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보성고 53회 60*80 기념 여행 후기-
“한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는 것이 우리들의 천국”
★★
들떴던 마음 가라앉히고 차분한 마음으로
60*80여행 되돌아보기 위해 잠시 숙성기간을 가졌습니다.
자질구레한 에피소드 걸러내기 위한 것이었지요.
처음부터 글 쓸 생각 없었기에 당연히 일정표 외에 메모 한줄 없어
순전히 기억에 의존했습니다. 따라서 순서며 지명이
다를 수도 있다는 걸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호흡이 짧으신 분이나, 혹 시비를 걸거나
꼬투리 잡기 위해 오신 분이라면
이쯤에서 나가 주시기를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이는 오직 개인의 넋두리일 뿐이니까요.
★★
<둘째 날>
바람 불어 좋은 날 아침. 배불리 먹어야 볼 것이 보인다던가? 학사평 순두부 마을. 이곳에 순두부집이 많은 이유는 실향민들이 정착, 손쉬운 음식을 찾다가 두부를 선택한 때문이라네요.
맑은 국물에 순두부 동동. 보자마자 양념장 넣으려는데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여행 오가는 동안 고급 카메라 장만하고 실전에 나선 강전덕과 함께 “찍새” 역할하고 있는 최창만. 얼굴엔 미소 머금고 있지만 그 속엔 한심스럽다는 표정이 역역합니다.
“순두부는 그냥 먹어야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단다.” 아하, 그렇구나. 왜 진작에 그걸 몰랐을까? 지금까지 수백 그릇은 먹었을 법한데. 純. 이름에도 순수하다는 뜻을 담고 있지 않은가? 이 바보 멍충이 같으니라구. 잠시 얼굴 화끈 달아오릅니다. 장을 치고 안치고 먹었을 때의 맛은 사뭇 달랐으니까요.
마지막 일정의 신흥사. 푸른 기와와 화려한 단청 두른 일주문이 일행을 맞습니다. 지금껏 설렁설렁 둘러본 것이 못내 아쉬워 눈 부라리며 보기로 작정해 봅니다만 어쩔거나, 녹슨 몸은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것을요.
설악산 높이 1,708m. 한라산 지리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라고 안내도에 적혀있습니다. 반달곰 석상은 좋은 포토존. 셔터 누르며 놀명 쉬명 걸어갑니다. 산새 소리, 개울물 소리 들릴법한데 조용합니다. 바람소리에 묻어간 것일까요?
중생을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 불상이 연등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통일 대불로 석가모니 형상이며 높이는 14.6m). 천왕문 계단을 오르고 극락보전에 이르면서 볼거리 시간을 갖습니다. 목조‘아미타여래삼존불을 모신 곳’ 이란 안내판이 보입니다. 주어진 시간은 1시간. 아하, 어제도 오늘도 보이느니 연등인데 그것이 ‘부처님 오신 날’ 때문이란 걸 이 중생 뒤늦게 깨닫습니다. 삼성각이며 범종루 따위는 관심밖.
雪井閣에서 졸졸졸 떨어지는 물 두어 모금 마시고 일부러 해우소를 찾았는데 이럴 수가? 옛 모습 간데없고 현대식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두 다리 쭈구리고 앉아 몸속 오물과 근심 한 바가지 풀어냈어야 했는데 살짝 아쉬웠습니다.
왁자지껄. 할배들이 나무 그늘 평상에 둘러앉아 있습니다. 강성구 이정교가 흐느적 어슬렁 내려오는 친구들에게 ‘생명의 물’을 돌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목 칼칼하던 참이었는데 가뭄의 단비입니다. 커어~억. 한 잔 막걸리가 세파에 찌든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날려버립니다.
속세로 나가기 전 번외의 때 벗기기 위해 온천을 찾습니다. 척산. 땅 밑 4,000m에서 올라오는 물 섭씨 53도. 평일이기 때문일까요? 사람 없어 물 깨끗합니다. 우리들의 세상입니다. 배불뚝이 친구들이 알몸 드러내며 저온탕, 중간탕, 열탕, 냉탕을 들락거립니다. 대부분이 ‘배불뚝이’입니다. 자랑하듯 드러낸 ‘튼실한 놈’도 힘없이 늘어진 ‘쭈글때기 놈’도 눈길을 끕니다. 이럴 때 누구누구 ‘배때기’가 터 큰지, 어느 할배 ‘거시기’가 더 큰지 자랑놀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알몸의 최창만 권형중 등 밀어주는 건 색다를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미끈거리는 감촉에서 순진무구한 동심을 느꼈고, 돼지껍데기 떠올리며 사람의 몸도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으니까요. 살과 살을 맞 댄다는 건 마음과 마음의 교류 아닐는지요?
“이별의 시간입니다. 잘 있거라 설악산아. 우리 보성53회 멋쟁이 할배 40명 이 이곳에 발자국, 숨소리 남겨놓고 갔다는 걸 기억해 주려무나. 그래서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이 찾아올 때 넌지시 바람 한 조각 날려 일깨워 주면 좋지 않겠니?”
햇빛 머리 위에 내리 쬐고 흙냄새 나뭇잎 냄새에 흠뻑 취해도 식욕은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막국수집. 막걸리 한 잔에 ‘일품 수육’ 한 점이라니, 세상만사가 헛것으로 보입니다.
아쉬움은 늘 한 발짝 늦게 오는 법. 보고 듣고 떠든 모든 일들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기 바랍니다만 하루 지나면 다시 흐릿해 지기 마련인 것을. 버스에 오르는 발걸음이 무쇠처럼 무겁습니다.
배부르고 몸 나른하니 식곤증이 오는 건 당연한 이치. 눈 감고 잠 청하려는데 버스 안이 갑자기 소란해 집니다. 어렴풋 들은 소리라 워딩 정확하지 않습니만. 한 친구 나서며 ‘이번 사태를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해야 하지 않느냐. 우리들 의견을 취합해보자’며 운을 떼자 다른 한 친구 “네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의견을 내느냐”며 반대하고 나선 것. 결국 일은 연말로 미루자는 쪽으로 마무리,
‘우리 53회는 언제까지 유지될까? 5년 후? 10년 후? 아니면? 기금 처리 문제는 또 어떻고? 언젠가 한번은 부닥칠 일인데 준비는 돼 있는 것일까? 우리 가장 젊은 나이 일 때, 이때 미리 정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공연한 생각이 들자 혼자서 피식 웃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학처럼 고운 심성 지닌 홍정수의 선물 받고 지레 가슴 옴찔했습니다. 졸지에 고아가 된 그에게 조문 제대로 못한 때문이지요. 더구나 슬픔과 아픔 아직도 가늠하기 어려울 텐데 선물까지 마련하다니... ‘보성고 53회 60*80 기념여행’이란 붉은 글씨 선명한 타올 볼 때마다 오늘의 일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떠오를 테지요만.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좋은 친구들 있어 더욱 그랬지요. 같은 교정에서 지낸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동류항이 틀림없으니까요.
거기엔 어떤 사회적 의미도 목적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때, 순박한 마음 엮어 만든 ‘순수의 갑옷’을 지금까지 잃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즐거움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게지요. 그래서 우리는 행복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것이겠구요.
그러고 보니 고마움 전할 사람 여럿입니다. 아무리 우리 마음 이심전심이라지만 그래도 고마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 한 마디는 해야 하지 않을는지요?
* 60·80 행사 위해 선뜻 희사금 내주신 분들. 이는 넓은 아량과 겸손함과 배려심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닌. 많이 고맙습니다.
* 행사 때마다 잊지 않고 대한민국 대표 술 ‘장수막걸리’ 내놓고도 아무런 내색 하지 않는 사람 유한종. 잔 부딪치며 즐겁게 마시면서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지내왔지요. 이번 여행이라고 예외는 아니었구요. 고마운지고.
* ‘가슴 떨릴 때 사진 많이 찍어라. 손 떨리면 셔터 못 누른다’ 는 명제를 실증하려는 것일까요? 맛있는 음식 제대로 못 먹고 아름다운 풍광 감상할 겨를도 없이 친구들 얼굴 보이면 으레 나타나는 ‘찍새’ 최창만 강전덕 권형중. 그들 있어 우리 기억 저장하고 소환할 수 있는 게지요. 고마운 친구들.
*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여행 준비위원들입니다. 그들이 땀 흘린 때문에 우리 즐거운 여행 무사히 마칠 수 있었으니까요.
생각 같아선 한 줄로 세워놓고 “수고 했소” 소리 외치며 헹가래치고 싶지만 이미 지난 것을... “애 많이 썼습니다. 고맙습니다”란 말로 대신할 밖에요.
아쉬운 점은 우리 53친구들 많이 참석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 있겠지만 걸을 수 있을 때 함께 했으면 좋았을 것을... 다음을 기약해 봅니다.
혹여 함께 하지 못한 친구들이 이번 여행기 보고 못마땅해 하거나 섭섭해 할 수 있겠습니다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해서 더욱 즐거웠지요. 같은 공간에서 같은 체험을 한다는 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함께 공유한 행복. 이런 체험이 발품 판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겠습니다만.
친구들아, 오래 사는 사람이 승자라는구나. 작은 스트레스도 생명을 단축한다니 긍정적으로 살잣구나. 나름 건강법으로 몸 관리 잘하고 친구들에게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선한 텔레파시 자주 보내주려무나. 전분세락(轉糞世樂),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 우리 곱씹어 보잣구나.
아자 아자 아자.
박동진 드림
2023.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