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예찬론자인 수학자 어머니의 작품인 ‘소중한 우주’라는 뜻의 소주와 플로리스트 아버지가 ‘돕는 꽃’으로 살아가라며 지어준 찬영은 에이플러스 백신연구소 품질관리팀 동물시험실 신입직원이었다. 둘은 동물시험 등 품질검사를 진행했고, 안정성 시험과 실험동물 사육관리를 맡았다. 입사동기이자 동갑인 둘은 소주의 제안으로 퇴근길에 처음 사적인 자리를 가졌다. 수습 2개월 딱지를 뗀 기념으로 마련한 술자리였다.
한참 메뉴를 들여다보던 소주가 먹을 음식이 많지 않다는 말로 운을 뗐다. 완벽한 비건은 아니지만 공장식 축산업을 반대하고 육식은 피한다고 했다. 전공이 이쪽이라 어쩔 수 없이 연구소에 들어왔지만 동물시험이 여전히 불편하다는 소주는 두부전골과 도토리묵을, 찬영은 해물파전과 배다리 막걸리를 주문했다. 배다리 막걸리가 처음이라는 소주의 말에 찬영이 자랑스럽게 배다리 막걸리 일화를 전해주었다. 2000년 6월, 분단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마신 이후에 “통일막걸리”로 더 유명해졌다고 했다.
“소주씨는 어떻게 비건이 됐어요? 육식을 권하는 사회에서 쉽지 않잖아요.”
“그러게요. 저도 동물학대 실태를 알았지만 자꾸 육식으로 돌아갔어요. 최근에야 동물권 강의와 동물학대 영상에 충격을 받아 육식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지만요. 근데 찬영씨 과자, 빵, 라면에 고기 성분이 들어있는 거 알아요?”
“네? 거기 왜 고기가 들어가죠?”
“지인들도 다 그렇게 말해요. 과자, 라면에 고기가 들어있다고? 왜 몰랐지? 하며 의아해하죠.”
“소주씨, 그러니까 식품 뒤에 적힌 성분표를 말하는 거죠?”
“네, 맞아요. 저도 성분표를 자세히 안 봤어요. 동물권을 알고부터 살펴보기 시작했죠. 빵에는 우유와 달걀이 기본이고 치즈, 버터 등이 첨가되잖아요. 하루에도 몇 번씩 "우유 기계"로 착유기를 단 채 결박당한 소에서 얻은 우유와 배터리 케이지에서 고통 받은 닭의 알을 사용했을 확률이 높아요. 과자나 라면에도 소, 닭, 돼지고기 첨가나 우유, 달걀이 들어 있고요. 식료품 대부분이 공장식 축산업과 연결되어 있다는 게 정말 충격이죠.”
둘의 대화는 점차 실험실과 지인들 이야기로 확장되었고, 주문한 안주와 막걸리도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서로에게 가까워지던 소주와 찬영에게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입사한 지 3개월 초입의 어느 날, 검사 시한이 촉박해 야근이 잡힌 날이었다. 저녁을 먹고 연구실에 들어서던 소주가 어제 밤 꿈이 이상해서 한숨도 못 잤다며 찬영에게하소연했다. 꿈속에서 양계장에 갔는데, 수많은 닭이 일제히 자신에게 달려오더란다. 공포에 질려 목소리는 안 나오고 죽을 뻔했다고. 찬영은 피곤해서 악몽을 꾼 거 같다며 오늘은 자신이 좀 더 하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소주도 “피곤한 거겠죠.”하며 옅은 미소로 답하며 품질검사실로 향했다. 둘은 외부 의복과 휴대품을 벗어 의복상자에 넣고 착의실에 비치된 멸균복 세트인 마스크, 장갑, 모자, 방진복, 덧신으로 갈아입었다. 일을 시작하려는데, 찬영의 눈에 비타민 음료수로 보이는 병이 보였다. 야근을 시켜 미안한 선임 연구원이 챙겨준 거라고 생각한 찬영은 소주와 나눠 마셨다. 공교롭게도 그들이 마신 것은 달걀에 주입하던 백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