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장1-12절 구도자 예배자 순례자 동방박사 251214대림3 원주희 목사
https://youtu.be/MRKLtsfX6rA
주제찬양 살고죽는 순례자(다윗과 요나단)
https://youtu.be/Qa3Ak2FWIuE
구술원고링크(링크된 주소로 가서 한글파일을 다운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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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땅을 보는 자와 하늘을 보는 자
1. 땅의 문제에 매몰된 삶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생을 영위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땅의 것들에 관심을 두고 땅을 쳐다보는 삶을 살아갑니다. 땅을 쳐다본다는 것은 건강 문제, 생계 문제, 자녀 문제 등 이 땅의 현세적 문제들에 온 에너지를 쏟으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종종 이 땅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자녀가 아프거나, 본인의 몸이 병들거나, 인생의 길이 막히는 등의 문제가 생깁니다. 전도자들은 이러한 이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면 자녀의 길이 열리고, 건강이 회복되며, 물질의 축복이 온다"는 땅의 복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땅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 이해하고 주님께 나아오기도 합니다.
2. 하늘을 쳐다보는 구도자
그러나 오늘 본문에는 이와 다르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땅을 쳐다보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입니다. 할렐루야. 이들은 동방의 박사들, 곧 점성술사들이었습니다. 하늘의 별자리를 관측하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연구하던 이들입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별을 관측하며 별자리를 연구하였는데, 예수님 당시의 별자리는 처녀자리 별자리 때였습니다. 이들은 처녀자리의 별자리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왕이 태어난다는 믿음과 기대감을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이었고, 그 왕의 탄생을 향하여 직접 찾아가 만나 뵙고 경배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진 구도자들이었습니다.
진리를 찾아가는 사람들을 **구도자(求道者)**라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도자의 여정을 지나왔으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구도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몸의 아픔, 재정 문제, 혹은 인생의 꼬인 문제 등 땅의 문제들 때문이었을지라도, 나아오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주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 동방 박사들처럼 구도자의 길을 걷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들도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가 주님을 더 깊이 만나는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II. 지식에서 예배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
1. 자연 계시에서 성경 계시로
구도자의 길을 걸어가는 동방 박사들을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이들은 별을 보고 예루살렘까지 왔으나, 별이 밤에는 보여도 낮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노라"고 물었습니다.
이 말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습니다.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던 사람들이었으나, 이방인인 동방 박사들이 와서 묻자 소동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성경이 있었습니다. 헤롯은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었습니다. 서기관들은 성경을 찾아내어 답변합니다.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내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마태복음 2:5-6, 미가 5:2 인용)
동방 박사들이 밤에 보이는 별을 보고 찾아온 것은 자연 계시였습니다. 막연하게 진리를 찾아 더듬어 오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이제 **성경(말씀 계시)**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나신다는 정확한 정보가 명확해졌습니다. 베들레헴은 다윗 왕가의 도시이며, 작지만 작지 않은, 다스리는 자가 나와 목자가 될 곳이라는 계시가 풀어졌으니, 더듬어오는 사람에게 길을 잡아준 일이니 박수 쳐줄 일입니다.
2. 성경 지식인인가? 예배자인가?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도자에서 예배자로"나아가는 단계입니다. 진리를 찾는 구도자에서, 그 계시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예배하는 자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 왕도, 대제사장도, 서기관들도, 심지어 주변의 수많은 백성들까지 메시아가 온다는 계시에 대해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했습니다. 지적인 동기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정확하게 안다고 해서 그분을 예배하는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인 것입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까지 가는 길을 동방 박사들은 길을 알지 못하여 더듬어 찾아야 했습니다. 그들을 안내해주겠다고 나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증언한 그분을 예배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이 성경이 나에 대하여 증언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약과 구약은 모두 예수님을 증언하며, 그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교회 안에 운행하시고, 우리가 진정 마음을 드릴 때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와 만나 주시는 분이십니다.
3. 헤롯의 위선
이때 놀랍게도 여기에 주목한 사람은 헤롯이었습니다. 에돔 족속인 헤롯은 자신의 정통성에 늘 도전받는 사람이었기에, 메시아가 오고 이스라엘의 목자가 태어난다는 소식에 초조해했습니다. 그는 박사들에게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말합니다.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이 말은 진심이 아닌 가짜였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경배하려는 마음이 일도 없이, 혹시라도 메시아가 될 가능성이 있는 아기가 있다면 죽여버리려고 하는 마음으로 기만적인 책략을 쓴 것입니다.
우리 역시 성탄절을 기다리는 대림절을 지내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진리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영원한 천국의 주관자이신 예수님에 대한 구도자적 심정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구도자에서 그분을 예배하는 예배자로 서야 합니다.
IV. 예배의 완성: 성령의 임재와 인도하심
1. 황금과 유향과 몰약의 헌신
동방 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아 베들레헴 아기 예수님께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왕궁이 아닌 곳에 계신 아기를 보고도 의심하지 않고 매우 크게 기뻐하며엎드려 경배했습니다. 그들은 예배할 때,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립니다.
이 예물은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드린 헌신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삼중 직분을 상징합니다.
황금은 예수님의 왕권, 유향은 예수님의 신성/제사장 됨, 몰약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예표합니다.
그들이 가장 소중한 것을 예물을 드리며 예배했는데, 예배에는 어마어마한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 예배의 대상이던 그 분이 우리 영혼 속으로 들어오시는것입니다. 할렐루야.
바른 예배를 제대로 드리면, 예배의 대상이 우리 속에 임하십니다.
2.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순례자
예배를 드리고 난 뒤, 그들은 12절에 기록된 대로 지시를 받습니다.
"그들이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이 신령한 꿈은 누가 꾸는 것입니까? 바로 성령 받은 사람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꾸게 하시는 것입니다. 꿈은 잠재의식이 의식의 세계로 올라오는 때이며, 이 무의식의 영역에는 영적인 세계가 함께 섞여 있습니다. 예배의 극치, 곧 주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이 일어나는 순간,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오셨고 그리고, 성령이 내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고 지시하신 성령님은, 오늘도 우리 속에서 말씀하시는 분과 동일합니다.
한국 교회의 심각한 문제는 성령의 은사와 역사를 주장하는 이들이 그 성령의 역사 안에서 그분의 인도함을 따라 오늘을 살아내는 것에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하는 이들은 그 말씀 가지고 오늘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서 살아가지 않아 율법주의자가 됩니다. 둘 다 교회의 심각한 병폐를 가져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3. 발의 등과 손의 렌턴
성령님의 인도함은 어떻게 주어집니까? 성령님은 때로는 이래라저래라 말씀하실 때도 있지만, 주로 우리 마음속에 임하셔서 거룩한 소원을 주시고 그 소원을 행해서 우리가 가게 하십니다.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감동(Impression)**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영어로 성령님을 'The Other Myself'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내가 아닌 성령님은 내가 아닌 나가 되셔서 내 속에서 말씀하시는데, 마치 나처럼 말하기 때문에 감동이다, 감화이다 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라고 했습니다. 등불을 멀리 비추어주는 랜턴이 아니라, 발등 위에 달아보십시오. 발 한 발 디딜 때 거기 보여지고, 또 한 발 디딜 때 보여집니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따라가다 보면 믿음의 과정을 지나가고, 그 과정을 지나서 하나님은 나를 나 되게 하시고, 나답게 하시고, 나다운 나에게 어마어마한 은총의 역사를 안겨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결론
오늘 동방 박사들은 구도자에서 예배자가 되었고, 예배자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순례자가 되었습니다. 순례자의 여정을 걷다 보면 주님과 동역하는 동역자도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탄을 준비하면서 이 동방 박사의 마음이 우리 안에 풀어지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구도자에서 예배자로! 예배자에서 순례자로!할렐루야. 이 믿음의 여정을 걷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