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수업(4.15)은 붓과 친해지기를 목표로 한 붓 그리기 수업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붓을 이용하는 법, 붓의 종류와 쓰임을 다루지 않았는데 이번 수업에서 붓의 발견을 목표로 한 걸음만 들어가는 수업을 했다.
먼저 화분을 하나 고르고 1분 펜 드로잉으로 화분의 부분만 간단히 그린다. 그 다음에는 물감으로 드로잉을 한다. 이 때, 펜을 사용하는 것처럼 물감으로 선을 그렸는데, 그런 방식이 아니라 붓의 속성을 이용해서 면을 표현하는 것이라 하셨다,
그리고 나서 선생님의 붓의 종류와 성질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은 후, 한 붓 그리기 시범이 있었다. 다양한 나뭇잎들을 표현하는데 적절한 붓을 고르고 표현하고 싶은 색감을 붓에 묻혀서 한 터치로 표현하는 것이다. 외곽선을 그리고 면을 채워넣은 방법이 아니라 면의 넓이를 표현하기 위해서 힘 조절을 하는 법, 그렇게 한 터치로 그려내는 것이다.
다양한 식물들을 찾아다니면서 한 붓 그리기 연습을 한다.
그 후 화분 하나를 정해서 한 붓 터치로 형태를 표현하는 데 집중해 본다. 나는 제라늄 화분을 그렸다.
나는 꽃잎 한 장, 한 장의 표현보다 전체적인 꽃 형태를 한 붓으로 그려냈는데 다른 수강생들은 꽃잎 한 장 한 장을 세심하게 그려 꽃잎이 살아나는 것이었다. 그 방법을 나는 모르는데 그걸 해내는 분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 없었다.
집에 돌아와 수국 화분을 앞에 두고 꽃잎 표현을 하려고 연습했다. 수국은 노랑과 파랑색이 꽃잎 한장에 함께 있어 색상 표현이 너무 어려웠다. 한 붓에 두 색을 함께 묻혀서 끙끙댔다. 그러다가 꽃잎과 꽃잎 사이의 소프트 엣지를 만들어 내는 법으로 옮겨가 색멍과 붓놀림에 빠져 마구 붓터치를 시도하였다. 수국은 잊었다. 그러고 있자니 뭔가가 시원해지는 것이었다. 면을 채우려고 점을 찍어대던 지금까지의 방식에서는 뭔가 죄책감이 있고 답답했다.
수채화도 수목화처럼, 서예처럼 몸이로구나 하는 각성이 왔다.
붓으로 그리는 그림의 맛은 호흡과 기운과 터치의 질감... 즉 운동감의 전달에 있다, 기운생동이라 했던가?
예전에 소조를 배우던 시절 동료들과 호암미술관에 간 적이 있었다.
조선시대 수묵화 전시실들이 있었는데 대나무를 그린 방에 들어가 압도 당했던 기억이 있다. 긴 전시실엔 온통 죽을 그린 거대한 사이즈의 문인화로 가득했는데... 방에 들어가자 마자 그림에서 뻗어나오는 기운들로 방안이 터져버릴 것 같은 에너지를 느꼈다. "아, 조선시대 양반네들이 남아도는 에너지를 이런 짓에 썼구나. 그 젊음과 기운을 어떻게 해결하나 했더니..." 그렇게 생각했다. 문인화라고 하면 어쩐지 고고하고 유약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진품들의 대면하면 그 고정 관념이 깨진다. 그리곤 이 그림으로 움직임 수업을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이 움직이는 힘을 몸으로 표현해보고 그림의 진행 과정의 에너지 흐름에만 집중하여 몸으로 그 에너지를 표현하기...
'기운생동'이라는 원리를 몸으로 체감한 날이었다. 아마도 고흐 전시관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전달 될 것이다. 붓은, 펜도 몸의 연장이라 단지 이미지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사람의 몸도 전해주는 것이다. 그것이 물질성이다.
...
오늘 아침에 은정이가 선물하여 지금까지도 잘 크고 있는 아레카 야자를 한 붓 그리기로 그려보기로 했다. 이걸 배우지 않았으면 감히 그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두 번째 그린 그림은 흡족했다. 왜 난이나 죽을 그렸는지 이해가 됐다. 종이 위를 쭉 쭉 내달리는 선은 어쩐지 해방감을 준다. 종이와 붓과 물이 만나 흘러가는 감촉의 전달도 짜릿하다. 막힌 것이 뚫리는 느낌이다. 둥근 면을 표현할 때와 느낌이 다르다. 그리고 어쩌면 붓이라는 도구의 특성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이미지가 선으로 가득한 난이나 대가 아닐까, 그래서 그렇게 많이들 그렸구나... 쾌감도 있고.
그 후 이번에 산 수염패랭이 꽃잎에 도전해 보았다. 꽃잎과 꽃일 사이의 소프트 엣지가 어떻게 가능한지 연습하면서 대략 감을 잡았다. 하지만 잘 되진 않았다. 정직하면서 섬세한 붓질과 더불어 물의 성질을 타야 한다. 왜 열심히 꽃을 그리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고도의 수련 과정이다. 종이 위에 그야말로 한 붓 한 붓으로 꽃잎 한 장 한 장을 피워내는 것과 같다. 붓 한 터치가 꽃잎 한 장이었던 것이다. 그 터치에 의해 농담이 결정된다. 면 메우기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자연스러움었다.
한 붓 그리기 이 후, 수채화의 유약함이라는 생각을 부분적으로 떨쳐버릴 수 있었다. 춤 추듯이 그리면 되는 것이다. 춤이라고 생각하자. 붓이 색이라는 천을 들고 추는 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