있어서 소중하고 아름다우며 귀한 만남이 믿음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의 인생에 가슴이 따뜻한 좋은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만남이 많이 있길 원합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에 보면 좋은 만남의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 아프리카 북부에 <에디오피아>란 나라가 있습니다. 지금은 세계에서 못 사는 나라 중에 손꼽는 가난한 나라이지만, 신약 성경 기록 당시에는 매우 강력한 나라였습니다.
그 나라의 국고(나라의 살림살이)를 맡은 내시가 먼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의 목적지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입니다.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찾아 가는 길은 아주 먼 여행길이었고, 더구나 그 길은 광야와 사막을 통과해야 하는 매우 힘든 길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방문 한 후 힘들게 집으로 돌아가는 이 여행길에서 <빌립>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에디오피아 내시와 유대인 빌립은 만나게 됩니다. 이들의 만남 성격을 구별한다면 어떤 만남일까요? 이들의 만남은 기대하지 못한 <뜻밖의 만남>이었습니다. 내시는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유대인 빌립을 만날 것을 조금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생각 밖의 만남입니다. 이런 뜻밖의 만남이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만남이 될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인생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잘못된 만남도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화투놀이를 하다가, 종종 화투로 <화투점>이란 것을 치면서 “오늘은 귀인(貴人)을 만나겠구나”라고 던지는 말씀을 자주 들었습니다. “오늘 귀인을 만나겠다”는 말은 “오늘 뜻밖의 소중한 만남이 있겠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심심풀이 놀이로 하는 화투점이지만, 귀한 만남을 원하는 모습은 세상 어느 누구에게나 다 동일한 모습입니다.
인생에 도움이 되는 소중한 만남은 뜻밖의 만남으로 축하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인생에 해악을 끼치는 뜻밖의 만남 또한 늘 우리네 인생에 상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인생을 바꾸어 놓는 결정적이고 뜻밖의 만남은 없으셨나요?
제가 알고 있는 선배 목사님 한 분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대학교 1학년 때까지 교회에는 관심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고, 하나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2학년 5월 학교 축제가 끝나고 집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립니다. 버스가 왔지만 만원이라 타지 못하고, 다음 버스를 탈 생각으로 그냥 보내 버립니다. 그리고 다음 버스를 탑니다. 타고 보니 반가운 얼굴이 있는데, 같은 과 1년 여자 선배를 만납니다. 비록 선배였지만, 입학할 때부터 그 선배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후배로써 그냥 짝사랑만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버스가 가는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선배가 그에게 깜짝 놀랄 제안을 합니다. “여름 방학 때 무슨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3박 4일 동안 나랑 함께 가자!”라고 말하는 거에요. 짝사랑하는 여선배가 3박 4일 놀러 가자는 말에 마다할 남자가 어디 있겟어요.
여름방학오기만 손꼽아 기다렸다가 선배를 따라갑니다. 그런데, 무턱대고 따라간 곳이 바로 대학생들이 모인 CCC 신앙수련회였습니다. 하나님에 관심이 없던 그는 처음엔 당황합니다. 중간에 그냥 빠져 나올까 생각도 하다가, 좋아하는 여선배 때문에 중도에 도망쳐 나오지 못하고, 끝까지 참석합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여자 선배 따라온 이 수련회에서 그는 인생이 뒤바뀌게 되는 하나님을 만나는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결국 두 사람은 사로 사랑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결혼하고, 남자 형제는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 분에게 있어서 여선배와 만남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뜻밖의 만남이었습니다. 처음 온 버스를 그냥 탔더라면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날 버스 한 대를 그대로 보낸 덕분에 그는 평소에 짝사랑하던 여자선배와 결혼하게 되었고, 그리고 인생에 가장 소중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소중한 만남이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순간에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두 사람의 만남이 정말 뜻밖에 발생한 우연한 만남일까요?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하면, 누구나 다 그것은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진짜 우연히 만난 만남일까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결코 우연한 만남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우연히 만나는 만남이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 안에서 성도가 만나는 것은 결단코 우연이 아닙니다. “당신과 내가 그저 좋아서 만났고 우리가 결혼했다”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만남이 이루어지도록, 창세전에 미리 예정하시고 준비하셨기에 가능한 만남인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 성경 말씀에서 빌립과 에디오피아의 내시가 만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26절 보세요.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남쪽으로 향해 가라고 말합니다.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은 유대 사막 한가운데 길입니다. 이 길은 광야 사막길로서 사람이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는 가급적 다니지 않는 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빌립에게 이 광야 길로 가라고 말합니다. 왜 그런가요? 빌립더러 그 광야 길에서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를 만나도록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두 사람의 만남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계획하신 만남이었습니다. 우연히 만나는 만남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만나게 하신 필연적인 만남이라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와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오늘 우리가 여기 앉아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도록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만나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다른 교우들을 만나는 것이 우연히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자리에서 함께 만나 예배하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이 좋은 만남을 우리는 바이러스 확산 때문에 두 달여 동안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아직도 바이러스가 활동하고 있지만, 우리가 주일이면 만나는 이 소중한 만남이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두 가지 만남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상황은 수천 수만가지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내 눈에 콩깍지가 씌여서 만났다”고 투덜대고 말하면서 평생을 백년해로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당신은 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하면서, 세상이 떠들썩하게 화려하게 결혼해 놓고 불과 몇 년을 못 살고 이혼하는 연예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수만가지 만남의 종류와 상황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수 만가지 만남이 있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사람의 만남에는 두 가지 만남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두 가지 만남이 무엇인가 하면, “우연(偶然)의 만남, 필연(必然)의 만남”입니다. 우연과 필연의 한문 뜻을 잘 살펴야 합니다. 우연히 만나느냐? 필히 만나야 되는 만남인가?입니다.
우연히 만나 부부가 되었다는 말은 매우 무서운 말입니다. 우연치 않게 만났기 때문에, 헤어지는 것도 우연치 않은 오해와 갈등 때문에 쉽게 헤어질 수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필연의 만남>은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 말로 “하늘이 짝지워 준 만남”이라 말합니다. 이 말은 성도의 입장에서 신앙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짝지워 주신 만남”이라는 뜻입니다. 제 아무리 짤라 놓아도 다시 이어지고 만나는 만남은 필연의 만남입니다.
저는 그래서 가수 노사연 씨가 부른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만남>이란 곡을 좋아합니다. 일설에 보니 노사연씨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뒤에 만든 곳이라고 하더군요. 신앙 안에서 우연은 없고 필연의 만남만이 있다는 고백이겠지요.
오늘 여러분들이 만난 이 만남을 그냥 우연히 만난 만남이라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고, 사랑하는 여러 교우들을 만나는 이 만남을 통해서, 여러분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만남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2. 예수님과의 만남
교회에 나오시는 모든 분들이 다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면,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이겠습니까만, 교회에 출석하는 분들 중에 그렇지 못한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마을 어르신들이 교회당에 대해 하시는 말씀 중에, “연애하러 교회당에 나간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오늘 날처럼 다양한 문화 활동이 없었고, 남녀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곳이 그리 흔하지 않던 시대에서 교회당은 젊은 청춘 남녀가 자연스럽게 만나 서로를 알 수 있는 장소였던 점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회당에 와서 예쁜 처자만 찾고, 교회당에서 핸섬한 청년만 찾았다면, 이 분은 헛걸음하고, 헛다리짚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교회당에서 연애하고 교제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였다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몽땅 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을 발견하고, 내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만남 중에서도 예수님과의 만남이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과 만나지 못한다면, 다른 만남은 중요한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 버립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한 내시가 그러했습니다.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그렇게 아름답고 휘황찬란하게 만든 예루살렘 성전도 가보았지만, 내시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본문에서 내시가 예루살렘을 방문한 목적을 말하고 있지 않지만, 많은 주경학자들은 내시가 풍문으로 들었던 예수님에 대한 사실들을 확인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율법학자들도 만나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도 만났을 거에요. 하지만 그들에게서 예수님에 대한 그 어떤 것도 얻어 내지 못하고 다시 빈손으로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전도자 빌립을 내시에게 보내어 말씀을 깨닫게 하여, 예수님을 만나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이미 발견하고, 가슴에 모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소중한 만남을 더 소중하게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내시처럼 예수님을 만나지 못해 광야를 달리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31절 보세요.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내시는 “자신을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하나님을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한다”라고 안타깝게 외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내시의 마음을 열어 주시사 생면부지 유대인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타게 합니다. 수레에 올라타게 하였다는 말은, 빌립을 자신의 생활 공간 안으로 초청하여 받아 들였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내시는 빌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이후 39절에 보면 이런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내시가 기쁘게 자신의 길을 갔다고 말합니다. 왜 내시가 기쁨을 가지게 된 것인가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소중한 만남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비워져 있었던 빈 마음에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이 전해졌기 때문에, 그는 기쁜 마음으로 고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들의 마음에 기쁨의 근원이 되신다는 것을 믿으시는가요? 예수님이 내 인생에 있어서 기쁨의 근원이요. 출발점이며 전부라는 것을 신앙 고백하시는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수님과 소중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분들입니다.
예수님과 맺은 이 소중한 만남이 여러분 곁에 있는 사랑하는 아내와 사랑하는 남편과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이어지는 만남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예수님과는 소중하고 좋은 만남을 이어나가면서도,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와 자녀들과는 불편한 만남을 이어나가는 신앙 장애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내 인생에 있어서 예수님은 나에게 소중한 동반자가 되어주고, 내 인생을 올바르게 이끌어 나가는 등대와 같은 분이 됩니다. 하지만 내가 예수님을 버려 버리고 다른 것으로 내 인생의 등대를 삼고자 한다면, 내 인생은 결단코 올바르게 성장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진리를 여러분의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와 동료들에게 알려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 전파이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성도들이 가져야 하는 행동입니다.
설교를 위한 영상 하나를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30년 만에 법정에서 만난 절친의 참회의 눈물”이라는 영상입니다. 기독교 방송에서 만든 영상이 아니라 YTN에서 만든 영상입니다.
여러분이 보셔서 알겠지만, 중학교 시절에 아주 단짝으로 지내던, 인기가 많았던 흑인 아이가 있었고, 흑인아이와 단짝이었던 백인 아이도 있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3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둘의 나이가 40대 중반입니다.
그런데 둘의 신분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백인 여자는 판사가 되어서 법의 심판을 집행하는 자였고, 그 자리에 흑인남자는 죄인이 되어서 심판을 받는 모습입니다. 영상 중간에 흑인이 계속해서 우는 모습을 보셨을 것입니다. 자신의 범죄를 수치스러워하는 모습입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을 떠났고,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 안에 계속 머물렀던 결과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었고, 그리고 그 만남을 바탕으로 가족과 교우라는 소제목으로 만남이 이어집니다. 이 소중한 만남이 하나님의 큰 축복으로 남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