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동남아에서 리틀코리아를 꿈꾸다.
리조트사업을 처음부터 생각해 보기로 했다.
방향은 미개발지역이 맞았지만 직항 여부가 관건이었다.
투자자의 입장에서도 직항여부가 중요하겠지만,
여행자 입장에서는 더 필요한 사안이었다.
세부나 보라카이 같은 관광지는 세계가 인정하는 휴양지라
오고 가는 불편함이 전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천이나 김해 어디서 출발하든 5시간이면 도착한다.
하지만 동남아 외곽에 관광지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공항에 내려 국내선을 갈아타야 하고, 택시나 버스로 몇 시간을 더 가야 한다면,
관광지로서는 낙제점일 것이다.
오지탐험가가 아니라면, 글쎄... 이런 불편을 감수할 여행자가 있을까?
필리핀 민다나오에 직항을 개설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 즈음, 민다나오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받았다.
“성규야, 잘 지내고 있지?”
“그래. 너는 사업 잘 되고 있지?”
“아이고, 겨우 밥 먹고 살고 있다.”
녀석은 엄살부터 떨었다.
「1년 전 민다나오에 갔을 때 저 엄살 때문에 술을 내가 샀다. ㅋㅋ」
“이곳이 한창 개발 중이라 다른 사업을 할까 싶은데, 사업분석이 안된다.
니가 좀 도와주라.“
“임마. 내가 그럴 시간이 어딨노?”
“친구 좋다는 게 뭐고? 찐하게 한잔 살게.”
민다나오에서 중고 덤프트럭을 수입하는 녀석이
주택사업쪽으로 눈을 돌리고 싶다고 했다.
뭔가 조짐이 좋았다.
“알따 ~ 너 부탁인데.. 시간 내볼게! 항공편 예약해두고, 호텔 잡아놔라.”
“역시~ 성규야 고맙데이~~니 진짜 내 친구다.”
「 친구야 ~ 너에게 전화하려했는데, 하늘이 너의 money를 원하는구나! 」
부탁은 친구가 했지만, 사실 더 급한 건 나였다.
일주일 뒤 나는 마닐라행 비행기에 올랐다.
마닐라에 도착하자, 녀석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성규야, 온다고 고생했제? 와줘서 고맙다~”
“니 덕에 편한하게 왔다. 뭐하러 비싼 비지니스석을 보냈노?
4시간이면 오는데 돈 아깝게~“
약 3시간을 기다렸다가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민다나오 다바오 공항에 도착했다.
집에서부터 계산하자면, 장장 10시간이나 걸렸다.
‘직항이 개설된다면 5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며
미개발 지역이라 땅값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다음 날부터 민다나오 곳곳의 주택사업 단지들을 보러 다녔다.
여기저기에 신축붐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거의 중국인들의 독무대였다.
녀석이 왜 주택사업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됐다.
사업은 한국에 비해 너무나 간단했다.
- 평당 20만 원 가량으로 토지 구입
- 방 2개, 욕실, 거실만 있는 20평 규모로 블록이나 슬레이트 지붕마감.
- 외국인 대상의 별장으로 분양시에는 인테리어 및 내,외장재의 고급화
중국의 주택사업 특성상 내부 인테리어는 해주지 않고서 분양했다.
“친구야, 사업을 하려면 외국인이나 현지 부자들을 타깃으로 고급으로 지어라.”
“승산이 있겠나?”
“응, 몇 가지 차별화를 두면 충분히 가능하겠다.”
첫째, 사업의 부지는 유럽스타일로 바닷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부지를 선정.
둘째, 300평 정도의 차별화된 정원스타일에 10가구정도의 소규모를 조성.
셋째, 실내,외인테리어 마감과 조경까지 해서 고가분양을 목표로 삼는다.
직항도 없는 필리핀 외곽, 민다나오 섬의 땅값이 궁금하지 않은가?
민다나오 중 공항이 있는 다바오 시내의 위치 좋은 곳은 평당 500만 원 선.
중심상권을 살짝 벗어나 일반상가를 지을 수 있는 곳은 평당 150만 원 선.
시 외곽 우리의 농촌처럼 가든이나 상가를 지을 수 있는 곳은 30만 원 선.
외진 곳은 평당 2만 원 선.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 사업의 첫 번째 구상은 토지 중 2/3 이상을 외국기업에 매각하는 것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개발할 땅의 가격이 상상 이상이었다.
찾아야 할 땅은 외진 곳이면서 길이 없는 큰 땅이었다.
결국 섬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다바오 항구에서 배를 타고 20분만 가면 샤말섬이 나온다.
샤말섬은 다바오만에 감싸여 다이빙포인트가 많고, 리조트도 많아 휴양지로 떠 오르는 지역이었다
그 중 유명한 곳이 펄팜 비치리조트다.
펄팜 비치리조트는 약 1만 평 정도의 규모를 가졌지만,
해변과 주변경관이 덤으로 주어진 천혜의 환경을 갖고 있다.
인근에는 2~3천 평 내외의 중국인이나 미국인이 운영하는 리조트가 상당하다.
일종의 외국인을 위한 별장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머물수록 민다나오와 샤말섬의 경관이 좋아졌다
향후 10년 안에는 세계적인 휴양지로 개발 될 가능성이 짙었다.
“친구야, 나도 여기서 너랑 같이 리조트사업이나 해볼까?”
“나야 좋지~. 헌데, 여긴 현지인이 끼지 않으면 힘들어.”
그러면서 샤말섬의 촌장을 소개해주었다.
참 편안한 분이셨다.
섬에서 촌장은 인기와 덕망이 높아서 어딜 가나 환대를 받았다.
덕분에 섬 여기저기를 쉽고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샤말섬 주변 시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리조트 주변의 경관이 뛰어난 곳의 토지는 평당 40만 원 정도.
좀 괜찮은 지역의 1000평은 평당 20만원 / 1만평은 4만원 / 10만평은 1~2만원 선.
일주일 동안 팀을 나누어 발품 팔면서 다녔지만 원하는 땅을 찾을 수 없었다.
한정없이 머물 수도 없고,
하루 이틀만 더 둘러보고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그 때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약 3백만 평의 땅을 두 명이 갖고 있는데, 한꺼번에 살 수 있다고 했다.
재고 따지고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현장에 도착한 순간,
‘이 땅을 만나게 해주려는 뜻이었구나.’그동안 고생이 봄눈 녹 듯 사라졌다.
이탈리아 지형처럼 남태평양을 향해 길게 뻗어 있으면서 바다와 접해 있었다.
300m 정도 길이 없었지만, 촌장님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걱정말라는 뜻이었다.
평당 3천원으로 모두 합쳐 90억을 달라고 했다.
관심을 가지는 눈치를 보이면 가격 협상에서 불리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관심 없는 척,
그러나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계획을 짰다.
실행은 다음날부터였다.
휴양을 핑계 삼아 찜한 땅 주변에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구성원은 현지인과 친구들, 그리고 나까지 7명!
마을주민들을 초청하고,
땅주인의 친척 배를 빌려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만선 ( ? )으로 돌아와 마을 사람들과 왁자지껄 파티를 벌였다.
내가 누군가?
협상의 신이지 않은가! ㅋㅋ
결국 땅 주인들의 입에서 “내 땅을 사세요~.”라는 말을 나오게 만들었다.
성동격서(聲東擊西)로 대성공이었다.
300만평을 평당 600원에 1차 협의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계획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민다나오와 샤말섬의 가격은 이미 알고 있었고,
실버휴양과 리조트 사업을 하러온 외국인들이 찾는 가격은
평당 1만 원 선이었다.
OK!!
평당 5천원의 획기적인 가격으로 분양하자.
1. 절반인 150만평을 50만평씩 분할해서 외국사업가들에게 매각한다.
2. 150만평 × 5,000원 = 75억 원 (57억 원의 차익)
3. 150만평은 공짜이며 이익금으로 우선 50만평에 리조트사업중 조경분야를 착수한다.
4. 여유분 100백만 평은 환금성 있는 토지로 남겨둔다.
이제 사업구상 마지막 단계다.
민다나오에 출장 와있는 각국 리조트 사업자들과 어울리며
낮에는 여유롭게 관광을 하고 밤에는 유흥을 즐겼다.
유흥! 이것이 진정 나의 전문분야가 아닌가?
어느 나라든 상관없이 노는 건 자신있었다. ㅋㅋ
자연스레 그들의 사업 아이템을 듣게 되고, 토지 매입의 포인트도 알게 됐다.
「니네들은 절대 나와 같이 위치좋은 곳에 싼 땅은 구하지 못 할 것이다.
너희 나라에는 발품을 판다는 속담이 없으니깐 ㅋㅋ 」
혼자서 기분 좋은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민다나오 관청과 주변사람들에게 허가권과 소유권 획득을 위해 다녔다.
그런데.... 아뿔사!!
필리핀에서 개인이 토지구입이나 사업자등록을 하는 건 불가능!
토지는 필리핀 내국인의 지분이 60%이상이여만 가능하다
결국, 내 지분은 40%밖에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예외가 있긴 했다.
콘도미니엄이 소유한 토지는 다른 법을 적용하여 3ha까지 가능하지만,
법인인 경우에도 필리핀인이 감사로 등록되고, 과점이상의 주식을 가진 경우에만 가능했다.
또, 거주를 위한 콘도미니엄은 외국인에게 허용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명의신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졌다.
필리핀에서 바지사장을 더미(dummy)라 부른다.
바지사장을 두고 사업을 하는 것은, 불법이기에 전부 빼앗기기 쉽상이며
때론, 죽음을 담보로 하는 경우도 있다
가끔 매스컴을 통해 보고 들었을 것이다.
바지사장을 내워서 현지인과 동업을 한 아무개가 살해당했다는 기사를...
필리핀인들은 히야(hiya 체면, 부끄러움)등을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공개적인 모욕을 하지 말아야 되는데 사업이 어디 말처럼 되는 것일까?
실제 중국에서 휴대폰사업을 할 때도 공동대표들에게 비슷한 경험이 있었고,
무역을 할 때도 조선족 직원에게 권한을 주어 수 천만 원을 날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콘도미니엄사업과 관광법인을 설립해서 약간의 편법을 쓰면 될 수도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정치인, 경찰, 지방정부와 손을 잡고 도움도 받아야 했다.
또 다시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전에 만났던 순수한 촌장님이나 민간인의 반대편에 선 권력이나 재력가들....
그들과의 만남은 어떠했겠는가?
만날수록 불법과 편법, 갑을관계의 갑질과 허세~~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시킨다는 마키아벨리즘뿐이었다
어느 날 저녁, 촌장님의 초대로 현지 어부의 집에서 식사를 했다.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 때 촌장님이 내 손을 꼭 잡고 말없이 바라보았다.
난 그 눈빛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만약. 내가 조직을 갖춘 대기업이었다면,
필리핀 정부의 협조 아래 사업을 순조롭게 추진했을 것이다.
만약. 내가 무리수를 두어서 리조트 사업을 추진했다면,
불법은 또 다른 불법을 낳고, 욕심은 또 다른 욕심을 잉태했을 것이다.
외국인의 개인소유나 100년 임대가 가능한 태국과 말레이시아는 어떨까?
나는 또 다시 봇짐을 메고 길을 나섰다.
상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 내가 남들보다 유일하게 잘 하는 것이다.
이런 성향은 항상 나를 힘들게 했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으로 이끌어 주었다.
리틀코리아를 만들기 위해
1년 동안 동남아시아를 이 잡듯 쏘다니며 돈도 많이 지출했다.
한창 바쁠 시기에 1년을 그냥 보냈지만
비용과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단지 사업을 할 땅만 보면서 다녔겠는가?
출장을 갈 때마다 무역으로 작은 돈도 벌었다.
그 해, 나는 리틀코리아는 만들지 못했지만,
세상 구경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인연이 돼서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 이들도 많다.
그들에게 올 설에는 이런 안부를 전한다.
“ 친구들. 안녕들하신가 ! "
나는 지금 필리핀에서 만들지 못한 리틀코리아를 대한민국 거창에 만들고 있다네.
언젠가 완성되면 자네들을 초대하겠네.“
※ 참, 나에게 주택사업 조언을 구했던 친구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신가?
아내가 필리핀인이라 지방정부의 협조를 얻어 사업에 성공했다.
지금은 다바오시내와 남태평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아주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