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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이쯤에서 그만 두어야 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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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창모'의 이름으로 돈 이십 만 원이 들어와 있었다.
입금 시간을 보니 어제였다.
그러니까, 나와 통화한 뒤 바로 돈을 부쳤던 것이 분명했다.
내가 석유 한 번 넣는데, 15만 원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십 만 원을 부쳤을 텐데,
어쩌면... 지난번에 이곳에 왔던 '구 병태'와 함께 그렇게 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각자 십 만 원씩)
둘이는 늘 그러니까...... 그리고 우리는, 옛날부터 그래왔으니까......
그렇다면 이 '할머니를 위한 후원회'라도 생긴 것인가?
아무튼 그들이 고맙다. 할머니를 도와준다지만, 날 도와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니까......
아, 내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그리고 그들이, 왜 이리 자랑스러운지,
나는 그 기쁨에 가슴이 설레기까지 한다......
사실 기로는 이 날의 일기도(윗글) 이렇게 시작은 해놓았지만,
당연히 홈페이지에 올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말미에 날짜 기입도 하지 않은 상탠데,
그 이유는 다음 '편지글'에 나온다.
더구나 윗글에서는 구체적인 돈의 액수까지를 밝혔는데,
그런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보인 건, 애당초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을 글이라는 뜻이기도 했던 것으로,
어쩌면 먼 훗날, 하나의 '자료'(?)로 생각하고, 돈의 액수를 밝혀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아무튼 다음 '편지글'을 보면, 이 즈음 장 기로의 심리 상태를 엿볼 수 있다.
# 이쯤에서 그만 두어야 할 이야기...
요즘, 내 홈페이지엔 갑자기 이 옆집에 홀로 사시는 '8순의 할머니' 얘기가 제법 많이 나옵니다.
연세가 비슷해서, 어쩌면 내 어머니 같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돌보아줄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사시는 모습이 가슴 아파서... 더구나 최근에 눈 수술까지 하신 모습에 놀라, 나도 모르게 갑자기 그 할머니의 삶 속으로 빠져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내 홈페이지에 그 얘기의 비중이 급격하게 는 것입니다.
근데요, 그 일요?
좋고 나쁘고 하는, 그런 판단은 차후로 미루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게 잘하는 일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 일인지도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나는, 마음이 시켜서 하는 일일 뿐이니까요.
근데요, 아... 어느 한 순간,
그 할머니와의 얘기가, '내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 생방송으로 중계라도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내 스스로 받았습니다.
그 할머니와의 자질구레한 대화까지 시시콜콜, 어디 그뿐인가요? 별의 별 얘기를 내가 다 기록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그저 사실적(가감 없이)으로 묘사한다는 것이,(물론 힘은 들었지만...) 그러면서도 진실 그 자체를 말하고 싶다는 생각에, 며칠을 반복하다 보니... 글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것도 문제지만,
'내가 하는 일을, 은근히 다른 사람들(내 홈페이지에 들어오는)에게 내세우려고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자아비판까지 들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그것마저도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거지요.
다만, 언뜻 생각해 보니... 내가 마치 남들에게 선전이라도 하듯, 그런 일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있다는 사실에,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누구라 할지라도 그 글을 읽게 되면, 나에게... '좋은 일을 한다'고 하겠지요만,
내 스스로 그런 일을,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떠벌이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에게 벌어지는 모든 얘기(일거수 일투족)를 이 사이트에 공개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상당 부분을 꾸밈없이 내보이는 건 사실이거든요.
비록 약간 숨기는 건 있지만(너무나도 내 개인적인 것이거나, 혹 다른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문제거나, '돈' 또는 '부부간의 성(性) 문제' 같은 건, 내 비치지 않음), 있는 사실을 말할 때는 각색하거나 과장하거나 축소하는 일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이 할머니 얘기도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어쩐지... 누군가에겐, 마치 내가 '내 자신의 '선행'을 홈페이지를 빌어 자랑이라도 하듯 구구절절이 올리고 있다고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미치면서는,
'이쯤에서 그 얘기는 그만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갑자기 그 일을 그만 두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그 일은 내 마음 가는대로 이어지겠지만,
여기 '홈페이지'에 이러쿵저러쿵... 보고 하는 식은 그만 두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올린 글은요?
그 글들은, 어차피 그런 자각도 없이 올렸던 거니, 그냥 놔두기로 하겠습니다.
이미 동네방네 떠들어댄 것이고, 이 세상에도 알려진 일인데요, 뭘......
지금 삭제해도 안 될 것도 없겠지만, 이제 와서 없었던 일로 지운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아닐 테고, 그게 더 이상할 것 같기도 해서... 크게 신경 쓰지는 않겠습니다.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보는데요.
그렇지만, 한 가지... 여러분께 '인정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것도 있긴 합니다.
내 얘기를 듣는 순간, 할머니께 보일러 기름을 넣어드리라며 돈을 보내온,
내, '구 병태'와 '서 창모'라는 친구 둘에게는...
순수하고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분명한지라,
그들까지 이 범주에 포함시키지는 말아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은 충분히 칭찬을 받아도 될 착한 사람들이니까요.
그렇다면, '나'요?
그냥, 현실적으로는 '없는 사람'으로 간주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어차피 여기는, 어느 한 ‘화가의 일기’ 홈페이지니,
'이 세상엔... 그런 한 사람의 화가가 있나 보다.' 정도만을 생각하면 될 테니까요.
어떤 때는 내 스스로도,
이 사이트의 얘기들이 마치 허구인 듯한 착각을 가질 때도 있거든요.
글로 여러분께 내 얘기를 전달한다는 것은, 그런 맛도 있는 것 같습니다.
말로 할 땐,
정말 '내 일' 같은데,
글로 써서 읽어보면,
마치, '다른 사람의 일' 같기도 해서...
하는 말입니다.
3 . 26
그렇게, 기로는 홈페이지에 '옆집 할머니의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뜻을 명확히 밝혔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기로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옆집 할머니 얘기를 언급한 건 몇 차례 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선행 (?, 그는 꼭 그게 ‘선행’이라고 인식하면서 하고 있지는 않았다.)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포하듯 알리는 게, '양심의 가책'이거나... 어쩐지 신경이 써져서, 그걸 멈추고자 스스로 취했던 행동이었던 것이다.
물론 시작은, 자신의 시골 생활에서 오는 새로운 경험 정도로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좋은 일을 하는 입장으로 큰 부담없이(그렇긴 하지만 딴에는 다소 축소하려는 심정으로) 홈페이지에 언급을 했던 일인데,
일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그리고 어떤 면에선 자꾸 확대되다 보니... 어떤 한계점에 다다른 것 같아(스스로 마음이 불편해져서) 이런 결정을 내렸던 것으로,
이런 것도 결국은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겪은 하나의 경험이자 해프닝일 수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어차피 홈페이지에 업로드는 시켜야 했으므로, 애먼 일을 거론하는 것으로 이 날을 갈무리 했던 것인데......(아래)
*
홈페이지를 점검하려고, 한 시간 반 정도를 인터넷과 접속시키려다 실패하고 말았다.
전화 모뎀에 이상이 있는 건지, 전화 네트워크에 이상이 있는 건지... '도움말'대로 해결해보려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 왜 이렇게 문제 투성인지, 정말 사람 뒤집어지겠다......
돈은 돈대로 쳐 들이고서도 성능은 떨어진 걸로 겨우 시늉만 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안 되니......
스캐너도 안 되지, 한글도 설치가 안 돼서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지, mp3 음악 파일 듣는 것도 안 돼서, 요즘 음악이라는 것은 겨우 카셋테이프를 듣는 게 전부니...
뭐 하나 완벽하게 제대로 돼 주는 게 없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약이 오른다.
여기로 이사 와, 한 달이 지나도록 자리가 잡히지 않은 것 투성이라......
3 . 26
그러니까 실제로는 '옆집 할머니 얘기'를 한 보따리 쌓아놓고도, 기로는 홈페이지에 윗글 같은 간단한 몇 줄을 업로드시킨 게 전부였다.
(그런 식으로 '옆집 할머니 얘기'는 점점 기로의 홈페이지에서는 '그저 가끔 평범하게 얘기나 나누는 식'으로 변해갔다.)
그렇지만 실제 얘기는,
아침이 되면서 비는 그쳤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기로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반장 집으로 갔다.
어떻게 택시를 부르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랬더니 '콜택시'를 부르면 된다기에, 전화를 걸어 8시 50분까지 와줄 것을 부탁했다.
기로가 다시 돌아오니, 할머니는 아침식사 중이었다.
얼굴은 이미 씻으셨다고 했는데,
그렇게 둘이 준비를 하는데, 기로가 전주에 갈 거라는 걸 알았던 반장은(아까 그 집에서 콜 택시를 불렀기 때문에), 그 시간에 정확히 맞춰 나타났는데, 깨끗한 외출복차림이었다.
그래서 기로가,
"반장님, 어디 가세요?" 하고 묻자,
"전주에요." 하는 거 아닌가.
그러니 당연히 기로는,
"그러면, 내가 부른 택시를 같이 타고 가면 되겠네요?" 하자,
그는 별 대꾸를 하지 않고 그냥 길을 가는 것이었다.
그러니 기로는,
'저 사람이 왜 저러지?' 했는데,
그 사이에 택시가 도착했고,
기로는 조심스럽게 할머니를 뒷좌석에 태운 뒤, 본인은 기사 옆 좌석에 앉고 출발을 했다.
물론 마을을 벗어나는데 저 앞에 반장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기로가 기사에게,
"죄송하지만... 저 사람도 태우고 갑시다." 하자,
그가 크락숀을 울리면서 차를 세웠다.
그렇게 반장도 타고, 택시 승객은 셋이 되어... 전주로 향했다.
그런데 그 얼마 뒤에 기로는,
'이 사람은(반장) 왜, 같이 마을에서 택시를 타고 와도 되는 길을... 혼자서 걸어오다가, 내가 타라고 하니까 탄 것일까?' 하다가, '글쎄, 어쩌면 전주까지의 차비 부담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했는데, 또, '내가 차비를 나눠서라도 내자고 할 것 같아서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스쳤다.
'그래서 사람들마다, 반장이... 다른 사람들과 '나눠 먹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는 걸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런 내색 없이 전주로 달려가고 있었는데, 가는 길목의 나무들은 물이 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구이'(전주까지의 반절 거리에 있는 큰 마을) 정도에 이르니, 어느새 새싹을 내민 나무도 있어 보였다.
할머니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서 기로는,
'아마 반장이 함께 타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러고 보면, 어쩌면... 그게 더 다행스런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기로가 또 할머니의 얘기를 들어주면서 이해시키는 일에 진땀을 빼고 있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반장과 함께 전주에 가는 일은 계획에 없었던 일이었는데, 상황이 그렇게 바뀐 것이라... 기로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본인의 의지로 된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반장이 갑자기,
"이, 할머니 아들한테 전화를 걸어야겠네요." 하는 것 아닌가.
그러고 보니, 반장은 아마 옆집 아들의 전화번호를 아는가 보았다.(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그 아들과 통화를 할 수 있는 한 통로를(비상연락망) 가지고 있었던가 보았다.)
그래서 기로가 얼른,
"그러지 마세요!" 라고 말렸는데,
"왜요?" 하고 반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마음 아파 하시니... 그저, 모른 척 하슈." 하고 기로는 부탁까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차피 할머니는 두 사람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라,
일은 그 선에서 끝날 수 있었지만.
전주 도심에 접어들자 반장은, 자기 볼일을 보러 간다며 '남문 시장'에 내리더니,
고맙다는 말도 없이(? 기로가 꼭 그 말을 바란 건 아니지만) 발걸음을 서둘러 멀어졌고,
'아, 저래서 산장아저씨가 제일 싫어한다는 사람이라는 거구나......' 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기로는 좀 우습기도 했고 한편으론, 반장이 괘씸하기도 했다.
사실 기로의 입장에서는, 반장에게 전혀 택시비의 부담을 줄 생각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최소한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하면서는,
반장이 하고 있는 행동이 너무 가소롭기도 했고 속보이는 행동이어서, 기가 막히기까지 했다. 그러니,
'살다 보니, 저런 사람도 다 있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뒤, 몇 분 더 도심을 지나... 전주의 한 안과 앞에서 내렸는데,
택시비가 3 만 5 천원이 나왔다.
'너무 비싼 거 아냐?' 하고 있었는데,
"바쁠 틴디... 가봐야 허는 거 아녀?" 하고 할머니가 묻는 것이었다.
"할머니, 걱정 마세요. 저는 오늘 시간이 충분하니, 제가 병원에 들어가서... 할머니의 상태를 조금 정확히 안 뒤, 다음 일정에 맞춰 드릴 게요."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고마워서... 어떡 혀?......" 하고 말끝을 제대로 잇지 못하자,
"할머니, 제가 말씀 드렸지요? 마음을 편히 가지셔야 한다고요...... 그러니, 일단 저에게 맡겨 주십시요." 하고는 할머니를 부축해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일단 할머니의 눈(시력) 검사를 했는데,
기로가,
'어? 의외네!' 했던 건,
어차피 할머니는 글자를 모르기 때문에 옆구리가 터진 문양 표시를 알아맞추는 검사를 한 것 같은데,
기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할머니가 잘 맞추었기 때문이다.
그런 뒤 기로가 담당의사에게 갔더니,
"할머니, 가족 없죠?" 하고 묻기에,
기로는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오늘은 수술허지 않남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러자 의사는,
"치료만 할 건데요..." 하면서 챠트를 보더니,
"그럼, 오늘 수술해 드릴까요?" 하고 기로에게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로는,
"가능하면 수술해주시면 좋지요. 할머니께서 번거롭게 자주 전주까지 나오시지 않아도 되니까요......" 하고, 다소 겸손하게 대답을 하자,
"그러죠."
의사도 상당히 담백하고 즉흥적인 대답을 해주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할머니가 오늘은 입원을 하고, 하룻밤 주무신 뒤 내일 퇴원하기로 정해졌다. 그러면서 젊은 의사는,
"이 할머니 수술은, 무료로 해드립시다." 하고 간호사에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너무 고마웠던 기로는 고개를 숙이면서까지,
"아, 선생님...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고,
"할머니, 오늘 수술한대요. 그러면 여기서 수술하고, 오늘 밤은 주무시고, 내일 오전에 제가 모시러 다시 오겠습니다."하고 설명하자,
"그려?" 하고 반기는 듯한 음색이기에,
"예. 그렇게 하기로... 의사선생님하고 얘기를 했습니다." 하면서, 할머니를 부축해서, 일단 환자복으로 갈아입으시게 2층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둘이 잠깐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할머니가 조그만 손가방에서 무슨 수건을 꺼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천천히 푸는데, 그 안에는 천원 짜리가 몇 개 보이더니 두 갠가 만원 짜리 접은 것도 나왔다.
할머니는 만원 짜리를 꺼내더니 기로에게 내밀며,
"받어......" 하고 조용히 말했다.
"왜요?" 하고 기로가 놀라자,
"아까, 차비여......" 하는 것이었다.
"아이, 할머니는...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시라니까요."
"아까 본게... 돈 많이 내든디? 얼마 냈어?"
"할머니, 그런 건 저에게 맡기세요.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내가... 너무 미안혀서 그려....."
"괜찮습니다." 하긴 했지만,
그 꼬깃꼬깃 접혀 있던 지폐를 보면서 기로는, 가슴이 메어 오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감정을 억제한 채 그 돈을 다시 그 수건에 싸서 할머니께 돌려 드렸다.
그러자 할머니는 기로 손을 잡더니,
"하늘에서 떨어졌어, 땅에서 솟아나왔어?" 하는 거 아닌가.
"예에?"
"왜 이렇게 나를 도와 줘?" 하는데,
기로는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저 소리 없이 웃기만 했을 뿐이다.
"하늘에서 떨어졌나, 땅에서 솟았나... 어떻게 이런 사람이 나타나서, 나 같은 사람을 도와주는지 몰라... 참말로 고마워......"
"예......" 하고 기로 역시 조심스럽게 앉아 있는데,
그때였다.
"할머니! 환자복 갈아 입으셔야 해요." 하는 간호사의 말을 들으며,
"그럼, 할머니... 저는 잠깐 은행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는 병원에서 나왔다.
다시 마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다소간의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실은, 아까 택시비로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가서, 기로에겐 몇 푼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은행에서 나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는데, 기로의 눈에는 야쿠르트 수레가 보였다.
'할머니께 떠먹는 요구르트라도 사다 드리자......' 하면서 기로는,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갔을 야쿠르트 아줌마를 10 분도 넘게 거리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결국 여인이 나와,
떠먹는 요구르트 세 개를 사 가지고 병원에 돌아가니,
할머니는 벌써 수술실로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로가 수술실로 올라가 보니,
아직은 수술 전인지... 할머니가 멍하게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기로가 다가가자 할머니는 눈치를 챘는지,
"바쁜디... 어서 가서 일봐!" 하는 것이었다.
"예. 조금만 있다가요......"
그러면서 기로는 간호원에게,
"이 할머니는... 말귀가 어두우시니, 말을 천천히 크게 해드려야 합니다." 하고 부탁을 했는데,
그녀도 웃는 얼굴로 잘 알았다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결국 할머니는 수술실로 들어갔고, 기로는 병원을 나왔다.
둔터니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고 가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기로의 '군산'에 사는 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