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
해가 설핏해서야 고추 모종을 다 심었다. 밭둑에 서서 눈을 감고 불어오는 바람결에 비구름이 얼마나 들었나 가늠질 해보았다. ‘비가 없다’에 내 저울추가 기울었다. 내일 날씨가 맑겠다 싶어 방금 심은 모종에다 물을 주고 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새벽 일어나니 웬걸, 밤새 비가 와서 대지가 흠뻑 젖었다. 피싯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저울이 또 틀렸구나. 그래도 은구슬 머금은 싱싱한 새순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내 저울은 처음부터 잘 맞지 않았다. 어릴 때 나는 어머니가 떡이나 과일을 나누어주면 형제들보다 먼저 집어 들고 어떤 게 무거운가를 가렸다. 큰 것을 고르고 싶었지만 내가 선택한 것이 왠지 늘 작아 보였다. 고르고 고르다 오히려 큰 것을 놓치기도 했다. 친구를 사귈 때도 내 딴에는 골라서 만났다. 나와 달리 성격이 활달하고 시내 사는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다. 양손에 떡을 쥔 듯 열심히 저울질하며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결국 내 곁에는 나 닮은 친구들이 돌래돌래 남았다. 가까이 있는 친구가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 저울은 더 바빠졌다. 시장에 가면 채소 한 잎, 감자 한 알이라도 더 얻으려 머리를 굴렸다. 덤으로 푸성귀라도 얻을 욕심에 큼지막한 가방에다 보자기까지 챙겼다. 나는 주로 시골 할머니 좌판이나 인심 후해 보이는 아저씨 리어카를 찾았다. 혹시 할머니가 ‘먹는 사람이 좀 적게 먹어’ 하며 손을 오무리면 ‘채소는 하룻밤 자고 나면 쑥 자라잖아요’ 대꾸를 했다. 그래도 집에 오면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막 집어주는 것처럼 푸짐하게 담아 주던 아저씨의 과일은 맛이 싱겁고, 뺏다시피 받아온 할머니의 시금치 한 줌은 후회로 내 가슴을 아리게 했다.
아들의 짝을 찾을 때였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조건 좋은 며느리를 보고 싶었다. 소원대로 제법 무직한 집안의 아가씨와 선을 보게 되었다. 사람을 안 보고도 조건만으로 마음이 흡족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이 밀려왔다. 그런 집안에서 우리 아들이 과연 마음에 찰까? 아무리 저울추를 움직여도 형평이 맞지 않았다. 내가 올라가고 남편이 거들어도 아들 쪽이 기울었다. 결국 중매는 성사되지 않았다. 신랑 쪽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의 직업까지 묻더란다.
가까운 친구나 이웃에서 며느리를 찾기로 했다. 삼사십 년 넘게 지켜보았으니 서로 알 만큼 아는 사이였다. 우리 아들이 참하다며 사위 삼고 싶다는 농담을 던진 적이 있었으니 손만 내밀면 금방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친구는 사양했다. 너무 가까운 사이에 사돈으로 맺어지면 우정을 잃을 수도 있다며 웃었지만 내 기분은 씁쓸했다.
나는 저울을 생각하면 먼저 돼지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다 보면 동네 입구에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할 때가 가끔 있었다. 책가방을 내던지기 무섭게 후다닥 달려가면 둘러선 사람들 사이로 꿀꿀꿀 돼지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잔치에 쓸 돼지 무게를 재고 있었다. 네 발이 꽁꽁 묶인 돼지가 저울의 갈고리에 거꾸로 매달렸고 저울추와 돼지가 한바탕 씨름을 했다. 돼지가 발버둥을 치면 장대를 둘러맨 아저씨들이 휘청거렸고 구경하는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돼지의 요동이 잠잠해지고 저울추가 평형을 유지하며 멈추는 순간 와, 하고 함성이 터졌다. 돼지를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모두 흡족해했다. 그렇게 흥정이 이루어지면 마을은 벌써 잔칫집 분위기로 들떴다.
돼지가 몇 근인지 밝혀지면 어른들은 저울의 눈금만 보고도 몇 명이 먹을 수 있다고 예측했다. 사람들은 쩝쩝 입맛을 다시며 ‘튼실하게 잘 키웠네, 돈 좀 쥐겠네’ 부러워했다. 우리가 궁금해서 저울 막대를 들여다볼라치면 ‘너희들도 시집갈 때가 됐는지 코 꿰어서 무게를 잴까?’ 하며 눈을 부릅떴다. 우리는 기겁해서 도망쳤다. 나중에 알았지만 개중에는 은근히 몸무게를 재고 싶은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는 고운 한복에 족두리 쓴 언니처럼 시집가고 싶었다 했다.
돼지가 매달려 버둥대던 그 장면은 두고두고 내 꿈에 나타났다. 어느 때는 내가 돼지 대신 저울에 매달리기도 했다. 커다란 저울을 가진 사람이 내게 다가와 얼마나 잘 살아왔나 한번 재보자 했다. 내가 매달리자 저울추가 한쪽으로 휙 넘어갔다. 내 욕심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고 저울 주인이 소리쳤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저울은 수평이 되지 않았다. 몸부림치다 잠을 깼다.
그 꿈이 내 마음의 저울을 들여다보게 한다. 욕심은 마음의 수평을 흔들어 놓는다. 그동안 내 저울이 맞지 않은 건 크고 작은 내 욕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철없을 때 떡을 고르듯 언제나 나는 내 몫이 더 많고 무겁기를 바랐다. 그 욕심이 저울추를 흔들었을 것이다.
그 옛날 돼지를 달던 저울은 화기애애하게 평형을 이루었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큰 욕심 부리지 않고 흥정을 마무리했다. 그때는 딱 떨어지게 정확하지 않아도 후한 인심이란 저울추가 있었다. 지켜보는 사람들 또한 훈훈한 추임새로 흥정에 한몫했다. 그 덕분에 마을 잔치는 더욱 풍성하고 흥겨웠다.
이제 나도 저울에 연연하지 않을 나이가 되었다. 굳이 저울질 안 해도 대충 감이 잡히고, 내가 좀 손해 봐도 괜찮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하다. 요즘은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전자식 저울이 세상을 평정하고 있지만, 나는 시끌시끌하게 돼지를 달던 옛날식 저울이 그립다. 정확하게 무게를 달면 일방적으로 한쪽이 손해를 보거나 시시비비를 가릴 일이 없는 대신 돼지에다 인정까지 얹어 무직하게 달아내던 그 넉넉함이 그립다. 오랜만에 시장을 보러 집을 나선다. 오늘은 할머니가 한 웅큼 더 준다 해도 내가 마다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