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19. 다음의 가상신문에서 언급한 사건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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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군이 일본 공사관을 습격하자 일본인들이 도망치기 시작하 였다. 습격받은 일본인들은 살기 위해서 궁(宮)으로 들어갔는데그 궁(宮)마저도 반란군의 무리가 많이 모여 있었다. 지금 현재 한국은 무정부 상태이다. - 1882년 6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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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일본군의 궁궐 침입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었다.
② 조·청 상민수륙 무역장정이 체결되어 청의 종주권이 인정 되었다.
③ 조·일 무역규칙이 체결되었다.
④ 청·일 양국군대의 공동 철수와 파병 시 상호통보 사항에 합의하였다.
정답: ②
* 임오군란
개항 후 창설된 신식 군대인 별기군에 비하여 차별받던 2영의 구식 군인들은 민씨 일파 등 집권층의 부패로 13개월 만에 월급으로 지급받은 쌀에 겨와 모래가 섞여 있자, 마침내 폭발하여 선혜청을 습격하며 임오군란을 일으켰다(1882.6).
이들은 정부 고관들의 집을 부수고 일본 공사관을 습격하였다. 이 와중에 별기군의 일본인 교관이 죽었다. 그 후 서울의 하층민들이 가세하여 세력이 더욱 커지자, 구식 군인들은 왕궁을 습격하고 민씨 일파 등 고위 관리들을 처단하였다. 군인들이 궁궐에까지 침입하자 민비는 종적을 감췄고(장호원 피신) 고종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흥선 대원군에게 정권을 맡겼다.
그러나 민씨 일파로부터 군대 파견을 요청받은 청은 일본의 무력개입을 막기 위해 신속하게 군대를 출동시켜 군란을 진압했으며, 군란의 책임을 물어 흥선대원군을 자국으로 납치해 갔다. 또한 청은 군대를 주둔시키며, 마건창과 묄렌도르프를 고문으로 파견하여 조선에 대한 내정을 간섭하였고,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1882.8)을 체결하여 청의 종주권 확인과 잔권과 내지통상권을 얻어 도성의 시장과 개항장 밖 내륙 시장까지도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일본은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여 군란의 책임을 물었다. 이에 굴복한 정부는 제물포 조약(1882.8)을 체결하여 사과 사절단의 파견, 주모자 처벌, 배상금 지불, 공사관 경비를 위한 군대 주둔 등 일본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① 삼국간섭(1895.4.23)으로 요동반도를 반환하며 위축된 일본은 민비가 러시아와 연결하여 일본을 견제하려 하자, 일본은 일본 군대와 해산 직전의 훈련대의 내응에 힘입어 경복궁 건청궁에 난입하여 을미사변을 일으켰다(민비 시해 사건, 1895.10).
③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규, 1876.2)의 후속 조치로 체결된 무역규칙(통상장정)과 부록(1876.8)을 통하여 일본은 무관세, 양곡의 무제한 유출, 일본 화폐 사용이 가능해졌다.
④ 갑신정변(1884.12) 때에 청·일 양군의 도성에서 충돌하자 청과 일본은 톈진조약(1885.4)을 체결하여 청·일 양국군대의 공동 철수와 파병 시 상호통보 사항에 합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