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가래비와 구곡
고 정 숙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찌뿌둥했다. 바리바리 책을 챙겨 도서관에 왔지만 글이 쉽게 눈에 들어 오지 않는다. 어제의 등반으로 나는 무엇을 얻었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쉽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아니 사실은 함부로 무언가를 결론짓고 싶지 않다. 그러나 정리을 해두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이렇게 펜을 들었다.
이 산행기는 지난 주(2000년 1월 15-16일) 가래비폭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가래비폭에서의 짧은 경험이 빙벽에 대한 욕구를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지난 주 정말 오랫만에 주말에 배낭을 꾸렸다. 하계동 을지병원 앞에서 합승 선배님, 재석 선배, 창욱이형, 나 네명이 차를 타고 출발하고 운회 선배님은 다음날 새벽에 오시기로 했다. 가래비폭은 산속에서 계곡의 물이 절벽을 만나 생긴 자연스런 폭포가 아니라 돌을 캐기 위해 깎아놓은 절벽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듯했다. 그런만큼 산속에서 수도승처럼 꼿꼿이 서 있는 폭포의 위용을 볼 수 있으리란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다.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5분 정도 걸어 올라갔는데, 아! 저 멀찍이 하얗게, 거대하게 폭포가 보였다.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지는 폭포가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너는 이렇게 곧을 수 있냐고 질문이라도 하는 듯이. 아직 구곡폭도, 대승폭도, 소승폭도 보지 못했지만 처음 본 빙폭이었기에 가래비폭은 전율로 다가왔다.
주위를 둘러 보니 듬성듬성 텐트의 불빛이 보였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술잔을 돌렸다. 술로 덥혀진 몸이 식기 전에 침낭에 누웠지만 얼은 손과 발이 쉬이 풀리지 않았다. 이리뒤척 저리뒤척 하다가 멀찍이 폭포에서 랜턴 불이 보이고 얼음 깨는 소리가 들렸다. 고즈넉한 겨울밤에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다듬이 방망이질 소리처럼 찍고 또 찍으며 저들은 무얼 그리도 기다리는 것일까. 돌아누운 자리에서 한참을 구경하다 나는 잠이 들었다.
해가 밝아올 무렵 운회 선배님이 오셨다. 우리는 일찍부터 짐을 꾸려 폭포 아래 도착했다. 톱로핑으로 창욱이형부터 오르고 합승 선배님, 운회 선배님이 번갈아 가며 올랐다. 재선 선배는 빙벽이 처음이라 낮은 곳에서 픽켈 찍는 방법과 자세 지도를 운회 선배님으로부터 받았다. 나는 신발도 없고 낙빙도 많아 오후가 되어서도 오르지 못했다. 사실 신발 없는 핑계로 오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다행스러웠다.
발도 얼어오고 구경만 하기 심심해서 픽켈을 들고 한켠에서 찍는 연습을 했다. 튀어나온 부분은 잘 박히지 않을 뿐 아니라 얼음만 깨졌다. 사람들이 여러번 찍은 자국이 있는 곳은 금방 들어가긴 했지만 언제나 이런 자국이 있으리란 보장이 없기에 잘 찍혀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몇 번 연습하니 팔이 금방 저려왔다. 하지만 픽켈이 착착 꼽히는 느낌 하나만은 좋았다.
비교적 낮은 곳에서 재석 선배가 오르고 운회 선배님이 구경하고 있는 나에게 "너도 한번 해볼래?" 하셨다. "예"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지만 약간 두려웠다. 하지만 운회 선배님의 안정된 자세를 보면서 어떤 패턴이 있음을 알 수 있었고, 다른 건 차치하고서라도 두 다리를 일직선으로 놓고 픽켈을 몸 쪽으로 멀찍이 찍는 것만이라도 제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올라갔다.
여러 사람이 올라서 이미 계단이 되어 픽켈과 아이젠이 잘 박혔다. 운회 선배님이 픽켈 찍는 걸 보시고 "다시! 다시!"하고 지도해 주셨다. 픽켈 찍을 자리를 찾느라 아이젠이 제대로 안 박혀 미끄러지는 걸 보고 "정숙아! 제대로 일직선으로 찍어!"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착착 꼽았다. "그렇지!" 격려해주는 운회 선배님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3-4 미터도 채 안되는 짧은 길이었지만 막바지에서는 벌써 팔에 힘이 빠져 왔다. 신음소리까지 내가면 픽켈이 제대로 꼽힐 때까지 같은 자리를 여러번 박고, 겨우 올라섰다. 캬~. 나는 자랑스런 표정이 되어 아래를 내려봤다. 암벽엔 열등생이었지만 빙벽엔 우등생이 되겠다는 자만심이 생기려는 걸 애써 누르고 있었다.
내려와서 "정숙아, 어떻든? 재밌니?" 운회 선배님이 물어 보셨다. 빙벽을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을 감추고 싶지 않았다. "재밌어요. 암벽보다 더 재밌는 것 같아요" "합승아, 이제 정숙이 큰일났다. 암벽보다 더 재밌단다" 그러나 내가 암벽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런 말을 했을까. 암벽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쓴웃음이 나왔지만 다음 주 구곡에서 나의 이 자만심을 시험해 보겠다는 마음을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구곡 가는 길에서는 눈이 계속 오고 있었다. 운전하는 사람에게, 특히 창욱이 형은 길이 막혀 고생도 했다지만 나는 함박눈에 충분히 기분 좋았다. 이번엔 비박이 아니라 민박집에서 보내기로 되어 있었다. 민박집에 도착하니 선배님들의 카드판이 벌써 벌어져 있었고, 한방에서 십수명이 모여 눈오는 겨울밤을 보내는 기분은 MT를 온 것같이 흥겨웠다. 라면을 끓이고, 술을 마시고, 경희 언니가 가져온 과메기도 먹고, 나는 어린 기분이 되어 든든한 선배님들 속에 싸인 그 공간이 마냥 좋았다.
다음날의 등반 계획이 운회 선배님과 양준 선배님의 지도 아래 한켠에서 짜여지고 있었다. 나도 열심히 들어 내일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해 보고 싶었지만 내가 그것을 들어 실행할 만한 능력이 되나 의구심도 들었고 계획 자체도 등반 경험이 부족한 경희 언니나 나에 대한 고려는 빠진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남녀차별이니, 시켜줄 듯 말하지만 사실은 안시켜준다느니 하며 깡패같이 굴었지만 아직 등반 경험이 부족한 우리에 대한 배려가 깔려 있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빙벽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고 싶어 2월 한 달은 주말마다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평일에도 되도록 참석하께요 어쩌구 하며 양준 선배와 약속도 하고 했지만 "정숙아, 일단은 내일 구곡을 올라 보고 결정해라" 하시는 운회 선배님 말씀에 섣부른 자만심에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었다.
새벽 5시, 짐을 꾸리고 구곡폭포로 향했다. 2Km 정도 차를 타고 가서 나머지는 걸어가야 했다. 앞쪽에 선배들이 올라가고 나는 좀 뒤처져 혼자 걸었다. 어스름한 산길, 달빛에 비친 하얀 눈빛만이 주위를 둘러싸고 나는 고독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바랬던 것이 이것인가. 나를 올곧이 바라보게 하는 고독이었을까.
짧은 산길이 지나가고 구곡의 위용을 볼 수 있었다. 가래비폭과 비교하면 가래비폭은 차라리 초라한 것이었다. 우리 외에 한 팀이 등반을 하고 있었다. 양준 선배가 먼저 선등을 해서 줄을 걸고 뒤이어 창욱 선배, 영민 선배가 올랐다. 재석 선배와 운회 선배님도 오르고 경희 언니가 오르기 시작했다. 속이 불편해 화장실에 갔다 오니 아직 중반에 머무르고 있었다. 힘이 빠졌나보다. 그럼에도 타고난 체력과 유연성으로 언니는 정상을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러고 있나, 부럽기도 하고 다급해 지기도 했다.
경희 언니가 거의 다 올라갈 무렵쯤 해서 많은 팀들이 오르기 시작했다. 자일이 10줄 정도 걸리더니 나중엔 최고 23줄까지 걸렸다. 낙빙이 수없이 생기고 핏자국이 선명히 남아 그 살벌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선배들은 빠른 속도로 오르기를 계속했고, 내가 할 차례가 과연 오려나 나는 무료하기만 했다.
가장 사람이 많은 시간대를 피해 점심을 먹으로 내려왔다. 쌓인 눈을 오랫만에 본 터라 나는 눈싸움이 하고 싶어졌다. 한쪽에서는 라면을 끓이느라 분주했지만 난 철없이 합승 선배님과 눈싸움을 하고 신나게 얻어맞았다. 이마에 정통으로 맞고 항복해 버렸다. 대신 선배들이 소주 사러 가는 합승 선배님의 뒤통수를 향해 일격을 가해 주셨다.
점심을 먹고 다시 구곡 아래 왔다. 아직 사람이 많았지만 나는 세번째로 오르기로 했다. 몸을 풀고 픽켈 찍는 연습을 다시 해보며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드디어 등반, 그러나 왠걸, 낙빙이 너무 많아 도로 내려와야 했다. 시작이 반이고, 이렇게 시작하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굳고 다져야했는데 내려오라니! 싫었다. 하지만 내려오고 나니 사람 얼굴 만한 낙빙이 내가 오르려던 자리에 떨어지고 양준선배의 판단이 정확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의 거의 다 올랐을 무렵 좌측 줄을 묶고 다시 올랐다. 초반부에서 양준 선배가 다리 자세와 위치를 교정해 주었다. 미리 찍혀 있던 자국이 많아 픽켈은 비교적 잘박혔다. 그러나 아이젠은 잘 찍히지 않아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올랐을까. 떨어지는 물과 얼음으로 장갑이 다 젖고 손은 마비되어 가고 있었다. 힘이 다 빠지고 픽켈을 쥘 수가 없어 팔목은 낀 채로 축 늘어져 뒤로 몸을 눕혀 봤지만 편하지가 않았다. 한쪽 팔을 내리고 쉰다는 건 불안해서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어느 지점쯤 와서 균형이 깨지고 있음을 느꼈다. 픽켈을 꽂을 자리도 편안히 다리를 놓을 자리도 찾을 수 없었다. 한참을 불안하게 떨고 있을 무렵 아래를 보니 선배들이 다리를 왼쪽으로 올리라는 지시를 해 주었지만 그렇게 해도 불안해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양준 선배가 왼쪽으로 건너와서 하라는 지시를 해 주었다. 불안하게 내려와 왼쪽으로 건너가니 어느 정도 길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오버행에서 줄이 걸려 왼쪽으로 와서도 오를 수가 없었다. 선배들의 안타까운 시선이 느껴졌고 줄을 느슨히 풀어 달라고 위로 외쳐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왼쪽 아래로 착하게 생긴 아저씨가 오르고 있었다. 3m, 2m, 1m, 드디어 내 옆에 왔을 때 "아저씨, 죄송한대요, 정말 죄송한대요, 옆에 줄 좀 넘겨 주실래요?" 힘겨운 표정이었지만 선뜻 넘겨 주셨다. 고마웠다.
다시 픽켈을 찍고 오르려 했지만 힘이 빠져 픽켈을 잡을 수가 없었다. 대충 걸치고 오르려는 순 간에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추락해 버렸다. 비명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많이 떨어지지 않아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내가 오를 길을 확인했다. 여전히 힘이 없어 힘겨워하는데 왼쪽으로 운회 선배님이 하강하시면서 나를 불렀다. "정숙아! 힘드니?" "네, 조금만 쉬었다가 갈께요", "그래, 근데 자세는 죽이더라" 선배님의 따뜻한 격려와 믿음이 전해져 왔다. 몸은 힘들었지만 기운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제 길이 어느 정도 눈에 들어왔다. 힘을 내서 찍고 오르기만 하면 된다. 빌레이를 보고 계신 한선배님의 격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드디어 다 올랐다. 한 시간여의 대 장정, 위에서 보니 멀리 눈쌓인 산이 너무 예쁘더라는 경희 언니 말대로 멀리 산을 보았지만 먼 곳의 눈은 어느새 녹아가고 있었다. 하강을 하려고 보니 그게 더 무서웠다. 다행히 줄이 뻑뻑해 혹시나 손을 놓게 되더라도 많이 떨어질 것 같진 않았따. 한참을 내려왔다 싶은데도 아직 멀었다. 내가 이렇게 많이 올라왔나 싶었다. 지면에 점점 도달해간다. 바닥에 발을 놓이고 경희 언니의 목소리, 선배님들의 시선, "수고했다! 정숙아" 왜 눈물이 나려고 했던 것일까.
나는 사실 몰랐다. 무엇이 청악인지, 청악을 이끌어 가는 힘이 무엇인지. 6개월을 산악회에 다녀도 한 발은 그 속에 넣더라도 한 발은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도록 빼놓고 있었다. 회지를 읽더라도 와닿지 않는 장비와 등반 용어에 질려 대충 읽으며 선배들이 말하고지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짐작조차 하려하지 않았다. 내가 이 청악에 들어오는 것이 얼마나 이익이 될 지 나는 여전히 계산하고 있었고, 준회원이라는 이름이 말해 주듯이 나는 온전하게 청악의 품안에 들어온 사람이 아니었다.
지면에 발을 내려놓고 선배들을 보는 순간 나는 그들의 따뜻한 시선이 내 마음 한켠에 깊숙히 자리잡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눈물이 나려했던 이유도 비로소 내가 마음을 열 수 있었고, 내가 마음을 열고 바라봤을 때 청악과 청악의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아직도 약간의 자만심에 빠져 있다. 선배들의 칭찬에, 얄팍한 내 귀가 가만히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만심이 그냥 자만심이 되지 않고 나를 발전시키는 자신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돌아오는 길은 지치고 힘들었지만 마음 한켠이 저려 오며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