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은 보직수당 나누고, 일부 직원들은 평일에도 골프
구매·입찰비리, 교비 횡령, 국고 유용 등 대학비리 ‘복마전’
급변하는 환경 속 대학은 취업률이 대세, 미래엔 ‘천지개벽’
[한국대학신문 이우희·이재·이재익·송보배 기자] “뭔가 불안하다.”
멀리 보는 대학총장들은 벌써부터 정부 재정지원사업 이후를 내다보며 근심하고 있다. 대학의 근본적인 위기는 재정지원사업비 규모 축소나 취업률 하락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진짜 위기는 내부에서 온다. 방만한 조직과 불투명한 재정관리, 변화에 대한 둔감이야 말로 우선 바로잡아야할 ‘내부의 적폐’라는 주장이다. 국가도 내부적으로 단단하면 어떤 외부의 위기도 막아낼 수 있다. 반대로 내정이 어지러우면 외부의 작은 충격파가 파멸의 결정타가 될 수 있다. ‘반드시 스스로 나라를 망하게 한 이후 남이 그 나라를 공격한다(國必自伐以後 人伐之).’ 맹자의 말이다.
■ '밑빠진 독에 물붓기' 국고지원 받아도 ‘경영 비효율’은 그대로 = 대학의 진짜 위기는 악화되는 미래 대학환경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지는 비효율적인 경영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비정규직이 늘면서 비난이 일기도 하지만 여전히 대학 교직원은 ‘신의 직장’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수도권 한 대학 직원은 평일에도 골프를 치러 가곤 한다. 이 대학 노(老)교수가 이 같은 행동을 지적하자 팀장급인 그는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고 협박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동료 직원들은 그를 감싸고 돌았다. 이 대학 한 교수는 “때로는 보직교수보다 직원들의 힘이 세다”며 “특히 정직원들은 정년이 보장되니까 일을 안 해도 내보낼 수가 없고, 정작 일은 조교가 다 한다. 공기업보다도 조직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토로했다.
서울 소재 한 대학의 경우 서울과 지방캠퍼스를 합쳐 재적학생 수가 2만3000여명 정도인데 몸집이 1.5배인 고려대(3만8000여명)와 팀장급 보직자의 숫자가 50명으로 같다. 이 대학 노조관계자는 “보직교수가 넘치는 이유는 '수당 챙겨주기' 때문”이라며 “모 총장의 재임 당시에는 ‘생계형 처장’이라는 말이 교직원 사이에서 유행했다. 교수들 중에 자녀를 외국에 유학 보냈거나, 빚이 많거나 해서 '수당'이 필요한 교수들을 우선적으로 처장에 앉혔다는 얘기가 파다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대학가에는 원장, 부원장, 부장 등 ‘보직자’가 일반 직원보다 많은 팀도 허다하다. 기존의 한 연구부서를 5개 부서로 쪼개 5명의 원장을 임명하는 일은 약과다. 이런 식으로 보통 교수 한 명이 보직을 2~3개씩 맡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보직을 달고 있으면 의무수업 시간은 크게 줄어드는데, 추가 수업을 하면 또 수당이 나오기 때문이다. 상당수 교수들은 얼마 안 되는 의무수업 시간을 모두 채운 뒤 자연스럽게 '추가 수업' 수당까지 챙기는 짭짤함을 누린다. 결국 보직수당은 보직수당대로, 수업수당은 수업수당대로 챙기는 '이중수당'을 받고 있는 것이다.
■ 불투명한 구매·입찰… 원가절감보다 유착관계 중시되는 비리 ‘복마전’ = 대학의 방만한 운영은 재정운영면에서 더욱 심각하다. 대학의 회계는 불투명하고 교육부의 감사는 느슨하다. 가계, 기업, 정부에서 나온 수십수백 억원에 달하는 돈이 무시로 흘러드는 대학에선 개인의 횡령과 비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건축입찰 비리다. 수도권 모 대학 관계자는 “대학가 건축부문은 비리의 복마전”이라며 “이상하지 않나. 왜 사립대학 건물은 꼭 그 대학 재단과 관련된 기업이 독점을 할까. A대 건물은 D관련 회사들이, H대는 H건설이, S대는 S건설이, C대는 D건설사가 공사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는 총장과 보직교수들이 재정을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노력보다는 재단에 잘 보이려고만 한다는 의심을 낳게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 “우리 대학의 경우 1991년도에 지은 기숙사는 당시에 평당 300만원을 들였다고 하는데, 아무리 높게 잡아도 100만원이 넘을 수 없는 건물이다. 20년전에 평당 300만원을 들였으면 신라호텔을 지었을 것”이라며 “교수회는 건축비내역을 공개하라고 했지만 대학 측은 거부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대학들이 스스로 재정능력이 부족한데도 로스쿨과 약대 등을 유치하기 위해 허위로 재정운영계획을 내고 막상 유치한 뒤에는 학생 등록금으로 보전하는 행태도 문제다. 기업으로 치면 무리한 투자를 한 뒤 재정이 어려워지자 직원들의 급여를 깎아 보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어느 수도권 대학 교수는 “대학들은 로스쿨을 유치하기 위해 재단전입금을 해마다 얼마씩 내놓겠다고 약속하고도 막상 유치하고 난 뒤 한 푼도 내놓지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 “과장된 재정운영계획안을 받고도 눈감아준 교육부는 더 큰 도적”이라고 맹비난했다.
특히 방만한 재정 운영은 지방대일수록 더 심각하다. 지방 모 대학관계자는 “지방대학의 경우 지역 납품업자와 대학 교직원간의 유착관계가 관행으로 굳어져 있어 총장이 이를 알아도 방법이 없을 정도”라고 혀를 찼다.
실제 연구지원금이나 정부보조금, 교비 등을 횡령했다 적발되는 교직원에 관한 뉴스는 잊을 만하면 터질 정도로 고질적이다. 지난 6월에는 수도권 상당수 대학들이 가짜 교수와 학생 명단을 만들어 강의 기록을 조작하는 등 다양한 수법으로 국고 보조금을 횡령해 충격을 줬다. 당시 경찰은 산학협력 연구개발비를 지원받아 빼돌린 혐의(사기 등)로 D대·K대 등 수도권 5개 대학의 교수와 강사, 전담 직원 등 53명을 검거했다. 수법은 다양하다. D대는 보조금을 횡령하기 위해 유령강의를 만들었다. 타 교육기관에서 학생명부와 교수진 명단을 받아와 허위 강의기록 등을 작성해 고용부에 제출했다. K대는 수강인원과 교육시간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보조금을 받아 챙겼다. S대는 강사료를 부풀리기 위해 허위 강사 명단을 작성해 보고했으며, 또다른 K대와 D전문대학은 수업 내용과 규모를 부풀려 고용부에 보고해 보조금을 빼돌렸다.
■ 대학의 본질은 교육과 연구… 기타 부문에선 ‘아웃소싱’도 방법 = 대학은 자율과 독립성이 존중되는 교육기관이라는 이유로 경영 효율화에 대한 고민을 미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대학 모 관계자는 “‘대학의 특수성’이라는 표현이야말로 대학의 혁신을 어렵게 한다”고 꼬집었다.
실제 변화를 거부하는 철옹성을 상징하는 ‘학문의 상아탑’은 무너진 지 오래다. 취업률은 명실상부한 대학평가 지표로 활용되고 있고, 대학관계자들은 ‘입시경쟁률’보다 ‘취업률’에 훨씬 민감하다. 입시설명회에 가면 지방대학과 명문대학 할 것 없이 해당 대학에 유리한 각종 취업률 통계를 전면에 내세운다. 기업이나 정부와 연계해 취업을 보장하는 ‘특성화학과’는 해당 대학 지원자 가운데 가장 우수한 인재가 몰린다. 취업률이 낮은 대학은 학생들이 가지 않아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정부의 재정지원제한대학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고 심한 경우 폐교가 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대학 구조개혁을 이끌었던 한 지방 대학 교수는 “실제로 구조개혁을 해보니 교수와 직원뿐 아니라 총장과 재학생, 동문, 재단 등 모든 구성원들이 잠재적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더라”고 말했다. 대학 구성원들의 혁신과 변화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교수는 자신이 근무하는 대학에서 법적으로 피고용인임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대학의 구조조정에 자신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서 “개혁의지가 약한 총장은 이렇게 반발하는 동료교수들로부터 강한압박을 받아서 개혁의 방향과 범위가 달라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대학에선 여전히 비즈니스적인 경영이나 아이디어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점도 혁신을 가로막는다. 원가절감을 위한 경영전략으로는 ‘아웃소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현재 대학가 아웃소싱 분야는 청소와 경비, 식당운영, 주차관리 등에 머물러 있다. 그 외 일부 도서관을 파견업체 직원에게 맡기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아웃소싱 인력인 청소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곤혹을 치른 영향도 존재한다.
■ 명문대도 예외없는 ‘교육의 천지개벽’ 시작 = ‘유엔미래보고서 시리즈’의 저자로 유명한 미래학자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한국대표는 “2030년에는 전 세계 대학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재정능력이 떨어지고 경쟁력 없는 대학이 도태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대학의 존재가치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경고다. 지금부터 경영효율화를 달성하고 미래 대학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소리다.
박 대표는 “현재 온라인 공개강의를 통해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강의 680개 정도를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고, 수료증도 준다”면서 “이는 하버드를 포함한 명문대학도 마찬가지로, 미래에는 결국 상당수 대학 교수가 사라질 수 있다는 예기”라고 설명했다.
실제 무크(MOOC)가 미래 대학의 교육환경을 탈바꿈시킬 것으로 전망되면서 무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2012년 출범한 ‘코세라(COURSERA)’와 ‘에드엑스(edX)’, ‘유다시티(Udacity)’, ‘퓨처런’, ‘블랙보드(Blackboard)’, ‘스카이넷 대학교(Skynet University)’, ‘오픈투스터디(Open2Study)’ 등 무크 플랫폼은 규모와 특징이 매우 다양하다.
대학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원격교육의 발전만이 아니다. 박 대표는 “후기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면 교사나 교수가 가르칠 필요가 없이 ‘글로벌 브레인’이 나온다. 집단지성을 이용한 위키피디아가 대표적”이라며 “학교는 이제 창업센터가 된다”고 전망했다. 여기다 세계인의 수명이 150세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도 대학의 역할을 고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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