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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의 고독
강 중 구
오랜만에 수필집을 꺼내들고 읽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여행사란다. 일본의 기쿠치(菊池) 교장이 6월 하순 부산에 올 예정인데 만나고 싶어 한다면서 가능하겠느냐고 물어 온 것이다.
반가웠다. 친히 알고 지내는 일본인 교장이 부산에 오겠으니 만나자고 하는데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하지만, 날짜를 듣고 보니 문제가 있었다. 그 때에는 내가 중국으로 여행을 가기로 일정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어렵겠다고 말하고 말았지만, 부산에까지 온다는데 만나 주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미안했다.
기쿠치는 일본 후쿠오카(福岡)에 있는 어느 중학교 교장이다. 몇 년 전 그의 학교가 한국으로 수학 여행을 왔을 때 알게 된 그는 내가 교장으로 있던 학교와 교류를 하면서 서로 친숙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정년 단축으로 지난 해 8월 말에 퇴직을 했으니 학교 간의 교류는 후임자인 지금의 교장이랑 협의하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수학 여행 사전 답사를 오면서 내게 만날 수 없겠느냐고 물어 오는 마음이 고맙다.
기쿠치 교장의 소식을 듣고 보니 그와 만나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 하나가 문득 생각난다. 그에게 약속한 좋은 글을 한 편 쓰는 것이다. 사연인즉 이렇다.
지난 해 8월, 내가 학생들을 인솔하고 일본에 갔을 때 기쿠치 교장은 저녁 식사를 대접해 주었다. 그 때 술은 무엇을 하겠느냐고 묻기에 나는 소주를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일본의 청주와 맥주는 마셔 보았지만 소주는 한 번도 마셔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기쿠치 교장은 소주를 좋아하느냐고 하면서, 자기 집에 아주 귀한 소주가 있는데 그것을 내게 선물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술김에 그렇게 귀한 술을 선물로 준다면 그것을 마시면서 멋있는 글을 한 편 쓰겠노라고 말했던 것이다.
며칠 후 귀국한 나는 흔한 것이 소주인데 귀하다면 얼마나 귀하겠느냐는 생각을 하면서 그가 준 선물을 펼쳐 보았더니 ‘百年의 孤獨’이라는 술이었다.
‘백 년의 고독’이라, 어쩐지 술 이름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그 술에 대하여 좀더 자세히 알아 보고 또 술 이름의 기원이 된 《백 년의 고독》이란 책을 구입해서 읽어 보기도 했으며, 저자에 대해서도 조사해 보았다.
‘백 년의 고독’이라는 술은 일본 미야자키켄(宮崎縣)의 조그마한 양조장 구로키혼덴(黑木本店)에서 생산된 것으로 메이지(明治) 18년 창업 이래 100여 년 간의 전통과 기술로 제조한 것이었다.
그리고 ‘백 년의 고독’이란 술 이름은 콜롬비아 작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의 소설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이 술은 너무 귀해서 규슈(九州)의 최대 백화점인 이와타야(岩田屋)도 한 달에 12병밖에 입고할 수 없어서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면 구입할 수가 없다고 한다. 가격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환상의 술로 이름이 나 있는 ‘백 년의 고독’은 그 명성이 대단한 것이었다.
‘백 년의 고독’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1967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그는 이 소설로 1982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에 이름이 알려져 수천만 독자를 갖게 되었다. 환상적 사실주의라는 새로운 문학 사조를 일으킨 그가 쓴 ‘백 년의 고독’은 스페인 어 문학으로서 돈키호테 이후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소설은 작은 마을에서 출발하여 도시로 팽창하더니 이윽고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 마콘도를 무대로 하여,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 이구아랑 부부로 시작되는 한 가족의 역사를, 5대 백 년 간에 걸쳐서 일어난 기이한 사건들을 기술하고 있었다. 이미 백 년 전에 집시의 장로인 멜키아데스에 의해서 양피지에 쓰여 있는 이 이야기는 ‘최초의 인간은 나무에 묶이게 될 것이요, 최후의 인간은 개미의 밥이 될 것이다.’라는 예언대로 가문의 창시자인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노망한 나머지 나무에 묶여서 지내다가 죽었고, 그의 5대 손인 아우엘리아노가 친누나라 생각하고 사랑을 나눈 아마란타 우르술라 이모(姨母)가 낳은 돼지꼬리 아우엘리아노는 산모가 과다 출혈로 죽자 그도 죽어 개미 밥이 되고 말았다. 이로서 마콘도도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가문도 이 땅에서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내용인데, 이는 과거 백 년 간에 걸쳐서 라틴 아메리카에서 일어났던 중요한 사실들을 모두 한 편의 소설에 압축해 놓은 것이다.
작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남미 콜롬비아에서 출생하여, 부모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조부모 슬하에서 자라나 언론계에 투신하다가 후에 작품 활동을 하면서 이념 문제로 멕시코로 망명하고 말았지만, 작년에 ‘엘 티엠포’ 신문이 선정한 ‘20세기 가장 위대한 콜럼비아 인’이었다.
그렇다면 이 술은 이름도 제조 방법도 대단하고, 또 그가 말한대로 참으로 귀한 술이 아닌가. 이러한 사실을 안 나는 이 술을 아무렇게나 마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내 집을 찾는 귀한 분들을 대접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후 서울에서 친구가 왔기에 이웃에 사는 또 한 친구를 불러서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함께 술을 마셨다. 호박색 빛깔이 나는 술은 보기도 좋거니와 맛도 좋았다. 알코올이 40%나 되어서 톡 쏘는 것이 감칠맛이 나고, 더구나 귀한 친구들이랑 함께 술을 마시니 그럴 수 없이 즐거웠다.
그리고 우리 가족들끼리도 한 잔씩 했다. 요즘은 핵가족 시대라 어느 가정이나 가족들이 떨어져 산다.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다. 맏이인 딸애는 부산에 살고 있지만, 둘째는 서울에, 셋째는 일본에 살고 있다. 그러니 한 번 모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지난번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 한 잔씩 한 것이다. 우리 가족은 나에게 참으로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그가 한국에 온다는 전화를 받고 보니 걱정이 앞선다. 술은 이미 거의 다 마셔 버렸는데도 글은 한 자도 쓰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펜을 잡고 좋은 글을 쓰겠노라고 애를 쓰고 있지만, 이 글이 그와 약속한 대로 명문이 될 가능성은 조금도 없다.
그래서 나는 조금 남은 이 술로 멋진 사연을 만들어 그것을 소재로 명문을 쓸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다면 이 술을 마시면서 멋진 사연을 만들어야 하겠는데 언제, 누구랑 어떤 사연을 만들면서 마시는 것이 좋을까 고심을 하고 있다.
이러한 고충을 듣고 있던 아내가 조언을 한다. 이제는 정년도 했으니 생애에서 가장 순진한 사랑을 한 사람과 함께 마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이다. 참 그렇구나. 그런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무엇인가 이야기를 나눈다면 좋은 글감이 나올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누가 좋을까. 코흘리개 동무인 ㅈ여사가 좋을까, 초등학교 동기생인 ㄴ여사가 좋을까, 아니 그보다는 사범 학교 때 짝사랑하던 ㅇ여사가 더 좋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간소한 주안상을 내어오면서 술이나 한 잔 하잔다. 술을 하지 못하는 아내의 이러한 모습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더니 술상 위에는 술잔 두 개와 낯익은 술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百年의 孤獨’이었다.(2001. 월간 문학 11월호)
百年の 孤獨
姜 中 九
久しぶりに 隨筆集を 讀んでいる時に 電話がきた. 旅行社から日本の菊池校長が 6月 下旬釜山にくる豫定なので, その時 會えるかどうかと尋ねたのである.
懷かしかった. 親しくしている日本人校長が釜山で會おうというのにどうして懷かしくないだろうか. だが, 彼が來る日程を聞いて問題があった.その日は, 私が中國へ旅行に行く時であるからだ. それで事情を話しながら會うことが難しいと言ったが, 釜山まで來るのに, 會えないことが眞に申し譯なかった.
菊池さんは, 日本の福岡にある中學校校長だ. 何年前, 彼の學校が韓國に修學旅行に來る時, めて會った. 彼は, 私が校長として勤めた學校と交流をしながらお互いに親しくしていた.
だが, 私は韓國の制度が變わり, 定年短縮で昨年8月末に退職したから學校間の 交流は 後任者の今の校長とか協議すれば問題ないことである. それでも修學旅行の事前調査をするために韓國に來る時, 私に連絡する菊池さんの氣持ちが有難い.
菊池校長の消息を聞いて突然, 彼と會う前に私が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ひとつが ふっと 思い出した. 彼に約束した良いエッセイを作ることである. 理由は, こうである.
昨年 8月, 私が 學生達を 引率して 日本に行った時, 菊池校長は 私に 夕食を 接待してくれた. その時 彼が 酒は 何を するのかと聞いたので私は 燒酎を飮んでみたいと言った. その理由は, 日本の淸酒とビ一ルは飮んでみたものの 燒酎は 一回も 飮んでみ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からだ.
そしたら, 菊池校長は 燒酎が好きですかと言いながら, 自分の家に とても 貴重な 燒酎があるから それを プレゼントしようという ことではないか. それで 私は そのように貴重な酒を頂いたので, それを 飮みながら 素晴しい エッセイを書きたいと話した.
何日後 歸國した 私は ありふれたことが 燒酎なのにどのようなものであるかな, と思いながら彼からの 贈り物をあけてみた. そこには ‘百年の 孤獨'という 酒 名と 共に 次のような 文章が 書かれていた.
「この 酒は 明治 18年 創業以來 續いてきた 100餘 年 間の 傳統と 技術で 嚴選した 原料を 手で 作業して 蒸留 方式で 製造したのである. そして その 原液を 永らく 保存しながら 熟成させて 燒酎を 作った. これは 傳統的な 釀造 技術と 長い間の 歲月が 流れる 間に 作られた 燒酎の 傑作品である.」
「百年の 孤獨」という 酒の 名前に 好奇心が 沸いてきた. それで その 酒に對して もう少し理解するために, その名前の起源に なった 「百年の 孤獨」という 本を 購入して 讀んでみることもした. また, その著者に關しても調査してみた.
「百年の 孤獨」という 酒は 宮崎縣の 小さい 釀造場 黑木本店で 生産されている. そして「百年の 孤獨」という名前は コロンビア 作家の ガブリエル·ガルシア·マ一ル(Gabriel Garcia Marquez)の 小說の名前から取ってきたものである. この 酒は あまり 少なく九州の 最大 デパ一トの 岩田屋にも 1ケ月に 12甁しか 入庫 出來ないため, 運が 良くなければ購入することができないらしい. 價格が 記されてないため, いくらなのかはわからないが, とにかく幻の酒として, その名前が知られているようだ.
「百年の 孤獨」は ガブリエル·ガルシア·マ一ルが 1967年に 發表した 小說である. 彼は, この 小說で 1982年に ノ一ベル文學賞を 受賞したため, 全世界にその名が知らされて數千萬の讀者を持つようになった. 幻想的 寫實主義という 新しい 文學 思潮を 起こした 彼が 使った 百年の 孤獨は スペイン語 文學として ドンキホ一テ 以後 最も 偉大な 作品として, 評價されている.
この 小說は 小さな 村から始まって, 都市にまで膨脹し, ついに 幻の消えてしまったマコンドを 舞臺にして, ホセ·アルカディオ·ブエンディアとウルスラ·イグアランという 夫婦から 始まった家族の 歷史を 5代, 百 年 間にわたって 起きた 奇異な 事件を 記述していた. 旣に 百 年 前に ジプシ一の 長老の メルキアデスによって, 羊皮紙に書かれている豫言では「最初の 人間は 木に 縛られるようになり, 最後の 人間は 蟻の ご飯に なるはずだ.」と書かれていた. その豫言通り 家門の 創始者のホセ·アルカディオ·ブエンディアは, 痴태になり, 木に 縛られて 死んでしまった. また, 彼の 5代孫であるアウレリアノが 親姉だと 考えて 愛を 交わしたアマランタ·ウルスラ姨母が 産んだ アウエリアノは 産婦が 過剩出血で 死んだため, 彼も 死んで 蟻の ご飯に なってしまった. これで, マコンドド·ホセ·アルカディオ·ブエンディア家門も, この 世の中で消えてしまうという 內容である. これは 過去 百 年 間にわたって ラテン·アメリカで 起きた 重要な 事實を すべて一遍の 小說に 壓縮させたもの語りである.
作家の ガブリエル·ガルシア·マルケスは, 南米のコロンビアで 出生して 父母の 顔も 見ていないまま 祖父母の膝下で 育ち, 言論界に投身している途中, 作品活動を していた. 後で, 理念 問題で メキシコに亡命してしまったが , 昨年 「エルティ, エムポ」 新聞が 選定した 「20世紀 最も 偉大な コロンビア人」だった.
「それなら この 酒は 名前も 製造方法も すばらしいものであり, また 彼が 話をした通り 眞に 貴重な 酒 ではないか.」このような 事實を 知った私は, この 酒を勝手に飮むことができなかった. それで どのようにしようか考えをしているうちに. わが家を 訪ねてくる貴重な方と一緖に飮もうと心に決めた.
それから 數ヶ月が過ぎた後, ソウルで住んでいる親友がきたので 私は となりに住む友人を 呼んで 酒のビンを 取り出して, その酒の意味を 話しながら 共に 酒を飮んだ. その琥珀色の酒は 色も 良く, 味も 良かった. アルコ一ルが 40%もあり, しかも 貴翰 友人らとか 共に 酒を飮んでいたので, とても 樂しく醉ってしまった.
そして 私の家族とも 一 杯ずつ飮んだ. 今の韓國は, 核家族時代であり, どの 家庭でも 家族が 離れて住む. 私たち 家族も長女は, 比較的 近い 蜜陽に 住んでいるけれど, 二つ目は ソウルに, 三つ目は 日本で 住んでいる. だから 一度に集まるということは 眞に むずかしい. それで 家族が 集まった時 一 杯ずつ飮んだのである. 私たち家族は 私に 眞に 大切な 存在であるためだ.
ところが 今日 彼が 韓國にくるという 電話を 受けとると, 一つ心配ことができてしまった. 酒は 旣に ほとんど 飮んでしまったのに, エッセイはまだ手もつけていない狀況であるためである. ペンを握って, 良いエッセイを書こうと努力しているけれど, この文章が 彼と約束した通りの素晴らしいエッセイに なる 可能性も 少ない.
それで私はすこし 殘った この 酒で, 何かエッセイに書けるような良い素材を 作って見ようと, 苦勞していた. この 酒を飮みながら 見事な素材を 作るために, いつ, 誰と, どんな 理由で飮んだら良いのかと苦勞していた.
のような私の苦勞を見ていた家內が助言をする. もう 定年も したから 生涯で 最も 純粹な 愛をした 人と 共に 飮むことはどうかという話だ. その話を聞くと, なるほどその通りである. そのような 人と 共に 酒を飮みながら 何か 話を交わしたら, 必ず 良い素材が 出てくるかも 知らないと思ったのである.
それなら 誰が 良いのか. 子供の時代の友達であるA女史が 良いか, 小學校 同期生の B女史が 良いか, いや それよりは 師範學校 時, 片思いした C女史が良いのかと, 考えをしているうちに, 妻が 酒のつまみをもってきて, 酒を一杯したらどうかと誘った. 酒を飮むことができない 妻のこのような 樣子がおかしいと思ったが, テブルの上には, コップ2つとともに, 顔なじみな 酒のビン ひとつおかれた. 「百年の 孤獨」だった.
[月刊 文學 2001. 11月號, 韓國文人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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