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불자야 듣느냐(佛子의 노래)
이 성가 18장은 "불자(佛子)의 노래"이다. 2부 형식에 의한 단순하고 부르기 쉬운 선율구조로 되어 있으나 결코 가볍지 않고, 마음 깊이 전해주는 간절한 제중(濟衆)의 염원이 담겨 있다. 마음에 삼독을 없애고 사홍서원을 실현하여 불보살 세계를 이루자는 부처님의 염원이 담긴 노래이다.
"불자"는 일반적으로 불교 신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원불교에서는 교헌 제14조 2항에서 "절차를 밟아 입교한 사람을 교도(敎徒)라고 한다"고 밝혀 놓았다. 원불교를 신앙하는 사람은 "교도"이다. 그러므로 성가 18장의 부제는 삭제되거나 수정되어져야 할 것이다.
성가 18장은 춘원 이광수(1892-1950)의 유작이라 전한다. 춘원의 필명은 고주(孤舟·외배), 장백산인(長白山人)등이 있으나 춘원(春園)을 주로 사용했다. 평북 정주(定州) 출생으로 조실부모한 뒤 동학에 들어가 서기가 되었다가 1905년 친일단체인 일진회의 추천으로 도일, 메이지(明治)학원에 편입하였다. 1910년 졸업 후 오산학교에서 교편생활 중 다시 도일, 와세다(早稻田)대학 철학과에 입학, 1917년 1월부터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을 매일신보에 연재하여 소설문학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였다. 1919년 동경 유학생의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하였고, 1921년 귀국하여 동아일보 편집국장, 조선일보 부사장 등을 거쳤으며,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된 이후 본격적인 친일, 1939년에는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회장을 지냈고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창씨개명을 하였다. 8·15광복 후 반민법으로 구속되었다가 6·25때 납북, 생사불명이었으나 1991년 춘원의 자녀인 이영근씨가 평양을 방문하면서, 1950년 납북도중 자강도 강계 만포면 고개동에서 사망했으며 70년 평양으로 이장됐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다.(김윤식, 춘원 이광수 평전)
이광수는 독실한 불교신자이고 말기엔 불교 경향의 작품을 썼으나 그는 한국찬송가에 기여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부사장에서 물러난 후 신편찬송가 편집을 위한 찬송가 번역을 하였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등 18편의 찬송가들이 그것으로, 지금도 대부분 춘원이 번역한 내용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전재동, 한국찬송가공회 회보 제5호, 2000. 1)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문학가였던 춘원의 작품이 우리 성가에도 있는 것이 자랑스럽긴 하나, 이제 역사적으로 춘원의 평가가 달라져 있는 만큼 이 성가에 대한 교단의 입장도 어느 정도 정리되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성가 18장의 가사 중 "삼계화택(三界火宅)"은 불교에서, 삼계의 괴로움을 불난 집에 비유한 말로, "고뇌가 가득한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애"는 창자의 옛 말이다. 창자를 끊을 만큼 처절하다는 뜻이다. "삼독(三毒)"은 선한 마음을 해치는 "탐욕(貪慾)·진에(瞋 )·우치(愚痴)"의 세 가지 번뇌를 이르는 말로 삼구(三垢)라고도 한다.
성가 18장은 이흥렬 선생이 작곡하였고, 원기 37년 성가위원회에서 제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