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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6:1~3 자녀들아 주 안에서 2023. 5. 14.
지난 주 월요일인 5월 8일은 ‘어버이 날’입니다. 50대 이상 되신 분들은 이 어버이날 보다는 어머니날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더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도 어렸을 때는 어머니날로 먼저 기억되던 날이 5월 8일입니다. 어머니날의 유래가 어떨까요? 어린이날이 5월 5월이고 어버이날은 5월 8일이니, 아마도 어버이날의 기원이 된 어머니날 역시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기념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머니날은 대한민국에서 만든 날이 아닙니다. 어머니날 유래에 대해 잠깐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어머니날이란 공식적 의미는 영국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영국은 사순절이 시작된 두 번째 일요일 날에 “어머니의 일요일”로 알려진 것을 기념했는데, 이것은 전국에 있는 어머니들을 기리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과 같은 어머니날의 시작은 미국입니다. 어머니의 날은 1872년 유명한 미국의 평화주의자 줄리아 워드 하우에 의해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1907년, 미국인 필라델피아 출신의 안나 자비스는 그녀의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시작합니다. 안나는 정부 기관, 입법부, 그리고 저명한 개인들에게 일 년에 하루는 어머니들을 기리는 데 헌신할 것을 제안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1910년, 버지니아 주가 처음으로 어머니날을 공식적인 휴일로 인정합니다. 그 이후 1914년,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5월의 두 번째 일요일(마더링 선데이)을 모든 미국인 어머니들을 기리는 국경일로 선포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머니날이 1956년부터 기념되기 시작했고, 이 어머니날 행사가 확대되어서 아버지 또한 부모로서 존중 받아야 된다고 공감을 받으면서 1973년부터 어버이날로 제정되어 오늘까지 이르게 됩니다.
아버지이든 어머니이든, 자식을 키우고 양육하는 부모로서 모두 다 존중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존중을 받아야 되는 만큼 막중한 책임감 또한 함께 상존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존중 받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도록 모든 부모들은 항상 노력해야 합니다.
재미 칼럼니스트 최효섭 목사의 ‘어머니는 누구인가’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어머니는 백과사전이다. 아이들의 질문에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해가 지면 밤은 어디에 가 있는지, 제트기가 어떻게 날아가는지, 고양이 새끼가 어디서 나왔는지 척척 대답한다. 어머니는 간호사이다. 내 배가 아픈 것을 신기하게 만져서 치료할 줄 알고, 흔들리는 이를 아프지 않게 빼낼 줄 알며, 한밤중에도 아픈 귀를 고칠 줄 수 있다. 어머니는 위대한 탐정이다. 행방불명된 내 양말짝을 용케도 찾아낸다.
어머니는 아이의 하나님이다. 아이가 이 우주 속에서 어머니만큼 믿는 대상은 없다. 어머니만큼 의지하는 대상도 없다. 어머니만 곁에 있으면 아빠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이 없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십자가에 달린 순교자이다. 어머니의 인내는 치약의 튜브 같다. 다 쓴 것 같아도 짜면 아직 남아 있다.”
어머니는 이렇게 귀한 분입니다. 어머니라고 표현했지만,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다 귀하고 귀한 자리입니다. 이 세상에 어머니와 아버지 없이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으며, 아버지와 어머니의 은혜와 은덕을 입지 않고 자라난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초등학교 교과서에 ‘어머님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노래가 있습니다. 시작되는 구절이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이라는 가사라서 여러분들도 다들 기억하시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가 교과서에는 2절 가사로만 실려져 있습니다. “1)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애. 2)넓고 넓은 바다라고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넓은 게 또 하나 있지 사람 되라 이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바다 그보다도 넓은 것 같애.”
그런데 원래 이 곡은 2절로 끝나는 곡이 아니라 3절까지 있는 곡입니다. 그런데 교과서에는 3절 가사만 쏙 빼고 1-2절만 있는 노래를 실었습니다. 왜 3절 가사를 뺀 것일까요?
3절 가사는 이것입니다. “산이라도 바다라도 따를 수 없는 어머님의 큰 사랑 거룩한 사랑 날마다 주님 앞에 감사드리자 사랑의 어머님을 주신 은혜를.”
3절에 기독교 신앙이 담겨있어 교회에서 찬송가로 불렀습니다. 1절과 2절에서 높고 높은 하늘이고 넓고 넓은 바다 같은 어머니 은혜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끝나 버리면 그냥 부모님 효에 대한 노래입니다. 하지만 그런 소중한 부모님을 나에게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드리자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3절 노랫말입니다.
이런 노래를 누가 만들었을까요? 이 노래를 작사한 분이 윤춘병목사님이고, 작곡은 그 유명한 박재훈목사님입니다. 작사자와 작곡자가 모두 목사님으로서 교회 찬송가로 불러졌던 노래인데, 노랫말과 곡이 너무 좋다 보니 3절만 빼버리고 그렇게 사용해 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머니날이 중요한가요? 아니면 아버지날이 중요한가요? 아니면 어버이날이 더 중요한가요? 어머니날, 아버지날, 어버이날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날을 만들어서 기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부모에 대한 존중과 존경, 그리고 사랑의 모습을 요구하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어머니를, 그리고 아버지를, 부모님을 존중하고 공경해야 할까요?
1)순종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바울 또한 부모에 대한 자녀들의 자세를 교훈합니다.
1절입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여러분은 순종과 복종의 차이점에 대해 명확하게 아시나요? ‘순종(順從)’이 무슨 뜻일까요? 국어사전에는 “순순히 따름”이라 말합니다. 순종은 내 자발적 의지와 행동에 따라 순순히 받아들이고 따라갈 때에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순종과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는 복종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복종(服從)’은 “남의 명령이나 의사를 그대로 따라서 좇음”이라는 말입니다. 즉 나는 하기 싫은데 나보다 힘이 있고 권위가 있는 사람이 시키니 내가 할 수 없이 명령을 따라가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순종은 자발적 모습이지만, 복종은 내 의지와 상관 없이 강제적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 에베소 성도들에게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말합니다. 순종이란 단어가 사용되었으니, 너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부모에게 순종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고 판단하면, 본문을 매우 잘못 이해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한글성경에 ‘순종’이란 단어로 번역 되었지만, 원어(휘파쿠에테)의 직접 의미는 ‘아래에서 듣다. 철저히 복종하다’입니다. 그래서 NIV 성경에서는 복종(obey)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주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obey your parents in the Lord)’고 표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난 주일은 어린이 주일로서 자녀를 믿음으로 양육해야 하는 모습을 살펴 보았습니다. 자녀를 믿음으로 키워야 하는 것은 부모로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모든 부모 된 자는 자녀를 반드시 믿음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양육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선택의 모습이 아니라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되는 강제적 모습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모에게 순종하는 모습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의 말에 복종하는 마음가짐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이런 행동이 옳다고 하나님에게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부모님보다 더 많이 배웠다고 부모님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못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시대에 뒤떨어졌고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대화 조차하지 않고 입을 닫아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로 나쁜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이 벌을 내리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바울이 ‘주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 주안에서 부모에게 복종하라’ 이 말을 하는 까닭은 신앙생활을 핑계로 부모에 대한 효도를 게을리 하는 이들이 교회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효도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원한 법칙입니다.
2)공경하는 모습입니다.
인문학자이자 전 고려대학교 총장을 지낸 홍일식(洪一植, 1936 ~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미국을 방문하여 한인 식당에 갔는데, 손님이 매우 많은 것을 보고 주인에게 덕담을 건냅니다. “손님이 이리 많은 것을 보니 장사가 잘되어 곧 부자가 되겠군요” 그런데 주인이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합니다. “장사가 잘되면 무엇 합니까? 하루가 멀다 하고 동네에 사는 흑인 불량배들이 몰려와 행패를 부려 죽을 지경입니다.”
홍교수님이 묘안을 알려줍니다. “특별한 날 하루를 정하여 이벤트를 해 보세요. 흑인들에게 부모를 모시고 오면 원하는 대로 음식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말해 보세요”그 말을 들은 주인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어 보입니다. 안 그래도 행패부리는 흑인들이 밉상인데 그런 흑인들에게 공짜 음식까지 나누어준다니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동떨어진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수년 후 홍교수님이 인근 지역 다른 도시를 방문했는데, 그 식당 주인이 홍교수를 찾아와 놀라운 말을 합니다.“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때 그 말씀을 듣고 솔직히 시큰둥했습니다. 세상물정 모르고 책만 보는 샌님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도 교수님의 그 제안을 좋아하셔서, 그냥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포스터를 붙이고 광고했습니다. 부모를 모시고 온 흑인들에게 음식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흑인들도 부모들도 모두 좋아하더군요. 그러면서 점차 흑인들의 행패가 사라졌습니다. 심지어 다른 동네 불량배들이 와서 행패를 부리면, 이 동네 흑인들이 달려와서 보호까지 해 줍니다. 이제 장사할 만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부모 공경이 인륜의 기본이기에 이것만 지키면 가정의 질서가 잡히고 나아가 사회, 국가의 질서가 잡힌다는 말입니다. 부모 공경을 실천하면 나도 살고 남도 살리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가정이 든든하게 서게 되면 당연히 지역사회가 든든하게 서게 되고, 지역 사회가 든든하면 결국은 국가가 든든하게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공경은 사람의 근본되는 모습이고 인격이 다듬어지는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2절 보세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여기의 ‘공경하라(티마)’인데 “가치를 두다”라는 의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 매우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공경(恭敬)이라는 말은 “공손하게 섬긴다”는 말입니다.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면서 매우 자랑스레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모님을 모시며 사는 것은 자랑해도 될 정도로 매우 칭찬받아 마땅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을 모시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골방 창고에 가두어 놓는 모습으로 푸대접하면서 섬기는 것이라면 비난받아 마땅한 모습입니다. 공경이라는 말은 거럴때에 사용하는 말이 아닙니다. 나랑 의견차이가 있어서 자주 다툼이 있는 부모님이라고 해도, 공손하고 예를 다하는 모습으로 섬기는 것이 바로 공경의 모습입니다.
NIV 성경에서는 이렇게 공경이라는 말을 표현했습니다. ‘Honor your father and mother(너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honor(명예)’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명예라는 단어도 되지만, 또 다른 의미로는 ‘매우 높이 존중한다(high respect)’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부모님을 매우 높이 받들고 존경하고 존중하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왜 육신의 부모님을 공경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인가요? 육신의 부모님을 공경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영적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부모 공경의 계명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약속 있는 첫 계명’이란 말이 무슨 뜻일까요?
‘약속 있는 첫 계명’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십계명을 말합니다. 십계명 중 사람에 대한 계명의 첫째가 다섯 번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다른 계명보다도 5번째 부모 공경의 계명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따라 옵니다.
3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로써’라는 말의 의미는 ‘1절과 2절의 말씀을 지킨다면’이란 뜻입니다. 부모님에게 순종하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모습이 있다면, 너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계명입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복을 받기 위해 부모님을 공경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옛 선현들도 ‘부모님에게 진심으로 효를 다하면 하늘에서 복을 내린다’고 말했습니다. 부모님을 섬기고 효를 다하는 것은 바로 인간다운 삶의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잘 섬겨야 되는 것처럼 나의 자녀들에게도 올바른 부모의 모습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나의 자녀 호적이 내 앞으로 되어 있다고 해서 그 자녀가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자녀를 학대하고 함부로 대합니다. 내 마음대로 자녀를 키운다는 것이 자녀를 방임하면서 올바른 인간의 도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안하무인으로 키우면서 도리어 세상에 짐이 되도록 키우는 몰상식한 부모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금주 초에 2억 5천만 원이 넘는 아우디 슈퍼카와 얽힌 이야기가 인터넷을 달구었습니다.
나름 부자로 알려진 어떤 사람이 잘 타지 않는 차를 유로 주차장에 월 결제를 해놓고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차장 직원으로부터 초등학생 4~5학년 정도 되는 아이들이 나무 각목으로 만든 눈삽을 가지고, 일부러 차를 긁어 훼손했다는 전화를 받게 됩니다.(사진)
초고가 차량을 긁어 훼손하였지만, 차주인은 주차장 직원에게 ‘아이에게 다시 이런 일을 벌이지 못하게 훈계만 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 주차장 직원이 다시 전화가 와서 주차장으로 와 달라고 말합니다. 주차장에 가서 보니 아이엄마라는 사람이 달려와서 ‘우리 아이를 왜 혼 내냐?’라며 주차장 직원을 몰아붙이면서 적반하장 모습으로 화를 냅니다.
차주인은“여긴 주차 시설이고, 차들이 보관된 곳인데, 여길 들어와서 타인의 재산에 피해를 줬으니 잘못된 것은 가르쳐 줘야 하는 게 어른이다”라며 말합니다. 그러자 아이의 엄마는“차 기스 난 거 수리해 주면 될 거 아니냐, 왜 귀한 자식한테 네가 뭔데 훈계하느냐?’라고 소리를 지르고 욕까지 합니다. 결국 주차 관리자는 아이의 엄마에게 사과를 합니다.
여기서 부터가 반전입니다. 차주인은 곧바로 차를 정비소에 맡기고 수리비용을 청구하기로 합니다. 사진 속 차량은 고가의 스포츠카로 분류되는 아우디 R8이고, 판매가는 2억 5,569만 원이며, 수리비만 수천만 원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경찰서에 사고가 접수되고 수리비가 진행되자, 아이의 아빠이자 항의 여성의 남편이 “죄송하다”라고 사과하면서 “어떻게 좋게 안 되겠냐? 집사람이 산후 우울증으로 힘들어서 그러니 그냥 봐달라”라며 선처를 호소합니다.
이에 차주인은 “저는 아이의 엄마가 하라고 하신 대로 진행했을 뿐이다. 처음에는 꼬마 아이와 어른인 저의 문제여서 배상 없이 훈계만 하고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른과 어른의 일이니 그럴 수 없다”라고 답해 버립니다.
아이가 잘못한 것이 확실하다면, 먼저 아이에게 잘못을 뉘우치도록 부모가 나서서 가르쳐야 합니다. ‘문제아 뒤에는 항상 문제 부모가 있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공경과 존경을 받아야 되는 만큼, 여러분들의 자녀 또한 올바른 인격을 가진 인격체로 키우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문제아에게 문제 부모가 있다’는 말보다는 ‘믿음의 부모에게 믿음의 자녀가 있다’는 아름다운 모습이 여러분 모두의 가정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