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 아히야(1열왕 11,29)
실로 사람 아히야는 누구인가? 그의 증조부 엘리는 판관 시대 전후 실로의 대제관과 판관(1사무4,13)을 겸직하는 막강 실세로 40년간 판관으로 일하였다. 엘리는 사무엘을 키워낸 스승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사제직을 계승해야 하는 엘리의 아들들 특히 호프니와 피느하스는 성전)만남의 천막에서 백성을 갈취하고 신전봉사 여인들과 간음하였다. 주님은 아들들을 제대로 훈육하지 못한 엘리의 부덕을 들어 그 가문을 멸망시킬 징벌을 예언하였다(1사무 2,18~36). 이 시대 필리스티아가 침공하여 이스라엘은 대패하였고,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죽었으며 ‘주님의 계약궤’마져 빼앗겼다. 엘리의 며느리이며 피느하스의 아내는 그때 임신중이었는데, 패전과 남편의 전사 소식에 충격을 받고 출산하다 죽었다. 그러나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이 아카봇이었다. 엘리 가문이 서둘러 단종한 것은 아니었다. 더 중요한 행간의 사실은 엘리에게 다수의 아들들이 더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마지막 판관이며 대예언자인 사무엘의 출현의 권위와 이스라엘 역사의 변화를 위한 이야기이다.
아히야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그는 이스라엘 초대 왕조인 사울 왕 시대, 실로 성소의 사제로 봉직하였다. 그는 사제로 엘리의 증손이고 피스하느의 손자, ‘아카봇’의 조카이고 아히툽의 아들이라고 한다.(1사무 14,3). 1사무 14,3절 본문으로 단순하게 족보를 추적해보면 아카봇과 아히툽은 형제지간이 되며, 아히야 예언자는 ‘아히툽-실로성소, 아히야 예언자 본인-아히멜렉-에브야타르 계보로 이어지는 것이다. 여기 본문에서 제시되는 지명 ’실로‘는 이 예언자 가문이 실로에서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제 에브야타르 사제를 주목하자. 그는 아히야의 손자 아히멜렉의 아들이다. 에브야타르는 사울 왕이 정적 다윗을 도왔주었다고 하여, 놉의 사제들을 학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에게 피신해와 군목으로서 투신하였다(1사무 22,20-21;23,6). 다윗은 난세에 자신을 지지한 에브야타르의 공로를 인정하여 다윗 시대 내내 측근에서 즉 왕실 사제로 활동하였다(2사무21,25). 그러나 다윗이 죽은 뒤 왕권을 둘러싼 2차 왕자의 난에서 솔로몬이 아닌 아도니야를 지지했다가 솔로몬에 의해 파직 당하고 아나톳으로 축출 당하였다(2열왕 2,26-27). “그리하여 주님께서 실로에 있는 엘리 집안을 두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1사무 2,27). 유다 왕조의 멸망시 활동한 아나톳 출신 예레미야가 그의 자손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제 다시 사울 왕과 다윗 왕의 시대 판관이며 사제였던 실로의 엘리 가문의 출신 아히툽의 아들 아히야으로 돌아가보자. 그는 사울과 다윗 왕조의 역사 자기 가문의 역사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는 영향력있는 큰 사제였다. 그런 그가 말년 솔로몬의 왕권 과시를 위한 부덕한 리더쉽 이방인과 결혼동맹과 요셉 지파를 강제 노역에 동원시키고 학대한 일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후손 에브야타르를 축출한 행동에 대해 분한 감정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솔로몬이 죽자 주변국 에돔과 아람이 반란을 일으켰다. 내국에는 에프라임 지파 출신 예로보암이 있었다. 그는 세력이 있는 용사로 요셉 지파의 강제 노동 감독이었다. 요셉 지파의 지도자인 셈이다. 에프라임의 선조는 누구인가? 레아의 후손과 갈등과 대립 구도에 있는 라헬의 큰 아들 요셉의 후손이다. 요셉은 벤야민과 한배로 태어난 생물학적 형제이다. 벤야민 지파에서 세운 사울 왕조를 유다 지파의 다윗이 무너뜨리고 왕조를 세웠다. 게다가 솔로몬을 계승한 르하브암 왕은 부실한 지도자였다. 이러한 변화무쌍한 자국의 역사와 국제 정세의 과도기를 통찰한 통찰한 아히야는 일련을 모사를 제기한다. 아히야는 예루살렘에서 예로보암과 단 둘이 만났다. 하느님의 예언을 전한다면서, 그 예언자는 새 옷을 입고 있었다. 새 옷이라는 말은 여기서만 등장하는데 과 사람 아히야 예언자를 길에서 만났다. 아히야는 ‘새 옷’을 입고 있었고 그 옷을 열두 조각으로 찢어 열 조각을 예로보암에게 준다. ‘새 옷’이라는 이 말과 찢어진 열두 조각중 열 조각은 통일 왕국 다윗 왕조의 분단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예로보암은 이 예언을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나머지 행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탄 예언자의 기록과 실로 사람 아히야의 예언서에, 그리고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에 관한 이또 환시가의 환시록에 쓰여 있지 않은가?“(2역대 9,29). 아히야는 솔로몬 왕의 행적을 기록했다. 왕국은 분단한 죄인으로 신명기적 사상가들에게 폄훼를 받았지만, 한 때 세상을 휘두른 비범한 인물이었다.
입력:마리 에스텔 수녀,2024년 08월 23일 PM 14:24분
참조: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