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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강해(19) 2024. 11. 13
솔로몬의 청원 기도
왕상8:31-53(대하6:22~42)
<솔로몬의 봉헌 기도 중에 드러난 신 인식>
언약궤를 지성소에 자리 잡게 한 후,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한 솔로몬은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봉헌 기도를 드렸습니다. 솔로몬은 온 회중과 마주 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기도했습니다(22절). 이 기도 속에서, 솔로몬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고백하였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인격적이신 분이십니다. 지(지식), 정(감정), 의(의지)를 가지고 계셔서, ‘온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셋째, 솔로몬은 그 하나님은 특정한 장소에 매이시는 분이 아님을 증언하였습니다.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품을 수 없는데,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라고 말합니다. 우주 전체로도 무한하신 하나님의 처소로서는 부족
넷째,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입으로’ 약속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성전 건축은 다윗과 맺으신 약속(삼하 7:8-16) 의 성취입니다. 그런데 그 약속 가운데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성전에서 그리고 성전을 향하여 기도에 응답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솔로몬의 청원 기도>
31절부터 53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솔로몬의 청원 기도’가 들어가 있습니다.
대략 4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개인의 선악을 그 행위대로 갚아주시기를 청원하고 있습니다(공의).
31~32절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이웃에게 범죄함으로 맹세시킴을 받고 그가 와서 이 성전에 있는 주의 제단 앞에서 맹세하거든/ 32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행하시되 주의 종들을 심판하사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돌리시고 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사 그의 의로운 바대로 갚으시옵소서.”
어떤 사람이 그 이웃에게 범죄를 저지르면, 당연히 재판을 받고 그에 합장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증인이나 증거나 없는 경우입니다. 그럴 경우 의심을 받는 자가 성전에 나아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맹세해야 합니다(‘맹세시킴을 받고’). 주의 제단 앞에서 ‘그런 일을 했으면 저주를 받겠다’고 맹세할 경우,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종들 사이에 합당한 판결을 내려주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출22:6~12, 레6:1~5).
이때는 판결을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죄함을 맹세할 경우, 그들 믿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분이시니 그 선악에 따라 그 행위대로 갚아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아무리 은밀한 죄라도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 없음을 믿고 그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마5:33~37절 “또 옛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왜 예수님은 맹세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우리는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신뢰를 주는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믿는 자’들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지위와 신분이 높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체로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굳이 어떤 대상을 상대로 맹세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입으로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는 것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 백성의 말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일깨워줍니다. 그만큼 하나님 백성의 말은 신뢰 있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하면서 맹세를 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는 것입니다.
둘째, 백성이 죄를 범함으로 전쟁에서 패하고 성전에 나아와 빌 때 용서해주시기를 청원합니다.
33~34절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성전에서 주께 기도하며 간구하거든/ 34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에 출전하기에 앞서, 예루살렘과 성전을 바라보며 기도하곤 했습니다.
솔로몬도 같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44~45절 “주의 백성이 그들의 적국과 더불어 싸우고자 하여 주께서 보내신 길로 나갈 때에 그들이 주께서 택하신 성읍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이 있는 쪽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45 주는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옵소서.”
그런데 패배했습니다. 그럼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이 대적에게 패배하는 것은 곧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 것이었습니다(레 26:17, 39-42, 신 28:25, 48, 아간의 범죄로 아이 성에서 패배). 그들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성전에서 주께 빌며 간구하면, 주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문제는 단순히 패배한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포로로 잡혀간 것입니다. 34절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비록 포로로 끌려간 이국땅에서도 당신의 백성들이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면, 다시 고국으로 귀환시켜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서는 바벨론 포로 시에 쓴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회개를 들으시고 돌이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같은 내용의 기도가 46~53절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46~53절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적국에게 넘기시매 적국이 그들을 사로잡아 원근을 막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 47 그들이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반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48 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 곧 주께서 택하신 성읍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4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시오며/ 50 주께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주께 범한 그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그들을 사로잡아 간 자 앞에서 그들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그 사람들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 51 그들은 주께서 철 풀무 같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주의 소유가 됨이니이다/ 52 원하건대 주는 눈을 들어 종의 간구함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간구함을 보시고 주께 부르짖는 대로 들으시옵소서/ 53 주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주의 종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심 같이 주께서 세상 만민 가운데에서 그들을 구별하여 주의 기업으로 삼으셨나이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땅은 언약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기업입니다. 따라서 그 땅에서 추방됨은 이스라엘의 위약(違約)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의 결과입니다(에덴동산에서 쫓겨나듯). 이러므로 조상들에게 선물로 주신 땅, 곧 그들의 기업으로 돌아오는 것은 다시금 계약에의 충실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 달라는 청원입니다.
셋째, 이스라엘에 다양한 재앙이 임했을 때 백성이 나아와 용서를 빌면 죄를 사하여 주실 것과 행위대로 갚으실 것을 청원합니다.
35~40절 “만일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께 벌을 받을 때에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들의 죄에서 떠나거든/ 36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이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시오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 37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막론하고/ 38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3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 40 그리하시면 그들이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땅에서 사는 동안에 항상 주를 경외하리이다.”
가뭄은 이스라엘의 자연환경에서는 가히 국가적 재난이었습니다(17:7, 18:1). 왜냐하면, 팔레스틴은 샘이나 강이 흔치 않아서 가뭄이 한번 들면 아예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무지같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농작물은 때를 따라 이른 비(가을비)와 늦은 비(봄비)가 오느냐 혹은 오지 않느냐에 절대 달렸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가나안 족속이 폭풍과 농작물의 신(神)으로 섬기는 바알(Baal)을 숭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의 길에 빠질 때, 하나님께서는 하는 문을 닫고 오히려 비를 내려주지 않음으로써, 모든 축복의 제공자는 오직 하나님뿐이심을 보여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때에 회개하고 돌이켜 성전을 바라보며 기도하면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그들이 살아갈 올바른 길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시고, 주의 백성에게 유산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다시 내려 달라고 기도합니다.
가뭄뿐 아니라 전염병이 돌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 떼나 황충이 떼가 곡식을 갉아먹거나, 적들이 이 땅으로 쳐들어와서 성읍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에워싸거나, 온갖 재앙이 내리거나, 온갖 전염병이 번질 수 있습니다. 그때에, 주의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나 혹은 주의 백성 전체가, 재앙이 닥쳤다는 것을 마음에 깨닫고, 이 성전을 바라보며 두 팔을 펴고 간절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께서는, 주께서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판단하셔서,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주께서는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니, 주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회개치 않고 악을 행하는 자를 벌주시라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하시면, 그들은, 주께서 우리의 조상에게 주신 이 땅 위에서 사는 동안, 주님을 경외할 것이라고 기도합니다.
넷째, 이방인이 성전에서 기도할 경우 응답해 주실 것을 청원합니다(만민이 기도하는 집).
41~43절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42 그들이 주의 크신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43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시오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지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청원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솔로몬은 이방인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이유를 정확하게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의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면서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계약을 맺었습니다(시내산 계약). 그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를 분명히 하십니다. 그것은 ‘제사장 나라’를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열방(이방인)의 구원을 염두에 두고 계셨던 것입니다.
민수기를 보면,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한 율례를 주셨습니다.
민15:14~16 “너희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이나 너희 중에 대대로 있는 자나 누구든지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를 드릴 때에는 너희가 하는 대로 그도 그리할 것이라/ 15 회중 곧 너희에게나 거류하는 타국인에게나 같은 율례이니 너희의 대대로 영원한 율례라 너희가 어떠한 대로 타국인도 여호와 앞에 그러하리라/ 16 너희에게나 너희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에게나 같은 법도, 같은 규례이니라.”
예루살렘 성전은 단지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한 성전이 아닙니다.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얼마든지 하나님께 예배하며 기도할 수 있는 곳입니다.
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 점을 더욱 분명하게 강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사56:6~8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8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시는 주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미 모은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막11:17(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님)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에 있어서 유대인과 이방인은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확증하셨습니다.
롬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10:12~13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솔로몬은 이 성전은 유대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세계 열방의 구원을 위한 통로로 세워졌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솔로몬의 청원 기도를 통해, 우리는 성전의 역할을 우리 교회의 역할과 비교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성전은 세상의 공의를 바로 세우는 곳입니다(하나님께서 개인의 선악을 그 행위대로 갚아주시기를 청원).
오늘날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때, 세상이 부패하고 타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등대’의 역할을 할 때, 가야할 방향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방주’의 역할을 할 때, 많은 이들을 주께로 돌아올게 할 수 있습니다.
성전은 백성이 범죄하고 인생의 큰 낭패와 시련을 겪을 때, 돌아와 회개하는 곳입니다. 성전은 죄인이 하나님과 만나는 곳이요 사죄의 은혜를 받는 곳이요, 다시금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을 덧입는 곳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참된 회개가 일어나는 곳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은혜를 의지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곤경과 어려움에서 벗어날 지혜와 힘을 주십니다.
오늘날 지구는 끊이지 않는 전쟁의 공포와 질병의 고통과 가믐과 홍수의 재난과 기근과 기아에 떨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징계하심으로 보지 않습니다. 전쟁은 각국 간의 이해충돌로, 질병은 무질서한 생활방법 때문으로, 가뭄과 홍수는 천재지변으로, 기근과 기아는 정치 부재 현상으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늘의 창을 닫아 백성들의 죄를 징계하신 것임을 고백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적 제사장’입니다. 즉 열방의 죄와 재앙을 보며, 가슴을 치며 회개하여야 할 제사장입니다(이 시대의 의인 열 사람의 역할).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깨닫고 먼저 우리 자신이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이 나로부터(우리 교회로부터) 시작되었음을 고백하고,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바로 설 수 있기를 기도하십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만의 성전이 아닙니다. 세계만민이 와서 기도하는 성전입니다.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열린 공동체’여야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사도교회가 ‘열린 공동체’가 되어 여기에 오는 모든 이들을 환대하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돕고, 또 성장케 하여, 그들이 세상에 나가 ‘열세 번째 사도’로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돕게 역할을 잘해 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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