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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강 요한계시록 6-20장 세 가지 일곱 재앙(1)
- 첫 번째 일곱 인 재앙 -
1. 요한계시록 6-20장 : 세 가지 일곱 재앙
요한계시록 6-20장은 (1) 일곱 인 재앙 : 6장 (2) 일곱 나팔 재앙 : 8-9장 (3) 일곱 대접 재앙 : 15-16장 세 가지 일곱 재앙을 기술하고 있다. 일곱 재앙에 있는 하나님의 심판은 17-20장에서 바벨론의 멸망과 최후의 심판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일곱 재앙을 시행하시는 속에서 사이사이에 그리스도의 교회는 주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의해서 안전히 보존되는 교회의 구원을 다룬다.
2. 첫 번째 일곱 인 재앙(6장, 8장 1-5절)
세 가지 일곱 재앙 중에서 첫 번째 일곱 재앙은‘일곱 인 재앙’이다. 이 재앙은 6장과 8장 1-5절에 기술되어 있다. 일곱 인 재앙은 어린양이 봉인된 두루마리의 일곱 인을 차례로 하나씩 떼는 것에서 두루마리 안팎에 가득 차게 기록된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것을 다루고 있다. 그 내용은‘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이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장차 하실 일을 알리시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에 재앙을 내리실 것과 함께 교회의 구원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1) 첫째 인의 개봉(6:1-2)
1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2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요한이 하늘 보좌의 광경을 자세히 바라보고 있는데, 어린양이 일곱 봉인 가운데 하나를 데어 그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러자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레처럼 울리는 소리로‘오라’하고 말하였다. 요한이 더 자세히 주의를 기울여 보고 있는데 앞에 흰말 한필이 나타났다. 그 말 위에는 손에 활을 쥐고 면류관을 쓴 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많은 전쟁에서 싸워 이기고 또 이기려고 나아갔다.
여기의‘우렛소리 같이’에서 우레는 또 다른 용어로는 천둥인데, 다른 곳에서는 극히 큰 음성을 묘사하는 은유로 사용된다(14:2, 19:6). 하나님의 음성은 자주 우렛소리와 비교되는데, 아마 시내 산 전승에서 신의 현현을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에서 유래된 직유일 것이다.
그리고 ‘흰말에 탄 자’에서 말의 색깔은 그 말에 탄 자가 행하는 일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 말의 색깔은 흰 색이었다. 이 흰말에 탄 자에 대해서는 (1) '예수 그리스도' 라는 견해 (2) '복음'(또는 복음의 전파)이라는 견해 (3) '그리스도와 복음'이라는 견해 (4) '거짓(적) 그리스도' 라는 견해가 있다. 흰말에 탄 자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견해는 랑게(Lange), 바이스(Weiss), 헨드릭슨(Hendriksen)이 주장한다. 한편, 흰말이 복음이라는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잔(Zahn), 알포드(Alford), 그레다너스(Greijdanus), 네웰(Newell)이며, 그리스도와 복음이라는 견해를 가진 사람은 어거스틴(Augustine), 워드워즈(Wordsworth)이다. 반면에서 거짓(적) 그리스도라고 보는 견해는 브루스(Bruse), 스웨트(Swete), 월브우드(Walvoord), 케어드(Caird), 벡위드(Beckwith)가 있습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견해의 주장이 있으나, 가장 큰 지지를 받는 것으로는 두 가지의 해석이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라는 견해와 거짓(적) 그리스도라는 견해입니다. 이 둘은 서로 상반된 견해의 주장이나 그럼에도 모두 개혁주의 신학의 견해로 지지되고 있습니다. 이는 어느 하나의 견해로 단정될만큼 성경 해석에 통일된 이해에 있지 못하고 각각의 견해를 갖는 주장에 모두 힘이 실리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상반된 두 가지의 해석을 갖게 되는 '흰 말 탄 자'에 대한 해석에 납득될 만한, 그래서 수용될 만한 이해가 필요하다. ‘흰말’은 스가랴 1장 7-17절, 6장 1-8절에서 스가랴가 본 환상에서 병거를 끄는 흰말들에 근거하는데, 이 기사의 모습은 앞에서 설명한 것에서 보는 바대로 가장 큰 지지를 받는 두 가지의 해석에 대한 견해를 갖는 것처럼 긍정적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우선 긍정적으로 해석하여 흰말을 탄 자를 그리스도로 보는 것은 19장 11절 이하에 흰말을 타고 모든 것을 정복하는 주님으로서 등장하는 그리스도와 이 말 탄 사람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부정적으로 해석하여 흰말을 탄 자를 거짓 그리스도로 보는 것은 이것과 함께 등장하는 다른 말과 그 말 탄 자와의 연계에서 다루어지는 재앙에서 볼 때 그것이 문맥으로 보아 적절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한편으로의 주장으로 몰아가며 서로 상반된 주장에서 한치의 물러섬도 없게 된다.1) 그보다는 첫 번째 인을 뗄 때 흰말을 탄 자는 1세기에 유일하게 말을 타면서 활을 사용했던 파르티아인들을 사용하여서 그 군대의 용맹성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맹렬할 것인지를 실감적으로 묘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그 당시에 로마제국의 동부전선을 따라 포진하고 있으면서 로마제국에 위협적이었던 파르티아인들의 용맹성의 소문에 익숙한 독자들은 그 소문으로 인한 공포심을 근거로 하나님이 시행하시는 심판의 공포를 틀림없이 느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2) 이렇게 첫 번째 인은 그 심판의 위용을 보여 준다. 특별히 이러한 효과를 더욱 강화시켜 주고 있는 표현이 요한이 지금 본문에서 심판의 심각성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이러한 소문을 사용하면서 말하고 있는“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는 표현이다.
따라서“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일곱 재앙인 일곱 인 재앙의 첫 번째 봉인된 인을 떼시는 것에서 시작되는 재앙인 하나님의 심판이 무패의 무적으로 얼마나 위용 있게 행해질 것인지를 나타내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일곱 인 재앙에서 봉인된 첫째 인의 개봉에 의한 하나님의 심판의 시작은 그 심판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재앙의 대지진이요 쓰나미가 몰려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요한에게 보여주신 흰 말을 탄 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게 해 주시는 근거가 되며 그 인용에 있게 해주시는 스가랴 1장 7-17절, 6장 1-8절을 이해하는데서 분명해 진다.
스가랴 1장 7-17절 / 7다리오 왕 제이년 열한째 달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니라 8내가 밤에 보니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있기로 9내가 말하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니 10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11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천사에게 말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 보니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 하더라 12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13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14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15안일한 여러 나라들 때문에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16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불쌍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에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쳐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7그가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라 하니라.
스가랴 6장 1-8절 / 1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오는데 그 산은 구리 산이더라 2첫째 병거는 붉은 말들이, 둘째 병거는 검은 말들이 3셋째 병거는 흰 말들이, 넷째 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는지라 4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5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6검은 말은 북쪽 땅으로 나가고 흰 말은 그 뒤를 따르고 어룽진 말은 남쪽 땅으로 나가고 7건장한 말은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고자 하니 그가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라 하매 곧 땅에 두루 다니더라 8그가 내게 외쳐 말하여 이르되 북쪽으로 나간 자들이 북쪽에서 내 영을 쉬게 하였느니라 하더라.
스가랴가 본 이 환상은 다리오 왕 2년 11월 곧 유대력으로 스밧월 24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베레갸의 아들이며 잇도의 손자인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한 것이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스가랴에게 여덟 번에 걸쳐서 환상을 보여 주셨는데, 첫 번째와 네 번째에 보여주신 환상에서 각각 네 말을 탄 자가 등장한다.3) 첫 번째 환상에서는 한 사람이 붉은 말[홍마]을 타고서 깊은 계곡의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화석류나무4) 사이에 있는 것을 보았고, 그 뒤에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흰 말들이 있었다. 이 말들을 탄 자들이 누구인지를 묻자, 하나님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 곧 온 세상을 살펴보도록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라고 하는 설명이 있었다. 이 말 탄 자들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살펴본 바를 보고하였다. 그것은 세상 어느 곳이나 평화롭고 안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 이 보고하는 말을 들은 여호와의 사자가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과 유다에 진노를 쏟으신 지가 이미 70년이 되었다며, 어느 때에서야 다시 그곳에 긍휼을 베푸실 것인지를 여쭈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곧 시온에 대한 애정과 강한 집착을 나타내시는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을 들어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는 예루살렘을 질책하셨으나, 이방은 하나님의 뜻과는 다르게 자신들이 강한 힘이 있어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것인 줄 알고 하나님을 멸시하며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괴롭혔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방에 크게 진노하시니, 하나님은 이방의 때를 70년에 한하게 했으므로 긍휼을 품고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왔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대적자를 하나님은 심판하실 것이며, 그에 따라서 예루살렘 성은 다시 척량되어 건축되고 성전이 다시 세워질 것임을 말씀하셨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실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은 다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릴 것이다.
여덟 번째 환상에서는 두 놋산 - 놋쇠로 만든 산 - 사이에서 네 병거가 나왔는데, 첫째 병거는 붉은 말, 둘째 병거는 검은 말, 셋째 병거는 흰 말, 넷째 병거는 아롱진[얼룩진] 건강한 말들이 각각 끌고 있었다. 이 네 종류의 말은 하늘의 네 곳, 곧 온 사방에 부는 바람인데 하나님으로부터 임무를 받아 온 세상에 행하기 위하여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 말들이 세상 온 사방으로 나가 행하는 임무는 북쪽으로 나간 검은 말에게서 있게 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영이 유다 백성들과 함께 하게 함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게 될 것이었다.
사도 요한이 본 일곱 인 재앙에서 어린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을 떼심으로 첫 번째 인 재앙이 시작되는 것에서 흰 말의 등장으로 그 말 탄 자의“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라고 하는 위용이 말해지는 것은 구약에서의 이스라엘의 구원을 애굽과 바벨론을 심판하는 것에서 행하셨던 진노의 재앙에서 확대되어 있게 되는 것에서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심판주의 보좌에 앉으신 것은 구약에서의 경우와 같이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나라에 국한하는 것이 아닌 온 세상에 있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대적하는 세상 전체를 심판하는 것에서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재앙이 행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재앙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것은 그들은 재앙을 겪지 않게 구원하실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도 재앙을 겪으며, 그 재앙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것이다. 이는 다음에 의해서 잘 알 수 있다.
에스겔14장 12-23절 / 12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13인자야 가령 어느 나라가 불법하여 내게 범죄하므로 내가 손을 그 위에 펴서 그 의뢰하는 양식을 끊어 기근을 내려서 사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다 하자 14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5가령 내가 사나운 짐승으로 그 땅에 통행하여 적막케 하며 황무케 하여 사람으로 그 짐승을 인하여 능히 통행하지 못하게 한다 하자 16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겠고 그 땅은 황무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7가령 내가 칼로 그 땅에 임하게 하고 명하기를 칼아 이 땅에 통행하라 하여 사람과 짐승을 거기서 끊는다 하자 18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9가령 내가 그 땅에 온역을 내려 죽임으로 내 분을 그 위에 쏟아 사람과 짐승을 거기서 끊는다 하자 20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21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네 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온역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중에서 끊으리니 그 해가 더욱 심하지 않겠느냐 22그러나 그 가운데 면하는 자가 남아 있어 끌려 나오리니 곧 자녀들이라 그들이 너희에게로 나아오리니 너희가 그 행동과 소위를 보면 내가 예루살렘에 내린 재앙 곧 그 내린 모든 일에 대하여 너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 23너희가 그 행동과 소위를 볼 때에 그들로 인하여 위로를 받고 내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모든 일이 무고히 한 것이 아닌 줄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선지자 에스겔에게 임한 하나님의 계시는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경고를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언급해 주시고 있는 예루살렘에 내린 네 가지 재앙은 계시록의 네 가지 인의 재앙의 내용과 같다.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온역(질병)이다. 이 재앙에서 우리가 잘 아는 노아, 다니엘, 욥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의에 있은 그 의로 생명을 건진 것에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을 경우 심지어는 그들의 자녀들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도 재앙을 피할 수가 없다. 노아, 다니엘, 욥이라고 해서 자신들의 자녀들을 살릴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핵심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이 22절에서의“그러나 그 가운데 면하는 자가 남아 있어 끌려 나오리니”이다. 이는 하나님의 재앙 속에서 살아 있는 자들이 있을 터이니 그들이 바로‘남은 자’라고 하는 것이다. 노아, 다니엘, 욥, 그리고 그들의 아들들과 딸들이 살아남은 것을 보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재앙으로 인해 위로를 받을 것임을 말씀한다.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는 무서운 심판 속에서 그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까닭이다.
신명기 11장 26-29절에서는‘복과 저주’의 선언이 있다.
26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27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28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 29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여기에 두 산이 등장한다. 축복의 산인 그리심 산과 저주의 산인 에발 산이다. 하나님은 복과 저주를 이스라엘 앞에 두는데, 그 선포를 그리심산과 에발산에서 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명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을, 그리고 하나님으 명령을 듣지 않고 그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가 될 것을 선포하게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 둘 사이에서 어느 한 편에 있는 것인가? 아니다. 저주를 받든가 아니면 복을 받든가 둘 중의 하나에 있는 이스라엘이 아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으면 저주이다. 하나님을 명령을 들어야 복이다. 이 둘 사이에서 이스라엘은 머뭇거리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산에서 선포된 저주와 복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 말씀이 주어졌음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고 그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섬김에 있으므로 저주에 있게 되었다. 그것은 죽음의 형벌을 겪는 재앙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재앙 속에서 자신이 택한 백성을 끄집어내어 생명에 있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 일을 창세 전에 작정하셨던 그리스도를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는 것을 통해서 하셨다. 에발산에서 선포하게 하신 저주에 의해 죽음의 형벌을 당하는 재앙에 있는 우리였으나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는 것을 통해 속죄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더 이상 저주가 우리를 속박할 수 없게 되었으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산 자인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우리를 연합시킴으로써 생명을 누리는 복을 받게 하셨다. 이렇게 복은 저주 속에서, 구원은 재앙 속에서 있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이것 이전에 겪는 죽음의 재앙을 선행적으로 먼저 다루시는 것에서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겪는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가 되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생명에 대하여서는 산 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재앙의 저주와 구원의 복에 날마다 있는다. 그럼으로써 주께서 두 번째 강림하실 때 주 안에서 죽은 자는 반드시 다시 살 것이요 그때까지 살아서 주님을 믿는 자는 죽음을 보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진노의 저주인 재앙이 네 가지로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온역(질병)이 언급되고 있다. 여기서 칼은 전쟁을 뜻한다. 이는 폭넓은 의미에서이며, 좁은 의미에서는 싸움, 다툼이기도 하다. 사람이 상하며 살해당한다.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색하다. 기근은 반대가 되는 홍수와 더불어 재난이다. 또한 맹수가 등장하고 질병이 재앙으로 다루어진다. 이것들 앞에서 인간은 참으로 나약하다. 이것들은 하나하나씩 그렇게 순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온 세상에 임하는 병행적이며 복합적이다. 사도 요한이 받은 계시에서는 일곱 인 재앙에서 첫 번째 재앙에서 전쟁이 언급되며, 두 번째 재앙에서도 전쟁과 살인으로 평화는 그림자도 기대하지 못한다. 세 번째 재앙에서는 기근이 언급된다.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으로 고작해야 밀 한 되, 또는 보리 세 되를 살 수 있을 뿐이다. 이것으로는 올리브유나 포도주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네 번째 재앙에서는‘죽음-지옥’이 등장한다. 전쟁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온역으로 땅 위에 사는 사람의 1/4이 해를 입는다.
다섯 번째 재앙으로부터 일곱 번째 재앙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그 증거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는 사람이 말해지며 이들을 향한 주님의 위로가 주어진다. 구원의 충만수가 채워질 때까지 이들의 의로운 피는 흘려진다. 그렇게 흘려진 의로운 피는 곧 구원의 충만수를 채움으로 있는 것이며, 이는 주께서 이들에게 악행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때가 가까움으로 온다. 여섯 번째 재앙에서는 큰 지진이 일어나며 해가 어두워지고 달은 핏빛으로 붉어지며 별들은 마치 설익은 무화과나무 열매가 떨어지듯이 거센 바람에 산산이 흩어져 떨어지고, 산들은 제 위치에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온 세상을 뒤덮는 천재지변이 말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재앙에 의해서 땅 위의 왕들과 지도자들, 부자와 높은 자들과 신분이 높은 자들, 그리고 신분이 낮은 자들과 노예와 자유인들 할 것 없이 모두가 한데 뒤섞여 숨을 수 있는 곳이면 동굴이든 바위 밑이든 찾아들어 바짝 몸을 숨기고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진노의 큰 날이 임하였음에 두려워하며 몸을 떤다. 일곱째 재앙에서는 일곱 나팔 재앙이 시작되게 되는 준비에 있게 상태 속에서 144,000무리인 성도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 다루어지고 있다. 일곱 인 재앙이 이러한 것에서 있는 것에서 첫 번째 인 재앙에 이어 두 번째 인 재앙으로부터 일곱 번째 인 재앙에 이르기까지 각 인이 개봉되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2) 둘째 인의 개봉(6:3-4)
3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4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어린양은 일곱 인 재앙에서 봉인된 둘째 인을 떼어 펼치셨다. 그러자 둘째 생물이 ‘오라’고 외쳤고, 첫째 인의 흰말에 이어 이번에는 붉은 말이 나타났다. 그 말 위에 탄 자에게는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는 권한으로 큰 칼이 주어져 있었다. 그는 그 권한으로 도처에 전쟁과 살인을 일으켰다. 여기서 ‘큰 칼을 가졌다’는 것은 관헌들이 소유한 생사를 좌우하는 권능을 나타내는 은유이다. 여기에서 붉은 말 탄 자의 큰 칼에 의해서 있게 되는 파괴적인 전쟁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구약에서 전쟁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심판을 행하시는 목적은 자기 백성을 하나님에게서 그들의 마음이 떠나 있는 죄에서 돌아서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에 있게 하시는 것이었다. 따라서 여기에서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심판하는 것에서 큰 칼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은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의로운 구원을 행하여 나가시는 것에서 이다. 하나님은 죄와 마귀의 권세 아래 있는 온 세상의 모든 인간을 심판하시기 위해 서로 싸우는 전쟁을 사용하고 계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전쟁을 일으키도록 조장했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도리어 그들의 악함을 제한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셨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은 종말적 심판의 방법으로서 인간의 악함을 제한하지 않고 화평을 제하여 버림으로써 인간이 서로 죽이게 되는 상황으로 몰고 가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기 백성을 그 심판 속에서 구원해 가신다.
(3) 셋째 인의 개봉(5-6절)
5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어린양이 일곱 인 재앙에서 봉인된 셋째 인을 떼실 때 요한은 셋째 생물이 ‘오라’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으며, 소리 나는 곳으로 이끌린 그의 눈에는 검은 말이 나타났다. 그 말 위에 탄 자는 손에 저울을 들고 있었다. 그러자 네 생물 사이에서 이런 말이 들려왔다.“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말의 색깔이 검은 색인 것은 흉년을 상징하여 이것이 가져다주는 기아와 사망을 상징한다. 그런데 그 말에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다. 저울은 물건의 무게를 측정하는데 사용되는 것으로, 기근의 상황에서 빵이 엄격하게 배급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공정한 척량을 위한 것으로, 죽음의 위협을 받는 심각한 재앙으로서의 기근이 주어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와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라는 말은 각각 노동자의 하루 품삯으로 받는 양식의 정도를 의미한다. 즉 하루 품삯으로 양식을 구할 수 있는 정도가 그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으로 기근의 상태가 심각하여 굶주림으로 고통스런 날들을 보내는 재앙 속에 있게 될 것을 말한다. 그런데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는 음성이 들려진 것은 양식을 구하기 어려운 식량난을 겪음으로 인해서 감람나무와 포도나무 밭의 나무들을 베어버리고 대신에 밀과 보리 곡식을 심는 것을 방지하시는 명령으로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AD 92년 도미티안 황제가 곡식을 기경하는 것을 선호하여 포도원의 반을 철거하도록 명령하는 칙령을 내린 바가 있는데, 아마도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심판의 심각성을 설명하는데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는 말씀을 기근의 가혹성을 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필립 E. 휴스(Philip Edgcumbe Hughes)는 곡식, 감람유, 포도주는 백성들의 주식이며,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에 식량이 부족한 이러한 때는 사람이 자기 자신들에게서 돌이키고 주님을 의뢰할 좋은 기회이며, 그리하여 말 탄 자의 적의에 찬 영향에서 선을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말 탄 자의 행동에 한계를 부여한 것은 은혜의 날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이 늦지 않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감람유와 포도주를 해치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주어지는 재앙을 인간이 감람나무와 포도나무 밭의 나무들을 베어버리고 거기에다가 곡식을 심어서 면해버려는 인간의 의도와 노력에 대해 하나님이 간섭하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계획을 주권적으로 실천하여 나가실 것을 알게 하여 주시는 것으로 여겨진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결코 바꾸어 놓을 수는 없다.
(4) 넷째 인의 개봉(6:7-8)
7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8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어린양이 넷째 봉인을 떼셨을 때 요한은 넷째 생물이‘오라’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으며, 이번에는 청황색 말이 나타났다. 말의 색깔을 한글 개역 성경에는‘청황색’이라고 되어 있으나, 정확한 색깔은‘잿빛’(pale)이다. 이는 사체(死體)의 재처럼 회색빛이 나는 창백한 것과 극도의 공포에 질린 사람의 얼굴색과 같은 것을 묘사한다. 그러므로 현대어성경은 청황색 말을‘창백한 말’이라고 번역하였으며, 공동번역성경과 현대인의성경은‘푸르스름한 말 한필’이라고 번역하였다. 말의 색깔이 이처럼 잿빛인 것은 그 말 탄 자의 이름이‘사망’이며, 그 뒤를 따라 또 다른 말 한필이 따르고 있는데 음부(지옥)으로 그들에게는 검(전쟁)과 흉년(기근)과 사망(질병)과 짐승(야수)을 가지고 땅 위에 사는 인간의 사분의 일을 죽일 권한이 주어져 있는 까닭이었다. 앞에서의 각 말 탄 자가 가져다주는 재앙이 전쟁과 기근이었는데, 여기서는 그 모든 것에 사망(질병)5)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는 권세가 더해진 것으로 말함으로써 재앙의 가중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그 권세의 행함은 땅 위에 사는 인간의 전체에게가 아닌 사분의 일만으로 제한되었다. 그러나 이 사분의 일이 겪는 재앙가지고도 하나님의 총체적인 심판을 인간 전체가 맛보는 것이 될 것이다.
(5) 다섯째 인의 개봉(6:9-11)
9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어린양이 봉인된 다섯째 인을 뗌으로 해서 다섯째 인 재앙이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다섯째 인 재앙을 다루는 내용에서는 첫 번째에서 네 번째까지의 인 재앙에서 보는 심판의 내용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6)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그들이 흘린 피를 신원하여 주실 것을 주께 구하는 기도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섯 번째의 인 재앙은 앞서 말씀하시고 있는 첫 번째에서 네 번째까지의 인 재앙을 잇는 연속성을 갖는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재앙에서 평화가 제거되고 죽음이 횡행하는 권세가 행해지는 것에서 나타나는 악함의 칼끝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증언에 충실한 자들을 향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서 다섯 번째의 인 재앙은 피 흘린/죽임 당한 하나님의 증인들의 신원을 다룬다.
이렇게 다섯 번째 인 재앙에서 죽임 당한 하나님의 증인들의 신원을 다루는 것은 역설적으로, 다섯째 인의 개봉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그 증거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을 핍박하여 죽이는 악의 극치로 내달리는 재앙에 악한 자의 세상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악한 자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진노로 임하는 저주의 재앙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됨에 있다. 여기서의 죽임 당한 하나님의 증인들의 신원에 대해서는‘세 가지 일곱 재앙 속에서의 교회의 구원과 보존’에서 다룰 것이다.
(6) 여섯째 인의 개봉(6:12-17)
12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13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14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15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16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어린양이 여섯째 인을 떼시자 요한은 큰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태양은 검은 천처럼 시커멓게 변하고 달은 핏빛으로 붉어졌다. 그리고 하늘 떠 있던 별들이 마치 설익은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큰 바람에 흔들려 떨어질 때처럼 산산이 땅으로 흩어졌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이던 하늘은 두루마리를 말아서 걷어치운 것처럼 사라지고 산과 섬들이 다 흔들려 제자리에 놓인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자 땅 위의 모든 임금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노예와 자유인들이 모두 한데 어우러져 산 바위틈에 몸을 숨긴 채 산을 향하여“우리 위에 떨어져라. 그래서 보좌에 앉으신 분의 얼굴과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워 숨게 하라. 하나님과 어린양의 큰 진노의 날이 이르렀으니 그 진노에서 누가 능히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라고 부르짖었다. 이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심판을 피할 자나 그 심판에서 숨을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아무리 피해 보려고 시도할지라도 전혀 헛되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의 큰 날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7) 일곱째 인의 개봉(8:1-5)
1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간쯤 고요하더니 2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3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5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일곱 인 재앙에서 봉인된 일곱째 인의 개봉은 여섯째 인의 개봉이 다루어지고 있는 6장 12-17절 이후에 바로 이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14만 4천 명을 말해 주시고 있는 7장을 넘어선 8장에서 이다. 이러한 구조를 띠는 것은 일곱 인 재앙을 언급해 주시는 중에 인 맞은 하나님의 백성 14만 4천 명의 무리는 그 재앙의 해가 미치지 못하는 하나님이 보내신 어린양의 구속에 의해서 보호되고 있음을 말해 주심으로 주님의 위로에 교회가 있게 하고자 해서 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보호에 든든히 교회가 있음을 언급하고 나서 계속해서 일곱 인 재앙에서 봉인된 일곱째 인을 어린양이 떼시는 것을 보게 하신다.
어린양이 봉인된 일곱째 인을 떼셨을 때 하늘에는 약 반시간 동안 침묵이 흘러 고요하였다. 그 어떤 소리도, 그 어떤 움직임의 기척도 없었다. 그리고 나서야 요한은 일곱 천사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천사들은 손에 나팔을 하나씩 받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천사가 금향로를 받아 손에 들고 제단 곁에 서 있었다. 그 천사에게는 성도들의 기도 속에 보좌 앞에 있는 금제단에 바쳐질 많은 향이 주어졌다. 천사가 향을 금제단에 들이붓자 그 향기가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섞여 제단에서 하나님 앞으로 올라갔다.
그런 후에 천사는 제단에 있는 불을 향로에 가득히 담아 그것을 땅에 내던졌다. 그러자 우레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번개가 치고 무서운 지진이 일어났다. 일곱 인 재앙에서 일곱째 인 재앙의 개봉은 앞서에 있은 인 재앙들의 개봉과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재앙으로 미치는 화에 대한 구체적인 진행의 설명이 없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는 이유는 일곱째 인 재앙에 이어 등장하는 일곱 나팔 재앙에서 설명된다. 일곱째 인 재앙이 행해지는 것과 함께 일곱 나팔 재앙이 시작되는 것에서 일곱째 인 재앙은 일곱 나팔 재앙과 함께 병행되어 행해지는 것이다(8:2, 6). 그래서 일곱째 인 재앙에서 일곱 나팔 재앙이 말해진다.
그런데 이렇게 일곱째 인 재앙이 행해지며 일곱 나팔 재앙이 시작되는 것과 함께 이 둘 사이인 3-4절에서 성도의 기도를 말씀해 주시는 것은 무엇에서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곳에서의 성도의 기도는 일곱 나팔 재앙의 시행이 다섯째 인 재앙에 있는 악한 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증인들의 신원(6:9-11)에 대한 응답(8:3-5)으로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기도는 제단 곁에 선 천사의 손에 들린 금향로에 담겨졌다. 천사의 손에 들린 금향로에는 많은 향이 들어 있었는데 천사가 향을 금제단에 들어붓자 금항로의 향에서 나는 냄새가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섞여서 금제단에서 하나님 앞으로 올라갔다.
요한이 본 이 환상계시는 앞서에서의 죽임 당한 하나님의 증인들이 신원하는 소리가 마침내 하나님께 전달되어 하나님의 들으심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리고 성도들이 신원하는 기도가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에서 천사는 금제단에 있는 불을 금향로에 가득 담아 그 불을 땅에 내던졌으며, 우레가 요란하게 울리고 번개가 치고 무서운 지진이 일어났다. 따라서 일곱째 인의 개봉에서 있게 되는 재앙은 성도들이 신원하는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들이 구하는 것을 들어주시는 것에서 있게 될 것임을 나타내 주시고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그 증거를 인하여 흘린 의로운 피의 호소를 들으시고 믿음의 형제들의 대열에 참여시켜 다시는 악한 자들이 이들을 가까이 할 수 없게 하시는 것이다. 즉, 의로운 자들로부터 영원히 떨어져 있도록 격리시킬 것이다. 일곱째 인 재앙은 악한 자들을 파멸시킬 것이니 그들이 추종하는 마귀와 더불어 영영한 불에로 내던질 것이다(참조. 20:10,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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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흰 말을 탄 자’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의 두 견해인 그리스도와 적 그리스도에 대한 주장은 문맥상 맞지 않다. : (1) 우선 흰 말을 탄 자는 그리스도라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는 일곱 재앙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에서 행해지는 것으로서 그 재앙의 봉인된 인을 떼시는 분이 천상보좌 앞에 계신 어린양 그리스도이신 것에서 첫째 인에 등장하는 흰 말을 탄 자가 그리스도라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2) 그런가 하면 흰 말을 탄 자를 적그리스도 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필립 E. 휴스(Philip Edgcumbe Hughes)는 일곱 인 재앙에서 처음 네 인을 뗄 때마다 나오는 네 마리의 말을 각각 탄 사람의 순서상 한 사람이며, 이들은 모두 창조주의 원수들로서 사망과 파멸의 무기 또는 세력을 소지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 견해를 가진 국내 학자는 이순태가 있다. 그는 흰말을 탄 자가 누구를 의미하는지는 정확히 할 수 없으나, 그가“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는 말씀을 통해서‘승리자’를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승리는 하나님 편에 있는 자가 사단의 편에 있는 자를 물리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입장에서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며, 악한 승리를 주께서 자신의 뜻을 성취하시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 견해도 맞지 않다. 일곱 재앙은 온 세상에 미치는 하나님의 심판의 진행의 성격을 띤다. 그런데 세 가지 일곱 재앙의 첫 번째 재앙에서 일곱 인 재앙에 봉인된 인을 떼자 활을 쥐고 면류관을 쓴 적그리스도가 출현하여 전쟁에서 싸워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는 자로 등장하여 그리스도에 대항하는 자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봉인된 각 인이 개봉됨으로 이어지는 재앙과의 연결에서도 부자연스러우며 맞지 않다.
2) 사도 요한이 본 환상계시에서 흰 말을 탄 자를 유일하게 말을 타면서 활을 사용함으로써 로마 제국이 두려워하던 파르티아인들의 위용 있는 용맹성을 이미지로 사용한 것이라는 견해를 가진 국내 신학자는 이필찬이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신학자인 이광호는 이 견해가 타당성이 있는 견해라고 할 수 없다며 반대한다. 그는 요한이 그와 같은 것을 의도하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상반된 견해에도 불구하고“흰 말을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또 면류관을 받았고 나아가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는 해석에 대해서는 같다. 필자는 서로 상반되는 양자의 견해에 대하여 전자의 견해에 동의한다. 이는 그 당시에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로마 제국이 넓은 땅을 차지하고 지배하는 큰 세력으로 있으나 파르티아인이 로마 제국에 큰 위협으로 있었기에 파르티아인이 흰 말을 타고 로마 제국과 맞서 전쟁에 임하는 위용 있는 용맹성의 모습을 하나님이 심판을 행하시는 것으로의 이미지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셨을 것이란 견해는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이미지는 스가랴 6장 1-3절에 나오는 선지자 스가랴가 주 하나님께서 보게 하신 환상계시에서 본 주 하나님의 보내심으로 네 종류의 말이 주님의 영을 태우고 사방으로 힘차게 내달려 나가는 것을 따르고 있는 것에서 사용했을 것이란 사실에 그 가능성은 더욱 크다. 그러나 설사 사도 요한이 환상계시에 의해서 본 흰 말을 탄 자를 파르티아인의 이미지에서 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말 탄 자가 나아가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 위용 있게 시작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으며, 이 심판은 세 가지 시리즈에서 다루어지는 재앙의 성격을 띄고 있다는 사실에서는 다르지 않다.
3) 스가랴는 B.C. 520년경에 활동한 선지자이다. B.C. 931년에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졌으며, B.C. 722년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하였다. 그리고 남유다는 B.C. 586년에 바벨론에게 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 70년의 포로생활에 있었다. 그런데 남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망하고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을 명령하며,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때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유다의 총독에 있었던 사람이 스룹바벨이었다. 스룹바벨은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의 총독이 된 사람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의 성전 재건은 순탄치 않았다. 앗수르에 멸망한 북이스라엘은 그들의 수도인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사마리아인으로 불리게 되는데, 이들과 페르시아 고레스 왕의 신하들의 방해로 성전 재건이 10년 만에 중단이 되는 일을 겪었다. 그 때 이스라엘을 책망하고 독려하며 성전재건을 촉구한 선지자가 있었다. 그는 스가랴이다. 이 스가랴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으며, 그에게 보여주신 환상인 네 말의 등장은 당시 남유다의 상황과 연관이 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압제한 원수에게 진노를 발하며 크게 심판하신 것이며, 이스라엘에게 다시 긍휼을 베푸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재건케 하실 것의 시기에 네 말 탄 자들이 세상에 보내지는 환상의 계시를 주신 것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에서의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신 네 말을 탄 자의 환상 계시는 구약의 인용이면서 여기에 나타내주신 하나님의 의도에 의하여 그 해석이 적용되어야 한다. 이는 네 말 탄 자의 환상이 일곱 재앙이 시작되는 첫 번째 인 재앙의 인을 떼시는 것에서 있는 것이므로 재앙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진노에 의한 심판의 성격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4) 화석류란 히브리어‘하다스’(sd"h})의 역어이다(느 8:15,사 41:19,55:13,슥 1:8,10,11) 줄기 높이는 0.5-1.5m 정도의 식물인데, 환경이 좋은 곳에서는, 7-10m까지도 자란다. 잎은 짙은 녹색, 꽃은 희고, 아름답다. 흰가루를 동반하는 짙은 남빛의 과실은 14-16mm, 향기 높은데, 날 것 그대로 혹은 말려서 식용한다. 이 나무는 서 아시아가 원산으로, 팔레스티나, 레바논, 특히 베들레헴, 헤브론, 갈멜산, 다볼산에 많다. 화석류나무를 현대어성경은‘어린 소귀나무들’이라고 번역하였다. 공동번역은‘소귀나무들’, 우리말성경, 한글킹제임스성경은‘은매화나무들’, 현대인의성경은‘도금양’이라고 각각 번역하였다. (1) 여기서‘소귀나무’는 제주도 한라산의 남쪽 산기슭에서 자라는 상록의 활엽교목으로 속나무(또는 양매[楊梅])라고도 한다. 학명은 Myrica rubra이다. 꽃은 암수딴그루로서, 4월경에 지난해 가지의 잎겨드랑이에 꼬리 모양으로 달린다. 수꽃이삭은 황갈색이며, 수꽃은 1개의 포엽과 2∼3개의 작은 포엽을 가지며 5∼8개의 수술이 있다. 암꽃에는 1개의 포엽 속에 2쌍의 작은 포엽이 있으며 2개의 긴 암술머리가 있는데, 암술대는 잘 발달되어 있지 않다. 열매는 핵과로 공 모양이며 6월 하순경에 짙은 홍자색으로 익는데, 겉에는 여러 개의 즙이 많은 돌기가 나와 있다. 열매는 식용할 수 있고 껍질은 연료로 쓰인다(위키백과). 소귀나무는 키가 10-20cm 정도 자라며, 수피는 회갈색을 띤다. (2) 그리고‘도금양’(桃金孃)은 도금양과에 속하는 늘푸른 떨기나무이다. 인도·남부 중국·타이완·필리핀·남부 말레이시아 등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원산이다. 습지나 건조한 땅을 가리지 않으며, 해발 2400미터까지 자란다. 키는 4미터에 이르고, 잎은 마주나고 긴 타원형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길이 3∼6cm이다. 잎 뒤면에는 솜털이 나 있다. 히말라야에서는 산불을 막는 나무로 쓰이며, 열대 지방이나 아열대 지방에서는 정원에 심는 관상수로 인기가 좋다. 열매로 파이나 잼,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다. 베트남에서는 술의 원료로 쓰기도 한다. (3) 한글 번역성경에서‘소귀나무’,‘도금양’,‘은매화나무’로 각각 번역되고 있는 것은‘화석류나무’로 번역된 성경에서의‘하다스’와는 그 종류가 다르다.
5) ‘사망’을 의미하는 단어‘death'는 페스트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필립 E. 휴스는‘페스트’라는 의미로 사용했으며, 70인경도 구약 성경에 나오는 히브리어로‘deber'에 해당하는 말을 모두‘페스트’로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이필찬은 사망을‘혹은 역병’으로 설명하였다. 이 모두에서 의도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질병이 세상을 덮어 창궐하는 자연 재앙을 겪는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재앙에서 있는‘죽음’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6) 이필찬은 일곱 인 재앙에서 다섯 번째는 심판의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그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성도들의 신원을 위한 탄식이 언급되고 있다고 보았다. 과연 다섯 번째 인 재앙은 이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내용을 언급하는 것을 통해서 앞서 다룬 첫 번째 인 재앙에서 네 번째 인 재앙까지에 언급하고 있는 재앙과의 연결 선상에 있는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재앙에 의해 죽음이 드리워져 있는 자들이 어떻게 저주 받은 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것에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증언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것에서 그리스도를 박해한 그 박해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대로 행하는 저주 받음에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그리스도께 믿음을 신실히 가지고 있음을 그들의 신원하는 소리를 통해서 드러내신다,
* 참고 문헌
1. 이광호,『요한계시록』. 서울: 도서출판깔뱅, 2009.
2. 이순태,『요한계시록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2.
3. 이필찬,『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서울: 성서유니온선교회, 2000.
4. 천정웅,『장별 성경연구를 위한 요한계시록』. 서울: 말씀의 집, 1988.
5. David E. Aune, 김철 역,『WBC 주석 요한계시록(중)』. 서울: 도서출판 솔로몬, 2004.
6. Philip Edgcumbe Hughes, 오광만 역,『요한계시록』. 서울: 여수룬, 1994.
7. http://khubf.net/index.php?document_srl=12199&mid=notice&order_type=desc&sort_index=readed_cou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