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들의 세계(원용문)
어른의 세계나 어린이의 세계나 착한 사람과 악한 놈, 괴롭힘을 당하는 자와 괴롭히는 놈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나의 소년 시절 우리 마을에는 나를 괴롭히는 놈이 두 명 있었다. 그 중에 장기팔이라는 놈, 이 자는 마을 앞 들판 한복판에 집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학교도 없고 같이 놀만한 친구가 없으니까 항상 우리 마을에 와서 놀았다. 학교도 같은 학교에 다녔음은 물론이다. 이자를 부르기 쉽게 A라고 하자. A는 체구는 보통이고, 한쪽 눈에 백태(白苔)가 끼어서 왼눈박이다. 마치 신라 말 고려 초의 궁예처럼 생겼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A는 선천적으로 주먹이 세서 싸움의 명수가 되었다. 싸움을 잘하더라도 못된 놈을 혼내주는 역할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항상 저보다 힘이 약한 아이를 괴롭히고 시비 걸고 때리는 것이 습관화 되었다. 아마 ‘나’ 이외도 이자에게 괴롭힘을 당한 사람이 꽤 있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천성이 남 괴롭히기를 좋아하는 놈은 누군가를 괴롭히면서 사는 것이 취미이기 때문이다. 만나면 시비를 거니까 싸우게 되고 싸우면 힘이 약하니까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6.25사변 직후라고 생각한다. 나는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놈이 지나가다가 무어라고 시비를 걸었다. 얼마나 귀에 거슬렸으면 참지 않고 쫓아나갔겠는가. 나가서 한판 붙으니 어찌 힘으로 그자를 이길 수 있겠는가. 물론 이기겠다고 나간 것은 아니지만… 승패는 이미 결정 났던 것, 또 판정패를 당하고야 말았다. 몇 대 얻어맞고 코피가 났던 기억이 난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왜 그리 자주 만났던지, 그리고 그처럼 상대가 나쁘면 그자를 피해 다니면 될 텐데, 일부러 피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아무리 마을이 넓어도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은 제한되어 있으니까 집밖에 나가서 놀다보면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의 생활 여건이었다. A가 이곳에서 놀 때 나는 저곳에 놀면 부딪히지 않을 텐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던 것 같다. 이처럼 괴롭힘을 당하면 아버지한테라도 일러서 해결책을 모색했어야 될 텐데,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으니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어린 시절에는 옳고 그른 것이 문제 아니고, 법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 아니고 주먹이 우선이고 힘센 놈이 우선이라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법과 정의로 판단한다는 어른의 세계에도 힘센 놈이 우선인데 아이들의 세계는 더 심할 수밖에 없다. A가 이처럼 몸이 날쌔고 주먹이 세면 나중에 권투선수라도 되어 유명해졌어야 하는데, 내가 알기로는 막노동꾼이 되었으니, 어렸을 때 힘센 것이 별것 아니라는 것을 만천하 사람들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나에게는 우리 나이로 5살 된 희선이라고 하는 효손녀가 있다. “희선아, 너 할아버지한테 효손녀니 아니니?”하고 물으면 “효손녀”라고 대답을 한다. 똑같은 물음을 열 번 하면 열 번 모두 효손녀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한번은 “효손녀가 무슨 뜻이지?”하고 물으니까 대답을 못하였다. 이처럼 효손녀의 의미도 모르면서 효손녀라고 대답하니 더욱 기특한 것이다. 그래서 “효손녀란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고, 할아버지에게 잘하라는 뜻이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재작년 손녀가 3살이었을 때다. 어린이집을 데려다 주는데, 걷기가 힘들다고 해서 안고 갔다. 안고 가는 중에 내 뺨과 손녀 뺨이 우연히 부딪혔는데, 느닷없이 “할아버지는 고슴도치야”하고 나오는 것이었다. 도대체 60대 후반인 나도 고슴도치를 직접 본 적이 없고, 그런 동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3살짜리 꼬마 입에서 할아버지를 고슴도치에 비유할 수 있는지 깜짝 놀랐던 것이다. 나도 고슴도치에 대하여 잘 몰라서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몸길이 20~30cm, 꼬리 3~ 4cm임, 주둥이는 거의 돼지처럼 뾰족하고 다리가 짧으며, 등 전체에 갈색과 흰색의 바늘 같은 가시가 덮여 있어서 적이 다가오면 몸을 웅크려 밤송이처럼 만들어 자신을 보호함. 활엽수가 무성한 밀림지대에 많이 살며 해질 무렵부터 나다니며 벌레‧ 과일‧ 새알 등을 먹음.”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고슴도치의 몸이 가시로 뒤덮여 따가운 것과 할아버지 뺨에 난 수염이 따가운 것을 동일시해서 그런 말을 서슴없이 했던 것이다.
작년에는 내가 우연히 허리를 다쳐 고생한 적이 있다. 그래서 수영정형외과에 다니면서 물리치료를 받기고 하고, 다남한의원에 다니면서 한약을 먹으면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한번 다친 허리가 쉽게 날 리가 없는 것 아닌가. 그래도 손녀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 일은 내가 맡았기에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였다. 하루는 걸어가기 싫다고 하면서 업어달라고 떼를 썼다. 나는 빨리 데려다 주려고 아이를 업었는데, 요것이 업혀서는 내 등을 두들겨 준다. 하도 신통해서 “너 왜 등을 두들겨 주냐”고 물었더니, “할아버지 허리 빨리 나으라.”고 두들겨 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착한 마음씨를 가졌으니, 내가 “효손녀”라 부르지 않고 무어라 부르겠는가.
이것도 희선이 4살 때의 이야기다. 어린이집을 데려다 주려고 옷을 입히는데, 하도 귀엽기에 내가 혼잣말로 “이게 어디서 왔지!”하니까 요것이 “엄마 뱃속에서”라고 대답한다. 나는 대답해 주기를 바라면서 한 말이 아닌데, 바로 이런 대답이 나오니 놀랄 수밖에…
나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희선이한테 “너 이담에 커서 뭐 될래”하고 물으면 “의사 선생님”하고 대답을 한다. 이것저것 이야기하다 보면 이다음에 커서 할머니 병도 고쳐주고, 할아버지 병도 고쳐주고, 엄마 병도 고쳐주고, 아빠 병도 고쳐줄 것이라고 한다. 정말로 이 다음에 의사가 될는지 안 될는지는 지켜봐야겠지만, 할아버지인 나의 희망도 그가 커서 의사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3살 때도 그렇고, 4살 때도 그렇고 5살 때도 그 어린이집을 가기 싫어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성격적으로 여러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를 꺼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니 하루 이틀 아니고 매일 한판 씨름을 벌여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래도 내 아이한테 문제가 있거니 생각하면서 달래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고, 사탕이나 과자를 사주면서 데리고 다녔다. 그것이 심하니까 어떤 때는 어린이집을 못 데려다 주고 내가 하루 종일 데리고 있으면서 봐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작년 후반기, “너 왜 어린이집을 가기 싫어하냐, 누가 괴롭히는 놈 있냐.”고 물었더니, 비로소 입을 떼는데, ‘괴롭히는 놈’이 있다는 것이다.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이은섭’이라고 하였다. 그 후 여러 번 가기 싫다고 할 때마다 물었지만 여전히 똑같은 대답을 한다. 하루는 희선이가 속해 있는 ‘장미반’ 선생님한테 “이반에 은섭이라는 애 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그런 아이가 있다는 것이고, 은섭이가 희선이를 너무 좋아해서 밥을 먹을 때나 놀 때나 희선이 옆으로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선생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별 문제가 없다는 표정이다. 그래서 나는 “하여간에 그 아이가 희선이 가까이 못 오게 하여주십시오.”하고 부탁드리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해가 바뀌어 2005년, 희선이는 5살이 되었고, 학급도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게 되었고, 반의 이름도 ‘장미’에서 ‘백합’으로 바뀌었다. 장미반 때는 그 반에 아이들이 8명이었는데, 백합반으로 올라가면서 한방에 21명을 가두어 놓고 놀게 하니, 이곳은 어린이 보호교육기관이 아니라 시장바닥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다가 사내아이들이 어찌나 드세던지 여자 아이들을 잡아당기고 밀치고 하는데 난장판이었다. 바로 그런 곳에서 하루 종일, 그것도 매일 시달리니 아이가 어린이집 가기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지사 아닌가. 어른도 괴롭히는 사람 있으면 그곳에 가기 싫은데, 어린아이야 일러서 무엇 하겠는가. 나는 아이를 데리고 갈 때마다 백합반 담임한테 은섭이가 희선이 옆에 못 오게 해달라고 주문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특별히 이곳의 원장선생님과도 상담을 해보았지만 별 묘책은 없었고, 희선이가 어떤 방식으로 시달렸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그 동안 내가 얼마나 손녀딸에게 무심하였는지 후회 막심하였다. 진작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겨주거나 유치원으로 보내는 조처를 취했어야지 무조건 가기 싫어하는 아이만 나무라고 막무가내 데려다 주었으니 내가 얼마나 미련했는지를 실토하지 않을 수 없다. 그곳에서 단골로 매일 괴롭힘을 당하고 울고불고 하면서 생활하였을 것을 생각하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니는 곳을 옮기기로 하였고, 괴롭힘 당하는 것을 피하는 방법은 이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옛말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아이를 위해서는 어린이집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곳이 바로 ‘보성 유치원’ 이곳에 현재 10일째 다닌다. 다만 불편한 것은 거리가 멀어서 유치원 차로 가고 유치원차로 데려와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더라도 아이가 이제는 괴롭히는 놈이 없다 하고, 다니는 것이 재미있다고 하니 정말로 늦게나마 할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한 것 같다, 내가 어린시절 나를 몹시 괴롭혔던 장기팔이나 현재 내 손녀딸을 매일 괴롭힌 이은섭이 같은 인간을 다시는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나는 오늘 아침도 손녀딸을 데리고 유치원 차를 태우러 나갔던 것이다.(4.5)
첫댓글 회장님 손녀는 좋은 할아버지를 두셨읍니다 요즈음은 핵가족 시대라 저는 손자 손녀가 어떻게 교육을 닫는지 답답할뿐입니다 좋은 할아버지 되신것 축하드립니다
원교수님 사실은 글을 읽으니 눈이아팠습니다. 그래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옛말에 '우는 넘도 속이있어 운다' 란 말이 있습니다. 손녀의 가슴엔 이미 마주치기 싫은 악마같은 아이가 있는데 가고 싶겠습니까 할아버지 노릇 참 잘하셨어요
회장님 글을 읽으면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생각나네요. 키가 크고 주먹이 세서 그 반 아이들은 모두 그 애를 영웅처럼 떠 받고, 불의를 행해도 어느 누구도 선생님께 일러받치는 일이 없던 아이. 장기팔이라는 분도 주먹이 통했을 때의 그 어린시절이 가장 영웅이었을 것입니다.
글을 읽는 동안 내내 웃음이 나오는군요. 그리고 요즘 아이들의 영특함이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답니다. 초등학교 가기 전에 이미 한글은 마스트해야 한다니. 할아버지와 손녀 간의 정과 사랑이 감동을 주는군요.
장기팔이는 주먹다짐을 했지만 이은섭이는 사랑다짐을 하건만도 한 잣대를 쓰시네요? 손자나 손녀자랑 할때는 꼭 돈내고 하도록 묵계가 되어있는데 여강 할아버지는 따 따불로 지금하심이 옳은줄로 아뢰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