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 인간 스스로의 삶 결정권 부여해야
인간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출생에 대한 자유를 가지고 있지 않다. 흔히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존중되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인간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자유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우리는 별 다른 의문 없이 인간이 존엄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진정 인간은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면서 살아갈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일까? 혹 인간은 왜 존엄하냐고 묻는다면 그 이유를 정확하게 말할 수는 있는 것일까?
2000년 11월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이 네덜란드 하원을 통과하였다는 소식이 신문 지면을 통하여 알려졌다. 이에 대하여 교황청이 인간의 존엄을 해하는 법이라고 비난한 사실도 역시 보도되었다. 안락사 문제는 결코 남의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안락사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죽어 가는 환자에 대하여 더 이상 치료를 하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소극적 안락사와 죽음에 임박한 환자에게 고통을 제거하기 위하여 어떤 의료적 처치를 한 결과 불가피하게 생명을 단축시키는 간접적 안락사까지를 포함한다면 안락사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여서 많은 사람들이 안락사를 금지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일까?
안락사 반대론자들의 논지를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는 안락사를 허용할 경우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된다는 것이다. 대개 이 논지에는 나치 시절의 학살이 따라 다닌다.
두 번째로는 환자 스스로의 결정에 의하여 안락사 여부를 결정한다고 하는데 환자의 의사의 진정성을 담보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안락사를 허용할 경우 남용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가족들이 경제적 이유로 환자를 안락사 시키는 경우나 신체적 혹은 정신적 장애인, 나아가 노인을 안락사라는 명목 하에 살해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논지에도 나치의 망령이 감초처럼 붙어 다닌다.
그런데 정말 안락사를 처벌하지 않는 것이 그와 같은 결과를 발생시키는 것일까? 먼저 인간 존엄성의 문제. 특정한 종교적 신념이나 절대적 윤리관을 견지하지 않는 한 - 지금 어느 누가 나만이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 죽음에 임박하여 극심한 고통을 받는 환자를 보면서 『어떠한 고통이 너를 괴롭힐지라도 너는 살아야만 한다』고 강요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와 같은 강요는 특정한 신념을 보유한 사람들의 가치 관념을 수호하기 위하여 죽어 가는 사람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행위로써 인간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 즉 오히려 안락사를 금지하는 것이 인간 존엄성을 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환자의 의사가 자유롭고 진지한 것인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안락사를 허용할 수 없는 이유라면, 그것은 환자의 자유롭고 진지한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를 강구하면 해결될 문제이다. 절차의 편의를 위하여 개인의 실존과 관련된 자기결정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세 번째 논지 또한 별로 설득력을 갖고 잇는 것 같지 않다. 먼저 가족들에 의한 남용 문제는 안락사를 시행하는 절차를 엄격하게 하고 투명하게 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오히려 지금과 같이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남용의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그리고 사회에 의한 남용 문제 - 장애인이나 노인에 대한 안락사; 나치의 망령 - 또한 적절치 못한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안락사를 금지하지 않고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 안락사를 강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안락사에 의하여 생명이 단축될 수 있는 개인의 진정한 의사에 의한 죽음과 개인의 의사와는 무관한 사회에 의하여 강요된 죽음은 전혀 다른 것이다. 독일이 나치를 겪었기에 안락사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모든 안락사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소극적 안락사와 간접적 안락사의 경우에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안락사가 자살과 다른 점은 자살의 경우에는 통상 자살자 자신만이 관여됨에 비하여 안락사의 경우에는 제3자 - 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안락사의 경우에는 의사일 것이다 - 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허용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안락사는 사망하는 자 자신의 의사에 기인한 제3자의 행위이지, 제3자의 적극적 의사에 의한 사망이라는 결과를 발생시키는 행위는 아니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 중 하나는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의하여 자신의 인생을 향유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한 개체로서의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실존적 문제는 삶과 죽음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출생에 관한 한 자유가 없다. 그런데 죽음의 결정에서도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자유는 무엇인가?
정규원 (한양대학교 법학과 교수)
<반대> 안락사 허용, 인간 생명의 존업성 훼손
박재현 (외과 전문의, 인천대동의원)
최근 네델란드 의회는 안락사 허용 법안을 통과시켰고, 우리 나라에서는 인터넷 자살 사이트를 이용한 촉탁 살인(자살) 사건이 있어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다. 자살은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삶을 끝내는 것이다. 안락사는 자살의 한 형태로 볼 수도 있으며, 안락사의 허용은 인간이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죽음의 순간도 결정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자신의 힘으로 자살할 수 없는 사람은 자신을 죽여줄 누군가가 필요할 것이다. 안락사는 이 역할을 의사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안락사는 「고통이 없는 죽음」, 「편안한 죽음」을 의미한다. 죽음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누구든지 고통 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싶을 것이다. 삭막한 병실에서 온갖 기계에 둘러싸여 비인간적으로 삶을 마감하기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비참한 상태로 그저 죽음의 순간을 늦추는 것보다는 존엄하게 삶을 끝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존엄사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락사에 대해 호의적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나쁜 일이기보다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자비로운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락사에 대한 찬성은 한 가지 큰 오해에 기초하고 있다. 안락사가 유일한 해결 방법이라는 오해이다.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이 극심한 고통 가운데 비참하게 죽는 것을 지켜볼 수는 없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편하게 보내 주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 안락사가 유일한 대안이라면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안락사를 원하는 것은 죽음 자체를 원하기 때문이 아니다. 비참하고 고통스러울 것 같은 죽음 과정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가족과 사회에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은 통증치료, 호스피스간호 등을 통해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실제로 안락사를 원하는 많은 환자들이 호스피스 간호를 통해 마음을 바꾸고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가족과 사회의 부담이 안락사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안락사는 몇 가지 이유로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첫째, 안락사 허용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안락사는 자살, 살인의 한 형태라고 할 수도 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다룰 권리가 인간에게는 없다. 임의로 자신과 타인의 죽음의 순간을 결정하려는 것은 존엄한 인간생명에 대한 도전이다. 고의로 환자를 죽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 안락사를 시행하는 의사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시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생명에 대한 폭력을 조장하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인간의 존엄한 생명을 안전하게 지킬 수 없다.
둘째, 사회적으로 악용될 위험성이 있다.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된다면 신체적, 정신적 장애인은 물론, 노인, 빈곤층에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살만한 가치가 없고 사회에 도움이 안 된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엄격한 기준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안락사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적절하게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안락사 허용으로 인해 「죽을 권리」는 「죽어야할 의무」로 바뀔 것이다. 안락사가 허용이 된다면 더 살고 싶은 사람에게도 빨리 죽으라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죽을 권리」보다는 「살 권리」가 우선되어야 한다.
셋째, 가족관계를 파괴할 것이다.
환자에게 보호자(가족)는 자신을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안락사가 허용된다면 더 이상 보호자가 내 생명을 보호해주는 사람들이 안될 수도 있다. 또, 환자 자신의 고통보다는 환자 가족과 사회의 고통 때문에 안락사를 결정할 수도 있다. 가족들이 환자로 인해 경제적인 부담을 많이 갖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 문제가 될 것이다. 자신이 가족들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는 환자에게는 거부하기 힘든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넷째, 의사-환자 관계를 파괴하고 치료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안락사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의사들이 안락사를 마치 치료 방법의 일종인 것처럼 시행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안락사 허용은 의사를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자의 위치에서 사람을 죽이는 위치로 떨어뜨리게 된다. 의사가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어느 환자도 의사에게 자신의 생명을 맡길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안락사 허용은 고통을 덜어주고 삶의 질을 유지시키는 완화 치료를 소홀하게 할 것이다.
고통이 없고 편안한 죽음, 존엄한 죽음은 안락사라는 극단적이고 반생명적인 방법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다양한 통증치료를 제공하고, 호스피스 간호를 통해 평화로운 죽음을 준비하도록 하고, 고통 가운데 있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인격적이고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극도로 어려운 시기에 있는 환자와 가족들의 신체적, 심리적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안락사를 원하는 환자와 가족들은 죽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원하는 것이다. 죽음의 과정 중에도 희망을 보기를 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