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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의 길 8-1코스(우회로)
임진강역-자유나들목-마정들-맨박골천-
동안마당-장산1리마을회관-장산리들녘-
맨밧골-장산전망대-임진낚시캠핑공원-
나루터마을-임진진터-임진나루-화석정-
율곡화석정마을-화석교-율곡습지공원
20250212
1.코스 소개 : 두루누비
1)코스개요
- 예약이 필요한 8코스를 대체하여 이용이 가능한 우회노선이다.
- 임진강역에서 출발하면 대부분이 논길과 마을길을 지난다.
- 코스에서 약 200m 떨어진 장산전망대에 오르면 임진강과 초평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 주요 경로 : 임진강역 4.7Km 장산1리마을회관 1.8Km 장산전망대 입구 2.7Km 화석정 1.0Km 율곡습지공원
- 길이 10.2km, 소요시간 3시간 30분, 난도 보통
- 시점 :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1234-4(임진각로 115)
대중교통) 문산역에서 058A, 058B 버스 이용, 임진강역 하차
- 종점 :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508-26
대중교통) 문산역에서 95번 버스 이용, 율곡1리 하차
2)관광포인트
- 임진각과 북한기념관, 각종 기념비 및 통일공원 등으로 이루어진 임진각국민관광지
- 임진강 하류의 습지 초평도와 북한을 조망할 수 있는 장산전망대
- 임진강가 벼랑 위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 화석정
- 고향의 정겨운 시골풍경을 떠오르게 하는 율곡습지공원
3)여행정보(주의사항)
- 임진강황복마을 부근에 식당이 많으니 이용해 보자.
- 마을길은 그늘이 없으므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2.눈 내리는 임진강 들녘에 들리는 소리
경의중앙선 임진강역 앞에서 평화의 길 8-1코스 탐방을 출발한다. 8코스는 현재 통제 중이어서 어쩔 수 없이 우회로 8-1코스를 통하여 율곡습지공원까지 탐방하게 되었다. 눈이 펄펄 내린다.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들녘으로 나가 통일로 자유나들목으로 달리는 자유로 아래 농로를 따라간다. 문산읍 마정리 드넓은 파주평야에 눈은 펑펑 쏟아져 내려 앞을 분간할 수 없다. 위치를 가늠하지 못하고 넓은 들녘 서쪽을 달리는 임진강 제방, 눈 덮인 비닐하우스, 들녘에 흩어져 있는 하얀 곤포사일리지를 보면서 마정리 들판의 농로를 이리저리 따라간다. 눈 내리는 들판은 먼 그리움을 불러낸다. 길동무는 시골 장날 장보러 길 떠나는 마을 사람들의 행렬을 추억한다. 이용악(李庸岳, 1914~1971) 시인은 눈 내리는 객지에서 고향의 그리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고향에도 복된 함박눈이 내리는지 고향의 그리움에 사무친다.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白茂線)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 이용악의 '그리움' 전문
그리움의 눈 내리는 우리 국토 임진강 남쪽 들녘을 걷는다. 그리움이 국토 분단의 슬픔에 녹아든다. 눈 내리는 남쪽 국토에서 슬픈 역사를 읽어 내는 황동규(黃東奎1938~) 시인의 시가 눈 내리는 북쪽 마정리 들녘에서 울부짖는다. 조선왕조 말 권세가들이 청국과 일본국에 사대하지만 조선 백성은 이들과 맞서 싸운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동학군을 이끌고 일본에 대항하여 한양으로 진격하다가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하고, 이후 조선왕조는 망국의 비극을 겪는다. "봉준(琫準)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포(砲)들이 얼굴 망가진 아이들처럼 울어/ 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들/ 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 목매었으련만, 대국낫도 왜낫도 잘 들었으련만,/ 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무식하게 무식하게." - 황동규의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 전문. 눈 내리는 마정리 들판에서 귀 기울이면 분단의 상처에서 피고름 터지는 소리들이 가슴을 찌르고, 뉴라이트 무리들이 오늘의 분단상황을 더욱 심화하며, 왜낫으로 자주 시민들의 가슴을 도려내는 소리가 들려온다.
평화의 길 8-1코스는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와 장산리, 임진리 지역을 통과하여 파평면 율곡리 임진강 옆 율곡습지공원에서 끝난다. 마정리 들녘과 장산리 들녘, 두 곳의 드넓은 들판을 지나게 되는데, 임진강에 면한 마정리 들판이 장산리 들판보다 훨씬 광활하다. 광활한 마정리 들판에서 자욱한 눈 때문에 8코스 탐방길인 임진강 제방만을 흐릿하게 살필 수 있었다. 마정리 들녘 동쪽에서 남북으로 이어지는 대전차(對戰車) 방호벽(防護壁)이 장산리로 이어지는데, 평화의 길 8-1코스는 임진강으로 흘러드는 맨박골천을 건너 맨박골천을 따라 대전차 방호벽을 가로질러 장산1리 동안마당 마을로 올라간다. 동안마당 마을에서 장산1리 마을회관을 거쳐 장산리 들판으로 나가 맨박골천을 따라 장산리 들녘을 가로질러 문산읍 장산1리 맨밧골 마을에서 두 곳의 드넓은 들판 통과를 마치게 된다. 그런데 '맨밧골' 마을은 바위가 많다고 하여 이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맨밧골에서 흘러내리는 소하천은 '맨박골천'이라는 지명으로 지도에 적혀 있다. 맨밧골만 발음할 때는 맨밧골이라 하는데, 맨밧골천을 발음할 때는 맨박골천이라 발음되기 때문일까? 한 지명으로 통일해야 할 것 같다.
맨밧골 마을 위쪽 장산로 고개에서 장산로는 왼쪽 장산리 마포동(麻浦洞)으로 내려가고, 평화의 길은 장산 임도를 따라 장산전망대로 올라간다. 마포동(麻浦洞)은 맨밧골 동쪽 맛개(麻浦)마을로, 제주고씨네 열녀문과 거창신씨네 정자 '래소정(來蘇亭)'이 있었는데, 현재는 사라졌다. 조선 숙종 때 문신인 호곡(壺谷) 남용익(南龍翼, 1626~1692) 선생이 임진강변에 자리한 정자(亭子) '래소정(來蘇亭)'에 올라 임진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읊으니 이것이 임진강 팔경의 유래가 된 「래소정어(來蘇亭於)」라고 한다. '래소정에서 바라본 임진강 팔경'은 제1경 花石亭春화석정춘(화석정의 봄) 제2경 場岩垂釣장암수조(장암의 낚시) 제3경 松巖靑雲송암청운(송암의 맑은 구름) 제4경 長浦細雨장포세우(장포의 가랑비) 제5경 東坡玩月동파완월(동파역의 달) 제6경 赤壁泛舟적벽범주(적벽의 뱃놀이) 제7경 桐園暮雪동원모설(동원의 저녁눈) 제8경 津寺曉鐘진사효종(진사의 새벽종)이다. 이 중 제7경 '桐園暮雪동원모설(동원의 저녁눈)'을 읽어 본다. "동원의 저물녘 눈이 희디흰데/ 언덕 위 바라보니 날씨 개어가네/ 밤이 되어도 강가 사립문 열렸나니/ 섬계(剡溪)에서 자유(子猷)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리. 桐園暮雪白皚皚(동원모설백애애) 望裏平坡霽色開(망리평파제색개) 入夜江扉終不掩(입야강비종불엄) 剡溪疑有子猷來(섬계의유자유래)" 섬계(剡溪)는 중국 절강성 조아강(曹娥江)의 상류로, 진(晋)나라 왕자 유(猷)가 눈오는 밤에 재규(載逵)를 방문한 고사에서 유래되었고, 동원(桐園)은 임진나루 건너 동파리에 있는 동자원동(桐子院洞)이었을 것이라 추정한다고 한다.
군용 차량들이 통행해야 하기에 국군 장병들이 장산 임도 정상에 쌓인 눈을 쓸고 아래쪽 눈을 쓸려고 내려온다. 눈은 그칠 줄을 모르고 내린다. 장산 임도 고개에서 장산전망대에 오르는 것을 단념했다. 정상에서 자욱한 눈 때문에 임진강과 초평도, 일월봉을 조망할 수 없을 것 같아 장산전망대를 그냥 통과한다. 임진강이 두 갈래로 갈라져 초평도를 돌아서 합쳐지는 풍경 감상은 다음으로 미루었다.
임진나루길을 따라 나루터마을을 지난다. 장어구이를 비롯한 매운탕 음식점과 장단콩 두부요리 음식점이 임진나루길 고개까지 이어져 있다. 고개로 올라가는 곳에서 임진강을 내려보며, 임진강변 산자락에 있었던 임진진(臨津鎭) 터를 가늠한다. 영조 때인 1755년 군진인 임진진(臨津鎭)이 설치됐고, 나루 안쪽 협곡을 가로지르는 성벽을 쌓으면서 진서문(鎭西門)을 냈으며, 석조 홍예 위에 지은 목조 누각은 임벽루(臨壁樓)라고 불렀다고 한다. 임진진은 한국전쟁 중인 1953년 소실되었는데, 현재 임진나루 남쪽의 진서문 터를 발굴 중이라고 한다.
임진강 임진나루는 현재 내려갈 수 없다. 임진나루 벼랑 위에 조성된 뎈길에 설치한 임진나루 뱃사공 안내판 앞에서 희부윰한 임진강과 임진나루를 살필 뿐이다. 임진강 남쪽의 임진나루는 북쪽 장단나루와 함께 교통 요지로 꼽혔던 곳으로, 태종 18년(1418) 2월 “어가(御駕)가 임진나루 북쪽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있고,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한양을 떠나 북녘으로 피신하면서 한밤중에 빗속에서 임진나루를 건넜다고 한다.
화석정(花石亭)은 임진나루 동쪽 벼랑 위에 있다. 눈 덮인 화석정이 고적하게 아름답다. 오랜만에 화석정에 와서 주변을 살피니, 언덕길 개통, 새로운 건물과 설치물 등 많은 변화가 있다. 그럼에도 그윽한 소나무와 느티나무는 오랜 수령에도 불구하고 화석정을 변함없이 지키고 있다. 정자 이름 '花石亭'은 당나라 사람 이덕유(李德裕)가 자신의 별장인 '평천장(平泉莊)'에 붙인 기문(記文), “평천을 파는 자는 나의 자손이 아니며, 꽃 하나 돌 하나라도 남에게 주는 자는 아름다운 자제가 아니다. 鬻平泉者(죽평천자), 非吾子孫也(비오자손야), 以一花花一石石與人者(이일화화 일석석여인), 非佳子弟也(비가자제야)”라는 구절에서 꽃과 돌을 차용해 지었으며, 조상이 물려준 정자를 함부로 남에게 팔거나 꽃 한송이 돌 한조각이라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경계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화석정은 6.25 전쟁 중에 소실된 것을 파주시 유림들이 1966년 복원하였고, 1973년 정부에서 단청하고 주위를 정화하였으며, 현판 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썼다.
이율곡 선생이 8세 때에 지었다고 하는 '화석정' 시는 가을날 오후 화석정에서 음미할 때가 제격이다. "숲속 정자에 가을이 깊어가니/ 시인의 생각 끝이 없어라./ 멀리 흐르는 물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서리 맞은 단풍은 햇볕 받아 붉네./ 산은 외로운 달 둥글게 토해 놓고/ 강은 만리의 바람을 머금었도다./ 변방의 기러기 어디로 날아가는가?/ 저녁 구름 속으로 울음 소리 사라지네. 林亭秋已晚(임정추이만) 客意無窮(소객의무궁) 遠水連天碧(원수연천벽) 霜楓向日紅(상풍향일홍) 山吐孤輪月(산토고윤월) 江含萬里風(강함만리풍) 塞鴻何處去(새홍하처거) 聲斷暮雲中(성단모운중)
화석정 옆에는 화석정 시비와 임진팔경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율곡의 널리 알려진 칠언율시 '화석정'을 음미하였으니, 세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호곡(壺谷) 남용익(南龍翼, 1626~1692) 선생이 임진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읊은 임진강 팔경 중 제1경 花石亭春(화석정춘, 화석정의 봄)을 음미한다. "화석정에 새로 핀 꽃을/ 홀로 감상하는 나그네/ 그윽한 향기(율곡의 인품)를 온세상이 알지 못하니/ 탄식한들 선생(율곡)이 가신 뒤 봄이라네. 花石亭前花事新(화석정전화사신) 獨來昑賞有閒人(독래금상유한인) 幽旁擧世無相識(유방거세무상식) 可惜先生去後春(가석선생거후춘)" 봄의 화석정에 올라 만발한 꽂을 감상하며 율곡 선생의 큰 뜻을 되새기는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눈 덮인 화석정 풍경과 화석정에서 임진강 풍경을 감상하고 화석정마을로 내려간다. 화석정마을이라고 이르는지 율곡마을이라고 부르는지 불분명하다. 꽃이 담벽에 예쁘게 그려진 길에 당호 '율곡마을꽃宅' 현판이 붙은 아담한 민가가 있다. 벽에는 '울엄마네집'과 '지금은 막네딸네집'이라고 적혀 있다. 울엄마가 돌아가시고, 지금은 막네딸이 살고 있다는 뜻일까? 그 민가 뒷집 대문 옆에는 '소희네외가댁'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 두 집, 율곡마을꽃댁과 소희네외가댁이 같은 집인지, 다른 주인의 집인지 궁금하다.
길손의 탐방이 늦어진다. 길동무들과 헤어진 지 오래되었다. 빠른 걸음으로 간다고 하지만 볼 것이 있으면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다. 화석교를 건너 암탉과 장닭 한 쌍의 조형물이 눈길을 끄는 현인농원을 지나 율곡로 지하통로를 통하여 나가면 탁 트인 율곡습지공원이 펼쳐진다. 재해예방시설인 저류지(貯留池)에 주민들이 꽃을 심고 가꾸어 탈바꿈시킨 율곡습지공원은 옛 시골마을 정취가 듬뿍 난다. 장독대가 있는 농가, 쉼터정자, 허수아비 등이 아득한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하고 공룡 조형물 등 어린이를 위한 여러 설치물과 시설들이 있다.
눈 덮인 율곡습지공원 쉼터정자에서 길동무들이 한참을 늦는 길손을 기다리고 있다. 미안한 마음이 크다. 탐방 속도가 너무 느린 길손은 빠른 속도의 길동무에게 마음의 부담이 크다. 그렇다면 각자의 속도로 탐방하는 게 맞다. 그런데도 발걸음을 멈추고 늦는 길손을 기다려준다. 사랑의 마음이다. 오늘이 정원 대보름날, 사랑의 마음이 더 크게 느껴진다. 싸가지고 온 오곡밥에 나물 음식을 먹으며 정월 대보름날의 큰 사랑을 기념한다. 사랑을 찾는 고려 여인이 읊는 노래가 쉼터정자를 스치며 지나간다. "정월 냇물은 아으 얼며 녹으며 사랑을 나누는데, 이 세상 한가운데 태어난 이 몸은 홀로 지내는구나. 아으 동동(動動)다리"
3.탐방 과정
전체거리 : 11.3km
전체 소요 시간 : 2시간 51분
경의중앙선 임진강역 오른쪽에 박봉우의 '휴전선' 시비가 있다.(DMZ 평화의 길 7코스 참조)
임진강역 맞은편 임진각로 북쪽 보도에 DMZ 평화의 길 8코스 시작지점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임진각로 끝에 자리하는 임진각관광지를 배경하여 평화의 길 8-1코스 탐방 출발을 기념한다. 평화의 길 8코스는 임진각관광지를 거쳐 임진강변을 따라가는데 현재 통제되어 8-1코스로 진행한다.
임진각로 북쪽 보도 DMZ 평화의 길 8&8-1코스 이정목에서 8-1코스 탐방을 출발, 자유로의 마정교 아래를 통과한다.
자유로의 마정교 교각 옆 평화의 길 이정목에서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들녘으로 나가 북진한다.
자유로 아래 마정리 농로를 따라 자유로와 나란히 마정리 들녘길을 간다.
자유로의 통일로 문산 방향 진출로를 지나 통일로 지하통로를 통과한다.
통일로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통일로 북쪽 아래 마정리 농로를 따라 서진(西進)하며 평화누리쉼터를 지나간다.
자유나들목의 통일로 판문점 방향 진출로 옆을 돌아나간다.
자유나들목 통일로 진출로 아래를 따라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어서 농장 오른쪽으로 돌아 마정리 들녘으로 나간다
농장을 오른쪽으로 돌아나와서 다시 북쪽 방향으로 꺾어 임진강 제방 방향으로 농수로 옆 농로를 따라간다. 왼쪽 건물은 배수펌프장인 듯. 평화의 길 8코스는 임진강 제방을 따라 북진하는 것 같다.
임진강 제방 남쪽 아래 마정리 농로를 따라 임진강 제방과 나란히 이어간다.
임진강 제방길 아래 농로를 따라가다가 평화누리길 쉼터에서 제방길과 헤어져 마정리 들녘으로 나간다.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진행한다. 뒤쪽에 마정4리와 마정3리 지역, 그리고 마정초등학교가 있는 듯.
마정리(馬井里)는 북쪽으로 임진강(臨津江)이 흐르고, 마을 전체적으로 넓게 농경지가 발달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꽃밭굴, 덤불말, 마정리, 마은골, 배미, 상배미, 새말, 샘말, 서답내, 장지말 등이 있다. 마정리는 옛날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가 자욱한 어느 새벽에 햇살 기둥이 우물에 꽂히자 그 안에서 갑자기 용마가 뛰어나왔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말우물, 마정이라고도 한다. 마은골은 말우물에서 나온 용마가 울다가 이곳으로 사라져 숨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꽃밭굴은 꽃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며, 덤불말 또는 참나무배기는 참나무와 덤불이 많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배미는 배가 드나들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고, 서답내는 앞 내에서 서답(빨래)를 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장지말은 장자(부자)가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두산백과
이정목 앞에서 돌아본다. 평화누리길 쉼터에서 나란히 동행하던 임진강 제방길과 헤어져 마정리 들녘으로 나왔다.
임진강 제방이 왼쪽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고 평화의 길은 마정리 농로를 따라 장산리 마을 방향으로 이어간다.
드넓은 마정리 들녘의 농로를 따라가면 평화누리길 쉼터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드넓은 마정리 들녘을 가로지르면 앞에 대전차 방호벽이 설치되어 있다. 왼쪽 뒤 맨박골천의 다리를 건너 이어간다.
왼쪽 임진강 제방길은 8코스 탐방길, 8-코스 탐방길은 오른쪽 맨박골천의 다리를 건너 대전차 방호벽을 지나간다.
마정리에서 장산리로 넘어왔다. 뒤쪽에 임진강 제방이 보이며, 8-1코스는 다리를 건너 장산리 마을로 올라간다.
맨박골천 다리에서 대전차(對戰車) 방호벽(防護壁)을 바라본다. 평화의 길은 맨박골천을 따라 장산마을로 올라간다.
맨박골천 대전차 방호벽에서 장산로189번길을 따라 장산1리 마을로 올라간다.
장산로189번길을 따라 장산1리 마을을 지나 장산로로 나간다.
장산로를 따라가다 동안마당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장산1리마을회관 앞으로 이어간다.
파주시 문산읍 장산리(長山里) 북쪽에 임진강(臨津江)이 흐르고 있다. 임진강에 넓은 하중인 초평지가 있으며, 하중도와 임진강변에 농경지가 발달하였다. 남쪽에 낮은 구릉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능굴, 당골, 도안마당, 맛개, 맨밧골, 배물, 비인동, 사모턱, 새터, 우무새, 큰말 등이 있다. 장산에서 임진나루까지 약 2km 가량 높이가 같은 산이 임진강가를 따라 길게 뻗었으므로 진동산 또는 장산(長山)이라 하였다. 1755년(영조 31)에 진(陣)과 보루(堡壘)를 설치하고 별장(別將)을 두어 지켰으므로 장산보 또는 장산진이라고 하다가 진을 폐한 후 다시 장산이라 하였다. 동안마당은 장산진의 동헌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동안, 동헌안, 동안마당, 동헌마당이라고도 하였다. - 두산백과
장산로 동안마당 앞에서 장산1리마을회관 앞을 거쳐 장산리 들녘으로 나가 맨박골천을 건넌다.
장산로189번길에서 장산로로 나와 동안마당 마을 앞에서 장산1리 마을회관을 거쳐 장산리 들녘으로 나왔다.
맨박골천을 건너 맨박골천 둑방길을 따라 장산리 들녘을 지나간다.
맨박골천 둑방길을 따라 장산리 들녘을 지나 맨박골천 상류로 올라간다. 삽살개가 눈놀이를 즐기다 탐방객을 맞는다.
맨 왼쪽 뒤 장산리 들녘 맨박골천 다리를 건너 둑방길을 따라와서 둑방 안쪽 농로를 따라왔다.
장산리 들녘의 농수로 옆 농로를 따라 장산로로 나간다.
오른쪽에 장산로가 달리고 맨박골천 위쪽에 맨밧골 마을이 자리한다. 평화의 길은 장산로를 따라 맨밧골 마을을 지나간다.
장산리 들녘의 농로를 따라와 장산로로 들어와 장산로 북쪽 맨밧골로 올라왔다. 남쪽은 문산읍 운천리 방향이다.
장산로의 맨밧골 버스정류소 바로 아래서 맨박골천과 걸어온 장산리 들녘을 내려본다.
장산1리 맨밧골 버스정류소에 붙은 도깨비랜드는 한식 전문음식점, 맨밧골은 바위가 많다고 하여 매암밧골, 매음동(梅岩洞)으로 불리는 마을이라고 한다. 마포동(麻浦洞)은 맨밧골 동쪽 맛개(麻浦)마을로, 제주고씨네 열녀문과 거창신씨네 정자 래소정(來蘇亭)이 있었는데, 조선후기 남용익 선생이 래소정에서 바라 본 임진강 8경을 노래한 <래소정시>가 전해진다고 한다.
맨박골천 위쪽 맨밧골 버스정류소를 거쳐 장산로를 따라 고개로 올라오다가 뒤돌아본다.
장산로를 따라 고갯길을 올라 고개에서 오른쪽 임진리 방향으로 올라간다.
고개에서 장산로는 왼쪽 장산리 방향으로 이어가고, 평화의 길은 오른쪽 임진리 방향의 산으로 올라간다.
장산에서 임진나루까지 약 2km 가량 높이가 같은 산이 임진강 가를 따라 길게 뻗었으므로 진동산 또는 장산(長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장산 임도를 따라 고개로 올라간다.
장산 고개는 넓은 터로 군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다. 왼쪽으로 돌면 장산전망대 가는 길이 나온다.
왼쪽은 장산전망대 가는 길, 평화의 길은 오른쪽 장산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율곡습지공원 3.6km 지점이다. 이 고개를 경계로 문산읍 장산리와 임진리가 경계를 이루는 듯. 눈이 내려 풍경을 조망할 수 없을 것 같아 장산전망대를 그냥 통과한다.
전신주에 경기옛길 임진나루길 표지판이 붙어 있으니, 이 길은 임진나루길이라 불러야 할 듯. 임진나루터 1.4km 지점으로 중앙 뒤에 문산읍 임진리 나루터마을이 보인다.
문산읍 임진리 임진나루길을 따라 다 내려오면 임진강 방향으로 임진리낚시터가 있다.
임진리낚시터 입구를 거쳐 낚시캠핑공원 입구로 왔다. 오른쪽에는 흄관·맨홀·수로관 제조업체 다우콘크리트가 있다.
흄관·맨홀·수로관 제조업체 다우콘크리트 마당에 흄관들이 보관되어 있다.
임진나루길 갈림길 남쪽 방향에 시 게시판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게시판 위에 '흄관·맨홀' 가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니.
들킬까 숨어 핀 꽃 아니외다/ 꺾일까 봐 가냘픈 게 아니외다/ 온갖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려 낮게 핀 들꽃이외다/ 때로는 외로운 연인들이 흘리고 간/ 밀어의 조각을 외우며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외치며/ 누구도 알아주는 게 싫어서 핀 들꽃이외다/ 덜 크고 덜 아름다워도 깊은 하늘 향해/ 가슴을 벌리고 있나이다/ 밤마다 자리 잃은 별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먹으며 핀 들꽃이외다/ 그리고 오래오래 피기 싫어 진실이 무언지/ 알지 못하고 질 들꽃이외다
임진나루길을 따라 나루터마을로 이어간다.위쪽의 도로는 국도 제37호선 율곡로이다.
오른쪽 지선 임진나루길에서 올라와 간선 임진나루길를 따라왔다. 갈림목에 시 게시판이 세워져 있다.
나루터마을 입구에 임진리 신농촌마을 표석, 평화누리길과 임진나루길 장승 한쌍이 세워져 있다. 오른쪽은 율곡로의 임진나루길 진입로이고, 표석 뒤의 길은 화석정로이며, 평화의 길은 임진나루길을 계속 따라간다.
임진나루길 오른쪽에 평화누리길 임진리쉼터 정자가 조성되어 있다. 쉼터정자에서 배낭을 정리한 뒤 출발한다.
장산전망대와걸어온 임진나루길을 가늠한다. 임진리낚시터, 낚시캠핑공원, 흄관·맨홀·수로관 제조업체가 보인다.
임진나루길을 따라 임진리 버스정류소 앞을 통과하여
임진나루길을 따라 매운탕과 해물탕 전문음식점 임진대가집을 지나 내려간다.
두부전문음식점인 키토산장군두부 음식점을 지난다. 평화의 길은 중앙 뒤 고개의 화석정로로 올라간다.
장어구이와 매운탕 음식점 임진강집을 지나 임진나루길 고개로 올라간다.
뒤쪽에 임진강이 흐른다. 주택 뒤 산 자락에 임진진(臨津鎭)이 있었으나 사라지고, 현재 서문 터를 발굴 중이라고 한다.
중앙 뒤 임진대가집에서 오른쪽 성터나루집 앞으로 내려와 임진강집으로 올라왔다. 맨 오른쪽 성터나루집 오른쪽 아래에 임진나루를 관리하는 임진진(臨津鎭)이 있었는데 사라졌으며, 현재 발굴 조사 중이라고 한다.
임진나루길 고개에서 걸어온 임진나루길을 뒤돌아본다. 고개에 나루터마을 표석이 서 있고, 왼쪽은 화석정로이다.
임진강 벼랑의 화석정로 보도를 따라간다. 보도의 긴 나무의자 옆에 임진나루 뱃사공이야기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가짜 수염을 간파한 임진나루 뱃사공이야기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쉼터 긴 나무의자 옆에 세워져 있다.
경기옛길 제5길 임진나루길, 임진나루 뱃사공이야기 : 관북/관서의 분기점이자 의주대로의 중요한 길목 임진나루는 한국의 역사와 민속 이야기에서 중요한 장소 중 하나로 간주되며, 임진강(현재의 한강)을 건너는 중요한 나루 중 하나였습니다. 이 나루는 관북(현재의 평양 방향)과 관서(현재의 서해 방향)의 분기점이었으며, 한양(현재의 서울)에서 의주(현재의 의정부)로 향하는 의주대로의 주요한 길목이기도 했습니다. 임진나루의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 중 하나는 다른 곳의 뱃사공이 임진나루의 뱃사공을 속이려고 양반으로 변장하고 시험을 벌인 에피소드입니다. 그러나 임진나루의 뱃사공은 그 속임수를 간파합니다. 그 이유는 뱃사공의 수염이 한쪽으로 구부러져 있고 노를 젓느라 고개가 돌아간 모습을 보고, 바로 자신과 동일한 뱃사공의 특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임진나루의 지혜로운 뱃사공은 속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러한 이야기들은 한국의 민속과 역사를 풍부하게 표현하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임진나루가 아래에 있었다. 임진나루 뱃사공의 전설을 더 구체적으로 알아본다. 임진나루 아래쪽에 임진진(臨津鎭)이 있었다.
임진나루는 옛날 한양에서 송도를 거쳐 의주로 가는 주요 교통로였다. 여기에서 뱃사공을 하는 사람 중 김씨라는 뱃사공이 옷차림과 거동만 보고 어떠한 사람인지 잘 알아맞히기로 유명했다. 그리하여 다른 곳에서 뱃사공을 하던 짖꿎은 사람이 신분을 속이고 양반의관을 갖추어 임진나루에 도착하여 뱃사공에게 “여보게 나를 좀 배로 건너주게” 하고 반말을 하였다 그러자 뱃사공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누구보고 반말이냐”며 화를 냈다. 변장한 양반이 “어느 안전에서 행패냐” 하니 “너는 아무리 양반인 체해도 나와 같은 뱃놈이다” 하였다. “그래 네가 어찌 그리 잘 아느냐”하고 반문을 하자 임진강 뱃사공 하는 말이 “넌 수염이 한쪽으로 구부러졌고 노를 젓느라 고개가 돌아간 것이며 강바람에 수염이 돌아간 것을 보아 나와 같은 뱃사공이 아니냐” 하니 참으로 귀신같이 맞힌다면서 서로 껄껄대며 웃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 파주시청
화석정로 옆 뎈보도를 따라 문산읍 임진리에서 파평면 율곡리로 넘어가, 국도 제37호선 율곡로의 율곡1교 아래를 통과한다.
오른쪽은 화석정로, 왼쪽은 화석정로의 율곡로 진입로이다. 평화의 길은 율곡로 진입로를 건너 보도를 따라 올라간다.
화석정로 보도를 따라 중앙 뒤 율곡로의 율곡1교 아래를 통과하여 오른쪽 율곡로 진입로를 건넜다. 왼쪽 위는 율곡로에서 화석정으로 진입하는 화석정로 진입로이다.
평화의 길은 간선 화석정로 보도에서 왼쪽 지선 화석정로인 임도를 따라간다.
화석정 입구에서 임도인 지선 화석정로를 따라 화석정으로 이어간다.
군 시설물을 화석정 홍보판으로 개조한 것 같다. 오른쪽 벽에는 파주시 주요 관광지 지도가 그려져 있다.
화석정 뒤 향나무는 수령 270년, 그 오른쪽 느티나무는 수령 600년이다. 화석정 현판 글씨는 박정희 대통령 글씨다.
화석정으로 오르는 계단 오른쪽에 '선조의 피난길' 설명안내판과 '화석정'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화석정(花石亭) : 임진강가에 세워져 있는 정자로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李珥, 1536~1584)가 제자들과 함께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던 곳이다. 세종 25년(1443) 율곡의 5대조인 이명신(李明晨)이 정자를 건립하였는데, 성종 9년(1478) 이이의 증조부 이의석이 중수하고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불타 없어져 80여 년 간 터만 남아 있다가 현종 14년(1673)에 후손들이 복원하였으나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어 버리고 말았다. 1968년 파주의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다시 복원한 것으로 건축양식은 팔작지붕 겹처마에 초익공 형태로 조선시대 양식을 따랐다.
경기옛길 제5길 임진나루길 '선조의 피난길, 율곡의 예언과 충신들의 희생' 안내판이 화석정 계단 옆에 있다.
나라를 지킨 충신들의 희생을 기리는 임진강 : 일찌기 율곡선생은 임진나루에 있는 화석정에 틈이 날 때마다 들기름을 묻힌 걸레로 정자 마루의 기둥을 닦도록 하였으며, 임종 때 "어려움이 닥치면 열어보라"고 밀봉한 편지를 남겼다고 합니다. 이후에 임진왜란 (1592)이 일어나 선조임금이 의주로 피난하게 되었는데, 폭풍우가 너무 심해 한 치 앞을 볼 수 없자 이에 피난길을 따르던 이항복이 율곡의 밀봉한 편지를 열어보니 '화석정에 불을 지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기름이 잘 먹은 화석정에 불길어 올라 나루 근처가 대낮같이 밝아져서 선조 일행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1593년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면서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순국한 병사들의 넋을 달래고자 위령제도 지냈습니다. 의주로 피난 가던 당시 노심초사 고생 끝에 이 나루를 건너게 된 쓰라린 아픔을 기억하고, 강을 지키고자 목숨을 지푸라기와 같이 버린 용감한 충신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가운데 선조가 통곡하며 "하늘의 도움을 받아 이 나루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구나."하였다 하여 신지강(神智江)을 임진강(臨津江)으로 개칭하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래소정에서 바라 본 임진강 팔경은 제1경 花石亭春화석정춘(화석정의 봄) 제2경 場岩垂釣장암수조(장암의 낚시) 제3경 松巖靑雲송암청운(송암의 맑은 구름) 제4경 長浦細雨장포세우(장포의 가랑비) 제5경 東坡玩月동파완월(동파역의 달) 제6경 赤壁泛舟적벽범주(적벽의 뱃놀이) 제7경 桐園暮雪동원모설(동원의 저녁눈) 제8경 津寺曉鐘진사효종(진사의 새벽종)이다.
임진강 풍광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詩 「래소정어(來蘇亭於)」 : 우리에게 알려진 임진강 팔경의 출처는 래소정어(來蘇事於)에서 유래된 것으로 지금의 문산읍 장산리 임진강변에 위치했던 정자(亭子) 래소정에서 바라 본 임진강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묘사한 시이다. 래소정은 임진나루 남쪽에 있던 정자로 조선시대 영의정 관직을 지낸 거창부원군 신승선(承善)이 건립한 정자이다. 조선 숙종때 문신인 호곡 남용익(壺谷 南龍翼) 선생이 래소정에 올라 임진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읊으니 이것이 임진강 팔경의 유래가 된 「래소정어(來蘇亭於)」이다. - 설명안내판
율곡선생이 8세에 지은 시(八歲賦詩) 오언율시 화석정(花石亭) 詩碑가 화석정 옆에 세워져 있다. 옮긴 시의 맛이 떨어진다.
林亭秋已晚(임정추이만) 숲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어드니/ 騷客意無窮(소객의무궁) 시인의 시상(詩想)이 끝이 없구나.
遠水連天碧(원수연천벽) 멀리 보이는 물은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霜楓向日紅(상풍향일홍) 서리맞은 단풍은 해볕을 향해 붉구나.
山吐孤輪月(산토고윤월) 산 위에는 둥근 달이 떠오르고/ 江含萬里風(강함만리풍) 강은 만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塞鴻何處去(새홍하처거) 변방의 기러기는 어느 곳으로 날아가는고?/ 聲斷暮雲中(성단모운중) 울고 가는 소리 저녁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 이이 지음, 임동석 옮김
율곡 이이 선생(1536년 중종 31~1584년 선조17)은 조선중기 대표적 성리 학자로 정치·경제·사회· 국방·교육 등 전분야에 걸쳐 개혁정책을 실현한 경세가였습니다. 화석정시는 율곡선생이 8세 때 지은 시로, 화석정의 가을 정취와 선생의 시상을 조화롭게 엮은 아름다운 시입니다. 화석정을 찾는 많은 분들이 이 시를 통해 이곳의 역사적 유래와 율곡선생의 생애를 되새겨 보게 하고자 이 비를 건립합니다. 2001. 12. 파주시장 송달용
화석정에서 임진강 임진나루 방향으로 바라본다. 국도 제37호선 율곡로가 달리고 그 아래 임진강이 흐른다.
임진강(臨津江)은 함경남도 덕원군 마식령 산맥에서 발원하여 황해북도 판문군과 경기도 파주시 사이에서 한강으로 유입되어 황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옛날에는 더덜나루(다달나루)라 하였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임진강이라 하였다. 임진강의 ‘임(臨)’은 ‘더덜’ 즉 ‘다닫다’라는 뜻이며 ‘진(津)’은 ‘나루’라는 뜻이다. 그밖에 ‘이진매’ 즉 ‘더덜매’(언덕 밑으로 흐르는 강)이라고도 하였다. 임진강의 길이는 254㎞이고 유역 면적은 8,118㎢로서 북한에서 9번째로 넓은 유역 면적을 갖고 있으며, 한강의 제1지류이다. 전체 유역 면적 중 남한 지역이 약 3,008㎢, 북한지역이 5,108.8㎢를 차지하고 있다. 강원도 북부를 흐르면서 고미탄천(古味呑川)과 평안천(平安川)을 합류하고, 경기도 연천에서 철원·평강 등을 흘러온 한탄강(漢灘江)과 합류한다. 고랑포를 지나 문산 일대의 저평지를 흐르는 문산천과 합치고 하구에서 한강과 합류하여 황해로 흘러든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임진강 두포나루 방향으로 바라본다. 오른쪽 뒤에 율곡습지공원이 보인다.
화석정 앞쪽을 바라본다. 플라타너스 나무 자태가 우아하다.
평화의 길은 바로 아래 화석정가든을 내려가 파주시 파평면 율곡3리 화석정마을을 왼쪽으로 돌아간다.
화석정가든 뒤에 화석정 뜰 앞의 우아한 자태의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보인다.
화석정로126번길을 따라 파평면 율곡3리 화석정마을을 통과한다. 중앙에 예쁜 집 '율곡마을 꽃댁'이 보인다.
당호 '율곡마을 꽃宅' 글씨가 예쁘게 적힌 현판과 그 옆 물고기 그림판이 있는 민가가 눈길을 끈다.
당호 '율곡마을 꽃宅'을 돌아본다. '지금은 막내딸네집'이라고 적혀 있고, 맞은편 집 담벽에 꽃벽화가 그려져 있다.
'율곡마을 꽃댁'을 지나면 카페 '그곳에 가면'&시골민박이 있고, 그 왼쪽에 아비숑호텔 입구가 있다.
'율곡마을 꽃댁' 뒤의 민가는 대문 옆에 '소희네 외가댁'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오른쪽 뒤 위쪽에 화석정이 가늠된다.
화석정로126번길을 따라 화석교를 건넌다. 왼쪽 위로는 국도 제37호선 율곡로가 달린다.
현인농원 양계장 입구에 장닭과 암탉 한 쌍의 조형물이 있다.
한국재래닭 사육농장 현인농원 앞을 통과한다.
국도 제37호선 율곡로 남쪽의 화석정로126번길을 따라가다가 율곡로 지하통로를 통과한다.
화석정로126번길에서 율곡로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율곡습지공원 방향으로 나간다.
율곡로 지하통로를 나오면 앞에 장승배기로가 지나고, 뒤쪽에 드넓은 율곡습지공원이 나타난다.
장승배기로를 따라오면 강변셀프장어집 맞은편에 율곡습지공원 입구가 있다. 뒤쪽에 임진강 철책이 이어진다.
율곡습지공원 입구에 평화의 길 이정목, 평화누리길 9코스 율곡길 이정목, 평화누리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평화누리길 9코스 율곡길 : 18km, 5시간 소요. 테마공원인 율곡습지공원을 출발하여 두포리, 파평면사무소를 지나 임진강 절경인 적벽산책로를 통과한다. 한적한 농로와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파주시와 연천군의 경계선인 장남교를 만나게 된다.
드넓은 율곡습지공원 오른쪽에 공룡 조형물이 있고, 맨 왼쪽 뒤 평화누리길 문주 오른쪽에 평화의 길 8코스 종점이 보인다.
율곡습지공원은 재해예방시설(저류지)을 마을 주민들이 꽃을 심고 가꾼 곳으로 봄이면 유채꽃이 피고,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피는 아름다운 곳이다. 율곡습지공원은 고향의 정겨운 시골풍경을 떠오르게 하며, 넓은 꽃밭과 습지에 피어있는 연꽃 군락지, 억새, 옛 농기구가 있는 초가집, 높이 솟아 있는 솟대들, 삐뚤빼뚤 재미난 모양의 장승, 물레방아 등이 정감을 자아낸다. 연꽃 군락지에서 시원하게 물을 뿜어내는 분수가 인상적이고, 초가 원두막, 그네 등 곳곳에 쉼터가 있어 쉬어가기 좋다. - 대한민국구석구석
하트 모양 붉은 색 조형물이 탐방객을 맞이한다. 제방의 철책 뒤는 임진강, 맨 오른쪽 뒤에 평화의 길 이정목이 보인다.
쉼터정자에서 한참 뒤떨어져 오는 탐방객을 길동무들이 기다리고 있다. 쉼터정자에서 요기를 하고 출발한다.
율곡습지공원 쉼터정자에서 요기를 끝내고 출발하며 중앙 뒤 화석정을 가늠한다.
겨울날의 허수아비가 안쓰럽다. 왼쪽 뒤에 평화누리길 문주, 중앙 뒤에 평화의 길 이정목과 안내판이 서 있다.
이이(李珥, 1536~1584) 본관은 덕수(徳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이다. 관직은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조선 중기 유학자이자 경세가인 이이선생은 중국의 성리학과 차별되는 조선 성리학의 토대를 닦은 인물로서 우리나라 정신사에 지대한 업적을 남겼다. 이이선생은 백성을 근본으로 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지어 정치, 경제, 사회 개혁을, 동호문답(東湖問答)과 성학집요(聖學輯要)를 지어 군왕의 도를 개진하였다. 또한 국방을 튼튼히 하기 위하여 10만 양변론을 주장하였으며, 향약(鄕約)을 제정하여 지방자치제를 장려하고, 사창(社倉]제도를 시행하여 빈민을 구제하기에 힘썼다. 경기도 파주시에는 그의 위패와 영정이 봉안돼 있는 서원인 자운서원(사적 제525호)과 여생을 보낸 누각 화석정(경기도유형문화재 제61호)이 있다.
DMZ 평화의 길 8코스는 위쪽의 임진강 철책 탐방로를 따라온다. 왼쪽에 임진강변 생태탐방로안내소와 평화누리길 문주, 오른쪽에 평화누리길 안내도가 있으며, 사진 바깥 오른쪽 평화의 길 8&8-1코스 종점에 평화의 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율곡습지공원의 DMZ 평화의 길 8코스 종점에 평화의 길 안내판, 경기둘레길과 평화누리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DMZ 평화의 길 8코스 안내판과 함께 DMZ 평화의 길 8-1코스 탐방 완주를 기념한다.
평화의 길 8코스 : 10.15km, 2시간 10분 소요. ●과거 민간인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된 임진강변철책 순찰로 구간으로 파주시와 경기도가 안보와 생태탐방을 태마로 '임진강 생태탐방로'로 조성·운영 중인 구간입니다.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난이도를 보유하고 있으며, 임진강변에 설치된 철책을 따라 임진강, 초평도 습지, 임진나루를 거쳐 물과 습지까지 이어집니다. ●현재 1일 1회, 150명 내외의 인원이 예약을 거쳐 이용할 수 있으며, 추후 1일 2회 정도로 확대가 가능할 것으로 검토되는 구간입니다. ●생태탐방로에서 재두루미, 독수리, 쇠기러기 등 겨울 철새가 월동하는 '초평도'를 바로 눈앞에서 수 있으며 봄에는 유채, 가을에는 코스모스 정취를 맘껏 느낄 수 있는 율곡습지공원과 율곡수목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