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사진편지 제 3120호('26/5/31/일)
['한사모' 공식 카페] - '한밤의 사진편지 romantic walking'
<cafe.daum.net/hansamo9988>
제 742회
"성북동 길상사 ~ 심우장길 걷기 후기
○ 글˙안내 : 이순애
○ 사진 : 이규석
[참석 인원 : 17명]
*1팀: 정정균, 한숙이, 황금철(3명)
*2팀: 권영춘, 박동진, 이석용(3명)
*3팀: 이규석, 이순애, 이영례(3명)
*4팀: 박찬도, 최경숙(2명)
*5팀: 김용만, 류연수, 안태숙,
이규선, 윤삼가, 홍영란(6명)
5월 31일 오월의 마지막날,
5월이 되기도 전부터 달려오던 여름이 이젠 한여름 수준으로 달아오른 날 오후 세 시,
17명의 회원들이 한성대입구역에 모였습니다.
'이 정도 더위쯤이야'
안내자를 응원하지만 그늘을 찾는 저의 속마음을 숨길수는 없었어요.
첫 눈에 사람을 알아보는 재주를 갖고 싶었던 옛날,
그건 재주라기보다는 총기에 가까웠으므로 자신과는 무관하다 여겨 진작에 포기했었지요.
그런데 한사모 덕분에 누군가를 살짝 스치기만해도
'아! 우리 한사모구나' 하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어요.
안태숙 부회장님이 맨 먼저 도착하자 권영춘 교장님, 황금철 회장님 부부와 박동진 카페지기, 김용만 고문님
내외분 그리고 이규석 본부장님과 이영례 총무님, 윤삼가 교장님, 홍영란님까지 도착하자
역 안은 금새 꽉 찬듯 했어요.
벌써 10년 전 이맘때쯤 성북동 이 길을 함께 걸었던 날이 또렷한데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함께 할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그게 세월인 것을...
성북동은 예로부터 산이 깊고 물이 맑고 경치가 수려한 데다 한양도성을 끼고 있고
풍수까지 뛰어나 완사명월 길지로 이름이 났지요.
浣紗明月이란 밝은 달빛 아래 비단을 펼처놓은 형세로 귀인이나 부자가 많이 날 곳이라는군요.
나폴레옹제과점을 지나 최순우 옛집 골목길에서 신호등을 건너 방우산장에 닿습니다.
경상도 양양 출신 조지훈 시인이 술병으로 작고하실 때까지 사셨던 집입니다.
납북된 부친 조헌영 제헌국회의원이 혹시 돌아오실까 하여 이사도 가지 않았는데
그 한옥은 아예 헐리고 작은 빌라 한 채 앞에 '조지훈집터'라는 표지석만 쓸쓸합니다.
길상사 일주문 앞에 섰습니다.
'北岳山 吉祥寺'라는 현판이 떡 하니 우리를 맞아줍니다.
일주문 기둥에 쓰인 주련(柱聯) 도 보입니다.
神光不買昧萬古徽猷 入此門來漠存知解
부처님의 거룩한 빛의 맑고 오묘한 뜻을 알기 위해 이 문을 들어서면서부터는
세상의 지식을 논하지 말라는 준엄한 경고입니다.
일주문은 속계와 법계의 경계이지만 길상사를 창건한 법정 스님은 이 곳을 굳이 불교신자만이 아닌
누구나 편하게 산책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하셨지요.
그래서 성북동의 다른 종교 시설인 성당이나 덕수교회와도 친밀하게 지내곤 하셨어요.
바로 그런 예가 마리아상을 연상시키는 관음보살상이라 하지요.
관음보살상 천주교인이신 한국성상조각의 대가 최종태 교수님의 작품입니다.
조각가이며 수채화가이기도 한 예술가는 90을 훌쩍 넘긴 요즘도
새벽 4시부터 열 시간을 작업에 매달리며 예술혼을 불태운다지요.
초파일이 며칠 지나지 않아 눈에 띄는 연등이 보이는 극락전에서 황금빛 햇살 아래 눈을 크게 떠봅니다.
달콤한 목소리가 들리지요?
'쉿! 잠깐 조용. 영원이 지나는 소리를 들어야지.'
여기저기에서 오래 남을 사진을 찍으시느라 소리 없이 불쑥불쑥 종횡무진하시는 이규석 본부장님 고맙습니다.
법정 스님의 유골과 유품이 있는 진영각에서 무소유 의자에 앉아보면서 무소유 철학을 음미합니다.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텅 빈 충만을 맛보고 싶은데 정작 우리가 꼭 소유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스님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를 곰곰 묻습니다.
책, 차, 벗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에 오래 마음이 닿습니다. 바로 채마밭입니다.
늘 홀로 모든 것을 자연 속에서 손수 땀 흘리며 가꾸신 풀과 나물과 곡식에서
관조하는 삶의 자세를 바로잡으셨던 모습이 보입니다.
공양주 김영한 보살 공덕비입니다. 서울의 3대 요정이던 '대원각'을 접고
7천평 토지와 40채 건물울 사찰로 거듭나도록 법정 스님에게 드린 김영한 보살은
시인 백석의 연인으로 유명한 분이지요.
문무를 겸비하고 재색까지 겸해야 가능했던 기생은 지금 아이돌보다도 더 탁월한 예술인이었지요.
기생 진향과의 결혼을 반대한 백석 부모님 때문에 헤어졌지만
백석은 '자야'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해방 전 만주로 떠났답니다.
해방 후 북한에 남은 재북 시인으로 공산당을 찬양할 수가 없어 동시와 동화를 많이 썼지만
반동으로 몰려 오지 삼수갑산으로 유배되어 양치기로 살았던 백석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굽이굽이 골목길을 돌아 심우장 언덕을 오르며 땀을 닦습니다.
총독부를 마주하기 싫어 북향으로 지은 한옥 유리창문 기둥에 100년의 손때 두께가 장엄합니다.
심우장은 잃어버린 나를 찾는다는 불교 가르침입니다.
삼일운동 33인의 한 분이었던 만해 한용운 선사는 독립운동가요, 시인이요, 승려로
세상을 크게 변화시켜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하신 분이지요.
그 시절 딱 100년 전 쓰신 시 '님의 침묵'으로 한국근대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이유는
그 시가 요즘 쓰여진 것처럼 순 우리말로 썼다는 기막힌 통찰력 때문입니다.
근처 '삼삼감자탕'에서 시원한 막걸리 건배가 이어졌습니다.
예술가들이 유난히 많았던 성북동에서 조선 최고의 시조시인 황진이를 빼놓을 수가 없더군요.
(동짓달 기나긴 방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정든 님 오시는 밤에 굽이굽이 펴리라)
한사모 걷기 이야기도 서리서리 넣었다가 보고 싶은 날 자주 꺼내어 굽이굽이 펴자는 뜻에서
제가 "서리서리 넣었다가"하고 손을 뻗으니 "굽이굽이 펴리라"로 화답해 주셨습니다.
감자탕 나누는 손길에 정이 담뿍 넘칩니다.
모두들 고맙습니다.
이제 원숙한 유월의 열정이 오만한 여름의 더위를 이길 수 있기를 기대하며
다음 주 743회는 최경숙 제 4팀장님 안내로 안양천 제방 산책로를 걷습니다.
* 모이는 날 : 2026년 6월 7일(일) 오후 3시
* 모이는 장소 : 1호선 금천구청역 밖(역 광장)
( 일반열차만 정차합니다 )
< 클릭하세요>
https://youtu.be/kVi5FUivg20?si=LIF4iX7hsHOF2leZ
<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 백석의 시 >
*편집 : 박 동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