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상 지음
- 출판사
- 애플북스 | 2014-11-28 출간
- 카테고리
- 소설
- 책소개
-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천재 작가 이상의 시 산문 서간 125편 수...
오랜만에 이상의 시와 산문을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하고 사후에 그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한 작가가 "이상"이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발굴해 낸 상허 이태준과 소설가 박태원 등의 혜안으로 한국시단의 독특한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그의 시를 읽으며 동서양 시의 정의를 잠시 떠올려보았다. 동양에서는 시를 문재도론文載道論 이라 하여 도道를 실현시키는 수단이라고 이해했다. 이는 문학의 교훈적 기능에 해당된다. 널리 회자되고 있는 공자의 사무사思無邪는 생각에 간특함이 없으며 인간의 성정을 정화시키고 세상과 인간을 교화하는 것으로 이해했으며,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시를 일종의 모방으로 보고 사물의 형상을 운율적 언어에 담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작법의 차이는 있으나 시 같은 산문과 소설이 있으며, 산문 같은 시와 소설 같은 시도 있어 제각각 문학이란 그릇에 담긴다. 내가 읽은 이상의 시와 산문을 나름대로 분석, 정리해본다.
이상의 시를 해석하긴 쉽지 않다. 처음 오감도를 만났을때 머릿속이 온통 혼란에 빠졌던 기억이 새롭다. 이는 우리나라의 시적 정서를 완전히 벗어난 당시 서구의 문예사조인 다다와 초현실주의에 경도된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시의 미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가 어떤 정서적 교감이나 울림도 주지 않고 머리 아프게만 여겨진다면 누가 시를 읽겠는가 싶었다. 그런 측면에서 그의 문학을 이해했던 몇 사람을 제외하곤 문단의 반항아 내지는 시의 이단아로 받아드려졌던 것같다.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 <시제 1호~ 15호> 까지 연재되다 독자들의 항의로 인해 중단되기도 했다니 그 당시 시의 정서와는 완전히 다른 시도였던 것이다.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은 사물이 건네오는 다층의 의미에 반응하는 것이기도 하고, 어둡고 그늘진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 등 성찰과 반성을 통해 깊이 있는 사유를 길어낸 시적 리얼리티가 감동으로 이어지는 것일 터. 이상의 시는 시의 함축성에도 반하는 말의 남용과 언어의 유희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다.
그러함에도 다시 꼼꼼히 읽어보니 오감도에서도 시어의 참신성과 의미가 잘 전달되는 시를 발견하게 된다. 오감도가 지속되었더라면 어떤 시가 나왔을까 하는 아쉬움이 커질 만큼. 삶이 시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보통사람과 달리 기성윤리에도 맞선 기인다운 면모를 지녔던 그의 삶에서 작품을 이해하려고 시도해보곤 했다. 월광, 거울, 문 등 이상이 거듭 쓰는 시어에서 그의 심리상태를 유추해보면서. 시의 생명인 함축성을 무시한 무절제한 언어사용, 띄어쓰기 무시, 도형, 숫자의 나열, 말장난이 지나치다 할 정도의 작품들, 또한 시란 여백이 주는 울림도 있는데 휴지도 없는 의도적인 붙여쓰기는 운율을 차단함에 있어 기존 시적 질서를 해체한 것이라 여겨진다. 1920년대 우리 시단의 사조인 자연주의나 낭만주의 작품, 한용운이나 김소월의 서정시를 대하던 독자들이 놀란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문예사조란 앞 시대의 반동으로 나타나는 문학 양상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상의 실험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도 있겠다. 한국시단의 흐름을 보면 나름대로 명칭을 붙여 기존 시작법에서 변형을 시도한 새로운 실험시 운동을 펼쳐나가는 부류들이 여전히 있다. 모더니스트 이상 시의 난해성 또한 요즈음 일부 시인들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상이 우리 시단에 끼친 영향이 자못 크다는 말일 테다. 아래 시 또한 띄어쓰기만 했어도 좋을 작품이다.
사과한알이떨어졌다. 지구는부서질정도로아팠다.최후,이미여하한정신도발아하지아니한다. -"최후" 전문
놀란 것은 이상의 산문이다.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우아체 글이 흠잡을 데 없는 감동을 주었다. 소설 같은 수필형식도 참신하였다. 이상의 나이를 모른다면 중년의 수필 쯤으로 읽혀질 것이다. 그만큼 삶의 통찰이나 사유의 깊이가 깊게 배여있다는 의미다. "권태" 라는 수필처럼 농촌의 여름을 잘 표현한 작품이 있을까 싶을만치 성하의 한가로운 정경을 그림처럼 그렸다. 이상이 살았던 시대 농촌의 풍경들, 아이들의 놀이, 아낙네들의 모습 등 시대상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 시에서 좀 까칠해졌던 마음이 산문을 통해 따듯하게 풀어졌다. 이상은 글로 그리는 그림이 시보다 산문이었다. 그림뿐 아니라 냄새까지 맡아지는 생동감이 넘치는 시적인 문체다. 산문에서 이상의 인간적인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 반가웠다. 이상의 아내이자 화가 김환기의 아내인 변동림에 대한 이야기도 짧게 언급되고 있다. 천재 시인, 천재 화가를 알아본 안목을 지닌 변동림도 참 대단한 인물이다. 말미에 김기림 시인에게 보낸 서간문에서는 문예지 활동과 예술인의 외롭고 쓸쓸한 삶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천재 시인은 늘 춥고 배고팠던 것이다. 생전에 창부타령을 기막히게 잘 불렀다는 이상, 소설가 박태원의 글에 삽화를 그려줄 만큼 그림을 잘 그렸던 이상, 조선총독부 건축과 기수였던 이상이 설계한 건물이 지금도 이화여대와 서대문에서 염천교 사이에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 시의 난해함으로 인하여 그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가까이 하지 않았던 것에 미안한 마음이 인다. 새롭게 조명하게 된 이상의 시와 산문에 대한 여운이 짙다. 좀더 살았더라면 주옥 같은 작품들이 더 많이 나왔을 텐데, 그의 요절이 못내 아쉽다.
첫댓글 편지글에서 인간 이상의 면모가 잘 나타나지요. 시를 잘 읽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