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6.
주인공
휴대폰 사진첩을 내민다. 태어난 지 3일째라는 처 막내 고모의 손자 사진이다. 마흔을 넘긴 외아들이 비출산주의자로 살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안겨준 손자이기에 격정을 누르기 힘들었으리라. 자랑이 아니라 고마움이나 감사함이라 표현해야 할 듯해 보인다. 모두가 축하하며 잘된 일이라고 손뼉 치며 기뻐한다. 겨우 아기 사진 몇 장이나 봤을까. 팔순이 넘은 처가의 첫째 고모는 자기 손녀도 예쁘다며 휴대폰 사진첩을 뒤적인다. 말쑥하고 날씬한 몸매의 여자다. 스물 중반으로 흠잡을 곳이 하나 없는 예쁜 얼굴로 고운 미소를 지은 사진이다. 예쁘다. 그런데 생뚱맞다.
아기가 주인공이다. 오늘로써 세상 소리를 들은 지 3일 된 아기와 애틋하지만 포기하고 살았던 할미의 이야기다. 칠순의 나이에 행운처럼 안겨진 첫 손자가 주인공이다. 견줄 것을 갖다 댔어야지. 하긴 얼마나 이쁜 손녀였으면 겨우 3일 된 아기 옆에 세웠을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심정을 이해는 하겠다.
손녀만 주인공이 아니다. 때로는 동생도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 손위 처남이 고모들 앞에 아내 사진을 내밀었다. “봐봐! 얼마나 예쁜가?” 아들 결혼식장에서 찍혀진 아내와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아내는 30, 20, 180 근처의 RGB 색상 코드를 가진 원피스를 입고 가슴팍에는 새하얀 백합꽃 한 송이를 피웠다. 지적이면서도 우아하여 원숙한 여성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처남은 여동생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진을 살피던 고모가 “며느리 사진 한 번 봐”라는데 고마운 내 처남은 “없어”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만의 주인공이 있다. 손자나 손녀일 수도 있고 아들이나 딸일 수도 있다. 간혹 팔불출이 되어 배우자가 주인공일 수도 있다. 때로는 “인생 뭐 있냐?”며 당당하게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동생을 들이밀다니. 처남이 고맙다. 고맙기는 하지만 몹시 부담스럽다. 찰나와 같은 짧은 시간 사이에 3일짜리 손자와 20대 중반의 예쁜 처녀와 60년을 묵은 아내가 주인공이 되었다.
한 여자의 이야기다. 아들 휴가 날이다. 입대한 후 첫 휴가다. 군인의 어미는 시내 마트와 장터를 뒤지고 다녔다. 광어 미역국도 시원하게 끓였고, 능이와 전복을 넣어 수탉 한 마리를 푹 고아 두었다. 휴가 당일 분주하게 움직여 소갈비를 재우고, 당면을 삶아 잡채를 무치고 굴전을 부쳤다. 손꼽아 기다리던 아들은 밤 깊은 시간에 술이 떡이 되어 들어왔다.
새날이 밝았다. 전날 과음으로 아들은 일어날 기미가 없다. 식탁 위에는 온갖 정성들이 즐비하다. 아비는 벌써 세 번이나 아들 방문을 두드렸다. 소갈비 하나 집어 들고 한 번, 굴전 두 숟갈 입에 물고, 조기 튀김 한 저분 입에 넣고 또 한 번. 군인의 어미는 남편의 식탁 주전부리에 화가 치밀었다. “내 새끼 주려고 만들었더니만 남의 새끼가 다 처먹네” 어미에게 아침 밥상의 주인공은 반년 만에 품으로 돌아온 내 아들뿐이었다.
자식보다 예쁜 게 손자란다. 생활고에 시달리고 먹고살기에 바빠서 내 새끼 얼굴 쳐다볼 여력이 없었다고 한다. 부모는 다들 그렇게 살았다. 나이 들어 아들, 딸 모두 출가시키고 조금 여유로울 때 손자, 손녀를 무르팍에 앉히니 얼마나 이뻤을까. 그래서 내 새끼보다 더 귀엽고 소중한 게 손자고 손녀인가 보다. 오죽하면 카톡 프로필에 손녀 재롱이 사진으로, 영상으로 도배될까. 그렇게 해서 꼬맹이들이 주인공이 된다.
내 마음을 내가 모른다. 나에게 주인공이 될 녀석들을 마냥 넋 놓고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쫓아다니며 바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카시아잎 하나 꺾어서 이파리를 하나씩 뜯어내며 “있다. 없다. 있다. 없다. 있다…” 이건 모두 하늘의 일이다.
첫댓글 개개인의 마음속 주인공은 다르다
그러나 공감한다 당연한걸
나는 늘 내게서 전부인 게 주인공이었어. 그런데 내가 그런거지 사람마다 다 다르더라고. 때로는 아픈 게 주인공이고...
주인공이 여럿인 경우도 있고 맨날 바뀌는 주인공도 있더라고.
절대 진리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