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수필 '개종(改宗) 전후'

[이원우]

신작 수필 ‘개종(改宗)’ 전후

                                 이원우(84년 <한국 수필> 추천/ 97년 <한글 문학> 소설 추천/ 천주교 부산 교구 은빛 사목 지원 단장/ 저서 16권)

  아버지께서 이승을 떠나시고 난 뒤, 엄마가 충격을 받으시는 모습은 나의 가슴을 저미고도 남았다. 당신은 빈소 앞에 앉아 하염없이 울기만 하셨다. 아버지의 영정은 엄마를 바라보시는데, 엄마는 거의 실명하신 지 오래라 그저 사진틀만 어루만지셨다.

  천수경을 조금 익혀서 가르쳐 드리려 하였으나, 엄마의 기억력 하나만으론 그게 불가능했다. 따라서 나 자신도 그 천수경을 조금 외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그래도 그게 계기가 되어, 일반 노인 학교 학생들 앞에 서면 겁도 없이 입을 연다. 동화 구연을 한다 치자. 분위기 조성용으로.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며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五方內外安危諸神眞言)/ 나무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을 염송할 때가 있다. 조금 더 나아가서

개경게(開經偈)를 선(?)보이기 시작하면 박수가 터진다.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더 이상 없을 만큼 미묘한 법이여)-----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義-부처님의 진실한 뜻 알아지이다.)

  여기까지가 한계다. 다음부터는 책을 보고도 읽기만 할 따름, 이게 내가 천수경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전부다. 엄마에게 그저 죄송할 따름이다. 억지로라도 좀 더 가르쳐 드렸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앞 못 보고 글을 몰라 너무 맹목으로만 일관하셨으니, 그게 오히려 신심을 깊게 가지시게 한 원인인지 모른다는 말로 우물쩍 변명하고 넘어가려는 내가 한심하다.

  세월이 흘러, 2003년. 내가 죽게 되었다. 엄마와의 이별, 32년 만이었다.

  저승으로 가는 발길을 재촉하는 것 중 하나가 집에서 기르던 후로다 2세라는 요크셔테리어 한 마리였다. 아내가 출근하고 혼자 남아 있는데, 후로다가 어찌나 더러워 보이는지 목욕을 시켰다. 녀석은 싫어했다. 온통 웅크리기만 하기에 척추에 약간 힘을 가한 게 그만 커다란 불행으로 이어질 줄이야! 그로부터 왼쪽 다리를 못 썼다. 그리고 시름시름 앓더니 끝내 운신을 못하고 식음조차 전폐. 오죽했으면 내가 녀석을 안락사 시키려고 병원에 데려갔겠는가?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기 손으로 주사기조차 못 만지겠다는 것이다, 그 날 밤 이슥해서 녀석은 한 많은 일생을 마쳤다. 그 비통함을 어찌 필설로 표현하랴. 나는 더 목이 메고 숨마저 가빠질 수밖에.애견 장례식장 파트라슈에서 염습과 화장을 해서 유골을 통도사 밑 개울에 뿌리면서 나 이제 내 명제경각(命在頃刻)에 처해졌구나 하는 자포자기에 빠졌다. 모든 가족이 울고불고 야단이 났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후로다의 왕생극락을 빌어 주어야 했다. 부끄럽지만 어쩌면 녀석이 좋은 데에 가서, 내 목숨을 구해 줄지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슴에 안고서. 이웃 불암사로 찾아가 비구니 스님에게 의논했더니, ‘광명진언’을 하루 스물 한번씩 정성스레 쓰란다. 아내와 같이 말이다. 7주쯤 그 일을 계속해서 가져갔더니 깨끗한 곳에 가서 불사르더라. 광명진언(光明眞言)? 여기 한번 옮겨 보자.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 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타야 훔. 그 뜻에 기를 써서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해서 스님에게 묻지도 않았었다. 지금은 약간 알 수 있으니, 오히려 어리둥절하다고 해야 하나.

  사투(死鬪)라는 게 기적이 개입하지 않으면, 끝장을 보게 마련일까? 나는 점점 이승 저승의 경계선을 향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달려가는 자신의 모습을 속절없이 바라보아야만 했다. 두려움은 가중되는데, 어쩌다 보니 어느 비승비속(非僧非俗)과 길거리에서 맞닥뜨리게 된다. 그가 내게 일러 줬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염송하라고. 마침 집에 있는 불국사에서 낸 <불자지송집>을 뒤져, 그걸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나막 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 엄청나게 길다. 물론 뜻을 알면 오히려 해악이라는 충고도 비승비속은 잊지 않았다. 내 피나는 노력이 두어 달 계속되었다. 그런데 차라리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로, 그게 술술 외어지는 것이 아닌가! 어쨌든 산 게 산 게 아니고 죽은 게 죽은 게 아닌 그 세월이 다시 몇 달이었다.

  그러다 무슨 수련원인가 뭔가 하는 곳에서 나는 ‘죽음’을 수도 없이 체험한다. ‘죽음 연습’의 반복 연습이 수련의 시작이요 끝인 그 막다른 골목에서부터의 두어 달,  내 신세는 자신의 ‘시신(屍身)’을 끌로 갔다가 겨우 돌아오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딸애의 혼사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그 첫째 조건에서 잠시 방황했다. 상대 집안이 가톨릭을 믿으니, 딸애가 개종을 해야 한다는---.이상하였다. 생각보다는 갈등이 크지 않았던 것이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아내와 장차 막내까지 개종한다는 전제는 오히려 우리 쪽에서 내 놓았다.

  드디어 교리 교육 끝에 세례를 받는다. 그러나 죽음과의 전쟁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까무러치기 쯤은 예사였고, 숨넘어가는 게 일과이다시피 했다. 몇 년 동안의 그 고통, 어찌 필설로 표현할 수 있으랴.

  그런데 최후의 승자는 나였다. 어느 날 내 손을 들어 주신 분이 모습을 드러내신 것이다. 그분이 쥐어 주신 건 한 묶음의 악보였다, 그리고 노랫말!! 황망 중에 붙잡은 그 둘과 나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더불어 존재한다. 노래를 도구로 내가 살았다는 얘기다.

  완벽한 개종(改宗)의 성공까지, 참으로 비싼 대가도 치렀다. <성경>을 필사하다가 마침내 시신경이 함몰되기 시작되었다는 선고를 들었을 때의 절망감, 그런 정도는 수도 없이 겪었으니까. 비슷한 예를 들으라면 여남은 개도 넘으리라.

  개종 후에 달라진 것도 많다.

  그렇게도 좋아하던 개, 내 자손이 집 안에서 기르는 것을 반대한다. 위생이 어떻다느니 하여 따지자는 그런 한가한(?) 여유에서가 아니다. 이별의 슬픔이 견뎌내기 힘들 정도로 크기 때문이라는 것? 그것도 오히려 사치스런 생각이다.

  수도자들이 보신탕을 먹는 걸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다. 신부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 목사나 스님도 마찬가지. 불개미 한 마리라도 안 죽이는 것이 절에서의 법도요, 개는 먹을거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에서의 가르침이다. 체력이 어쩌고저쩌고? 자비의 상도(常道)에서 한참 벗어난 것임을 난 안다.

  나아가 이 세상에서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는 소신을 얻었다. 그가 가난하든 불구자든 늙었든 외롭든 (환과고독/鰥寡孤獨이란 말이 있는 줄 안다) 차별 대우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그런 주장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근래에는 ‘녹음방초승화시’라는 한갓 어린이라도 아는 문자(?)도 인용하고, 그러나 피조물의 최정점에 사람이 위치해 있다는 걸 강조한다.

  옛날 나의 신앙이었던 불교에 대해 폄훼라니, '벌레만도 못한 내게(복음 성가의 한 구절이다)’ 언어도단이다. 그리움을 오히려 가끔 느낀다. 구약(舊約)에서 유대인이 선민사상에 빠져 타종교인들을 이방인이라 했다던가? 내가 천주교 신자로서 개신교 교우들에게 그런 인식을 행여 갖는다 치자. 이 졸고에 등장하는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그러나 요컨대 자비와 사랑이다. 근간에 그게 흘러야 한다.

  내일 나는 다시 엄마 아버지 산소를 거쳐, 후로다 장례를 치러줬던 파트라슈에 간다.

(2010년 10월 27일) 21장

[고개마루]

이원우선생님 수필은 항상 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마음을 들떠게 합니다. 저역시 근간에 애완견을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잃어버리고 극심한 우울감에 사로 잡혀 지내고 있습니다. 이 참담한 마음이 언제쯤 가시게 될련지 애견 대부이신 선생님께 묻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수필을 읽고 마음의 위로를 받습니다.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원우]

심 선생님! 고맙습니다. 저야말로 심 선생님의 글에서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겸손을 통해서 제게 귀감이 되시기도 하고요. 우울감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개는 어디까지나 개지, 사람은 아닙니다. 사람을 사랑하실 기회를 가지셨으면 합니다. 아니 지금 그 일에 빠져 계시지 않습니까? 예의는 아니지만, 제 졸작 소설 한 편을 올리겠습니다. 햇빛 속으로 나가셔서 노래부 부르고 걷기도 하시도록 하십시오. 결국은 애견의 잔영마저 뇌리에서 사라질 겁니다. 건필을 기원합니다.

[고개마루]

선생님 말씀 깊이 새겨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셔서 좋은 일 계속 많이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