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언어의 표현 가능성과 불가능성
말은 사람이 의사를 표현하려는 필요에서 생긴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의식 속에 있는 것을 무엇이나 다 표현해내는 완전한 능력은 없는 것이다. 말도 역시 신이 아닌 사람이 만든 한낱 생활도구다. 완미전능(完)한 신품이 아니다.
뜻은 있는데, 발표하고 싶은 의식은 있는데 마땅한 말이 없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옛날부터 '이루 측량할 수 없다’느니'불가명상(名狀)'이니, '언어절(言語絶)'이니 하는 말이 따로 발달되어오는 것이다. 이것이 어느 한 언어에만 있는 결점이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거의 세계어인 영어에서도 ‘inexpressible’이니 ‘beyond expression’이니 하는 유의 말이 얼마든지 쓰이는 것을 보면 세계 어느 언어나 표현 불가능한, 어두운 일면은 다 가지고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표현할 수 있는 면과 표현할 수 없는 면이 언어마다 같지 않다. 이 언어엔 ‘그런 경우의 말’이 있는데 저 언어엔 그런 말이 없기도 하고, 저 언어엔 ‘그런 경우의 말’이 있지만 이 언어엔 없기도 하다. 영어 ‘wild eye’에 꼭 맞는 우리말이 없고 또 우리말의 ‘뿔뿔이’에 꼭 맞는 영어가 없다. 꼭 'wild eye'를 써야 할 데서는 우리말은 표현을 못하고 마는 것이요, 꼭 ‘뿔뿔이’를 써야 할 데서는 영어는 벙어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어느 언어가 아직 이 표현할 수 없는 어두운 면을 더 많이 가지고 있나 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연구재료의 하나이므로, 우선은 어느 언어든 표현할 수 있는 일면과 아울러 표현할 수 없는 일면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표현할 수 없는 면은 언어마다 달라서 완전한 번역이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사실쯤은 알아야겠다. 이것을 의식하기 전엔, 무엇을 번역하다가 자기가 필요로 하는 번역어가 없다고 해서 이 언어는 저 언어보다 표현력이 부족하다느니, 저 언어는 이 언어보다 우수하다느니 하고 부당하게 단정하기 쉬운 것이다. 번역을 받는 원문은 이미 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측면의 말로만 표현된 문장이다. 그런데 표현할 수 있는 면, 표현할 수 없는 면은 언어마다 같지 않다. 나중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도 있을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이치다. 이 우열감은, 하나는 구속 없이 마음대로 표현한 것이요, 하나는 원문에 구속을 받고 재표현해야 하는 번역, 피(被)번역의 위치관계이지 결코 어느 한 언어와 다른 언어의 본질적인 차이는 아니다.
그런데, 언어에는 못 표현하는 면이 으레 있다 해서 자기의 표현욕을 쉽사리 단념할 바는 아니다. 산문이든 운문이든 언어에 대한 문장가들의 의무는 실로 이 표현할 수 없는 어두운 면을 타개하는데 있을 것이다. 눈매, 입 모양, 어깻짓 하나라도 표현은 발달하고 있다. 언어문화만이 이 어두운 면을 그대로 가지고 나갈 수는 없다. 훌륭한 문장가란 모두 말의 채집자, 말의 개조. 제조자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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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명상(不可名狀) 사물의 상태를 말로 표현할 수 없음.
언어절(言語絶) 말로 나타낼 수 없음.
-이태준 『문장강화』 중에서
2025.3.15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